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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해저 2만리>가 전기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이유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해저 2만리>가 전기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이유

OneTiger 2017. 11. 22. 19:44

"아로낙스 박사, 내 전기는 세간에서 흔히 쓰이는 전기가 아니에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군요." 소설 <해저 2만리>에서 네모 선장은 아로낙스 박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로낙스는 어떻게 노틸러스가 움직이느냐고 물었고, 네모는 전기로 움직인다고 대답했죠. 하지만 그게 무슨 전기인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아로낙스 역시 더 이상 캐묻지 않아요. 게다가 노틸러스를 둘러보는 아로낙스는 계속 수수께끼들에 부딪히나, 그걸 일일이 풀려고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아로낙스는 네모에게 "성과에만 주목하고 굳이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로낙스가 아예 의문을 품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로낙스는 정말 중요한 사실들을 은근슬쩍 우회한다는 느낌을 풍깁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아로낙스는 더 자세히 캐묻지 않고, 왜 네모 선장은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을까요? 작가 쥘 베른은 왜 더욱 자세한 설정을 집어넣지 않았을까요. 아마 쥘 베른 역시 노틸러스 같은 잠수함이 정말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랐기 때문일 겁니다. 19세기를 살아가는 쥘 베른에게 노틸러스 같은 잠수함은 상상 속의 기계였겠죠.



비단 쥘 베른만 아니라 수많은 SF 작가들은 결정적인 설정을 우회하거나 회피합니다. 마치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는 것처럼. 그래서 몇몇 진부한 공식이 등장합니다. 만약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여러 학자들이 지금까지 논의한 것처럼…." 혹은 "아무개 박사도 아시다시피…." 혹은 "모모 교수는 이미 잘 알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같이 운을 뗀다면, 작가가 자세한 설정을 넘어가겠다는 뜻이죠. 여러 SF 소설들 속에서 저런 문구를 찾아볼 수 있고, 심지어 하드 SF 소설조차 예외가 아닙니다.


종종 SF 작가들은 어떻게 설정이 성립되는지 아예 암시조차 하지 않습니다. 설사 항성 우주선이 태양계를 벗어나고 날아간다고 해도 작가는 어떻게 유인 우주선이 태양계를 벗어날 수 있는지 말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항성 우주선은 그냥 날아갑니다. 작가는 그게 어떻게 날아가는지 말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대충 타키온 드라이브나 웜홀이나 태양 돛을 주워섬길지 모릅니다. 하드 SF 작가는 항성 우주선이 만나는 외계인을 열심히 설명할지 모르나, 항성 우주선 자체에 관해 입을 다물지 모릅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딱히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건 공식이자 불문율이기 때문에.



예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SF 작가들은 예언자가 아닙니다. 아무리 하드 SF 작가들이 여러 이야기들을 펼친다고 해도 그것들은 진짜 자연 과학과 별로 상관이 없을지 모릅니다. 그저 정교하게 보이는 상상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전세계의 하드 SF 작가들을 한데 모으고 어마어마하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한다고 해도 하드 SF 작가들이 다른 항성으로 날아갈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들 수 있을까요? 아니, 만들지 못할 겁니다. 만들 수 있다고 해도 하드 SF 작가들은 일반적인 우주 항공 기술을 뛰어넘지 못할 겁니다.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우주선을 만들지 못할 겁니다.


SF 작가들이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적는다고 해도 그건 그저 상상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쥘 베른이 그런 것처럼 SF 작가들은 핵심적인 설정들을 슬쩍 넘어가거나 우회합니다. 게다가 그렇게 우회한다고 해도 사이언스 픽션이 자랑하는 정수나 본질을 무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SF 작가가 미래를 예언한다면, 그건 아주 기가 막힌 일일 겁니다. 하지만 설사 미래를 예언하지 못한다고 해도 SF 소설은 가치를 잃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언이나 아니라 상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SF 작가들은 얼마든지 자세한 설정을 슬쩍 넘어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상상을 이용해 과학적인 패러다임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서로 가까운 한편,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모두 일상을 벗어나는 상상력을 이용합니다. 판타지가 상상력을 이용하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 역시 상상력을 이용합니다. 판타지가 미래를 예언하지 않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 역시 예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판타지는 상상력을 이용해 고대 신화와 전설을 논의합니다.


이건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상상력을 이용해 과학적인 패러다임을 논하죠. (그래서 우연히 사이언스 픽션은 미래를 때려맞출 수 있어요. 과학은 세상을 바꾸죠.) 판타지가 전설 속의 드래곤을 논의할 때, 사이언스 픽션은 방사능 돌연변이 괴수를 논의합니다. 더 나가서 좋은 사이언스 픽션은 그런 과학적인 패러다임을 사회 구조와 연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 기술은 삶을 바꾸고, SF 작가는 뒤바뀐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에 적응하는지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은 재미있어요.



물론 장르를 더욱 자세히 파고든다면, 상황은 훨씬 복잡해집니다. 하지만 대략적인 의미는 위와 같습니다. 따라서 아마 앞으로도 SF 작가들은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는 것처럼 은근슬쩍 설정을 넘어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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