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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SF 소설에서 사회학이 중요한 이유 본문

SF & 판타지/비경 탐험

하드 SF 소설에서 사회학이 중요한 이유

OneTiger 2018. 9. 12. 16:04

[심지어 <스텔라리스>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조차 사회학을 이야기해요. 하드 SF 소설에서 이건 훨씬 중요하겠죠.]



소설 <세븐이브스>에서 1부 <달 하나의 시대>는 어떻게 인류가 방주 우주선을 만드는지 보여줍니다. 달이 뽀개졌기 때문에 인류는 우주로 달아나야 하고, 과학자들은 다급히 방주 우주선을 건조합니다. 당연히 <달 하나의 시대>는 어떻게 인류가 국제 우주 정거장을 방주 우주선으로 활용하는지 보여줍니다. 소설 1부는 기계 공학과 우주 물리학에 치중해요. 가끔 다른 분야들은 그저 고개를 내밀 뿐이고, 기계 공학과 우주 물리학은 대부분 내용을 차지하죠.


하지만 2부 <화이트 스카이>에서 인류는 방주 우주선을 완성하고, 슬슬 이야기는 다른 분야들로 넘어갑니다. 수많은 파편들을 피하고 방주 우주선을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기계 공학과 우주 물리학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우주 공간에서 인류가 살아남는 상황에서 기계 공학과 우주 물리학은 절대 비중을 잃지 않겠죠. 하지만 인류가 오직 이것들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방주 우주선은 비좁은 폐쇄 공간입니다. 지구가 멸망했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가 아는 문화, 관습, 규범, 윤리는 통하지 않습니다. 방주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새로운 문화, 관습, 규범, 윤리를 적용해야 합니다. 그들은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기계 공학이나 우주 물리학은 이런 상황에 일조하지 못합니다. 우주 물리학은 방주 우주선을 유지할 수 있으나, 방주 속 사회를 유지하지 못하죠. 여기에서 작가는 사회학을 소설 속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인종, 민족, 피부 색깔, 언어가 방주 속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방주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버려야 할까요? 달 파편들이 지구 생명체들을 몰살시켰기 때문에, 지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방주 속 사회는 유일무이한 인류 문명이 되었습니다. 방주 속 사회는 유일무이한 문명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방주 속 사회가 과거의 관습이나 윤리를 계속 이어가야 할까요? 만약 이런 상황에서 성 폭행이나 인종 차별이 벌어진다면, 누가 그걸 처리해야 할까요? 누군가는 권력을 움켜쥐고 치안을 유지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누가? 이렇게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쩌면 상황이 너무 다급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막강한 권력을 쥐어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독재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만약 방주 사람들이 드넓은 외계 행성으로 이주할 수 있다면, 거기에서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다면, 그들은 훨씬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방주 우주선은 다릅니다. 언제 달의 파편들이 우주선을 꿰뚫을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방주 사람들에게는 도망칠 구석이 없어요.



따라서 방주 속 사회는 아주 특수한 사회입니다. 특수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독재를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요. 하지만 이게 가능할까요? 윤리를 제외한다고 해도, 우리가 이런 사회가 지속 가능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아니, 방주 사람들이 외계 행성에 도착한다고 해도, 거기가 아주 풍요롭고 평화로운 환경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들은 유일무이한 인류 문명입니다. 유일한 인류 문명은 우리가 절대 생각하지 못하는 문제에 부딪힐지 모릅니다. <신비의 섬>이나 <푸른 화성>에서 쥘 베른이나 킴 스탠리 로빈슨은 평등한 사회를 꿈꿉니다. <빼앗긴 자들>이나 <홍수>에서 어슐라 르 귄이나 마가렛 앳우드는 악독한 조건 속에서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립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 구조는 우주 속의 유일무이한 인류 문명에게 통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신비의 섬>이나 <푸른 화성>이나 <빼앗긴 자들>이나 <홍수>에서, 무인도와 외계 행성과 척박한 위성과 환경 재난 속에서 사람들은 평등한 사회를 만드느라 애씁니다. 우주 속의 인류 문명이 이런 것을 시도할 수 있을까요? 만약 SF 작가가 이런 상황을 그리고 싶다면, 작가는 어느 정도 사회학을 알아야 할 겁니다. 사회학 지식이 없다면, 작가는 추상적이고 공허한 사회를 그릴 테죠. 아무리 작가가 기계 공학을 엄중하게 다룬다고 해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추상적이거나 유치할지 모르죠.



<세븐이브스>는 하드 SF 소설입니다. 하지만 하드 SF 소설은 사회학과 무관하지 않아요. SF 독자들은 하드 SF 소설들이 과학적으로 엄중하기 바랍니다. 하지만 SF 작가가 과학적인 고증을 지킨다고 해도, 그 소설이 무조건 하드 SF 소설이 되나요? 만약 작가가 극단적인 상상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작가가 일상적인 소규모 상상력을 쓴다면, 아무리 그 소설이 과학적인 엄중함을 지킨다고 해도, 그 소설은 하드 SF 소설이 되지 못하겠죠. 하드 SF 소설은 과학 논문이나 과학 교과서가 아닙니다. SF 독자들은 오직 과학적인 엄중함만 바라지 않습니다. SF 독자들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작가가 과학적인 엄중함을 적용하는지 읽기 원합니다.


과학적인 엄중함은 하드 SF 소설을 완성하는 유일한 조건이 아닙니다. 작가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 과학적인 엄중함을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19세기 산업 혁명을 거쳤습니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예찬한 것처럼, 19세기 산업 혁명은 세상을 극단적으로 바꿨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극단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했고, 극단적인 변화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심해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가 외계 행성으로 진출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기계 속에 인격을 전송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하드 SF 소설들은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합니다. 하지만 <세븐이브스>가 보여주는 것처럼 극단적인 상황은 또 다른 사회를 만들 겁니다.



따라서 하드 SF 작가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어느 정도 사회학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하드 SF 작가가 오직 기계 공학에만 치중한다면, 그 소설은 다소 얕을지 모릅니다. 만약 <세븐이브스>가 오직 방주 우주선만 뚝딱뚝딱 만들었다면, 이 소설은 별로 깊이를 자랑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피터 왓츠가 쓴 <블라인드 사이트>를 보세요. 이 소설은 아주 놀라운 상상 과학을 자랑하나, 사회학은 다소 얄팍하고, 그래서 감동은 불규칙적으로 상승합니다. <마션> 같은 소설에서 엉터리 사회학은 감동적인 과학적 상상력을 모두 잡아먹습니다. 솔직히 <마션>이 보여주는 사회학 시각은 20세기 초반의 유치한 우주 모험 소설에 열심히 수렴합니다.


<세븐이브스>는 그런 함정을 피하는 것 같습니다. 방주 우주선을 뚝딱뚝딱 만든 이후, 작가는 새로운 사회를 펼치고, 독자들은 손에 땀을 쥘 겁니다. 이렇게 하드 SF 작가는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과 함께 사회학을 살필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물론 이건 어렵죠. 어떻게 작가가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겠어요. 네, 그래서 하드 SF 소설은 어려울(hard)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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