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강철 군화>와 노동절 본문
강철 군화가 그 사건에 책임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는 있다. 물론, 우리가 이것을 증명할 수 없다. 우리의 판단은 추론에 근거할 뿐이다. 정부의 첩보부 요원들은 사회주의 의원들이 테러 작전을 준비했고, 그 작전을 실행에 옮길 날을 결정했다고 보고했다. 그 날이 바로 폭탄이 터진 날이었다. 그 때문에 의사당에 군대가 미리 집결했다. 우리는 그 폭탄을 전혀 몰랐는데, 폭탄은 실제 터졌고, 당국은 그 폭발을 사전에 대비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강철 군화는 미리 알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더 나아가, 우리는 강철 군화가 그런 폭행을 저질렀으며, 그들이 그런 폭행을 계획하고 범한 것은 그 죄를 우리의 어깨에 떠넘겨 우리의 파멸을 부를 목적에서였다고 고발한다. 우리로서는 그 폭탄을 누가 어떻게 던졌는지 아무도 몰랐다. 모든 것이 통속적인 말로 '날조되어' 있었다.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라는 속담이 있다. 지금은 그 속담이 의심스럽기만 하다.
위 대목은 소설 <강철 군화>에서 발췌했습니다. 이 소설은 27세기 사회주의 시대의 시선으로 1910년대의 인류가 어떻게 노동 운동을 펼쳤는지 바라봅니다. 사회주의 게릴라들은 여러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중에 부르주아들의 음모도 있고, 그 중 하나가 국회 의사당 폭파 사건입니다. 정부는 사회주의 의원들이 국회를 폭파했다고 지목했고, 그래서 노동 운동가와 사회주의자들이 경찰에 잡혀갔죠.
하지만 정작 사회주의자 본인들은 누가 폭탄을 터뜨렸는지 몰랐습니다. 부르주아 앞잡이들이 그랬을 수 있지만, 물적 증거는 없습니다. 1910년대의 사람들은 사건의 진상을 몰랐어요. 하지만 후대 사람들, 그러니까 27세기 사람들은 진상을 캐냈습니다. 강철 군화, 그러니까 부르주아 앞잡이들의 음모였죠. 노동 운동가들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사건을 조작했고, 언론 역시 여기에 맞장구를 쳤습니다. 결국 노동 운동가들은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합니다.
저 대목을 읽으면, 헤이마켓 사건이 떠오릅니다. 실제 사건이고, 노동 시위 중에 벌어진 사건이죠. 1886년 5월 1일, 시카고를 비롯한 미국 전역의 노동자들이 총파업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이를 무력 진압했고, 분노한 노동자들은 계속 시위합니다. 그러던 중 시위 현장에서 폭탄이 터졌죠. 경찰은 이를 사회주의자의 소행으로 봤고, 일련의 운동가들을 체포했고 끝내 처형했습니다. 이게 헤이마켓 사건입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게 정부의 음모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헤이마켓 사건을 기리기 위해 5월 1일을 노동자의 날로 지정합니다. 우리나라의 노동절 역시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죠. 정작 지금 미국의 노동절은 다른 날이지만, 어쨌든 5월 1일은 노동자에게 뜻 깊은 날입니다. 게다가 헤이마켓 사건의 진범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대부분 정부가 노동자를 탄압하기 위해 무모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더군요. 처형된 노동자들은 폭탄과 하등 연관이 없고, 정부가 노동 운동을 탄합하기 위해 운동가들을 처치했다는 겁니다.
<강철 군화>의 국회 의사당 폭파 사건은 헤이마켓 사건과 꽤나 유사합니다. 아마 작가가 거기에서 영감을 얻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현실의 우리는 27세기에 헤이마켓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사회주의 세상도 아니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싸우는 중이죠. 지금은 분위기가 좀 나아졌으나, 불과 1년 전에 경찰이 노동절 집회를 감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을 지경이니까요. 아니, 분위기가 정말 나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고공 농성은 진행 중이고, 민주 노총 지도자는 여전히 감옥에 갇혀있고….
아, 근로자의 날이라는 말은…. 안 쓰는 게 좋겠죠. 근로자라니, 이 무슨 호스 행성 같은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