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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전설의 고래 시쿠>와 2048년 미래 배경 본문

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전설의 고래 시쿠>와 2048년 미래 배경

OneTiger 2020. 8. 21. 20:01

 

 

과학자들은 장거리 우주선에 탑승하고 태양계에서 벗어납니다. 외계 행성에서 개척자들은 대규모 바이오 돔을 건설하고 야생 보호 구역을 조성합니다. 거대 도시에서 비행 차량들은 바쁘게 돌아다닙니다. 상급 인공 지능은 자연어를 구사하고 노가리를 깝니다. 인조인간들은 진짜 인간이 되기 원하고, 현상금 사냥꾼은 그들을 추격합니다. 컴퓨터 가상 공간은 또 다른 문명, 제2의 인생이 되고, 수많은 사람들은 또 다른 인생들을 즐깁니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생체 우주선은 우주 버스가 됩니다. 일반적인 우주선들과 달리, 생체 우주선은 아주 거대한 나무입니다.

 

이것들은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많은 SF 팬들은 이것들이 SF 설정이라고 인정할 겁니다. 장거리 우주선과 대규모 바이오 돔과 비행 차량과 상급 인공 지능과 인조인간과 가상 공간과 생체 우주선은 SF 장르에 속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미래 사건입니다. 아직 현실에서 이것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과학자들은 장거리 우주선을 건조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과학자들이 장거리 우주선을 건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계 행성에서 개척자들은 대규모 바이오 돔을 짓지 못합니다. 만약 어떤 소설이 대규모 바이오 돔을 이야기하기 원한다면, 시간 배경은 미래일 겁니다.



만약 미래에서 과학 기술과 사회 구조가 발전한다면, 미래 인류 문명은 장거리 우주선을 날릴지 모릅니다. 장거리 우주선이 항해하기 때문에, 외계 행성에서 개척자들은 바이오 돔을 짓고 야생 보호 구역을 조성할지 모릅니다. 이 설정은 미래에 어울립니다. 비행 차량과 상급 인공 지능과 인조인간과 가상 공간과 생체 우주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어떤 만화, 연극, 애니메이션, 영화, 테이블 게임, 비디오 게임이 이것들을 이야기하기 원한다면, 미래 배경과 이것들은 잘 어울릴 겁니다. 그래서 수많은 SF들은 미래 배경을 묘사합니다. SF 장르에서 수많은 시간 배경들은 미래입니다.

 

SF 장르에서 수많은 시간 배경들이 미래이기 때문에, 만약 어떤 이야기에서 시간 배경이 미래라면, 이 이야기는 SF 장르에 속할지 모릅니다. 소설 <유리알 유희>에서 시간 배경은 미래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사이언스 픽션인지 모릅니다. 비록 헤르만 헤세가 SF 소설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여러 유토피아 문학들이 미래를 상정하는 것처럼, <유리알 유희>는 미래를 상정하고, 이 소설은 SF 장르에 속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주류 문학 독자들은 <유리알 유희>가 SF 소설이 아니라고 반박할 겁니다. 어떤 SF 팬들 역시 <유리알 유희>가 SF 소설이 아니라고 반박할 겁니다.



주류 문학 독자들과 SF 팬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사이언스 픽션이 첨단 과학 기술을 묘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장르 명칭이 가리키는 것처럼, 이 장르에서 첨단 과학 기술은 필수적입니다. 장거리 우주선은 첨단 과학 기술입니다. 외계 행성의 대규모 바이오 돔은 첨단 과학 기술입니다. 비행 차량과 상급 인공 지능과 인조인간과 가상 공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생체 우주선조차 첨단 과학 기술입니다. 만약 살아있는 거대한 나무가 우주선이 된다면, 분명히 이 나무는 개조 생명체일 겁니다. 유전 공학 기술은 이 나무를 키웠을 겁니다.

 

유전 공학은 첨단 과학 기술입니다. 게다가 우주에서 나무 같은 생명체가 살아남는다면, 이건 일반적인 유전 공학 기술이 아닐 겁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살아있는 나무 우주선을 제안하나, 이게 정말 가능할까요? 아무리 미래에서 우주 항해가 가능해진다고 해도, 우주 항해자들이 기계 우주선보다 생체 우주선을 선택할까요? 상급 인공 지능부터 거대한 나무 우주선까지, SF 설정은 첨단 과학 기술에게 기반합니다. 반면, <유리알 유희>는 첨단 과학 기술에게 기반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인문학 천국을 묘사합니다. 인문학 천국과 첨단 과학 기술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양쪽은 대조적입니다.



