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영화라는 문화의 강력한 대중성 본문
[영화 <라이프>의 한 장면. 영화는 이런 복잡하고 비일상적인 구조물을 한눈에 보여줄 수 있습니다.]
레프 트로츠키는 러시아의 공산주의 사상가입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사회주의 세력들은 수많은 내부 싸움을 벌였고, 레프 트로츠키는 그런 중심에 있었습니다. 트로츠키는 꽤나 똑똑한 사상가였고 게다가 군대를 지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세력이 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똑똑한 사상가였고 군대를 지휘할 수 있었음에도 결국 권력을 차지한 인물은 레프 트로츠키가 아니라 이오시프 스탈린이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이나 사회주의 학자들은 왜 레프 트로츠키가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밀렸는지 연구하죠.
정확한 해답이 무엇인지 다들 동의하지 않으나, 어떤 학자들은 레프 트로츠키가 권력 싸움 대신 문화 연구에 너무 치중했다고 지적합니다. 권력 싸움이 한창 벌어졌을 때, 레프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 문화를 사회주의와 연결하는 작업에 관심을 쏟았습니다. 사실 여러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 혁명이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제, 사회, 문화, 인간성 등은 변증법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칩니다. 러시아 혁명은 거대한 사건이나, 모든 것을 바꾸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문화나 인간성을 바꾸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절대 쉽고 짧은 과업이 아니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움켜쥔다면, 당장 공산주의적인 경제 정책들을 실현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걸 실현하는 인민들에게 공산주의 사상이 부족하다면, 그런 경제 정책들은 실패로 돌아갈 겁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음에도, 숱한 러시아 농민들은 보수적인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너무 오랜 동안 그들은 황제와 귀족들을 섬겼고, 그건 프롤레타리아 문화였습니다. 러시아 농민들은 민주적인 의식을 쉽게 각성하지 못했어요.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 인민들을 빨리 계몽시키기 원했고요. 만약 러시아가 풍족한 나라였다면, 사회주의자들은 천천히 그런 작업을 실행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1차 대전과 적백 내전은 러시아를 쑥대밭으로 짓밟았고,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여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해결해야 했고, 그래서 심각한 문제점들에 부딪혔어요. 어쩌면 레프 트로츠키 역시 그런 문제에 부딪혔고, 그래서 권력 다툼에 제대로 끼어들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결국 트로츠키는 권력을 잃었고, 스탈린은 권력자가 되었죠. 레프 트로츠키가 권력을 잡았다면, 소비에트 연방이 다른 길로 갔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경제 구조라는 문제에서) 트로츠키와 스틸린이 서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 논의하고 싶은 것은 레프 트로츠키와 이오시프 스탈린이 아닙니다.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 문화를 연구했고, 그러는 동안 영화가 꽤나 강력한 매체라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트로츠키는 영화가 아주 강력하고 현대적인 문화 병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매체들보다 영화는 훨씬 직접적이고 시각적이고 회화적이고 생생하게 뭔가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글자를 모르는 관객조차 영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를 열렬하게 환영했어요.
레프 트로츠키는 이런 현상이 중요하다고 여겼고, 영화가 사회주의 사상을 퍼뜨리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러시아 농민들은 글을 잘 몰랐기 때문에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나은 수단이었을 겁니다. 만약 레프 트로츠키가 권력자가 되었다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바뀌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가장 강력한 매체라는 분석은 옳습니다. 이는 SF 영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SF 영화는 SF 소설보다 훨씬 파급력이 높은 매체입니다. SF 영화는 각종 시각 효과와 음향 효과를 동원할 수 있어요. SF 비디오 게임 역시 그렇고요.
무엇보다 사이언스 픽션은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주류 문학과 달리, 사이언스 픽션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정합니다. 독자가 SF 소설을 이해하고 싶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건 어려운 과정이고, 그래서 숱한 독자들은 SF 소설을 포기하거나 외면합니다. 하지만 SF 영화는 어려운 과정을 쉽게 해결합니다. SF 영화는 이질적인 상상력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관객은 구태여 머리를 굴리지 않습니다. 관객은 그저 감독이 보여주는 생생한 영상을 살펴볼 뿐입니다. 그래서 SF 소설과 SF 영화가 똑같은 내용을 전개해도, 사람들은 독자보다 관객이 되기 원할 겁니다.
저는 SF 소설이 SF 영화나 SF 비디오 게임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저 역시 SF 소설보다 SF 영화가 좀 더 친숙합니다. 이해하기가 훨씬 쉽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숱한 SF 영화들이 사변이나 사상보다 시각 효과에 치중한다는 사실입니다. 영화는 영상 매체이고, SF 영화 역시 영상(시각 효과)에 매달려야 합니다. 이는 모든 영화가 그렇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시각 효과가 없는 SF 영화를 외면하고, 아무리 대단한 사변을 떠든다고 해도, 시각 효과가 없는 영화는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예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블레이드 러너>가 고등학교 연극이었다면, 사람들이 <블레이드 러너>에 열광했을까요?
SF 영화는 이질적인 상상력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숱한 SF 영화들은 사변보다 시각 효과에 매달립니다. 영화가 기본적으로 영상 종합 매체이기 때문에 그건 당연한 현상일 겁니다. SF 영화에는 이런 장점과 단점이 있죠. SF 소설은 텍스트를 이용하기 때문에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상상하라고 요구합니다. 따라서 이질적인 SF 소설을 읽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방대한 텍스트를 이용해 소설은 이질적인 상상력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SF 소설에는 이런 장점과 단점이 있죠. 두 가지를 합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자세한 삽화가 들어간 SF 소설은 바람직한 사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SF 소설들이 삽화들을 포함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단점이 따르겠죠. 음, 이건 해답을 말하기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