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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도롱뇽과의 전쟁이 아니라 인간의 착취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도롱뇽과의 전쟁이 아니라 인간의 착취

OneTiger 2017. 5. 30. 20:00

소설 <도롱뇽과의 전쟁>은 말 그대로 인류와 도롱뇽의 전쟁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두 종족의 전쟁은 그리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도롱뇽과의 전쟁'이라는 제목을 보면 <우주 전쟁>이나 <영원한 전쟁>처럼 엄청난 전쟁이 벌어지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소설 속에서 도롱뇽들은 처음부터 인류에게 전쟁을 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노동자 신세였습니다. 도롱뇽들과 처음 조우한 인물은 진주 사업가였는데, 이 사람은 도롱뇽들이 잠수를 잘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도롱뇽들은 양서류 종족이니까요.


그래서 이 사람은 도롱뇽들을 잠수부 노동자로 써먹었습니다. 이게 인류와 도롱뇽의 최초 접촉이었죠. 그 이후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졌고, 도롱뇽들은 더 이상 하급 노동자로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끝내 그들은 인류와 적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도롱뇽은 해저 종족이었기 때문에 해안선을 넓히기 원했고, 인류는 지상 종족이었기 때문에 이에 반대했어요. 그러자 마침내 도롱뇽은 인류에게 전쟁을 걸었는데, 소설은 어떻게 이 두 종족이 싸우는지 제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이 소설에서 전쟁보다 중요한 것은 인류와 도롱뇽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강대국과 식민지의 관계, 문명인과 야만인의 관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작가 카렐 차페크의 의도가 무엇이든, 소설 속에서 인류와 도롱뇽은 처음부터 대등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류는 도롱뇽을 노동과 산업 발전에 써먹었죠. 소설은 인류 입장에서 도롱뇽을 설명할 뿐이고, 도롱뇽 입장에서 인류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계속 변하기 이르렀고, 마침내 두 종족은 서로 전쟁에 돌입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도롱뇽과의 전쟁'이라는 제목은 떡밥에 가깝습니다. 아니, 소설 속에서 전쟁이 벌어지지 않음에도 어떻게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겠어요. <우주 전쟁>에서는 화성인들이 지구인들을 화끈하게 날려버리고, <영원한 전쟁>에서는 인류와 외계인들이 죽자살자 싸웁니다. 하지만 <도롱뇽과의 전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 '도롱뇽과의 만남'이나 '인류 사회의 도롱뇽 착취'라는 제목이 훨씬 어울릴 겁니다. 사실 카렐 차페크는 전쟁물을 쓰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겁니다. 오히려 차페크는 전쟁이 벌어지기 이전에 얼마나 사회가 어지럽고 엉망으로 굴러가는지 쓰고 싶었을 겁니다.



결국 이 소설은 도롱뇽과의 전쟁보다 '어떻게 인간이 도롱뇽을 산업에 써먹는지' 이야기합니다. 네, 전쟁보다 착취와 학대와 산업 발전이 먼저입니다. 따라서 독자가 이 소설에서 노동자 착취나 식민지 고통의 행간을 읽는다면, 그런 해석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이렇듯 전쟁은 그냥 벌어지지 않습니다. 전쟁 이전에 착취와 오염과 고통과 학살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착취와 고통을 이용한다면, 전쟁이 터집니다. 그런 착취와 고통은 긍정적으로 이용되거나 부정적으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전쟁을 막고 싶다면, 전쟁이 터지기 전에 착취와 고통부터 줄여야 할 겁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그저 막연히 전쟁이 나쁘다고 말할 뿐입니다. 게다가 강대국 기득권들은 착취와 오염을 별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악당이 존재했고 그 악당 때문에 전쟁이 터지는 것처럼 말합니다. 기득권들은 아프리카 깜둥이들이 원래 사악하고 잔인하고 야만적이고 무지하기 때문에 그렇게 내전을 벌이고 학살을 벌인다고 말합니다. 물론 아프리카 사람들도 얼마든지 야만적이고 사악하고 잔인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그 사람들이 그렇게 되었느냐는 겁니다. 그게 정말 천성 때문일까요. 왜 아프리카 사람들의 본성을 말하기 전에 식민지 착취라는 엄청난 비극을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싸움은 우파와 좌파의 싸움이라고 합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우파와 좌파는 동등하게 싸우지 않습니다. 우파가 착취하면, 좌파는 거기에 저항합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형태는 다르지만, 우파와 좌파의 전쟁은 착취와 저항에서 비롯했습니다. 우파는 무조건 나쁘고 좌파는 무조건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좌파 역시 무수한 잘못과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문제는 좌파의 잘못과 학살 이전에 누가 기득권을 거머쥐고 누가 착취를 저질렀느냐는 겁니다. 이 세상은 그리 동등하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따라서 동등한 싸움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전쟁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그 사람은 전쟁 이전에 계급과 착취와 오염부터 말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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