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엔들리스 스카이>가 보여주는 행성 풍경들 본문
[이런 행성 풍경들과 행성 설정들은 스페이스 오페라 게임이 드러내는 자랑거리일 겁니다.]
비디오 게임 <엔들리스 스카이>는 우주를 항해하는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우주선 선장이 되고, 여러 외계 행성들을 방문합니다. 게임 속에는 수많은 항성계들이 있고, 수많은 행성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행성들은 수많은 자연 환경들과 사회 구조들을 보여줍니다. 어떤 행성은 어마어마한 밀림과 기이한 야생 동물들을 자랑합니다. 어떤 행성은 아주 혹독하고, 개척자들은 제대로 살아남지 못합니다. 어떤 행성은 산업 자본주의를 키웠고, 어떤 행성은 금융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어떤 행성에서는 양치기들이 원시적으로 가축들을 키우고, 어떤 행성은 풍부한 광물들을 선보입니다.
어떤 행성 사람들은 방사선 오염에 고생하고, 어떤 행성은 멋진 계곡 경관을 자랑합니다. 어떤 행성은 무시무시한 야생 포식자를 보여줍니다. 과학자들은 그 야생 포식자를 연구하기 원했으나, 대부분 실패했고 야생 포식자에게 잡아먹혔습니다. (역시 스페이스 오페라에는 독특한 육식동물이 하나 나와야죠. 그건 인지상정입니다.) 어떤 행성에서 과학자들은 울창한 숲을 이용해 새로운 약을 연구합니다. 수많은 행성들 중에서 지구는 인류가 출발한 요람이고, 그래서 <엔들리스 스카이> 역시 지구를 좀 더 특별하게 취급합니다. 지구는 영원한 고향별이죠.
하지만 지구가 좀 더 특별하다고 해도, 지구는 그저 여러 행성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숱한 스페이스 오페라들이 그런 것처럼 <엔들리스 스카이>는 특정한 행성 하나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화성의 존 카터>나 <듄>이나 <스타타이드 라이징> 같은 소설은 특정한 행성 하나에 주목하나, 이는 일반적인 특성이 아니죠. 어슐라 르 귄 같은 작가는 <헤인 연대기>를 썼고, 특정한 행성들을 조명했습니다. <어둠의 왼손>은 성별이 바뀌는 겨울 행성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은 지구인들이 나무들을 수탈하고 원주민들을 억압하는 애스시 행성을 이야기합니다. <빼앗긴 자들>은 풍요로우나 폭력적인 자본주의 행성과 가난하나 평등한 사회주의 행성을 비교합니다.
하지만 <헤인 연대기>는 일반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와 다르죠. SF 작가들, 평론가들, 독자들은 <헤인 연대기>가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헤인 연대기>에서 분명히 인류는 우주로 넓게 퍼졌고 수많은 외계 행성들을 개척했음에도, 다들 <헤인 연대기>를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생각하지 않더군요. <헤인 연대기>가 우주 전쟁이나 우주 모험을 그리지 않기 때문이겠죠. 장르 이름처럼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우주를 떠돌아다니고, 다양한 행성들을 보여줍니다. 그런 것들은 화끈한 우주 전쟁이나 신나는 우주 모험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엔들리스 스카이> 역시 다르지 않아요. <별을 쫓는 사람들>이나 <라마와의 랑데부> 같은 우주 탐사 장르와 달리, <엔들리스 스카이>는 탐험이나 조사에 치중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다양한 자연 경관들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것들은 그저 표면적인 배경 설정에 불과합니다. <엔들리스 스카이>에서 결국 주인공 선장은 강력한 함대를 꾸리고 우주 전쟁에 참가합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우주 전쟁을 피하기 원한다면, 계속 무역이나 운송이나 배달에 집중할 수 있어요. <엔들리스 스카이>는 오픈 월드 게임이고, 다른 오픈 월드 게임들처럼 게임 플레이어는 원하는 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엔들리스 스카이>는 우주 전쟁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자연 경관들을 탐험하기 원한다고 해도, 탐험할 방법은 없습니다. <마스터 오브 오리온> 같은 우주 4X 게임이 그런 것처럼 <엔들리스 스카이> 역시 그저 외계 행성들을 줄줄이 늘어놓을 뿐입니다. 그건 나쁘지 않습니다. SF 장르가 우주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어떤 소설은 탐사에 집중하고 어떤 게임은 전쟁에 집중할 수 있겠죠. 탐사를 좋아하는 독자는 <라마와의 랑데부>를 읽을 수 있을 테고, 전쟁을 좋아하는 게임 플레이어는 <엔들리스 스카이>에서 막강한 함대를 운영할 수 있겠죠. 그건 취향이고, 취향에 특정한 방향이나 우열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엔들리스 스카이>에는 외계 행성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아예 없지 않습니다. 어떤 행성들은 아나키즘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외곽 행성에서 무정부주의자들은 중앙 집중적인 권력을 피하기 원했습니다. 외곽 행성에서 그들은 비권위적인 공동체를 꾸리기 원했어요. 하지만 거기가 너무 외곽 지대였기 때문에 무법자들은 행성에 들락거렸고, 비권위적인 꿈은 날아갔죠. 문제는 이게 무정부주의를 잘못 해석했다는 사실입니다. "신도 없고, 주인도 없다." 이는 루이스 오귀스트 블랑키가 주장한 문구입니다.
하지만 루이스 블랑키는 지방에서 인민들이 근근하게 살아가기 원하지 않았어요. 초기 아나키스트이자 공산주의자로서 블랑키는 국가를 뒤집기 원했죠. 이런 해석은 다소 아쉽습니다. (어쩌면 이 행성은 <빼앗긴 자들>에게 영향을 받았을지 모르죠.) 한편, 어떤 행성은 풍요로운 자연 환경을 자랑하고, 거기에서 사람들은 (기계 노동이 아니라) 수공업 노동을 중시합니다. 이런 행성은 윌리엄 모리스가 꿈꾸는 생태주의와 비슷합니다. 윌리엄 모리스는 공장 기계들을 싫어했고, 사람들이 수공업 노동에 종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우주 함대 전투는 재미있으나, 우주 함대보다 저런 다양한 행성 설정들 역시 <엔들리스 스카이>를 꾸미는 요소들입니다. 멋진 경관 사진들이나 우주 풍경은 덤이고요.
하지만 <엔들리스 스카이>에는 옥타비아 버틀러나 켄 맥레오드나 앤 레키 같은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행성이나 항성계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는 직접 그런 행성이나 문명을 만들지 못하죠. 그런 것을 바란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이런 오픈 월드 게임보다 4X 게임을 선택해야 할 겁니다. 오픈 월드 게임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사방을 신나게 돌아다닐 수 있으나,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하죠. 그래서 게임 플레이어가 행성 문명들을 구경하고 싶다고 해도, 이런 오픈 월드 게임은 한계를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4X 게임들은 인기를 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