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적록서재> 같은 목소리들이 필요한 이유 본문
"만약 미래의 어느 순간에 커다란 환경적·경제적·사회적 재앙이 닥쳐서 일대 각성이 일어난다면, (나는 이것이 결코 더 이상 SF 소설 작가의 전문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 안에도 참여 경제가 전제하는 소비 행위로의 대변화를 목격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장석준이 쓴 서평집 <적록서재>에는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적록서재>는 어떻게 인류 문명이 자본주의 체계를 극복할 수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대안 사회들을 검토하고, 그런 대안 사회들을 고민하는 책들을 소개하고 설명합니다. 재미있게도 저자는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더 이상 SF 작가의 전문 영역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마 저자는 경제 공황, 핵 무장, 핵 발전소들, 생태계 교란, 기후 변화 등이 엄청난 재앙들을 일으킬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문구는 비단 <적록서재>에만 나오지 않습니다. 경제 문제나 환경 문제를 다루는 여러 책들은 세상이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작가들이 경고하는 상황들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생태계 교란과 기후 변화는 더 이상 과학적인 상상력이 아니라 우리를 압박하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은 다른 SF 하위 장르들보다 훨씬 무섭고 훨씬 현실적입니다. 특히, Cli-Fi 소설들은 더 이상 SF 영역에 속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주류 문학 작가들조차 기후 변화를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기후 변화는 SF 울타리 안에서 쉽게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해수면 상승, 엄청난 폭설이나 폭우, 극단적인 가뭄, 빙하 소멸 같은 현상들이 아직 닥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재앙들을 예상하고, 기후 난민들은 이미 현실적인 문제가 되었으나, 정말 거대한 재앙은 아직 닥치지 않았습니다. 정말 뉴욕 같은 해안 도시들이 물에 잠길까요? 정말 폭설이 눈덩이 지구를 만들까요? 극단적인 가뭄 때문에 세계 곳곳이 전쟁을 터뜨릴까요? 서구 문명이 무너지고 중국 문명이나 남아메리카 문명이 주도권을 잡을까요?
아직 아무도 확실한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기후 변화는 현실적인 문제이나, 정말 거대한 재앙은 아직 닥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류 문학들이 기후 변화에 주목한다고 해도, 기후 변화는 여전히 SF 울타리 안에 들어갑니다. 여러 Climate Fiction 소설들은 SF 울타리 안에 들어가고, 마가렛 앳우드나 파올로 바치갈루피나 킴 스탠리 로빈슨이나 제프 밴더미어는 Cli-Fi 작가들을 대변합니다. (마가렛 앳우드는 자신이 SF 작가가 아니라고 우기나) 이런 작가들은 SF 울타리에 속하죠. 어쩌면 기후 변화가 정말 해수면 상승이나 폭설이나 문명 멸망으로 이어지기 전까지, Cli-Fi 장르는 계속 SF 울타리 안에 머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Cli-Fi 장르가 SF 울타리 안에 머문다고 해도, 사람들은 기후 변화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태계 교란과 기후 변화가 심각하기 때문에 이른바 녹색 서적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서점에는 기후 변화를 경고하고 해석하는 온갖 책들이 널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책들이 많이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기후 변화를 경고하는 숱한 책들은 사회 구조보다 윤리적인 자세나 개인적인 실천을 강조합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사회 구조 때문에 그런 막대한 재앙이 다가옴에도, 숱한 사람들은 그저 개인적인 윤리와 개인적인 실천에 얽매입니다. 자본주의가 자꾸 사회가 아니라 개인을 강조하기 때문일 겁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사회 구조를 바꾼다면, 인류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사회주의가 나쁘다고 왜곡하고, 사람들에게 이런 왜곡을 주입합니다. 사람들은 왜곡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본주의를 맹신하는 광신도나 자본주의 좀비가 됩니다. 좀비에게는 생각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도 생각이 없습니다. 다들 자본주의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자본주의를 따라가는 좀비가 됩니다. 그래서 기후 변화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생태학자들 역시 비슷합니다. 생태학자들 역시 자본주의 좀비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생태학자들, 자연 작가들, 자연 연구자들, 생태 매니아들이 있습니다. 다들 자신이 자연 생태계를 사랑하고, 야생 동물을 좋아하고, 생태 덕후라고 이야기합니다. 서점에서 생태학 서적이나 녹색 서적을 조금 검색한다면, 독자들은 그런 생태학자들과 자연 연구자들과 생태 덕후들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진짜 생태학이 뭘까요? 오직 먹이 그물망을 이해하고 야생 동식물들을 관찰하는 행위만이 생태학이 될까요? 그런 생태학은 기후 변화를 막지 못합니다. 그런 생태학은 자본주의를 지적하지 않고, 따라서 기후 변화를 절대 막지 못합니다.
사실 수많은 생태학자들과 자연 연구자들과 생태 덕후들은 자본주의 좀비들입니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자본주의를 따라가는 좀비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태 덕후라고 자랑하나, 그들 역시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는 좀비입니다. 생태 덕후들은 도널드 트럼프를 욕하나, 생태 덕후들과 도널드 트럼프는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양쪽 모두 똑같이 자본주의를 숭배하죠. 이런 생태 덕후들이 떠드는 생태학은 1차적인 생태학일 겁니다. 저는 그보다 좀 더 깊은, 2차적인 생태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생태 사회주의는 그런 생태학이 될 수 있겠죠.
물론 저는 그런 생태 덕후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일개 개인이 지배적인 자본주의 체계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겠어요. 뭐, 저 역시 태어날 때부터 생태 사회주의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동안 저 역시 자본주의를 숭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왜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계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지 이해합니다. 저 역시 그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태 사회주의를 외치는 목소리는 더욱 커져야 합니다. 그래서 <적록서재> 같은 책들은 소중한 서평집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