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정복하지 않은 사람들>과 남자 탐험가를 숭배하는 현상 본문
어슐라 르 귄이 쓴 <정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비경 탐험 이야기입니다. 이 단편 소설은 극지를 탐험했음에도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은 탐험대를 이야기합니다. 재미있게도 이 탐험대는 여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게 재미있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탐험을 남성적인 행위라고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위대하다고 숭배하는 숱한 탐험가들은 남자들입니다. 항해 왕자 엔히크, 바스코 다 가마, 크리스토퍼 콜롬버스, 제임스 쿡, 알렉산더 훔봍트, 페르난디드 마젤란, 찰스 다윈, 알프레드 윌레스, 기타 등등.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비경 탐험 소설들 역시 남자들을 이야기합니다.
19세기를 대표하는 유명한 비경 탐험 소설들을 보세요.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잃어버린 세계>, 쥘 베른이 쓴 <해저 2만리>, 라이더 해거드가 쓴 <솔로몬 왕의 동굴> 같은 소설들은 남자 탐험대들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여자는 존재하지 않아요. 여자는 탐험가가 되지 못하죠. 여자는 그저 남자를 기다리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잃어버린 세계>에서 소설 주인공 기자와 사귀는 여자는 자신이 영웅을 바란다고 말합니다. 위대한 남자 탐험가는 영웅이고, 여자는 그런 영웅에게 매달리고 싶어합니다. 남자는 영웅이 되고, 여자는 영웅을 바라보는 보조적인 존재가 되죠.
<잃어버린 세계>나 <솔로몬 왕의 동굴>은 후대 비경 탐험 소설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이런 소설들이 자랑하는 인지도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이런 소설들이 엄청난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어요. 그 덕분에 여러 비경 탐험 소설들에서 주인공 탐험가는 남자들입니다. 그 덕분에 여러 비경 탐험 영화들과 게임들 역시 남자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드물고, 여자들이 나온다고 해도, 그건 그저 성 상품화에 불과하죠. <툼레이더>를 보세요. <툼레이더>는 비경 탐험 게임을 대표합니다. 하지만 라라 크로프트는 엄청난 몸매를 자랑하는 성 상품입니다.
저는 남자 탐험가들이 존재하는 대항해 시대가 19세기 비경 탐험 소설에 영향을 미쳤고, 그런 비경 탐험 소설들이 다시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이건 개인적인 추측이나, 이런 관계를 좀 더 자세하고 엄중하게 파악한다면, 그런 작업에는 나름대로 가치가 있을 겁니다. 게다가 대항해 시대는 서구적인 근대화를 이룬 초석입니다. 사실 대항해 시대는 꽤나 유럽 중심적인 용어죠. 대항해 시대는 식민지 수탈 시대였고, 엄청난 수탈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일조했습니다. 우리는 숱한 남자 탐험가들이 대단하다고 배우나, 탐험은 엄청난 수탈을 초래했고 폭력적인 자본주의에 일조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남자 탐험을 여전히 숭배하고 문화 예술 속에서 이걸 재생산한다는 사실입니다. 여전히 <잃어버린 세계>는 유명한 비경 탐험 소설이고 멋진 모험 소설입니다. 그렇게 남자 탐험가들은 주력이 되고, 여자는 보조적인 존재가 됩니다. 페미니즘 운동이 거세기 때문에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해도) <툼레이더> 같은 게임 역시 성 상품화에서 벗어나느라 애쓰는 중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화 예술이 나타나는 원인은 서구적인 근대화를 숭배하는 현실이죠. 따라서 우리가 서구적인 근대화를 비판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대항해 시대의 엄청난 수탈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문화 예술은 남자 탐험가를 계속 재생산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계속 보조적인 존재가 되겠죠. <정복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희귀한 소설에 불과할지 모르죠. 하지만 서구적인 근대화, 대항해 시대, 남자 탐험가들을 비판하기는 절대 쉽지 않습니다. 이것들이 자본주의에 일조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엄청난 식민지 수탈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막대한 금이 유통되거나 가격 혁명이 발생하지 않았을 테고, 가내 수공업이 매뉴팩처와 거대 공장으로 커지지 않았을 테고, 자본주의는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을지 몰라요.
