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에코토피아 뉴스>의 자동 동력선 본문
소설 <에코토피아 뉴스>가 과연 SF 소설일까요. 아마 여러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의견들을 내놓을 겁니다. 어떤 독자는 이 소설이 미래를 상상했기 때문에 SF 소설이 될 수 있다고 말하겠죠. 어떤 독자는 이 소설이 자연 과학적 상상력을 별로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유토피아 문학일 뿐이라고 말할 거고요. 저는 <에코토피아 뉴스>가 SF 소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게 반드시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상상하는 만큼 SF 소설은 어느 정도 과학적 상상력을 꿈꿔야 합니다.
하지만 <에코토피아 뉴스>는 사회 구조만 줄창 떠들 뿐이고, 과학적 상상력을 예견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붉은 별>이나 <안드로메다 성운>, <플레바스를 생각하라>, <퍼시픽 엣지> 같은 작품들과 분명히 달라요. 저런 소설들처럼 미래의 사회 구조를 예상하나, 과학적 상상력은 꽤나 부족하죠. 저는 사회학적 상상력만 발휘해도 SF 소설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3류 스페이스 오페라도 사이언스 픽션이 될 수 있어요. <에코토피아 뉴스>가 안 될 건 없을 겁니다. 게다가 이 소설 속에서 인류는 목가적인 문명을 의도적으로 지속하고 과학 기술에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어쨌든 누군가가 이 소설이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고 말해도 그 말은 틀리지 않을 겁니다. 과학적 상상력이 너무 부족해요. 하지만 <에코토피아 뉴스>는 어느 대목에서 아주 살짝 과학적 상상력을 보여줍니다. 비록 찰나에 불과할 뿐이나, 이른바 미래 기술을 살짝 보여주죠. 그건 바로 자연 동력선입니다. 영문으로 'force barge'라고 부르더군요. 소설 주인공은 짐배가 강물을 건너는 장면을 지켜봅니다. 문제는 이 배에 아무 동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돛이나 증기 기관이 없음에도 배는 유유히 강물 위를 이동합니다.
소설 주인공은 어떻게 그 배가 움직일 수 있는지 궁금해하나, 자세히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자연 동력선은 그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됩니다. 왜 작가 윌리엄 모리스는 자연 동력선을 집어넣었을까요. 어쩌면 미래에 좀 더 깨끗한 동력원이 등장할 거라고 예상했을지 모릅니다. 모리스는 과학 기술에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19세기는 진보를 보여주는 시대였고, 그래서 미래에 뭔가 혁신적이고 깨끗한 동력원이 등장할 거라고 여겼을지 모르죠. (따라서 <아이슬란디아> 같은 소설과 달리 <에코토피아 뉴스>는 기계 장치를 무조건 부정하지 않는 듯해요.) 하지만 윌리엄 모리스는 그게 뭔지 확신하지 못했고, 그래서 대충 묘사했을 겁니다.
비단 윌리엄 모리스만 이런 수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설정을 얼버무리기 위해 수많은 SF 작가들은 자세한 묘사를 회피하곤 하죠. 가령, 쥘 베른은 <해저 2만리>에서 전기 동력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네모 선장은 전기 장치가 노틸러스를 움직인다고 설명했으나, 소설 주인공은 그걸 자세히 묻지 않습니다. 왜? 쥘 베른 역시 자세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쥘 베른은 온갖 설명들을 집어넣었으나, 결정적인 설명을 슬쩍 넘어갑니다.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는 것처럼. 이런 능청은 사이언스 픽션에서 빠지지 못하는 수법입니다.
심지어 하드 SF 작가들도 능청을 떱니다. 사실 SF 소설은 자연 과학 논문이 아닙니다. 환상 문학이죠. 그저 과학적인 것처럼 보일 뿐이고,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특징은 스팀펑크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어쨌든 윌리엄 모리스는 <에코토피아 뉴스>에서 자연 동력선이라는 희한한 배를 집어넣었고, 그건 아무 동력도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21세기 기술자들도 이런 배를 만들지 못합니다. 만약 <에코토피아 뉴스>의 주인공이 모터 보트를 본다면, 엔진 소리 때문에 아무 동력원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과연 이 배는 무슨 동력 장치를 달았을까요. 어쩌면 반중력 장치나 수중 제트 추진기나 뭐 그런 최첨단 설정을 떠올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윌리엄 모리스는 반중력 장치를 알지 못했을 겁니다. 들어본 적도 없겠죠. 게다가 소설 속에서 그런 장치를 만들 수 있는 공장은 보이지 않습니다. 소설 주인공이 사회 전체를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공장이 정말 존재할지 모르나, 소설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그런 최첨단 공장이 존재한다고 상상하기 어려워요. 그렇다면 혹시 마법일까요. 뭐, 윌리엄 모리스는 판타지 소설들을 썼으나, 그렇다고 해도 이 소설에 마법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 언급을 전혀 찾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자연 동력선은 해양 동물을 이용할지 모르죠. 커다란 물고기나 거북이 물 속에서 배를 끌거나 밀지 모릅니다. 음, 하지만 이런 거대한 해양 동물 역시 지나친 상상력이군요. 소설 속에서 그런 동물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사람들이 그런 품종을 개량할 것처럼 보이지 않고요. 결국 해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 해답 비슷한 뭔가도 없는 것 같습니다. 윌리엄 모리스가 워낙 대충 묘사했기 때문에 설정을 때려박기조차 어려워요. 그저 그런 상상력이 있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