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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에일리언 3>, 묵시적인 수도원과 드래곤 본문

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에일리언 3>, 묵시적인 수도원과 드래곤

OneTiger 2018. 9. 22. 13:32

[일명 '드래곤' 피규어. 네, 이 제노모프는 외계 괴물보다 중세의 악마 드래곤에 가깝습니다.]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에는 4편의 시퀄 영화들과 2편의 프리퀄 영화가 있습니다. <에일리언>, <에일리언 2>, <에일리언 3>, <에일리언 4>, <프로메테우스>, <에일리언: 커버넌트>가 있고, 여기에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와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레퀴엠> 역시 끼어들 수 있겠죠. <에일리언>과 <에일리언 2>는 꽤나 혁신적입니다. 숱한 우주 공포 영화들은 <에일리언>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여전히 <에일리언>을 뛰어넘는 우주 공포 영화들은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시각 효과가 뛰어나고 과학 고증이 뛰어나다고 해도, 대부분 우주 공포 영화들은 그저 <에일리언>을 변주할 뿐입니다.


<에일리언>은 일종의 공식이나 표준이나 형틀을 제공했고, 우주 공포 영화들은 그런 공식이나 표준이나 형틀을 따릅니다. <에일리언>을 뛰어넘고 싶다면, 우주 공포 영화들은 또 다른 공식이나 표준이나 형틀을 제시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런 표준이나 형틀이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그건 쉽지 않아요. 외계 괴물이 은밀하게 사람들을 습격할 때, 우주 공포 영화들은 저도 모르게 <에일리언>을 변주하겠죠. 심지어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같은 공룡 영화 역시 <에일리언>을 변주할 수 있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왜 외계 괴물이 은밀하게 사람들을 습격해야 하나? 외계 괴물들은 우르르 사람들과 전쟁을 벌일 수 있다." 네, 외계 괴물들은 사람들과 전쟁을 벌일 수 있죠. 그래서 제임스 카메론은 <에일리언 2>를 감독했을 겁니다. <에일리언>은 괴물 하나가 사람들을 차례로 습격하는 공포를 강조했어요. 반면, <에일리언 2>는 수많은 괴물들을 내보내고, 사람(식민 해병대원들)들은 총을 쏘고 유탄을 날리고 화염을 뿌리고 장갑차를 몰고, 아주 난리법석을 떱니다. 전작은 은밀한 공포를 강조했고, 후속작은 요란한 전투를 강조했죠. 물론 이런 요란한 전투는 그저 실내 전투에 불과합니다. 우주 기지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나, 기지 내부는 복잡하고 비좁은 던전에 가깝습니다.


<에일리언 2>가 우주 전쟁 영화라고 해도, 그 전쟁은 드넓고 방대한 회전이 아닙니다. 그 전투는 복잡하고 비좁은 실내 던전 탐험입니다. 어쩌면 <에일리언 2>는 우주 기지를 이용해 '던전'이라는 개념을 가장 잘 보여줬을지 모릅니다. 해병대원들이 진입 준비를 마치고 방문을 열 때, 해병대원들이 계단과 복도 귀퉁이를 돌 때, 어둠 속에서 동작 감지기가 삑삑거릴 때, <에일리언 2>는 어떻게 사이언스 픽션이 던전 탐험을 구현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여전히 이런 우주 기지 던전 탐험을 볼 때마다, 관객들은 심장이 쫄깃해진다고 느끼겠죠.



1편과 2편 이후, <에일리언> 시리즈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내리막길을 걷는다고 해도, <에일리언> 시리즈는 독특하고 자극적인 영상미를 자랑합니다. 특히, <에일리언 3>는 너무 과소평가를 받았을지 모릅니다. <에일리언 3>는 SF 영화가 아니라 일종의 종교 영화 같습니다. 비록 배경 무대는 외계 행성이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금욕적인 수도원에 가깝습니다. 행성 거주자들은 금욕적인 고행을 수행하는 중이고, 우주 기지는 묵시적인 수도원이고, 곳곳에는 암울하고 엄격한 기운이 감돕니다.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빡빡 밀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자유롭게 휘날리는 머리카락이 없어요.


게다가 '여자'는 금기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여자라는 금기와 함께 이 금욕적이고 묵시적인 수도원에 '드래곤'이 쳐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아예 죄수들 중 하나는 에일리언이 드래곤이라고 말합니다. 드래곤은 아포칼립스를 시행하기 시작합니다. 드래곤은 사람들을 죽이고, 수도원은 세상의 종말을 준비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드래곤을 막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이런 기독교 분위기의 영화에서 자기 희생은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가 될 겁니다. 드래곤조차 자기 희생을 이기지 못합니다. 성스러운 자기 희생은 드래곤을 없애고, 아포칼립스는 물러가고, 수도원은 구원의 빛을 받습니다. 이게 중세 판타지 영화라고 해도, 그건 크게 무리가 없겠죠.



하지만 <에일리언 3>가 개봉했을 때, 사람들은 종교 영화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관객들은 에일리언이 드래곤이 되고 드래곤이 묵시적인 수도원을 아포칼립스로 몰고 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겠죠. 1편이나 2편과 달리, <에일리언 3>에는 짜릿한 공포나 화끈한 전투가 없습니다. 그저 불안정한 금기와 암울하고 금욕적인 분위기, 퇴폐적이고 지저분한 찌꺼기들, 추악한 욕망과 그걸 덮은 위선이 있을 뿐입니다. 적어도 1편과 2편은 진보를 보여줬습니다. 비록 그 시선이 두렵다고 해도, 1편과 2편은 우주를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3편은 진보를 감춥니다. 묵시적인 중세 수도원과 진보가 어울리겠어요.


진보는 계몽주의의 산물입니다. 계몽주의는 종교를 비판하고 인간과 과학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지만 암울한 우주 수도원에 과학은 없습니다. 아예 리플리는 "적어도 우리 인간은 불을 사용할 수 있다. 그건 아주 원시적인 도구이다."라고 말합니다. 네, 우주 수도원에는 첨단 장비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을 이용해야 합니다. <에일리언 3>는 첨단 장비나 진보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에일리언 3>는 비단 그저 독특한 영화일 뿐만 아니라 1편이나 2편과 완전히 다른 행보를 강조합니다. 관객들은 SF 영화가 이렇게 진보를 감출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에일리언> 시리즈 중에서 <에일리언 3>는 아주 유별납니다. 1편과 2편 이외에 <에일리언 4>와 <프로메테우스>와 <에일리언: 커버넌트> 역시 진보를 강조합니다. 비록 시선은 부정적일지 모르나, 전반적으로 <에일리언> 시리즈는 진보와 첨단 과학을 감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에일리언 3>는 대놓고 진보를 감춥니다. 이건 <에일리언 3>가 완전히 진보를 거부하고 중세 미덕을 찬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에일리언 3>는 그저 표면적으로 중세 껍데기를 뒤집어썼을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에일리언 3>는 어떤 절대자보다 인간들을 바라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들의 이성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묵시적인 우주 수도원과 드래곤과 아포칼립스는 1편이나 2편과 너무 다른 방향성입니다. 다른 시리즈들 역시 이런 방향성을 보여주지 않죠. 앞으로 <에일리언> 시리즈 영화가 더 나온다고 해도, 이런 방향성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에일리언 3>는 계속 유별난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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