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어떻게 <압주>는 기술적인 생태 유토피아가 되는가 본문
[이런 멋진 해양 생태계 장면은 인상적인 모니터 벽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오늘날 컴퓨터, 콘솔 게임 기기, 태블릿 PC, 스마트폰, 텔레비전 네트워크에서 바탕 화면은 빠지지 않는 장식 요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좀 더 멋지고 아름다운 바탕 화면을 꾸미고 싶어하고, 어떤 프로그램들은 바탕 화면을 전문적으로 꾸밉니다. 여러 인터넷 사이트들은 바탕 화면 전문 사이트이고, 멋지고 아름다운 '벽지들'을 제공합니다. 사실 벽지가 예쁘다고 해도, 그건 바탕 화면이 기능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컴퓨터 사용자가 멋지고 아름다운 벽지를 꾸민다고 해도, 그건 그저 미학적인 측면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바탕 화면을 검은색 벽지로 도배합니다. 멋진 벽지가 아무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벽지를 꾸밀 필요는 없겠죠. 멋진 벽지 때문에 아이콘들이 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멋진 벽지는 더욱 존재할 명분을 잃겠죠.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개성을 드러내기 원하고, 바탕 화면 역시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바탕 화면에서 벽지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멋지고 개성적인 벽지를 고르느라 공을 들입니다. 누군가는 도시 야경을 도배할 테고, 누군가는 영화의 한 장면을 고를 테고, 누군가는 가족 사진을 집어넣겠죠.
최신 비디오 게임들은 웅장한 스크린샷들을 뽐내고, 그 덕분에 게임 스크린샷 역시 멋지고 개성적인 벽지가 될 수 있습니다. 비디오 게임 사이트들은 자체적으로 훌륭한 벽지들을 제공합니다. 아니면 게임 플레이어는 직접 고해상도 벽지를 찍거나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스팀 같은 게임 플랫폼에는 아주 방대한 스크린샷들이 있고, 그것들 중 상당수는 스위스 그림 엽서를 뺨칠 수 있는 벽지들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야생 동물 벽지를 원한다면, 스팀은 꽤나 유용한 장소가 되겠죠. 스팀에서 <쉘터 2>나 <압주> 스크린샷들을 검색한다면, 사람들은 숱한 벽지들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야생 동물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런 비디오 게임들은 유용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웅장하고 멋진 장수 거북 벽지를 얻기는 쉽지 않습니다. 구글링 이미지를 검색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웅장한 장수 거북 벽지를 쉽게 찾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압주>를 플레이한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고해상도 장수 거북 벽지를 아주 쉽게 연출할 수 있습니다. 비단 장수 거북만 아니라 백상아리, 개복치, 대왕 오징어, 혹등고래 같은 동물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다양한 각도들에서 다양한 배경들을 이용해 멋진 대왕 오징어 벽지를 찍을 수 있어요. 어쩌면 그렇게 벽지를 찍고 연출하는 행위 역시 게임 플레이에 속할 겁니다. <압주>에는 특별한 승리 조건이 없죠.
사진사가 구태여 장수 거북을 졸졸 따라다니거나 방해하지 않는다고 해도, <압주>를 이용해 게임 플레이어는 얼마든지 멋진 장수 거북 벽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야생 동물들을 방해하지 않고 그들을 관찰하고 연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진짜 장수 거북 사진과 장수 거북 스크린샷은 다릅니다. 아무리 웅장하게 연출한다고 해도, <압주> 스크린샷은 진짜 장수 거북 사진이 아니죠. 하지만 결국 컴퓨터 모니터 속의 장수 거북 벽지는 생태적인 '이미지'입니다. 누군가가 장수 거북 사진을 벽지로 꾸민다고 해도, 결국 그건 사진에 불과합니다. 사진과 스크린샷 모두 원본(진짜 장수 거북)을 복제한 결과물입니다. 진짜 장수 거북 사진은 장수 거북 스크린샷보다 훨씬 정밀하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사진 역시 원본의 아우라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압주>를 이용해 게임 플레이어가 장수 거북 벽지를 연출한다고 해도, 그런 스크린샷은 진짜 장수 거북 사진에 뒤쳐지지 않을 겁니다. 만약 동물학자가 장수 거북을 자세히 연구하고 싶다면, 동물학자에게는 진짜 사진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사람들이 바탕 화면을 꾸미는 이유는 미학적인 즐거움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생태 그 자체가 아니라 생태적인 이미지를 원해요. 이런 사람들에게 진짜 장수 거북 사진은 필수적이지 않겠죠.
게다가 <압주>는 SF 게임이고, 게임 플레이어들은 장수 거북과 함께 SF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소형 로봇들과 삼각형 기계들과 거대한 관문들, 이상한 전선들, 신비로운 벽화들, 정체 모를 골동품들. <압주>는 그저 해양 생태계를 둘러보는 게임이 아닙니다. 이런 SF 설정들은 해양 생태계와 함께 <압주>를 장식합니다. 똑같이 생태계를 돌아다닌다고 해도, <쉘터 2> 같은 게임은 <압주>와 다릅니다. <쉘터 2>에는 현실을 벗어나거나 넘어가는 상상력이 없습니다. <쉘터 2>에는 인간이 나오지 않으나, <쉘터 2>는 밀렵이나 기후 변화나 산업 폐기물 같은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는 <쉘터 2>가 무조건 그런 관념으로 이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쉘터 2>는 특정한 시대를 상정하지 않아요. 반면, <압주>는 특정한 시대를 상정합니다. <압주>는 그 시대가 무슨 시대인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는 원인들은 사라지고, 주인공 잠수부는 영원한 백상아리와 함께 생태적인 유토피아를 이룩하는 것 같습니다. <압주>는 싹쓸이 어업이나 백화 현상이나 죽음의 바다를 넘어서고, 새로운 세상을 그립니다. 그건 <쉘터 2>와 <압주>가 드러내는 결정적인 차이이입니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쉘터 2>나 <압주>를 이용해 벽지를 연출합니다. 혹독한 툰드라 해안에서 스라소니 가족이 아득한 겨울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 주인공 잠수부가 소형 로봇들과 함께 귀상어들과 개복치들과 매너티들을 비롯해 여러 해양 동물들과 어울리는 모습. 멋지고 우아하고 개성적인 벽지로서 그런 모습들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쉘터 2>보다 <압주>가 더 마음에 듭니다. 결국 <압주>는 수많은 난관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생태 유토피아)를 이룩합니다. <쉘터 2> 역시 감동적이고 좋은 게임이나, 저는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모습이 더 좋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