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자유 시장을 지지하는 가짜 페미니즘 본문
자유 시장을 지지하는 페미니즘의 문제점. 이렇게 제목을 달았으나, 사실 자유 시장을 지지하는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이 아닐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입에 담을 자격이 없을 겁니다. 자유 시장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입니다. 폭력은 자유 시장 속에서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당연히 자유 시장은 여자들에게도 폭력적입니다. 현실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사회적 약자이고, 따라서 자유 시장은 남자보다 여자를 훨씬 더 많이 착취합니다. 하지만 어떤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자유 시장을 지지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그저 단순히 정체성 철학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여자들이 해방과 독립만 외친다면, 그게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들이 해방과 독립을 외친다면, 자유 시장은 그걸 옳다구나 받아줄 겁니다. 그리고 자유 시장은 여자들에게 임금 노동자가 되고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라고 권유하겠죠. 여자들은 그게 해방과 독립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임금 노동자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 겁니다. 그런 여자들은 다른 약자들을 짓밟고,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자연 환경을 오염시킬 겁니다.
자유 시장은 뭐든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여자들이 독립과 해방을 외친다면, 자유 시장은 그걸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유 시장은 여자들에게 임금 노동자가 되라고 말하고, 사실 수많은 여자들이 당당한 커리어 우먼을 추구합니다. 당당한 커리어 우먼. 네, 좋죠. 하지만 자유 시장 자체가 폭력적입니다. 그 속에서 당당한 커리어 우먼을 추구한다고 해도 그저 자위 행위에 지나지 않아요. 자유 시장은 모든 것을 이윤으로 환산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치들은 자유 시장 속에서 이윤으로 바뀝니다.
이윤이 되지 못하는 것들은 존재할 가치가 없고, 그래서 자유 시장은 폭력적으로 그런 것들을 제거합니다. 자유 시장은 권위적이지 않은 전환 마을이나 소수 민족들의 고양적인 문화나 풍부한 야생 동물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권위적이지 않은 공동체나 소수 민족들이나 풍부한 생물 다양성은 이윤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본가들이 자본을 축적하고 싶다면, 그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파괴해야 합니다. 전환 마을이 재활용을 강조하고 소비를 약화시킨다면, 어떻게 자본가들이 계속 시장을 확대할 수 있겠어요. 야생 동물들이 멀쩡하게 살아간다면, 어떻게 자본가들이 자원을 채굴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자유 시장을 지지하는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저런 현실을 간과합니다. 그들은 그저 여자들이 당당한 주체가 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자유 시장은 빈민촌을 철거하고 가난한 여자들은 매춘부가 되어야 하나, 자유 시장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는 그런 현실을 외면합니다. 당당한 커리어 우먼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약자를 짓밟으나, 자유 시장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는 그런 현실을 외면합니다. 자유 시장은 언제든 그런 당당한 커리어 우먼을 짓밟을 수 있으나, 자유 시장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는 그런 현실을 외면합니다.
자유 시장은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유리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유롭게' 돈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유' 시장이죠. 돈을 마음대로 쓸 자유. 다른 공동체들이나 사회 조직들은 그런 자유를 간섭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재벌들이 석유를 캐내고 바다 밑바닥을 오염시켜도 환경 단체나 녹색당은 거기에 간섭하지 못합니다. 재벌들은 자유롭게 돈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자유 시장이 드러내는 실체입니다. 하지만 자유 시장을 지지하는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여기에 관심이 없어요. 죽자 살자 정체성만 붙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수많은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합니다. 사실 오바마나 클린턴은 자유 시장에 전혀 손을 댈 의도가 없음에도 수많은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합니다. 물론 저 두 사람은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꽤나 진보적으로 보이고, 뭔가 따스하고 자애로운 사회를 만들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예전에도 자유 시장을 지지하는 진보적인 인물들은 존재했습니다. 결국 그런 인물들은 빈민들과 자연 환경을 배신했습니다. 국가와 자본이 빈민들과 야생 동물들을 짓밟을 때, 결국 자유 시장을 지지하는 (자칭) 진보적인 인물들은 거기에 찬성했습니다.
아니, 이건 배신이 아니겠죠. 애초에 그들은 국가와 자본을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평등을 외치고 인간적인 세상을 외치나, 자본이 뭔가를 짓밟는다면 거기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거나 적어도 그걸 말리지 않습니다. 버락 오바마는 좋은 사람입니다. 온화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죠.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온화하고 인간적인 사람도 자유 시장 속에서 얼마든지 폭력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그런 폭력은 사회적 약자인 여자들을 더욱 가혹한 상황으로 몰아넣고요.
저는 정체성 문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체성 문제를 외면하는 사회주의는 평등을 추구하지 못하고, 그래서 어떤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적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했습니다. 뭐, 멀리 가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나라 운동권들만 봐도 답이 딱 나옵니다. 하지만 정체성 문제만 붙든다고 해도 전부가 아닙니다. 정체성 문제를 중요하게 고민하는 한편, 이 폭력적인 자본주의를 함께 고민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