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왜 SF 소설이 경고의 문학이 되었는가 본문
"과학 소설은 예언의 문학이 아니라 경고의 문학임을 기억하라." 이는 SF 가이드 총서 <대재앙 이후의 세계와 생존자들>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비단 이 책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은 SF 소설이 경고의 문학이고 SF 장르가 경고의 장르라고 말하거나 SF 작가들이 경고를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흠, 왜 SF 작가들이 경고하기를 좋아할까요? 이웃 사촌 판타지 작가들에게는 그런 측면이 없습니다. 판타지 소설이 경고의 문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판타지 소설이 경고의 문학이 될 수 있다고 해도, SF 소설보다 비판적인 목소리는 낮을 것 같습니다.
왜 SF 소설들이 시대 비판적인 목소리를 자처할까요? SF 작가들이 다른 주류 작가들이나 다른 장르 작가들보다 잘났기 때문에? SF 소설이 다른 주류 문학들이나 다른 장르 소설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SF 우월주의자들은 그렇다고 말할지 모르겠군요. 뭐, 저 역시 그런 점이 아예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SF 소설들이 다른 주류 문학들이나 다른 장르 소설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SF 장르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 특징이 뭘까요? 저는 시대적인 변화나 변혁이라고 생각합니다. SF 소설들은 시대가 바뀐다고 이야기합니다. 시대는 바뀝니다. 어떤 과학자가 위험한 물질을 만들었기 때문에, 로봇들이 새로운 지성이 되었기 때문에, 개조 미생물들이 지구를 뒤덮었기 때문에, 민중들이 억압적인 계급 구조를 타파했기 때문에, 인류가 새롭게 진화했기 때문에, 기타 등등. 이렇게 SF 소설들은 시대가 바뀌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SF 소설들은 현재에서 이어지는 다른 공간을 상상할 수 있고, 현재가 위험하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 소설은 그렇지 않아요.
판타지 작가들 역시 다른 공간을 상상하나, 그 공간은 현재에서 이어지는 공간이 아니죠. <얼음과 불의 노래>를 읽는다고 해도, 판타지 독자들이 그게 현재 21세기와 무슨 관계를 맺는지 찾지 못할 겁니다. <얼음과 불의 노래>가 완전히 가상의 공간, 현재와 접점이 없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 독자들이 익숙한 중세 유럽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고 해도, 그건 미래적인 시대 변화와 이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그런 것을 논의할 수 있는 장르는 오직 SF 장르일 겁니다. 주류 문학들은 물론이고, 다른 판타지, 공포, 추리, 로맨스, 역사 소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역사 소설은 시대적인 변화를 말할 수 있으나, 오직 지나간 역사만을 말할 뿐이고, 21세기가 앞으로 나간다고 말하지 않죠.
왜 SF 소설이 이런 특징을 드러낼까요? 어떻게 이런 특징이 SF 소설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요? 저는 서구적인 근대화가 SF 소설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서구적인 근대화는 수많은 업적들을 세웠습니다. 어떤 것은 부정적인 업적이고, 어떤 것은 긍정적인 업적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서구적인 근대화는 고대 노예 사회나 중세 봉건 사회보다 훨씬 놀라운 것들을 이룩했습니다. 특히, 19세기 산업 자본주의 시대는 혁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산업 자본주의 시대는 SF 소설들이 태어난 시대입니다.
SF 작가들은 그런 놀라운 혁신들을 겪었고, 시대가 고정적이지 않다는 사상에 두 눈을 떴을 겁니다. 고정적이지 않은 시대는 SF 소설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어요. 고대 사람들이나 중세 사람들은 이런 급격한 변화를 겪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필 다른 곳이 아니라 19세기 유럽에서 SF 소설은 태어났습니다. 아울러 19세기 산업 자본주의 시대는 놀라운 진보와 혹독한 착취가 동시에 존재하는 시대였습니다. 진보는 그냥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주 혹독한 착취 때문에 진보는 존재합니다. 진보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착취를 간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SF 소설은 진보를 전망하고 동시에 진보를 경고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허버트 조지 웰즈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허버트 웰즈는 진보와 착취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했습니다. 저는 허버트 웰즈가 <자본론>을 신랄하게 혹평했다고 들었습니다. 19세기에 유럽 대륙과 달리, 영국은 개량적인 사회주의 사상을 키웠고, 허버트 웰즈 역시 그런 인물이었죠. 그렇다고 해도 허버트 웰즈는 진보가 착취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허버트 웰즈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키웠고, 이는 후대 SF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허버트 웰즈가 수많은 SF 형식들을 정립했기 때문에 비판적인 목소리 역시 후대 SF 작가들에게 이어졌겠죠.
이는 개인적인 추측이고, 딱히 근거가 없습니다. 어쩌면 어떤 평론가들은 허버트 웰즈와 시대적인 변화와 비판적인 목소리와 SF 소설의 관계를 훨씬 분명하게 밝혔을지 모릅니다. 저에게는 그런 지식이나 시각이 없군요. 허버트 웰즈가 없었다면, SF 소설들이 경고의 문학이 되지 못했을까요? 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허버트 웰즈는 분명히 SF 소설을 정립했으나, 허버트 웰즈가 SF 소설들을 쓰지 않았다고 해도, SF 소설들은 경고의 문학이 되었을 겁니다. 이미 원형적 SF 소설들 역시 풍자나 경고를 내비쳤고, 그건 본격적인 사이언티픽 로망스에 영향을 끼쳤겠죠. 메리 셸리 역시 그랬고요.
※ 여기에서 우리는 좀 더 깊게 파고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왜 하필 다른 문명들이 아니라 유럽 문명이 산업 자본주의를 발달시켰을까요? 유럽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잘났기 때문이라고 우깁니다. 막스 베버를 보세요. 막스 베버는 기독교 윤리가 자본주의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아, 그래요? 기독교가 그렇게 고상하고 세련되었기 때문에 유럽이 자본주의를 만들었나요? 하지만 막스 베버는 유럽 강대국들이 처참하게 식민지들을 수탈했다는 이야기를 쏙 빼먹죠. 그것 때문에 유럽 강대국들이 엄청난 부를 쌓았음에도, 막스 베버는 그걸 외면합니다. 왜? 유럽인들이 잘났기 때문에.
그건 헛소리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지식인들은 청교도 윤리 운운하고 식민지 수탈을 배제하죠. 그런 사람들은 시민 운동가랍시고 들먹이고, 국제 구호 단체를 후원한다고 잘난 척하죠. 물론 저는 진보 지식인들과 시민 운동가들의 사명감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본주의의 진정한 실체를 간과해요. 자본주의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나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