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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엔보이> - 외계인의 극적인 등장과 신비로운 우정 본문

SF & 판타지/외계인과 이방인

<엔보이> - 외계인의 극적인 등장과 신비로운 우정

OneTiger 2018. 9. 30. 17:25

https://youtu.be/a3-21AMbFFk


영화 <엔보이 Envoy>는 9분짜리 짧은 SF 인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소년이 외계인을 만나고 동경하는 전형적인 내용을 담았습니다. 상영 시간이 9분이기 때문에 당연히 별로 대단한 줄거리는 없습니다. 영화 주인공 소년은 농장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믿음을 의심하고 걱정하나, 주인공 소년은 정말 농장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 소년은 농장에 농구공을 던지고, 외계인은 직접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건 충격적인 최초 조우로 이어지고, 최초 조우는 또 다른 심각한 사건으로 이어지죠. 소년과 외계인이 우정을 나누는 작은 순간은 훨씬 커다란 사건으로 이어지고, 이건 두 세계를 가르는 위기와 갈등이 됩니다.


<엔보이>는 그게 무슨 위기가 되고 무슨 갈등이 되는지 직접 보여주지 않습니다. 9분짜리 영화이기 때문에 <엔보이>는 그저 암시들을 늘어놓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인상적인 장면들을 곳곳에 심고, 짧은 상영 시간이라는 한계를 극복합니다. 짧은 상영 시간 동안 외계인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엔보이>는 의심을 받는 소년을 내보냅니다. 이런 SF 이야기들에서 의심을 받는 주인공은 아주 전형적인 장치입니다.



SF 장르는 비일상적입니다. SF 장르를 감상할 때, 사람들은 비일상과 만나야 합니다. SF 세상에는 우주 구축함, 외계 생명체, 인공 지능과 인간형 로봇, 인조인간, 돌연변이 괴물, 전투 강화복 같은 온갖 비일상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사회주의 유토피아나 페미니즘 유토피아처럼, 사회 구조 역시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나, SF 장르를 감상할 때, 우리는 비일상을 만나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요.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 관문이 있을까요. 우리가 소설책을 펼치거나 극장 의자에 앉을 때, 그런 순간은 스스로 관문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떤 SF 소설들은 다짜고짜 비일상을 들이밀지 모릅니다. 독자들이 비일상에 적응할 때까지, 그런 SF 소설들은 기다리지 않을지 모릅니다.


어떤 SF 영화들은 좀 더 천천히 걸어갈지 모릅니다. 관객들이 비일상을 만날 수 있을 때까지, 그런 SF 영화들은 뜸을 들일지 몰라요. <엔보이>는 후자입니다. <엔보이>는 어떤 비일상적인 존재가 있고 그런 존재가 극적으로 튀어나올 거라고 멍석을 깝니다. 농장에 뭔가가 있다고 이야기할 때, 소년은 멍석을 까는 중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소년을 무시합니다.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소년은 혼자 애쓰는 중이나, 사람들은 소년을 믿지 않습니다. 세상은 소년을 무시하고, 소년은 혼자 세상과 맞서야 합니다.



하지만 외계인이 극적으로 나타났을 때, 모든 것은 뒤집어집니다. 소년은 옳았고, 세상은 틀렸습니다. 거대한 선입견은 뒤집어지고, 그런 전복은 외계인을 훨씬 극적으로 강조합니다. 소년이 멍석을 깔지 않는다고 해도, <엔보이>는 외계인을 다짜고짜 들이밀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소년이 멍석을 깔았기 때문에, 세상이 소년을 무시했기 때문에, 아주 거대한 선입견이 뒤집어졌기 때문에, 외계인은 훨씬 극적으로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 SF 이야기들은 이런 방법을 이용하고, 비일상을 충격적으로 일상에 집어넣습니다. 소설 <메그>를 보세요. 소설 주인공 해양학자가 메갈로돈을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은 주인공 과학자를 철저히 조롱했고 무시했습니다. 주인공 과학자는 혼자 거대한 편견과 싸우는 중이었죠.


하지만 메갈로돈이 정말 나타났을 때, 거대한 편견은 뒤집어지고, 메갈로돈은 훨씬 극적으로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주인공 과학자 역시 온갖 조롱들과 편견들을 뒤집고 인기 스타가 될 수 있었죠. <메그>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저 거대한 상어가 나오기 때문이 아닙니다. 거대한 상어가 거대한 편견을 뒤집기 때문입니다. <엔보이> 역시 이런 방법을 이용합니다. 하지만 <엔보이>는 그런 충격과 전복을 공포로 이어가지 않고, 따스하고 신비로운 우정을 집어넣습니다.



미지와의 조우가 우정으로 흘러가야 한다면, 소년은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소년은 동경과 호기심과 모험심을 내포하고, 따라서 소년은 미지와의 조우를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소년은 새롭고 낯선 것, 외부에서 온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물론 비단 소년만 아니라 소녀 역시 미지와의 조우를 우정으로 이어갈 수 있어요. 소설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은 소녀와 미지와의 조우와 우정을 재잘재잘 떠들죠. 하지만 가부장 문화에서 소녀는 내성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고, 반면, 소년은 외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외계인은 외부에서 온 존재이고, 따라서 소녀(내성적인 사람)는 외계인을 만나서는 안 됩니다. 소년(외향적인 사람)은 외계인을 만날 수 있고요. 그래서 <엔보이> 같은 SF 장르는 소녀가 아니라 소년을 내세우겠죠. 이런 소년은 외계인이 친근하고 신비로운 존재라고 말합니다. 게다가 소년과 외계인이 우정을 나누는 순간, 군대는 그걸 방해합니다. 일반적으로 군대는 어른들의 세계이고, 어른들은 소년의 신비로운 우정을 깨뜨립니다. 그 덕분에 소년과 외계인의 관계는 훨씬 끈끈해집니다. 이렇게 <엔보이>는 극적으로 외계인을 보여주고 그걸 신비하고 끈끈한 우정으로 이어갑니다.



[방어막 전개 장면은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이건 외계인의 첨단 기술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아쉽게도 우리는 그런 우정이 무슨 결과를 낳을지 알지 못합니다. 너무 갑자기 충격적인 등장과 신비로운 우정은 막을 내리죠. 하지만 갑자기 <엔보이>가 막을 내리기 때문에 외계인은 훨씬 인상적인지 모르겠습니다. 재미있게도 <엔보이>에서 외계인은 프레데터와 프로토스를 조합한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형체, 두 눈을 빛내는 매끈한 얼굴, 굵고 길다란 머리카락들, 첨단 과학, 푸른 플라즈마 포탄, 그르륵거리는 울음소리는 프레데터와 프로토스의 조합 같습니다. 물론 프레데터와 프로토스는 인간에게 우호적인 외계인이 아닙니다. 프레데터는 인간들을 즐겨 사냥하고, 프로토스는 테란 진영을 불태우곤 했습니다.


하지만 에일리언이나 저그와 싸우기 위해, 어떤 프레데터들이나 어떤 프로토스들은 일부 인간들이나 일부 테란들과 손을 잡았고, 그들은 영웅적인 지위에 올라설 수 있었죠. 그래서 신비로운 우정을 강조함에도, <엔보이>는 프레데터와 프로토스를 조합한 것 같습니다. 이런 설정을 볼 때마다, 저는 프레데터가 꽤나 근사한 외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야만과 첨단 과학, 적과 아군, 공포와 경이. 그런 경계에서 프레데터는 한쪽에 쉽게 기울지 않죠. 그래서 저는 프레데터가 좀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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