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우주 항해라는 험난한 로망 본문
[게임 <케발 스페이스 프로그램> 예고편의 한 장면. 아, 우주 항해는 험난한 로망입니다.]
예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탐험 유전자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탐험 유전자? 뭔가 좀 생소한 용어입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인간에게 탐험 유전자가 있고, 그래서 인간이 멀리 떠나기 원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그저 가설에 불과하고, 검증된 이론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탐험 유전자가 있고, 그래서 우리는 멀리 떠나기 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고, 그저 다른 실질적인 필요 때문에 우리는 멀리 떠나는지 모릅니다. 탐험 유전자가 없다고 해도, 인류 역사에서 분명히 탐험은 거대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저는 수많은 비경 탐험 소설들과 우주 탐사 소설들이 그걸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탐험이 멋지고 명예롭다고 생각하고, 멀고 낯선 세계를 동경합니다. 하지만 탐험은 절대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식민지 시대를 미화하는 탐험 소설이나 낭만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조차 탐험이 쉽다고 말하지 못할 겁니다. 인류가 정말 우주에 진출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그걸 장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인류가 우주에 진출할 수 있다고 해도, 그 과정은 만만하지 않을 겁니다. 탐험은 멀고 험난한 여정이 되겠죠.
<우주 소년 케무로> 같은 성장 소설부터 <별의 계승자> 같은 하드 SF 소설까지, <엔들리스 스카이> 같은 소규모 독립 게임부터 <스텔라리스> 같은 거대한 전략 게임까지, SF 창작물들은 우주 진출을 웅장하고 과감하게 묘사합니다. 제임스 호건 같은 작가는 우주를 아득한 필치로서 묘사하고, 독자는 저도 모르게 빛나는 별들을 바라볼 겁니다. 이런 SF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우주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상을 한 번쯤 고민할 겁니다. 저는 그게 SF 소설이 드러내는 가장 큰 감동이라고 생각해요. 우주에서 우리 인간은 무슨 위상을 차지했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이 마지막 물음은 설레는 우주 탐사로 이어질 수 있겠죠.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가? 이는 사회적이고 기술적인 진보를 뜻하는 동시에 물리적인 이동을 뜻할 겁니다. 지금까지 인간이 뗏목을 타고 범선을 타고 증기선을 타고 현대적인 선박을 타는 것처럼 미래 사람들은 우주선을 타고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날지 모릅니다. 그런 모습은 두근거리고 설렐지 모릅니다. 그런 SF 소설을 읽거나 SF 게임을 플레이할 때마다, 수많은 SF 팬들은 감탄사를 터뜨릴 겁니다. <수술대에서> 같은 고전적인 소설조차 얼마나 멋집니까.
하지만 SF 팬들은 독자이고 게임 플레이어입니다. 그래서 SF 팬들은 우주 여행을 멋지게 바라볼 수 있겠죠. 만약 SF 팬들이 진짜 장거리 항해 우주선에 타야 한다면…. 흠, 더 이상 우주 여행은 별로 멋지게 보이지 않을지 몰라요. 어떻게 미래 사람들이 우주를 여행할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우주 여행은 별로 위험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아니, 아예 장거리 우주선 따위는 나타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과학자들은 차원 관문을 만들고, 차원 관문을 이용해 개척자들은 다른 행성들로 퍼질지 모릅니다. 그건 훨씬 안전하겠죠. <하늘의 터널>은 꽤나 암울한 표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차원 관문은 장거리 항해 우주선보다 훨씬 안전한 방법일지 모르죠. 어떤 단편 소설에서 아이작 아시모프는 우주선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막막하고 광대한 우주에서 사람들이 외롭게 죽어간다…. 그건 절대 낭만적인 장면이 아니죠. 하지만 높은 산맥을 오르거나 바다를 건너는 동안 인류는 여러 위험들에 직면했고, 그런 위험들은 우주 항해에 이어질지 모릅니다. <창백한 푸른 점>은 우주 항해를 웅장하게 전망하나, 현실은 그런 전망과 딴판일지 모르죠.
저는 우주 탐사 소설들이 멋지다고 생각하고, <라마와의 랑데부>나 <중력의 임무> 같은 하드 SF 소설들이나 <우주 소년 케무로> 같은 성장 소설들을 감동적이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진짜 장거리 항해 우주선을 타야 한다면, 당장 긍정적으로 대답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는 세대 우주선이 궁금합니다. 만약 냉동 보존 기술이 존재하지 않고 몇 백 년 동안 세대 우주선에서 사람들이 생활해야 한다면, 세대 우주선이 폐쇄적인 생태 순환계를 돌릴 수 있을까요? 세대 우주선에서 생태학자는 무슨 역할을 맡을까요? 세대 우주선 사람들에게 환경 사회학은 무슨 의미가 될까요? 지구의 자본주의가 천연 자원을 함부로 고갈시키는 것처럼 세대 우주선 사회가 인공적인 생태계를 고갈시킬까요? 세대 우주선은 정말 작은 지구가 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인공적인 생태계를 품기 위해 우주선의 일부나 우주선 그 자체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어야 할지 모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궁금하고, 만약 제가 세대 우주선을 탈 수 있다면, 이런 것들을 관찰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저 호기심에 불과하죠. 세대 우주선이나 장거리 항해 우주선은 웅장한 로망이 아닐 겁니다. SF 작가들은 장거리 우주선이 직면해야 하는 여러 위험들을 상정합니다. 만약 인류가 정말 우주로 나간다면, SF 작가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위험들이 더 많을지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주선을 발사한다면, 그런 작업은 꽤나 신중해야 할 겁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들은 그저 허무하거나 유치한 망상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인류는 아직 달에 기지조차 세우지 못했습니다. 인류는 아직 가장 가까운 위성조차 개척하지 못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장거리 항해 우주선은 정말 유치한 망상이겠죠. 보이저 1호 무인 탐사선은 위대한 진보인 동시에 초라한 현실일지 모르죠. 하지만 언젠가 우리가 지구를 벗어나야 한다면, 저런 문제를 고민해야 할지 모릅니다. 종종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나 핵 폐기물을 걱정하고, 인류가 지구를 떠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다급한 탈출은 위험한 여정이 될 겁니다. 인류가 정말 다른 세계로 떠나고 싶다면, 일단 지구 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