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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실용주의를 빙자한 제물 희생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실용주의를 빙자한 제물 희생

OneTiger 2017. 6. 18. 20:00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희생양을 이야기합니다. 아니, 제물이라고 할까요. 제물은 다른 사람의 이득을 위해 희생되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제물을 바치고, 그 댓가를 바라죠. 때때로 사람들은 이득을 얻기 위해 무분별하게 정도를 넘어갈 수 있어요. 만약 어떤 사람이 이득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제물로 바친다면, 그건 비윤리적인 행위일 겁니다. 대중들은 그 사람이 비윤리적이라고 규탄하겠죠. 하지만 현실 속에는 저런 제물들이 많고 많습니다. 제물은 비윤리적인 행위처럼 보이지만,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리라는 명목으로 제물을 받아들이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그 대신 뭔가 이득을 취하죠.


가령, 우리나라 정치계에서 누군가가 대연정을 외친다면 어떨까요. 대연정을 외치는 인물은 모두가 함께 뭉치기 위해 서로의 허물을 덮을 수 있다고 이야기할 겁니다. 하지만 극우파, 아니, 극우파라고 부를 수 없겠군요. 극우파를 가장한 수구 꼴통들은 4대강 오염처럼 이미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만약 모든 정당들이 연정한다면, 그런 잘못은 수면 아래로 사라질 겁니다. 대연정이라는 이름 아래 그런 착취와 오염은 은근슬쩍 사라질 겁니다. 대연정을 외치는 인물은 권력을 얻을 수 있지만, 4대강 오염은 그대로 남겠죠.



따라서 대연정은 거대한 권력을 얻는 대신 4대강을 희생시킵니다. 대연정은 권력을 위해 4대강을 제물로 바치는 셈입니다. 이런 게 실용주의라고 불리나 봅니다. 하지만 이런 게 과연 실용주의일까요. 글쎄요, 저는 그냥 제물을 바치는 행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건 실용주의가 아닙니다. 거대한 기득권에게 뭔가를 바치는 행위는 실용주의가 아닙니다. 그건 그저 이득을 얻기 위한 단기적이고 편리한 방법에 불과할 뿐입니다. 기득권에게 무릎을 꿇거나 양보한다…. 간단한 방법이죠. 이미 대세는 그쪽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냥 백기를 들고 항복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항복하는 대신 떡고물을 얻을 뿐이죠.


이런 실용주의를 빙자한 제물은 비단 4대강이나 금강 하굿둑이나 설악산 같은 자연 생태계에만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강대국의 침략을 지원하는 대신 이득을 얻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쟁은 비극이지만, 그 사람은 이왕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에 거기에서 뭔가 이득을 얻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게 실리라고 합니다. 미국이 중동을 침략했을 때, 이런 '실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중동의 빈민들을 짓밟는 대신 거기에서 이득을 얻고 자국 노동자들의 복지를 지원할 수 있다고요. (그래서 토니 블레어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이런 논리는 굉장히 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실리'를 따지고, 뭔가를 희생시키는 대신 뭔가를 얻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 희생되는 대상은 대부분 밑바닥 사람들이거나 자연 생태계입니다. 왜냐하면 밑바닥 사람들이나 자연 생태계는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미국이 중동을 쳐들어가도 중동 빈민들의 목소리는 언론에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각종 뉴스는 중동의 전쟁 상황을 수시로 보도하지만, 그런 보도는 피상적인 겉모습만 보여줄 뿐이고 진짜 중동의 가난한 사람들의 실상을 자세히 전달하지 않아요. (노엄 촘스키는 이런 언론의 작태를 아주 강렬하게 비판하죠.)


토건족들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해도 동물들은 인간에게 항의하지 못합니다. 동물들의 목소리는 인류 사회에 들리지 않습니다.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자는 활동가들도 있지만, 동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인류 사회에 퍼뜨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토건족들은 아주 쉽게 자연 생태계를 짓밟습니다. 수많은 동물들이 죽어도 사람들은 그걸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개펄, 하구, 강물이 오염되어도 물고기들은 아무 항의도 하지 못합니다. 덕분에 이런 밑바닥 사람들이나 자연 생태계를 희생시키는 것은 아주 쉬운 행위입니다.



저는 좌파들이 비단 수구 꼴통들만 아니라 저런 '실리'에 대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좌파가 싸워야 한다면, 도대체 뭘 위해서 싸울까요. 왜 좌파는 힘들게 싸워야 할까요. 뭘 위해서?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위해서?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사회를 위해서?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 사회를 위해서? 저는 그런 사회가 몽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키리냐가> 같은 소설이 말하듯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사회나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 사회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 모릅니다. (기술적인 발달이나 다른 이유 때문에) 정말 모두가 불평하지 않는 사회가 생길지 모르죠.


저는 사회주의자들이 그런 평등한 세상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아직 먼 이야기고, 설사 전세계적인 생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도 그 혁명은 많은 이들에게 불편과 고통을 안겨줄 겁니다. 생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면, 기존의 상류층, 재벌, 거대 자본, 중소 자본, 중산층 등등은 분명히 불편하다고 느끼고 고통을 느끼겠죠. 그럼에도 좌파가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기득권과 싸우는 이유는 저런 밑바닥 사람들과 자연 생태계 때문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어울리는 사회나 모두가 불평하지 않는 사회 때문이 아닙니다. 언제나 좌파는 밑바닥 사람들과 자연 생태계를 바라봐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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