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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육식동물이 용맹한 전사라는 환상 본문

생태/동물들을 향하는 관점

육식동물이 용맹한 전사라는 환상

OneTiger 2017. 11. 15. 20:01

[이런 거대 괴수는 전사가 되지 못하겠죠. 우리가 육식동물에게 용맹함을 부여하기 때문에.]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고지라를 육식동물이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고지라는 과거에 사람들이 (잘못) 고증한 육식공룡처럼 생겼기 때문입니다. 과거 고생물학자들은 육식 수각류들이 몸을 꼿꼿이 세우고 꼬리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두 발로 걷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 공룡 그림들을 찾아보면, 이런 육식공룡 체형을 쉽게 구경할 수 있죠. 시대는 흘렀고, 이제 고생물학자들은 육식 수각류들이 허리를 수평으로 세우고 꼬리를 뒤로 뻗는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1998년 갓질라조차 그런 고증을 반영했어요. 갓질라는 허리를 수평으로 세우고 꼬리를 뒤로 뻗습니다. 하지만 2014년 레전더리 고지라는 전통적인 모습으로 돌아갔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꼬리를 아래로 늘어뜨렸죠. 어떤 모습이 되든 고지라는 육식공룡을 반영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고지라가 육식동물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게다가 토호 영화사의 전통적인 고지라 디자인은 두 개의 삐죽한 송곳니를 강조합니다. 1998년 갓질라와 2014년 레전더리 고지라 역시 날카로운 이빨들을 보여주고요. 하지만 대부분 고지라는 고기를 뜯어먹지 않습니다.



가령, 2014년 레전더리 고지라는 영화 속에서 고기를 뜯어먹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른 괴수들도 마찬가지이고, 무토 역시 핵 잠수함이나 핵 탄두에 이끌렸을 뿐입니다. 상투적인 식인 괴물과 달리 무토 부부는 사람들을 잡아먹지 않았어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실 고지라가 그렇게 날카로운 이빨들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고지라가 육식공룡처럼 생긴 이유는 그저 사람들이 육식동물에게 이끌리기 때문일 겁니다.


이는 여러 SF 소설들이 육식공룡을 표지 그림으로 삼는 현상과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명한 공룡 소설들, <잃어버린 세계>나 <공룡과 춤을>이나 <쥬라기 공원>은 모두 육식공룡을 표지 그림으로 삼았습니다. 해외의 유명한 공룡 소설들을 둘러본다면, 육식공룡을 묘사한 표지 그림들을 흔히 구경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저런 SF 소설들이 트리세라톱스나 스테고사우루스 같은 초식공룡을 표지 그림으로 그렸다면,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전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아니, 트리세라톱스나 스테고사우루스는 뭔가 전투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마이아사우루스나 사우롤로푸스는 그렇지 못하죠.



알로사우루스를 표지 그림으로 내세우는 SF 소설과 마이아사우루스를 표지 그림으로 내세우는 SF 소설은 서로 다른 느낌을 풍길 겁니다. 아마 여러 독자들은 마이아사우루스 그림보다 알로사우루스 그림을 선호하겠죠. 소설 내용을 떠나서 독자들은 알로사우루스 그림을 선호할 겁니다. 육식공룡이 훨씬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육식공룡은 뭔가를 죽이는 존재입니다. 살점을 찢어발기고 피를 흩뿌리고 뼈를 부러뜨리는 존재입니다. 독자들은 그런 행위에서 자극을 받을 테고, 그래서 육식공룡에게 흥미를 보일 겁니다.


덕분에 고지라는 육식공룡처럼 생겼습니다. 사람들에게서 흥미와 자극을 이끌어내기 위해. 비단 육식공룡만 아니라 스티라코사우루스나 켄트로사우루스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 동물들이 전투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스티라코사우루스는 정면으로 뻗은 뿔 하나와 등으로 길다랗게 휘어진 여러 뿔들이 있습니다. 켄트로사우루스는 커다란 골판들과 삐죽한 꼬리 가시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적들을 찌르고 꿰뚫고 피를 흩뿌리고 뼈를 부러뜨리는 존재입니다. 위에서 말했듯 마이아사우루스나 사우롤로푸스는 그렇지 못하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육식동물이 전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육식동물이 다른 존재를 찢어발기고 죽이기 때문에 육식동물이 용맹무쌍한 전사라고 생각하죠. 당연히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커다란 바다 악어부터 아무르 호랑이를 거쳐 작은 말벌까지, 그저 고기를 먹기 좋도록 육식동물은 진화했을 뿐입니다. 그건 용맹과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공짜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육식동물은 사냥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초식동물들 역시 위험에 처하면 얼마든지 사나워질 수 있습니다.


애초에 용맹이라는 개념은 인간적인 개념입니다. 인간들이 그런 개념을 만들었죠. 동물이 아니라. 하지만 많은 문화권에서 살생을 자극적이라고 여기거나 심지어 살생을 명예롭게 여기기 때문에 사람들은 육식동물에만 관심을 기울이거나 육식동물을 용맹한 전사라고 생각합니다. SF 소설들도 별로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프래그먼트> 같은 얄팍한 소설부터 <공룡과 춤을> 같은 파격적인 소설까지, 다들 비슷해요. 이런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에코토피아 비긴스>나 <홍수> 같은 소설들이 훨씬 낫겠죠. 이런 소설들은 그저 다른 생명체만 이야기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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