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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자본의 침략을 외면하는 <세계 대전 Z>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자본의 침략을 외면하는 <세계 대전 Z>

OneTiger 2017. 8. 4. 20:00

소설 <세계 대전 Z>는 어떻게 전세계가 좀비들과 전쟁을 벌였는지 이야기합니다. 제목처럼 이 소설은 비단 한 지역이나 한 나라가 아니라 수많은 나라들을 골고루 둘러봅니다. 각 나라들은 저마다 독특한 역사와 문화와 사회를 유지합니다. 이 세상에 똑같은 나라는 없습니다. 따라서 좀비 떼가 몰려와도 각 나라들은 서로 다르게 대처합니다. 어떤 나라는 손쉽게 좀비들을 물리치고, 어떤 나라는 금방 혼란에 빠지고, 어떤 나라는 고립되고, 어떤 나라는 지도력을 발휘합니다.


좀비 떼가 몰려오는 와중에 어떤 나라는 다른 나라와 싸우고, 어떤 나라는 내전을 진압하느라 고생합니다. 이 소설에서 좀비 전쟁은 각 나라의 독특한 풍습과 분위기와 사회를 반영합니다. 이 소설이 여타 좀비 아포칼립스와 다른 점은 바로 이런 풍습과 분위기와 사회의 차이입니다. 강대국들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지만, 작가는 작은 나라들을 빼먹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어쩌면 이 소설의 진짜 정체성은 좀비 아포칼립스가 아닐지 모릅니다. 그보다 각 나라들을 둘러보는 세계 여행이 진짜 정체성이라고 할까요.



소설 속에서 좀비 전쟁을 거치는 동안 여러 나라들은 색다르게 탈바꿈합니다. 가령, 쿠바는 백인들(미국인들)과 대놓고 교류하고, 자본주의 경제가 완전히 정착했습니다. 내용 누설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왜 쿠바가 그렇게 되었는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문제는 이 소설이 자본주의 경제가 마치 자유롭고 민주적인 제도를 동반하는 것처럼 서술했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이고, 자본주의가 자유나 인권과 동일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사회주의는 독재적이고,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사회주의라고 생각하죠. 이런 초보적인 사회 철학이 여전히 상식을 지배합니다. 그만큼 거대 자본의 권력이 크기 때문일 겁니다. 거대 자본은 자본주의를 자유와 인권으로 포장하고, 사회주의를 독재라고 매도합니다. 사회주의가 커진다면, 거대 자본에게 별로 이득이 되지 않겠죠. 노동자들이 좀 더 편하게 살고 많은 임금을 받는 이유, 자연 생태계가 그나마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그많큼 여러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맞서 싸웠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체계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지만, 그보다 해악이 훨씬, 어마어마하게 크죠.



자본주의 체계가, 미국의 자본주의 체계가 정말 자유와 인권을 보장할까요.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세계 대전 Z> 역시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아마 가장 유명한 사례는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일 겁니다. 그 외에 다양한 라틴 아메리카 정권이 서구의 그 자유롭고 민주적인 자본주의 덕분에 파산에 이르렀죠. 이른바 시카고 학파는 민영화를 권유했으나, 민영화는 자유나 민주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민영화는 언제나 폭력을 불러왔고, 숱한 사람들이 시체 언덕을 쌓았습니다. 그런 비극은 21세기 라틴 아메리카에서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그렇게 미국에 저항했을까요. 우고 차베스가 전적으로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차베스는 서구 자본주의 침략을 강렬하게 비판했고, 그 자신이 피해를 입을 뻔했죠. 그런 비판은 틀리지 않습니다. 아니, 어디 라틴 아메리카뿐이겠습니까. 자본주의 체계의 침략은 중동과 동남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를 가리지 않아요. 강대국의 약자들도 마찬가지죠.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미국의 민주주의는 미국만의 민주주의일 뿐이라고…. 하지만 미국 내부의 수많은 빈민들과 약자들과 동물들을 살펴보면, 미국만의 민주주의는 상류층과 중산층과 서민들에게만 적용되나 봅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심지어 자국의 빈민과 약자와 동물을 돌보지 않아요. 왜냐하면 자본주의 체계가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자본주의 체계는 (돈이 안 되는) 빈민들과 약자들과 동물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그게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숭상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자본주의 체계의 실체죠.


하지만 거대 자본의 권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걸 일일이 파악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이런 착취적이고 폭력적인 실체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슬라보예 지젝이나 노엄 촘스키처럼 유명한 양반이 떠들어도 모두가 귀를 기울이지 않죠. <세계 대전 Z> 역시 비슷합니다. 물론 작가의 사고 방식과 작품의 목소리는 다릅니다. 어쨌든 <세계 대전 Z>의 쿠바 이야기는 추악하고 폭력적인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이거야말로 판타지에 지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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