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왜 <AvP>를 <스타크래프트>의 표절이라고 말하는가 본문
[이런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구도가 저그 대 프로토스를 모방했나요? 설마 그럴 리가….]
"와, 얘들아,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라는 영화를 봤니? 그건 <스타크래프트>의 표절이야." 예전에 폴 앤더슨이 감독한 영화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가 개봉했을 때, 국내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떠들었습니다. 사실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와 <스타크래프트>는 아주 비슷합니다. 양쪽 모두 SF 장르이고, 세 종족이 서로 싸운다고 이야기합니다. <AvP>에는 지구 인간들과 에일리언 제노모프들과 우주 사냥꾼 프레데터들이 나옵니다. <스타크래프트>에는 테란과 저그와 프로토스가 나오죠.
<AvP>에서 프레데터들은 인간들을 사냥하나, 에일리언들은 훨씬 커다란 적수입니다. 그래서 인간과 프레데터는 함께 에일리언들을 척살하기 시작해요. <스타크래프트>에서 테란과 프로토스는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닙니다. 도입부 동영상에서 프로토스 우주선은 테란 우주선을 산산조각 깨뜨립니다. 하지만 저그가 워낙 위험하기 때문에 테란과 프로토스는 함께 저그를 척살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AvP>의 인간들은 <스타크래프트>의 테란과 비슷합니다. 양쪽 모두 지구 (출신) 인간이죠. 저그와 에일리언은 똑같이 절지류 괴물들입니다. 양쪽 모두 징그럽게 침을 뚝뚝 흘립니다. 여왕 개체는 다른 개체들을 낳고 지배합니다.
프레데터는 프로토스보다 훨씬 야만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양쪽 모두 밀림 행성 출신입니다. 게다가 머리카락은 굵고 치렁치렁합니다. 프레데터와 프로토스는 인간형이나 피부는 파충류에 가깝습니다. 프로토스에게는 코나 귀나 입이 없고, 오직 두 눈만 번쩍거립니다. 프레데터에게는 입이 있으나, 가면을 썼을 때 프레데터 역시 두 눈을 번쩍거립니다. 프로토스는 명예를 추구하는 전사이들이고, 프레데터는 명예를 추구하는 사냥꾼들입니다. 무엇보다 양쪽 모두 첨단 과학 문명을 자랑합니다. <엔보이 Envoy> 같은 인디 SF 영화는 프레데터와 프로토스를 혼합한 것 같은 외계인을 보여주죠. 이렇게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와 <스타크래프트>는 아주 비슷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표절이라고 운운한다고 해도, 그건 당연한 반응이죠. 하지만 상황은 좀 더 복잡합니다. <스타크래프트>가 나오기 전에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이미 존재했습니다. 사실 <AvP> 시리즈는 아주 유구하고 방대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영화 <프레데터 2>는 에일리언 머리뼈를 슬쩍 보여줬고, 1989년부터 <AvP> 시리즈는 만화들, 게임들, 소설들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1994년에 캡콤은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게임을 출시했습니다. 이 액션 게임은 여러 호평들을 받았고, 여기에서 이미 에일리언들을 척살하기 위해 인간들과 프레데터들은 손을 잡았습니다. 이런 플롯은 <스타크래프트>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스타크래프트>는 1998년 게임입니다. 따라서 <스타크래프트>는 후발 주자입니다. 이 게임은 <에일리언> 시리즈에게 여러 찬사들을 바칩니다. 어쩌면 <스타크래프트>는 <프레데터>에게 찬사를 바칠지 모릅니다. <스타크래프트>를 제작했을 때, 게임 제작진은 <프레데터>를 의식했을지 모릅니다. 적어도 프레데터는 프로토스의 표절이 아니죠. 하지만 왜 국내에서 어떤 사람들은 프레데터가 프로토스의 표절이라고 말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AVP> 시리즈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1989년부터 <AvP> 시리즈는 여러 만화들과 게임들과 소설들을 내놨고, 영화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그저 그것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아주 대중적이기 때문에 영화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높은 인지도를 올렸으나,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는 그저 여러 <AvP> 시리즈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남한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고,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가 <스타크래프트>의 표절이라고 오해했겠죠. 역사를 몰랐기 때문에. 뭐, <AvP> 시리즈에 역사라는 거창한 단어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나, 분명히 <AvP> 시리즈는 나름대로 역사를 자랑합니다. 에일리언과 프레데터의 인지도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그런 역사를 무조건 부정하지 못하겠죠.
게다가 <에일리언> 시리즈는 SF 영화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21세기 초반까지 여전히 에일리언 제노모프는 가장 유명한 외계인 괴물입니다. 따라서 표절 운운하는 사람들은 에일리언이 뭔지 제대로 몰랐을 겁니다. 프레데터가 비교적 낮은 인지도를 드러내기 때문에, 사람들이 프레데터를 몰랐다고 해도, 그건 이상하지 않아요. (저는 프레데터가 좀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에일리언 제노모프는 높은 인지도를 자랑합니다. SF 장르를 좋아한다면, 사람들은 에일리언을 한 번 들여다볼 겁니다.
따라서 표절 운운하는 사람들은 SF 장르를 전반적으로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표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모르기 때문에.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따라서 뭔가를 비평하거나 분석할 때, 역사, 사조, 흐름, 기원은 꽤나 중요한 대상이 됩니다. 이건 비단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에만 적용되지 않을 겁니다. 역사와 사조와 흐름과 원류를 모른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비평하거나 분석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무조건 유명하고 커다란 것을 쫓아갑니다. 이건 심각한 문제일지 모르죠.
생각해 보세요. <스타크래프트>는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보다 훨씬 유명합니다. <스타크래프트>는 <AvP>보다 훨씬 많이 흥행했을 겁니다. 적어도 국내에서 <스타크래프트>는 국민 게임입니다. <AvP>는 <스타크래프트>에게 까불지 못하겠죠. 그렇다고 해도 역사와 흐름과 원류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가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이게 국민 게임이기 때문에, 이게 지배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역사와 흐름과 원류를 무시합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무시하고, 오직 유명하고 커다란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AvP> 시리즈가 유명하지 않다고 해도, 이 시리즈는 나름대로 많은 팬들을 거느렸습니다. (제프 밴더미어 같은 작가 역시 <프레데터: 남중국해>를 썼습니다.) 이런 <AvP> 팬들이 무시를 받아야 하나요? 무조건 유명하고 커다란 <스타크래프트>가 장땡일까요? 뭔가가 유명하고 커다랗다고 해도, 그게 무조건 역사와 흐름과 원류를 무시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니겠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