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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아이언 말콤의 인류 문명을 살피는 단조로운 시각 본문

사회주의/사회 공학

아이언 말콤의 인류 문명을 살피는 단조로운 시각

OneTiger 2018. 1. 29. 19:56

"왜 인간들이 정신적이고 자각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런 증거는 없습니다. 인간들은 절대 스스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걸 너무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종의 구성원들은 단지 들은 것을 되풀이할 뿐입니다. 인간 특질은 자각이 아니라 신봉이며, 그 특징적인 결과는 종교적 전쟁입니다. 독특하게도 인간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위해 싸웁니다. 나는 우리가 어떤 자각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할 근거를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고집스럽고 자기 파괴적인 신봉자들입니다. 우리 종에 관한 다른 관점은 단지 자족적인 미혹일 뿐입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이 쓴 <잃어버린 세계>는 아이언 말콤이 강연하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아이언 말콤은 세계적인 석학들 앞에서 멸종과 동물들의 행동 원리라는 주제로 강연합니다. 강연이 끝난 후, 어떤 청중은 인간이 정신적이고 자각이 있다고 주장해요. 그때 말콤은 위와 같이 대답합니다. 이처럼 아이언 말콤은 인간이 광신적인 동물이고 이성이 없고 파괴적인 종이라고 규정합니다. 인간은 자신들을 구제할 가능성이 없는 듯합니다. 이 발언은 많은 청중들을 불편하게 했으나, 말콤은 이게 분명한 사실이라고 단정합니다.



사실 인간을 자기 파괴적이고 광신적인 동물로 묘사하는 SF 소설들은 적지 않을 겁니다. SF 평론가들은 마이클 크라이튼이 얄팍한 작가라고 비판할지 모르나, 비단 마이클 크라이튼만 저렇게 떠들지 않겠죠. 여러 SF 소설들은 인류가 파괴적일 뿐이고 이성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전세계적인 학살들과 오염들을 고려한다면, 그런 주장은 진실처럼 들립니다. 인류는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고, 무모하게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왜 그럴까요? 왜 인류가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고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일까요? 왜 인류는 이성적이지 못하고, 광신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것처럼 보일까요?


여기에 대답하는 SF 소설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설사 대답한다고 해도 엉뚱한 헛다리를 짚곤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소설들은 인류 문명이 무슨 구조인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언 말콤처럼 SF 소설들은 인류 전체를 비판할 뿐이고, 어떻게 인간들이 살아가는지 자세히 살피지 않습니다. 사실 똑같이 인간이라고 해도 수많은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살아갑니다. 인류 문명에서 모든 인간은 똑같지 않습니다. 그건 아주 자명한 사실입니다. 코흘리개 아이조차 그걸 모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아이언 말콤은 그걸 절대 언급하지 않아요.



인간에게 정말 자각이 없을까요? 여기에 어떤 벌목 노동자가 나무를 벤다고 가정하죠. 벌목 노동자는 울창한 숲을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숲을 너무 많이 벌목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자, 이 벌목 노동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벌목 노동자가 회사 자본가들에게 대항할 수 있나요? 만약 벌목 노동자가 노동 조합을 이루고 회사 자본가들과 싸운다면, 자본가들은 그걸 막으려고 할 겁니다. 수구 꼴통 언론들은 벌목 노동 조합이 빨갱이들이라고 게거품을 물겠죠.


만약 벌목 노동자가 공개적으로 무분별한 벌목에 반대하거나 녹색당을 지지한다면, 회사 자본가들은 그걸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이 벌목 노동자는 불이익을 받거나 회사에서 쫓겨날지 몰라요. 울창한 숲은 벌목 노동자의 것이 아닙니다. 전기톱도 노동자의 것이 아니고, 벌목 회사도 노동자의 것이 아닙니다. 오직 나무를 베는 노동력만 노동자의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만약 노동 조합이 벌목 회사를 경영하거나 노동자들이 (충분히 생계를 유지하는) 기본 소득을 받는다면, 벌목 노동자는 대책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계에서 그게 가능한가요?



자각이 중요할까요? 네, 중요할 겁니다. 이성적인 자각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자각한다고 해도, 그걸 실천할 대안이 별로 없다면, 이성적인 자각은 개인적인 깨달음에 불과할 겁니다. 누구나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누구나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거대 자본가들조차 시장에서 계속 경쟁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성적인 자각만으로 부족합니다.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때, 사람들은 제대로 행동에 나설 수 있을 겁니다. 그걸 위해 우리는 자본주의 구조를 약화시켜야 합니다. 노동자 평의회나 기본 소득이나 참여 민주주의 등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잃어버린 세계>가 그런 것들을 이야기할까요? 아이언 말콤이 그런 것들을 이야기할까요? 그렇지 않아요. 아이언 말콤은 계급 구조에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구조에 관심이 없고, 지배적인 관념과 싸우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뭐, 마이클 크라이튼 본인 역시 그런 사안들에 관심이 없을 겁니다. <잃어버린 세계>는 생명이 걷는 역사를 장대하게 탐사하는 듯하나, 인류 문명을 파악하는 시선은 단조롭고 편협합니다. 멸종이나 환경 오염을 살피고 싶다면, 자연 생태계만 살피는 시각으로 부족합니다. 자연 생태계와 함께 계급 구조를 살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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