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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 판타지/장르 정의

왜 <트리피드의 날>은 트리피드의 날인가

OneTiger 2017. 11. 26. 19:44

소설 <트리피드의 날>에서 재미있는 점은 트리피드들이 재앙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소설 제목과 달리 트리피드는 이 작품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트리피드의 날>은 일종의 장애 아포칼립스입니다. 사람들은 장애를 겪고, 그래서 문명이 붕괴하죠. 따라서 <트리피드의 날>은 옥타비아 버틀러가 쓴 <말과 소리> 같은 소설과 비슷할 겁니다. 하지만 <말과 소리>에는 식물 괴수 따위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식물 괴수가 아니라고 해도 장애는 얼마든지 사람들을 덮칠 수 있습니다.


사실 <트리피드의 날>에서 식물 괴수들은 장애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은 인공 위성 전투입니다. 적어도 소설 주인공은 인공 위성 전투라고 짐작했죠. 인공 위성이든 혜성이든, 어쨌든 트리피드와 딱히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장애를 겪고 문명이 붕괴하기 전까지, 트리피드는 위협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저 좋은 기름을 뽑아내는 수단에 불과했죠. 트리피드는 괴수가 아니라 농작물이었습니다. 문명이 붕괴한 이후, 트리피드는 사람들을 몰아내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문명이 붕괴한다면, 무엇이든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트리피드는 별로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저는 왜 존 윈덤이 트리피드를 소설 제목에 집어넣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존 윈덤이 어느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밝혔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평론가들이나 독자들이 무수한 추측들을 내놓았을지 모릅니다. 저는 그런 인터뷰나 추측들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근거가 없는 추측만 떠올릴 수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존 윈덤은 <트리피드의 날>이 평범한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되기 원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저 문명이 붕괴하고 사람들이 아비규환에 빠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은 많습니다.


만약 트리피드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트리피드의 날>은 그런 포스트 아포칼립스들 중 하나가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트리피드가 등장했기 때문에 독자들은 <트리피드의 날>을 좀 더 독특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기억합니다. 식물 괴수가 등장하는 종말 소설이 흔할까요. 글쎄요, 별로 없을 겁니다. 적어도 존 윈덤이 저 소설을 쓰기 전까지, 식물 괴수는 그렇게 유행하는 소재가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서 <트리피드의 날>은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독특한 소설로 자리잡을 수 있었죠. 그저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이 아니라 식물 괴수가 등장하는 독특한 소설이 되었어요.



물론 트리피드가 등장하지 않았다고 해도 <트리피드의 날>은 훌륭한 종말 소설이 되었을 겁니다. 식물 괴수 따위가 없다고 해도 존 윈덤이 묘사한 아비규환과 새로운 사회, 실험적인 공동체, 사람들을 둘러싼 갈등, 재난이 도시를 휩쓰는 분위기 등은 독자들의 시선을 놔주지 않을 겁니다. 식물 괴수는 좋은 종말 소설을 만드는 필수적인 재료가 아니에요. 하지만 트리피드가 등장했기 때문에 독자들은 <트리피드의 날>을 좀 더 독특한 소설로서 기억하고, 그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저는 정말 존 윈덤이 그런 이유 때문에 <트리피드의 날>을 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윈덤은 그런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지 모르죠. 하지만 (존 윈덤이 뭐라고 생각했든) 트리피드 덕분에 <트리피드의 날>은 독특한 소설이 될 수 있었어요. 식물 괴수를 논의할 때, <트리피드의 날>은 빠지지 못하는 소설이 되었죠. 누구나 <트리피드의 날>을 먼저 떠올릴 겁니다. 이런 시각을 다른 소설들에 적용할 수 있겠죠. 어떤 소설이 특정한 주제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반드시 거기에만 집중할 필요가 없습니다. 때때로 다른 소재에 주목할 수 있고, 그건 새로운 재미를 자아낼 수 있어요.



그저 포스트 아포칼립스만 논하고 싶다면, <트리피드의 날>은 식물 괴수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식물 괴수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새로운 재미를 만들 수 있었죠. 저는 이런 필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소설에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군더더기는 거품일 뿐이고, 소설은 주제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소설이 그렇게 주제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특정한 주제에 다른 소재를 덧붙일 수 있고, 두 가지가 서로 연관이 없다고 해도, 그런 덧붙임은 새로운 재미를 자아낼 수 있어요.


가령, 저는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이 '쓸데없이 말이 많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슨 종족 이야기와 도시 묘사가 그렇게 많은지…. 하지만 그 덕분에 <페르디도 기차역>은 그저 절지류 괴수만 때려잡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겠죠. 아니, 저는 이 소설에서 도시 묘사와 절지류 괴수 중 무엇이 더 중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중점을 따질 이유가 없을지 모르죠. 소설은 그 모든 것의 총합이자 흐름이 될 수 있어요. 그저 특정한 주제만 논의하고 싶다면, 철학이 소설을 대신할 수 있을 겁니다. 철학이 논리가 된다면, 소설은…. 총합이고 흐름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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