그래서 비단 문화 예술만 아니라 학교 교육과 언론 매체 역시 서구적인 근대화를 계속 예찬하죠.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지키기 위해. 자본주의를 계속 빨아주기 위해. 학생들은 대항해 시대를 배우나, 대항해 시대가 엄청난 폭력이었다는 사실을 대충 넘어가죠. 누군가가 그걸 지적하는 순간, 식민지 수탈은 부정적인 것이 되고, 거기에 영향을 받은 자본주의 역시 부정적인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신성한 것이고, 자본주의에 일조한 남자 탐험가들 역시 신성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식민지 수탈을 반성하고 싶다면, 유럽(의 기득권들)은 처먹은 것들을 토해내야 합니다.
하지만 유럽이 수탈하고 처먹은 것들을 토해내는 순간, 자본주의는 커다란 위기에 봉착할 겁니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콜롬버스나 제임스 쿡 같은 남자 탐험가들은 계속 숭배를 받고, 남자들은 역사를 만들고 시대를 만드는 주역이 되죠. 여기에 여자는 없고요. 여자는 보조적인 존재이고, 남자를 부각시키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영웅이 되고, 여자의 지위는 전락합니다. 저는 이런 구조가 여자들을 차별하는 원인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특히, 모험 소설이나 모험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이건 커다란 영향을 미칠지 모르죠.
물론 성 차별을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싶다면, 우리는 가족 관계와 생산 수단을 언급해야 할 겁니다. <아빠 힘내세요> 같은 동요를 보세요. 심지어 이런 동요조차 아빠가 노동을 담당하고 엄마가 양육을 담당한다고 규정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집에서 애나 보는 존재가 됩니다. 남자가 노동과 생산과 역사를 담당할 때, 여자는 집에서 애나 보는 존재가 됩니다. 가사 노동이 중요함에도,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상품 생산을 중시하기 때문에, 가사 노동은 인정을 받지 못하죠. 따라서 여자와 남자는 평등하게 생산 수단을 공유하고, 평등하게 생산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이건 절대 불가능하죠. 이미 성 상품화가 너무 진행되었기 때문에.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를 남자 시장 경제라고 부르더군요. 저는 그게 별로 틀린 용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경 탐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문화적인 영역, 비경 탐험 소설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숱한 위대한 남자들을 배웁니다. 남자 철학자들, 남자 탐험가들, 남자 지도자들, 남자 정복자들. 여자들은 별로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들이 여자들을 평등하게 바라보겠어요? 비경 탐험 소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여자가 보조적이기 때문에 여자들은 주체가 되지 못하고 남자들의 장식이 됩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보조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보고요. 그렇게 남자는 여자가 쾌락을 위해 자신이 폭력을 가해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죠. 여자는 남자에게 쾌락을 주는 존재, 남자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존재, 남자에게 종속되는 존재가 됩니다. 대항해 시대와 자본주의와 비경 탐험 소설과 성 차별을 연결하는 이런 논의에는 여러 문제점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논의가 지리학과 학교 교육과 성 평등과 비경 탐험 소설을 폭넓게 거치기 때문에 저는 이걸 세련되고 매끄럽게 가다듬지 못하겠군요. 학자들이나 지식인들이나 비평가들은, 심지어 SF 비평가들조차 이런 연결 고리를 별로 언급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나중에 저는 이걸 고치거나 바꾸거나 아예 폐기할지 모르죠. 음, 저는 이걸 완전히 폐기해야 할지 모르죠. 하지만 SF 소설을 좋아하고 비경 탐험 소설을 좋아한다면, 저는 그런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한 번쯤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