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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가 20세기에 태어났다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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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가 20세기에 태어났다면…

OneTiger 2017. 7. 28. 20:00

소설 <테메레르>에서 용들은 일종의 전투기로 등장합니다. 공군 병사들은 용에 타고, 용들은 하늘을 납니다. 병사들은 용 위에서 총을 쏘거나 폭탄을 던집니다. 일부 용들은 불을 뿜거나 독을 뿜을 수 있고, 심지어 엄청난 바람을 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함선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용의 불이 돛을 태우거나 화약고를 터뜨린다면, 함선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죠. 용을 이용하는 공군은 여러 나라에서 꽤나 중요한 전력이고, 용은 함선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함선이 상당한 전력을 상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설 속의 세계에서 얼마나 용의 위상이 대단한지 알 수 있죠.


문제는 이 소설의 시대 배경이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겁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한창 다른 유럽 나라들을 침략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소설 속에는 자동 소총도 없고, 미사일 고속정이나 대공포도 없고, 전투기도 없습니다. 범선들이 전장식 대포를 쏘고, 소총도 전장식입니다. 사람들은 항공기 같은 기계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덕분에 용들의 위상이 그렇게 높을 수 있었겠죠. 하지만 시대가 흐른다면? 만약 시대가 흐르고, 자동 소총과 대공 기관포와 전투기나 공격 헬리콥터가 등장한다면?



당연히 용들은 더 이상 전투기로 활약하지 못할 겁니다. 아마 용들은 19세기까지 활약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20세기 중반까지, 2차 세계 대전까지 활약할 수 있을 겁니다. 아마 용들은 진짜 전투기만큼 잘 싸우지 못하겠죠. 하지만 전투기를 보조할 수 있을 겁니다. 20세기 중반에 공격 헬리콥터가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용들은 2차 세계 대전에서 공격 헬기의 역할을 맡았을지 모릅니다. 용들은 전투기보다 느리지만, 어느 장소에서든 이착륙할 수 있고, 따라서 육군을 훌륭히 보조할 수 있었을 겁니다. 사실 2차 대전 시기에도 공군의 개념은 오늘날처럼 확실하게 정착하지 못했죠.


따라서 용들은 육군을 지원하는 공격 헬기로서 맹활약했을지 몰라요. 만약 전차 부대가 지나간다면, 용들은 근방 숲이나 언덕 뒤에서 대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날아오르고, 하늘에서 각종 폭탄을 투하할 수 있겠죠. 아니면 병사들이 용에 탄 채로 대전차 로켓을 날릴 수 있고요. 이러면 별다른 피해 없이 전차의 뚜껑을 딸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전차병들은 날아다니는 용을 제일 두려워했을지 모르겠군요. 그야말로 탱크 킬러.



19세기나 20세기 초반에도 아직 전투기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죠. 바다에서는 철갑함이 범선들을 제치는 중이었고 구형 어뢰도 등장하고 여러 혁신이 이루어졌으나, 여전히 제공권이라는 개념은 미약했습니다. 따라서 용들은 제공권을 확보할 수 있겠죠. 용들이 철갑함과 대놓고 싸울 수 있었을까요. 흠,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용들은 하늘에서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고, 이는 엄청난 전술적 이점이 되었을 겁니다. 게다가 군용 비행선이 떠다닌다면, 용들은 비행선을 아주 쉽게 공격할 수 있겠죠. 용들은 유연하고 재빠르게 날아다닐 수 있으나, 비행선은 느릿느릿할 테니까요.


물론 비행선도 각종 기관포로 대응하겠지만, 용들이 기낭 위로 올라가는 걸 막지 못할 겁니다. 용들은 기낭을 발톱으로 찢을 수 있고, 그러면 비행선은 더 이상 기동하지 못하겠죠. 사실 무력이나 전투가 아니라도 용들은 항공 정찰병이나 수송병으로서 크게 활약할 겁니다. 이들은 연락이 끊긴 부대를 찾거나 보급품을 나르거나 험한 지형으로 차량이나 부대를 운반할 수 있어요. 이런 정찰, 지원, 수송도 전투만큼 중요하죠. 전쟁은 그저 쌈박질이 아니니까.



20세기 후반이 되면, 용들의 위상도 많이 바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용들은 제트 전투기만큼 활약하지 못할 겁니다. 게다가 공격 헬기도 용보다 훨씬 뛰어나겠죠. 어쩌면 군대는 용들을 퇴출시킬지 모르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영리하고 거대한 동물'이라는 점에서 군대는 여전히 용들을 원할지 모릅니다. 범선 시대처럼 용들이 전투기가 되지 못하겠지만, 여전히 육군 부대를 보조하거나 수송에서 중요하게 활약할지 몰라요.


병사들이 험한 지형에서 무거운 장비를 짊어져야 한다면, 용들은 그걸 운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병사들은 한결 가볍게 험한 지형을 돌파할 수 있을 테고, 행군 속도가 상당히 높아지겠죠. 전투력을 보존할 수 있을 테고요. 정찰기가 마땅하지 않을 때, 용들이 훌쩍 날아서 정찰할 수 있을 테고…. <테메레르>도 재미있지만, 이렇게 19세기나 20세기의 용들을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겠군요. 인간이고 용이고, 살아있는 생명 자체가 이처럼 전투에 나선다는 것 자체는 이미 비극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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