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종의 기원>에서 <타임 머신>으로 본문
흔히 사람들은 진화 이론과 찰스 다윈을 함께 언급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찰스 다윈이 진화 이론을 처음 고안했다고 생각하죠. 찰스 다윈은 진화 이론을 대표하는 과학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진화 이론을 대표할 수 있다고 해도, <종의 기원>이 정말 대단한 이론이라고 해도, 찰스 다윈은 진화 이론을 처음 고안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19세기 유럽에는 여러 자연 과학자들이 있었고, 그들 역시 생명체들이 바뀐다고 생각했어요. 알프레드 러셀 월레스는 그런 이론을 적극적으로 연구했고, 심지어 찰스 다윈보다 한 발 앞섰습니다.
만약 운명이 이상하게 꼬였다면, 진화 이론을 대표하는 과학자는 찰스 다윈이 아니라 알프레드 월레스였을지 모릅니다. 심지어 고대 시대부터 사람들은 생명체들이 고정적이지 않고 바뀔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19세기 이전 철학자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고요. 장 자크 루소는 특별한 이론을 고안하지 못했으나, 그렇다고 해도 루소는 생명체들이 바뀐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장 자크 루소가 19세기로 갈 수 있었다면, 진화 이론 논쟁에서 루소는 다윈을 지지했을지 모릅니다. (누군가가 이런 SF 소설을 쓴다면, 그건 꽤나 재미있을 겁니다.) 이렇게 찰스 다윈은 진화 이론의 창시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종의 기원>은 혁신적인 책이고, 찰스 다윈은 진화를 위한 탄탄한 근거를 내놨습니다. 21세기 독자에게 19세기 <종의 기원>은 구닥다리 골동품일지 모릅니다. 언제나 고전은 그렇죠. 이미 우리가 진화 이론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진화 이론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종의 기원>을 읽지 않고 이게 구닥다리 골동품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정말 진화 이론을 연구하고 싶다면, 정말 자연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런 고전은 좋은 출발점이 될 겁니다. 기원과 원류를 파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현재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가 현재를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가 미래를 전망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고전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전이 시시하다고 생각해요. 이미 내용이 유명하기 때문에. 하지만 고전은 무인도가 아닙니다. 고전을 읽을 때, 독자는 어떻게 이런 고전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전을 읽는 동안, 독자는 고전과 현재를 연결하고, '연결선'을 찾아야 합니다. 고전이 그저 고전에 불과하지 않을 때, 고전이 현재로 이어지는 연결선이 될 때, 독자는 고전을 더 이상 시시하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고전은 중요합니다.
자연 생태계와 진화 이론을 파악할 때, <종의 기원>은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여기에서 탄탄한 근거를 내놨기 때문에 찰스 다윈은 진화 이론을 대표할 수 있었죠. 그런 근거는 비글 탐사선 항해에서 나왔습니다. 숱한 찰스 다윈 전기들이나 진화 생물학 서적들은 비글 탐사선 항해에 많은 비중을 할애합니다. 탐사 항해하는 동안 찰스 다윈은 여러 증거들을 모았고, 이것들을 이용해 진화 이론을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이건 오직 탐사 항해만 <종의 기원>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탐사 항해가 부분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비글 탐사선 항해는 분명히 <종의 기원>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진화 이론을 논의할 때마다, 사람들은 갈라파고스를 머릿속에 떠올리죠.
이건 그저 대중적인 편견에 불과하지 않을 겁니다. (알프레드 월레스 역시 말레이 제도를 탐험했죠.) 따라서 비글 탐사선 항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종의 기원>은 나오지 않거나 많이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종의 기원>이 많이 바뀌었다면, 찰스 다윈은 진화 이론을 대표하는 과학자가 되지 못했을지 모르죠. 만약 찰스 다윈이 16세기나 17세기 사람이었다면, 찰스 다윈이 동남 아시아나 아프리카 사람이었다면, 찰스 다윈은 비글 탐사선 항해에 참가하지 못했을 겁니다. 당연히 <종의 기원>은 나오지 않거나 많이 바뀌었을 겁니다.
19세기 영국은 대영 제국이었습니다. 이건 19세기 영국이 세계를 두들겨패는 깡패 국가였다는 뜻입니다. 희한하게도 대영 제국이 수많은 학살들을 저질렀음에도, 사람들은 대영 제국이 멋지다고 빨아줍니다. 사람들은 북한처럼 작은 나라가 깡패 국가라고 욕하고, 대영 제국처럼 엄청난 학살을 자행한 나라가 멋지다고 빨아줍니다. 이건 꽤나 이상하죠. 만약 북한이 작은 나라가 아니라 엄청나게 커다란 제국이고, 북한이 전세계를 두들겨패고 대학살을 자행했다면, 사람들은 북한을 멋지다고 빨아줄 겁니다. 나치 제국은 고작 유럽과 몇몇 나라를 침략했을 뿐입니다. 나치가 유럽이기 때문에 나치가 유럽을 장악했다고 해도, 이건 그저 집안 싸움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대륙들이죠.
나치가 다른 대륙들을 제대로 장악했을까요? 대영 제국과 달리, 나치는 북아메리카에 건너가지 못했고 인도를 장악하지 못했죠. 그래서 사람들은 나치를 싫어해요. 나치 제국이 전세계적으로 학살하지 못했기 때문에. 따라서 북한은 빨리 핵무기를 완성하고 전세계적인 학살을 저질러야 합니다. 대영 제국을 빨아주는 것처럼 그때 사람들은 북한을 빨아주겠죠. 그렇죠? 이야, 방사선 폐허 속에서 북한을 빨아주는 짓은 아주 행복하고 즐거울 겁니다. 하지만 뭐, 미래는 정반대일지 모릅니다. 우리의 미래는 평등과 생태일지 모르죠. 전세계적인 생태 혁명 속에서 사람들은 평등을 외칠지 모르죠. 누가 알겠습니까.
어쨌든 대영 제국은 전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고, 찰스 다윈은 영국 과학자였습니다. 그래서 찰스 다윈은 열대 우림이나 갈라파고스를 탐사할 수 있었고, 증거들을 모을 수 있고, <종의 기원>을 쓸 수 있었겠죠. 그래서 <종의 기원>은 19세기 근대적인 진보의 산물이겠죠. 19세기 유럽이 진보를 이룩했고,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그러는 동안 찰스 다윈은 다른 세계를 탐사할 수 있었습니다. <종의 기원>은 그런 산물입니다. 그래서 <종의 기원>은 유럽에서 비롯했을 겁니다. 그래서 <종의 기원>은 19세기 유럽에서 비롯했겠죠.
이런 이유가 크지 않다고 해도, 이런 이유는 분명히 존재할 겁니다. 그래서 19세기 유럽 작가 허버트 웰즈는 진화 이론을 혁신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타임 머신>처럼 이걸 소설에 반영했을 겁니다. SF 소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인류 문명이 흐르고 바뀌는 동안 SF 소설은 나타났습니다. <타임 머신>은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타임 머신>을 읽은 이후, 독자가 이런 문명의 흐름과 변화를 고찰한다면, 독서 경험은 훨씬 풍성해질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