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F 생태주의

<공룡메카드>의 남자 채집가들 본문

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공룡메카드>의 남자 채집가들

OneTiger 2018. 9. 26. 17:55

애니메이션 <공룡메카드>는 공룡들을 이용한 대결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공룡메카드>에서 몇몇 등장인물은 공룡 채집가이고, 그들은 공룡들을 이용해 대결을 벌입니다. 이런 대결은 흔한 소싸움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응원하고, 두 공룡은 서로 죽어라 싸웁니다. 결국 이런 애니메이션의 주된 목표는 신나는 파괴 행위와 싸움박질이겠죠.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가 이런 애니메이션을 시청한다면, 그건 다소 엉뚱할지 모르겠습니다. <공룡메카드>에 나오는 공룡들이 정말 공룡들일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그저 공룡처럼 생긴 전투 노예들에 불과할 뿐이죠.


<공룡메카드>에서 공룡들은 비명을 지르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시청자들은 거기에 열광합니다. 공룡이 고통을 받고 비명을 지르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열광합니다. 공룡이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에 공룡 팬이 열광해야 하나요? 그건 아니겠죠. <공룡메카드>가 공룡들(을 빙자한 전투 노예들)을 지지고 볶는다고 해도, 그건 창작과 표현의 자유입니다. 과학적인 고증이 엉망이고 싸움박질을 강조한다고 해도, 그건 창작과 표현의 자유일 겁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공룡메카드>에서 진짜 공룡을 보고 싶어한다면, 그건 핵 폐기물이 공룡이라는 착각과 다르지 않겠죠. <공룡메카드>는 공룡 생태 따위에게 눈꼽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싸움박질 애니매이션으로서 <공룡메카드>는 다양한 남자 등장인물들을 내세웁니다. 대부분 공룡 채집가들은 남자들입니다. 나용찬, 강우람, 루이킴, 제이, 수오. 여자 채집가는 오직 둘입니다. 그 둘은 초신비와 티라라죠. 게다가 초신비는 그냥 여자 아이가 아닙니다. 초신비는 엄청나게 예쁜 여자 아이입니다. 초신비는 아이돌 가수이고, 영감님과 대학생 청년과 초등학생 소년이 모두 반하는 예쁜 외모의 소유자입니다. 공룡 채집자들 중에서 대부분은 남자들이고, 여자 중에서 하나는 예쁜 아이돌입니다. <공룡메카드>가 보여주는 대략적인 성별 구성은 이렇습니다.


이런 애니메이션들은 으레 진부한 성별 구성을 보여줍니다. 이런 성별 구성 역시 창작과 표현의 자유겠죠. 진짜 공룡 생태에게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공룡메카드>는 성별 구성 따위에 관심이 없겠죠. <공룡메카드>는 그저 아이들이 격렬한 파괴 행위와 싸움박질에 전율하기 바랄 뿐이겠죠.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 모릅니다. 왜 이런 애니메이션에서 남자가 주인공을 맡고 대부분 남자들이 나올까요? 왜 여자가 주인공을 맡지 못하고, 여자들 숫자가 적을까요? 이미 말한 것처럼, 그건 창작과 표현의 자유일 겁니다. 하지만 왜 이런 성별 구도가 유행할까요. 왜 남자들이 많고 여자들이 적을까요. 거기에는 이유가 없지 않겠죠.



<공룡메카드>는 애니메이션입니다. <공룡메카드>는 창작물입니다. 창작물은 그저 창작물일 뿐입니다. 그 자체로서 창작물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에 창작물은 현실을 반영하죠. 따라서 창작물을 비평하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현실을 들여다봐야 할 겁니다. 우리가 무슨 현실에서 살아가는 중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이 어디에서 비롯했을까요? 어떻게 이런 문명이 나타났을까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남자들이 문명을 건설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 과학, 철학, 탐험, 전쟁, 경영에서 남자들은 두각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남자 노동자들, 남자 과학자들, 남자 철학자들, 남자 탐험가들, 남자 장군들, 남자 재벌들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학교 교육 역시 남자들을 가르치고요. 여자들은 비교적 작은 비중을 차지하거나 심지어 아예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죠. 철학 역사 서적들을 들춰본다면, 독자들은 여자 철학자들을 거의 찾지 못할 겁니다. 장자부터 미셸 푸코를 거쳐 슬라보예 지젝까지, 철학 서적들은 온갖 남자 철학자들을 이야기하나, 여자 철학자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자들이 문명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은 보조적입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에 딸린 존재들입니다. 문명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여자들은 존재하지 못해요.



