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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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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 판타지/개조 생명체들

왜 미생물들은 천대(?)를 받는가

OneTiger 2017. 7. 1. 20:00

[전염병부터 거대한 생명 현상까지, 사실 작은 생명체들은 절대 작지 않을 겁니다.]



<최후의 인간>이나 <주홍색 전염병>부터 <둠스데이 북>과 <스탠드>를 거쳐 <와인드업 걸>과 <스테이션 일레븐>까지, 질병 아포칼립스 소설은 언제나 SF 울타리에서 꾸준히 인기를 누렸습니다. <나는 전설이다> 같은 좀비 아포칼립스를 덧붙인다면, 질병 아포칼립스 소설의 범위는 훨씬 넓어질 겁니다. 좀비는 질병과 다르지만, 대부분 창작가들은 좀비를 일종의 감염체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좀비를 연구하는 것과 질병을 연구하는 것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좀비 아포칼립스는 질병 아포칼립스의 하위 장르라고 불릴 수 있겠죠. 질병 아포칼립스와 달리 좀비 아포칼립스는 좀 더 고어한 장면들과 교전 장면들을 묘사할 뿐입니다. (산탄총으로 좀비의 머리를 날리는) 교전 장면들이 좀비 아포칼립스의 매력(?)이지만, 어쨌든 질병과 좀비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분야에서 비슷한 위상을 차지합니다. 이처럼 질병은 고전 작가와 최신 작가와 소프트 작가와 하드 작가 모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마 당연한 현상일 겁니다. 질병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를 괴롭혔습니다. 게다가 그저 괴롭히기만 하지 않고, 아예 대량 학살을 저질렀죠.



많은 사람들은 전쟁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수치를 따진다면, 질병은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요. 전쟁의 엄청난 파괴력이나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전쟁은 인류 역사의 최대 비극이라고 불리지만, 질병은 그보다 더한 비극을 일으켰죠. 전쟁이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라면, 질병은 사람과 미생물의 싸움입니다. SF 창작물에는 무시무시한 거대 괴수나 외계 야수가 등장하지만, 작고 작은 미생물들은 거대 괴수나 외계 야수보다 훨씬 무섭습니다. 현대 인류는 더 이상 호랑이나 악어나 상어 같은 육식동물을 무서워하지 않으나, 미생물들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끊임없이 인류와 사투를 벌였습니다.


미생물들은 지금도 곳곳에서 인류를 공격하는 중이고, 어쩌면 이런 사투는 미래에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인류가 기계로 변하거나 인류가 종말할 때까지 온갖 미생물들은 계속 인류를 공격하겠죠. 심지어 인류는 이런 질병을 무기로 사용합니다. 고대에는 부패한 시체를 적진에 던졌고, 요즘에는 온갖 세균을 배양합니다. 이런 양상을 고려한다면, SF 작가들이 질병을 꾸준히 묘사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물론 이런 미생물들이 항상 부정적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허버트 웰즈가 묘사한 것처럼 때때로 미생물들은 지구를 지킵니다.



하지만 미생물들이 이처럼 엄청나게 활약하고 외계인과 싸우고 지구를 지킴에도 미생물들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진화 생물학이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뭐를 떠올릴까요. 아마 인간의 발달 과정이나 공룡이나 다양한 동식물들을 떠올릴 겁니다. 자연 생태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싱그러운 녹색 삼림이나 동식물의 먹이 그물이나 장대하고 화려한 산호초를 떠올릴지 모릅니다. 분명히 그런 것들도 진화 생물학이나 자연 생태계를 상징합니다.


싱그러운 녹색 삼림과 장대하고 화려한 산호초, 다양한 동식물들은 생태적인 감수성을 풍부하게 키워줍니다. 그런 것들을 많이 본다면, 우리가 어디에 살고 왜 자연 생태계를 보존해야 하는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겠죠. 하지만 녹색 삼림과 화려한 산호초와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하기 이전에 이 지구의 거주인은 미생물들이었습니다. 사실 진화 역사의 대부분을 미생물들이 차지했죠. 본격적인 동식물들은 대략 5억 년 전에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요. 그럼에도 미생물들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그저 환경 사회학자나 과학자들만 주목해요.



그 이유는 간단할 겁니다. 미생물들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인간은 꽤나 시각적인 동물입니다. 겉모습은 인식과 판단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미생물들은 제대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버섯 군체나 곰팡이나 녹조 등은 분명히 눈에 보이거나 아주 거대하지만, 대부분 미생물들은 그 이름답게 눈에 뜨이지 않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미생물을 쉽게 무시하고, 동식물들만 전부라고 생각하죠. (솔직히 작은 동식물들도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막걸리를 마시거나 식해를 먹을 때도 쌀이나 가자미를 생각할지언정 미생물들을 떠올리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미생물들은 좋은 일을 많이 하지만, 가축들이 질병에 걸리거나 녹조가 물고기들을 죽일 때만 사람들은 뒤늦게 그 존재를 인식할 따름입니다. 아주 부정적으로. 음, 질병이 미생물의 전부가 아님에도 저 역시 서두에서 질병 아포칼립스만 언급했군요. 미생물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미생물의 위대함을 일깨우는, 그런 SF 소설들을 알아봐야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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