인문학과 첨단 과학이 대조적이고, <유리알 유희>가 인문학 유토피아를 묘사하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은 헤르만 헤세가 SF 소설을 의도하지 않았고 이 소설이 SF 장르에 속하지 않는다고 분류할 겁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바이오펑크 기술을 묘사하기 때문에, <멋진 신세계>는 SF 장르에 속하는지 모르나, 이 소설과 <유리알 유희>는 다릅니다. 샬롯 퍼킨스 길먼의 <내가 깨어났을 때 Moving the Mountain>가 페미니즘 유토피아를 다루고, 페미니즘 유토피아가 아주 전복적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SF 장르에 속하는지 모르나, 이 소설과 <유리알 유희>는 다릅니다.

 

하지만 진지하고 엄중한 소설부터 신나는 비디오 게임까지, 수많은 사이언스 픽션들이 미래를 묘사하고, 유토피아 문학으로서 <유리알 유희>가 미래 문명을 묘사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SF 장르에 속하는지 모릅니다. 비단 <유리알 유희>만 아니라 전반적인 유토피아 문학들은 미래 문명을 묘사하고, 그래서 유토피아 문학은 SF 장르에 속합니다. 만약 미래 배경이 SF 설정이라면, <전설의 고래 시쿠>는 어떤가요? 진 크레이그헤드 조지는 <전설의 고래 시쿠>를 썼습니다. 1848년, 대서양에서 미국 포경선들은 참고래들을 신나게 싹쓸이합니다. 대서양은 고래 없는 바다, 공허한 바다가 됩니다.



풍요로운 고래들을 찾기 위해 미국 포경선들은 북태평양으로 몰려가고, 여기에서 또 다시 미국 포경선들은 고래들을 학살합니다. 그러는 동안, 이누이트들과 미국 백인들은 반목하거나 교제하고, 북극 고래들, 이누이트들, 미국 백인들은 복잡하게 얽힙니다. 소설 <전설의 고래 시쿠>는 활머리 고래 시점, 이누이트 시점, 미국 백인 시점을 차례로 제시하고 어떻게 산업 발전이 자연 생태계와 원주민 사회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서술합니다. 여러 소설 주연 등장인물들이 10대이고, 이 소설이 10대 성장 소설에 가깝기 때문에, 전반적인 분위기는 경쾌합니다. 사건 전개 역시 빠릅니다.

 

<전설의 고래 시쿠>는 깊게 고민하고 진지한 무게를 잡기보다 쉽고 빠르게 지나갑니다. 이건 이 소설이 가볍게 촐랑거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록 전반적인 분위기가 가볍다고 해도, 이 소설은 굵직한 갈등들을 놓치지 않습니다. 미국 백인들은 이누이트 사회로 일방적으로 밀고 들어가고, 이누이트 사회는 서구 근대화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과정은 여러 갈등들로 이어지고, 비록 묘사가 세심하지 않다고 해도, 10대 독자들에게 여러 갈등들은 깊은 고민이 될지 모릅니다. 특히, 이 소설이 여러 세대들을 다루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세심한 깊이보다 기나긴 흐름입니다.



1848년 포경 사업에서 <전설의 고래 시쿠>는 출발하나, 이 소설은 오직 19세기 시간 배경만 설정하지 않습니다. 1848년부터 2048년까지, 이 소설은 여러 세대들을 거치고 기나긴 흐름을 담습니다. 이 소설이 기나긴 흐름을 담기 때문에, 이 소설은 세심한 깊이를 담지 못합니다. 만약 독자층이 성인이었다면, <전설의 고래 시쿠>는 세심한 깊이와 기나긴 흐름을 함께 담았을지 모르나, 독자층이 10대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많은 사건들을 의도적으로 가볍게 전개했을 겁니다. 무엇보다 왜 이 소설이 2048년을 묘사하나요? 아직 2048년은 오지 않았습니다. 2048년은 미래 배경입니다.

 

<전설의 고래 시쿠>는 비단 1848년 과거 배경만 아니라 2048년 미래 배경을 묘사합니다. 출판사 보도 자료는 무분별한 환경 오염을 경고하기 위해 이 소설이 미래 배경을 묘사한다고 설명합니다. <전설의 고래 시쿠>는 기후 변화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나, 분명히 이 소설은 기후 변화를 암시합니다. 현실에서 기후 변화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만약 인류 문명이 산업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환경 오염은 훨씬 심각해질 테고, 2050년 이후, 지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될지 모릅니다. 환경 전문가들이 2050년을 경고하기 때문에, <전설의 고래 시쿠>는 2048년을 묘사하는지 모릅니다.