여자들을 무시할 때, 흔히 남자들은 '여자는 살림하고 애나 보라'고 말합니다. 남자들은 살림과 육아가 문명을 만들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사실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고 아이를 먹이지 않는다면, 문명은 이어지지 않을 겁니다. 여자들이 아이들을 내팽개친다면, 200년 안에 인류 문명은 무너지겠죠. <칠드런 오브 맨> 같은 영화를 보세요. 여자들이 아이들을 낳지 않는다면, 인류 문명은 끝장이 납니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 아이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세력들은 다툼을 벌이죠. 육아가 없다면, 그건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살림과 육아는 별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노동, 과학, 철학, 탐험, 전쟁, 경영이 문명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살림과 육아를 구석으로 밀어냅니다. 여자들은 오직 살림과 육아만을 도맡아야 하고, 문명을 만드는 사회 활동(노동, 과학, 철학, 탐험, 전쟁, 경영)에 참가하지 못하죠. 이런 현상을 없애고 싶다면, 모든 사람은 살림과 육아가 문명에 이바지한다고 인정해야 할 겁니다. 모두 평등하게 살림과 육아를 비롯해 사회 활동에 참가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이건 불가능하죠. 자본주의는 모두가 사회 활동에 참가하기 바라지 않아요. 노동자 통제나 노동자 경영 참여 같은 소리를 들을 때, 자본주의는 게거품을 물죠.



이런 관점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고대 사회나 중세 사회나 근대 사회의 연장선입니다. 작동 방식은 다르나, 고대 사회나 중세 사회나 근대 사회처럼 현대 사회는 남자들을 우대하고 여자들을 구석으로 밀어넣습니다. 여자들이 보조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자들은 여자들을 무시하고, 이는 끔찍한 성 폭력들로 이어집니다. 게다가 여러 현상들 중에서 전쟁은 전반적으로 남자들의 영역입니다. 남자들이 전쟁을 벌일 때, 여자들은 남자들을 응원하거나 전리품이 되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숱한 남자 병사들과 남자 하사관들과 남자 장군들을 압니다. 거기에 여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의 관념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병사들과 하사관들과 장군들이 남자들이기 때문에 <공룡메카드>는 그런 사실을 반영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런 애니메이션은 남자들을 주력으로 내세우고, 여자들은 보조적인지 모릅니다. 여자는 보조적이어야 합니다. 남자를 위해 여자는 존재해야 합니다. 게다가 (남자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여자는 예뻐야 합니다. 정복과 파괴는 남성다운 속성이고, <공룡메카드> 역시 남성다운 속성을 추구합니다. 이는 남자 아이들이 주된 시청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시청자들의 성별과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서 정복과 파괴는 남성다운 속성이고, 그래서 <공룡메카드> 역시 그런 속성을 추구해요.



생물적으로 남자들의 근력은 여자들보다 강하고, 그래서 전통적으로 남자들은 때리고 죽이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전통적으로 남자들은 때리고 죽여야 했습니다. 이건 남자들이 무조건 악당이고 여자들이 무조건 천사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건 너무 조야한 시선이죠. 문제는 가부장 문화가 폭력과 남성을 연결하고 현대 사회가 당연하게 그걸 받아들이는 현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남자라는 생물적인 성별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문화적인 관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에른스트 슈마허는 남성이 아니고 힐러리 클린턴은 남성입니다. 에른스트 슈마허가 치유와 복원을 말하고 힐러리 클린턴이 제국주의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힐러리 클린턴처럼 남성적인 여자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남성적인 여자들이 많다고 해도, 남자들은 남성이라는 관념을 훨씬 쉽게 받아들입니다. 가부장 문화는 남성이라는 관념을 남자라는 성별로 연결합니다.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이라는 단어는 그저 기호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남성이라는 단어 아래에 있는 폭력이라는 실체입니다. 하지만 기호가 시각적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남자들의 역할이 폭력이었기 때문에, 남자들이 때리고 죽이는 상황에서 남성이라는 관념이 퍼졌기 때문에, 가부장 문화는 끊임없이 자신을 재생산하고 환원합니다.



<공룡메카드> 역시 비슷합니다. <공룡메카드>는 누군가를 때리고 짓밟아야 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공룡메카드>에서 주된 사건은 때리고 짓밟고 두들겨패는 내용입니다. 나용찬 일행이 학구적으로 공룡 생태를 관찰한다면, <공룡메카드>는 완전히 바뀌겠죠. 나용찬은 다른 공룡들을 때리고 짓밟고 두들겨패야 합니다. 그래서 <공룡메카드>에는 여자 공룡 채집자들이 적을 겁니다. 남자들이 폭력을 휘두를 때, 여자들은 보조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고, 주요 여자 공룡 채집자인 초신비는 예쁜 아이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초신비에게 반해야 합니다. 어린 소년부터 늙은 영감님까지, 심지어 쿨시크한 제이까지 초신비에게 얼굴을 붉혀야 합니다. 초신비는 여자 그 자체가 아니라 예쁘고 쾌락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공룡메카드>가 잘못된 성 관념을 반영한다고 지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지적은 옳겠으나, 그건 별로 실속이 없는 지적이겠죠. 창작물은 현실에서 파생합니다. <공룡메카드>는 현실에서 파생합니다. 우리가 정말 지적해야 하는 대상은 <공룡메카드>가 아니라 억압적이고 성 차별적인 현실이겠죠.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