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인문학을 경시하는 과학 만능주의 본문
종종 SF 소설들은 과학 만능주의를 경고하곤 합니다. 과학 만능주의자들은 과학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이런 과학 만능주의는 비단 SF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실에서 과학 만능주의자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어요. 게다가 이렇게 편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합니다. 통섭을 주장하는 최재천 같은 학자가 그런 부류에 속할 겁니다. 최재천은 자연 생태계를 연구하고 환경 보호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환경 보호론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처럼 환경 오염이 심각한 시대에 정말 필요한 지식인일지 모릅니다. 문제는 최재천 같은 학자가 인문학이나 사회 과학을 등한시하고 자연 과학에만 비중을 둔다는 점입니다. 우리 인류는 문명을 이룩하고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자연 과학은 문명을 분석하거나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그건 인문학이나 사회 과학의 영역입니다. 만약 우리가 자연 과학에 너무 비중을 둔다면, 우리는 문명의 근본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할 겁니다.
가령, 자연 과학만을 중시하는 과학자들은 자본주의의 해악을 지적하지 못합니다. 자연 과학자들은 환경이 오염되는 장면을 관찰하지만, 어떻게 자본주의가 작동하는지 분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연 과학자들은 환경 오염과 자본주의를 서로 연결하지 못하고, 환경 오염의 근본적인 원인을 깨닫지 못합니다. 대기업들이 산업 폐기물을 강물에 쏟아부어도 그런 자연 과학자들은 인류의 탐욕이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말할 뿐입니다. 인류의 탐욕? 정말 인류의 탐욕이 환경을 오염시킬까요? 도대체 저런 자연 과학자들이 가리키는 인류는 누구입니까?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동남 아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탐욕스러운가요? 그런 사람들이 자연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켰나요? 그런 사람들이 먹고 살 여유가 충분함에도 숲을 밀어내거나 자원을 고갈시키나요? 아닙니다. 그런 가난한 사람들은 온실 가스를 뿜지 않고 핵 발전소를 세우지 않고 바다 밑바닥을 뚫지 않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런 방안에 찬성한다면, 좀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일 겁니다. 게다가 강대국들은 계속 소비가 미덕이라고 강조하죠.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도 소비 욕망에 얽매일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강대국을 우러러 보고, 강대국처럼 되고 싶다고 소망하겠죠.
따라서 진짜 문제는 인류 전체가 아닙니다. 인류가 살아가는 사회 구조와 체계입니다. 핵 발전소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탐욕적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구조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강조합니다. 그런 패러다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 고로 사람들은 대량 소비가 미덕이라고 착각합니다. 강대국들이 엄청나게 환경을 오염시켰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강대국처럼 환경을 오염시켜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기업들은 그런 생각을 부추기고, 민영화와 시장 개방을 주장하죠. 게다가 이런 자본주의는 심각한 학살과 전쟁을 부릅니다.
과거 유럽에서 노동 해방과 노동 복지를 외치는 수많은 지식인들은 식민지 침략에 찬성했습니다. 왜 그들이 식민지에 찬성했을까요.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고 싶으나, 거대 자본들을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지식인들은 거대 자본들을 건드리는 대신 전체적인 이익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파렴치하게 식민지 침략에 찬성했죠. 그런 식민지 침략은 환경 파괴로 이어졌고요. 뭐, 유럽만 탓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온화하고 소신이 있고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마저, 심지어 대통령마저 거대 자본을 편들었고 양민들을 짓밟는 데 찬성했고 환경을 오염시켰죠. (북한이 핵미사일을 쏜다고 해도 과연 우리가 북한을 비판할 수 있을까요. 우리 자신이 저지른 학살부터 먼저 반성하고 사죄하고 보상해야 할 겁니다.)
만약 자본주의 체계가 사라지고 사회 구조가 평등하고 조화롭게 돌아간다면, 무분별하게 핵 발전소에 찬성하거나 군사력 증강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줄어들 겁니다. 물론 자본주의만 문제라는 뜻은 아닙니다. 모든 문제들을 자본주의 하나로만 환원한다면, 그건 철학이 아니라 광신이겠죠. 설사 전세계적인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고 해도 여전히 수많은 문제들이 난무할 겁니다. 하지만 현재 가장 거대한 문제들 중 하나는 자본주의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환경 오염들을 근본적으로 분석하지 못합니다.
자연 과학자들, 인문학이나 사회 과학을 경시하는 자연 과학자들은 이런 모순을 지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위대한 자연 과학자들이 본질을 빗나가거나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저는 칼 세이건 같은 과학자를 정말 존경하고 칼 세이건이 우주의 장대함을 정말 감동적으로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양반의 글만 봐도 기분이 우주로 날아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칼 세이건이 우주를 장대하게 이야기한다고 해도 인류 문명을 제대로 분석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인류 문명을 이야기할 때, 칼 세이건은 엉뚱한 곳을 헤매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문학과 사회 과학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들은 그저 장식이 아닙니다. 인문학과 사회 과학은 자연 과학을 보조하는 들러리가 아닙니다. 19세기 이후 과학 기술이 수많은 영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과학이 만능이라고 여깁니다. 자연 과학자들 역시 이런 단순한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곤 합니다. 최재천 같은 학자를 볼 때마다 저는 우리나라의 인문학자들과 사회 과학자들이 좀 더 분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러 인문학자들이나 사회 과학자들도 자유 시장을 지지하며 헛소리들을 남발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정말 본질을 꿰뚫는 학자들이 있고, 그런 학자들이 좀 더 분발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