<전설의 고래 시쿠>가 2048년 미래를 묘사하기 때문에, 이 소설이 SF 장르에 속할 수 있나요? 인조인간은 미래 사건입니다. 대규모 바이오 돔은 미래 사건입니다. 상급 인공 지능부터 생체 우주선까지, 아직 현실에서 이것들은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이것들은 미래 사건이 됩니다. 미래 사건은 SF 설정이 될 수 있습니다. <전설의 고래 시쿠>는 미래 사건(2048년)을 묘사합니다. 미래 사건이 SF 설정이 될 수 있고, <전설의 고래 시쿠>가 미래 사건을 묘사하기 때문에, 이 소설이 SF 장르에 속할 수 있나요? 하지만 이 소설에서 2048년 미래 배경은 작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전설의 고래 시쿠>에서 대부분 시간 배경들은 19세기 중반~21세기 초반입니다. 2048년 미래 사건은 그저 마지막 장을 장식할 뿐입니다. 이 소설에서 미래 사건이 그저 마지막 장에 불과하기 때문에, 2048년 배경이 작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SF 장르에 속하지 않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진 크레이그헤드 조지는 SF 소설을 의도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전반적으로 <전설의 고래 시쿠>는 SF 전형(典型)을 크게 의식하지 않습니다. 아니, 아무리 소설 작가가 SF 전형을 의식했다고 해도, 미래 사건이 작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장르 전형을 크게 드러내지 못합니다.



미래 사건이 작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전설의 고래 시쿠>는 첨단 과학 기술에게 기반하지 않습니다. <유리알 유희>에서 첨단 과학 기술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처럼, <전설의 고래 시쿠>에서 첨단 과학 기술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첨단 과학 기술을 묘사해야 합니다. 비록 첨단 과학 기술이 황당무계하다고 해도, '사이언스' 픽션에서 첨단 과학 기술은 핵심 비중을 차지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소설에서 과학자들이 유려한 곡선들을 선보이는 생체 잠수정에 탑승하고 외계 해양 생태계를 탐사한다면, 이 소설에서 첨단 과학은 핵심 비중을 차지할 겁니다. 생체 잠수정은 첨단 장비입니다.

 

비록 생체 잠수정이 황당무계한 설정이라고 해도, 생체 잠수정은 유전 공학을 요구할 테고, 유전 공학은 첨단 과학입니다. 유전 공학이 유려한 곡선들의 생체 잠수정을 키우기 때문에, 생체 잠수정이 외계 해양 생태계를 돌아다니는 동안, 잠수정의 (살아있는) 부품들은 외계 자연 생태계를 오염시키거나 교란할지 모릅니다. 만약 과학자들이 이것을 지적하고 논의한다면, 이 장면은 첨단 과학을 부각할 겁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SF 장르에 속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전설의 고래 시쿠>에서 첨단 과학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SF 장르에 속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판타지, 우화에 가깝습니다.



이 소설은 활머리 고래를 의인화합니다. 이 소설에서 인간과 고래는 직접 소통하지 못하나, 주연 이누이트 등장인물들과 활머리 고래 시쿠는 정신적으로 교감합니다. SF 장르가 정신 감응력 초인들을 묘사하는 것처럼, 어쩌면 <전설의 고래 시쿠>는 주연 이누이트 등장인물들이 초인이라고 설정하는지 모릅니다. 이누이트 등장인물들은 이 정신적인 교감이 주술이라고 표현하나, 어쩌면 이건 주술보다 초능력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설의 고래 시쿠>는 이 교감이 초능력이라고 주장하기 위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 교감은 초능력인지 모르나, 근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설의 고래 시쿠>는 판타지, 우화에 가깝습니다. 이 소설은 사변 문학에 속하(는지 모르)나, 이 소설은 사이언스 픽션에 가깝기보다 판타지, 우화에 가깝습니다. 물론 어떤 소설 독자들은 장르에게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전설의 고래 시쿠>가 사이언스 픽션이든 아니든, 장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르보다 재미이고, 이건 골 백 번 옳은 주장입니다. 하지만 재미는 '장르로서 재미'를 포함합니다. 만약 장르가 중요하지 않다면, 왜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장르가 존재하고, 왜 특정한 소설 작가들이 그들을 SF 작가라고 규정하나요? SF 장르는 특정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전설의 고래 시쿠>가 2048년 미래를 묘사하기 때문에, 어떤 독자들은 크게 감동할지 모릅니다. 만약 2012년에서 이 소설이 끝났다면, 커다란 감동은 희석되었을지 모릅니다. <전설의 고래 시쿠>는 미래 사건을 묘사하고, SF 장르에서 미래 배경이 아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비록 <전설의 고래 시쿠>가 SF 소설이 아니라고 해도, 이 소설은 SF 분위기를 어느 정도 풍기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소설 독자가 <전설의 고래 시쿠>를 분류하는 동안, 소설 독자는 SF 장르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어떤 소설 독자들은 이 의견에 반박할지 모릅니다.

 

SF 장르를 완벽하게 규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건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이 블로그 <SF 생태주의>는 SF 장르를 어느 정도 규정하나, 다른 많은 SF 팬들은 이 블로그에게 반박할 겁니다. 문학을 비롯해 만화, 연극, 애니메이션, 영화, 테이블 게임, 비디오 게임은 다양한 해석들을 제시하고, 고정적인 정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정적인 정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SF 팬들은 이 장르를 다양하게 해석합니다. 어쩌면 SF 장르는 다양한 해석들 그 자체인지 모릅니다. SF 장르는 고정적이고 딱딱한 형태가 아닙니다. 수많은 끊임없는 논의들과 토론들, 반박들 그 자체는 SF 장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논의들과 토론들, 반박들 그 자체가 SF 장르라고 해도, SF 팬들은 한 가지 사실에 동의해야 합니다. 서구 근대화가 나타났기 때문에, 소설 작가들은 사이언스 픽션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사변 문학은 존재했으나, 서구 근대화가 나타나는 동안, 사변 문학은 과도기를 거쳤고, 사이언스 픽션은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무리 SF 장르가 수많은 끊임없는 논의들이라고 해도, 하늘에서 갑자기 사이언스 픽션은 뚝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서구 문화가 근대화를 거치는 동안, 사이언스 픽션은 자리를 잡았습니다. 서구 근대화는 SF 생산 조건입니다.

 

SF 장르를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는 논의들과 토론들, 반박들은 서구 근대화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지만 서구 제국주의 속에서 서구 근대화를 주목할 수 있나요? 서구 제국주의 속에서 서구 근대화를 주목하기가 쉽나요? 어떤 서평에서 듀나님이 <전설의 고래 시쿠>를 리뷰했을 때, 듀나님은 '인간과 자연의 투쟁'을 언급했습니다. 출판사 보도 자료 역시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 파괴와 환경 오염'을 언급합니다. 인간? 인간? 인간이 자연 환경을 오염시키나요? 인간이 자연 환경을 정말 오염시키나요? 하지만 이누이트는 인간입니다. 미국 백인들은 이누이트 사회에게 일방적으로 개입합니다.



이누이트 사회는 서구 근대화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상황에서 미국 백인들과 이누이트 사람들이 동일한 위상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비단 이누이트들만 아니라 인디언들, 흑인들, 원주민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구 문명이 근대에 접어드는 동안, 서구 문명은 식민지들을 끔찍하게 수탈했습니다. 끔찍한 식민지 수탈에서 자본주의는 비롯했습니다. 서구 자본가 계급이 온실 가스를 뿜고, 자연 환경을 오염시키고, 막대한 이득을 얻는 동안, 인디언들, 흑인들, 원주민들은 죽어나갔습니다. 하지만 듀나님과 출판사 보도 자료는 산업 자본가 계급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듀나님과 출판사 보도 자료는 인류에게 죄를 뒤집어씌웁니다. 이건 서구 제국주의 편견입니다. 아무리 출판사 보도 자료가 감동적인 인연과 깊은 울림을 운운한다고 해도, 출판사 보도 자료는 서구 제국주의 편견을 드러냅니다. 듀나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건 듀나님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서구 제국주의를 뒷받침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21세기 초반 인류 문명에서 자본주의가 가장 지배적이기 때문에, 세계화 자본주의에서 서구 제국주의 편견은 개인적인 문제보다 사회 문제입니다. 이건 너무 심각한 사회 문제입니다.



이 사회 문제 속에서 SF 팬들은 서구 근대화를 분석합니다. 서구 제국주의 편견 속에서 SF 팬들은 서구 근대화를 분석합니다. 이게 타당한 분석이 될 수 있나요? 아니, 이 상황에서 SF 장르는 서구 근대화를 떠받들기 위한 도구가 됩니다. 옥타비아 버틀러와 반다나 싱과 셸리 스트리비와 노라 제미신이 한 목소리로 백인 남자 신화를 비판한 것처럼, 이미 SF 장르는 서구 근대화를 떠받들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SF 팬들은 식민지 수탈을 경계해야 합니다. 서구 제국주의를 경계하기 위해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같은 지식인은 좋은 참고가 됩니다.

하지만 가야트리 스피박이 서구 제국주의를 '해체'하기 전에, 이미 20세기 초반에서 제국주의 담론은 존재했습니다. 마리아 미스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비(非)자본주의 영역을 포착했다고 호평합니다. 이미 20세기 초반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확장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만약 SF 팬들이 서구 근대화와 제국주의 기원을 파악하기 원한다면, 로자와 레닌이 아주 좋은 출발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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