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스팀펑크 장르의 시대 배경들 본문
[게임 <메일스트롬>의 드워프 증기 함선. 중세 판타지 역시 스팀펑크를 이야기할 수 있죠.]
시대 배경별로 스팀펑크 장르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스팀펑크 장르가 크게 세 가지 시대 배경들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스팀펑크는 장르는 크게 중세,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미래로 나뉠 수 있을 겁니다. 창작가들이 스팀펑크 장르를 만들 때, 창작가들은 저 세 가지 시대 배경들 중 하나를 고르는 것 같습니다. 저것들 중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시대는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반일 겁니다. 대략 이 시대는 산업 혁명부터 1차 세계 대전을 아우릅니다. 이 시대는 1870년대 안팎부터 1920년대까지 뻗은 것 같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시대는 정말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자본주의는 산업 혁명과 함께 산업 자본주의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산업 자본주의는 엄청난 진보를 일으켰고, 덕분에 유럽 사람들은 진보라는 놀라운 혁신을 크게 체험합니다. 다들 진보를 부러워했고, 진보는 인류를 무궁무진한 미래로 이끄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진보, 근대적인 진보는 이런 산업 자본주의에서 비롯했죠. 하지만 산업 자본주의는 진보의 물결을 일으킨 동시에 엄청난 착취와 억압과 오염을 동반했습니다. 사실 이런 착취 없이 산업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헨리 조지가 지적한 것처럼 진보는 빈곤에서 비롯합니다. 산업 자본주의가 빈민들을 착취하기 때문에 그렇게 유럽은 진보할 수 있었죠. 영국 공장들이 검은 매연을 뭉클거리며 뿜을 때, 유럽 상류층은 그걸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검은 매연 때문에 빈민들은 병들었고 앓아누워야 했습니다. 산업 자본주의는 집단적인 노동자 조직이 필요했고, 덕분에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은 노동 조합을 결성합니다. 노동 조합은 피의 투쟁을 벌이고, 자본가 계급과 맞서 싸웠죠. 이런 모순은 비단 유럽 내부에서만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유럽 외부 식민지에서도 이런 모순은 벌어졌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이 포화에 이르렀기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들은 식민지로 자본을 수출해야 했습니다. 각종 차관, 건설 사업, 사회 인프라 건설 같은 것들은 자본을 수출하는 과정입니다. 일본 제국이 조선을 침략하고 각종 건설 사업들을 벌인 것과 비슷하죠. 더 많은 식민지들을 차지하기 위해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서로 싸웠습니다. 자본주의는 계속 확장해야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필수적으로 식민지를 늘려야 했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들은 필수적으로 1차 세계 대전을 일으켜야 했습니다. 숱한 노동 조합 총파업과 세계 여성의 날과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은 여기에 반발하는 움직임입니다.
이렇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은 다사다난한 시대였습니다. 게다가 이런 것들은 21세기 초반에 여전히 영향력을 미칩니다. 우리는 서구적인 근대화, 자본주의, 대의 제도, 근대 국가 이데올로기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합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은 이미 이런 것들을 성립했습니다. 그래서 스팀펑크 창작가들은 이런 시대를 자주 사용합니다. 이런 시대가 인기를 끌지 않는다면, 그건 꽤나 이상한 현상이겠죠. 서점이나 도서 사이트에서 순위권에 올라가는 스팀펑크 소설들은 이런 종류들일 겁니다. 넓은 관점에서 스팀펑크 이전의 스팀펑크, 즉, 쥘 베른이나 허버트 웰즈나 로버트 스티븐슨이 쓴 사이언티픽 로망스들 역시 19세기 스팀펑크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해저 2만리>를 쓸 때, 쥘 베른은 자신이 스팀펑크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넓은 관점에서 <해저 2만리>는 분명히 스팀펑크 소설입니다. <해저 2만리>는 전기 잠수함이 심해를 탐사하고 거대 두족류와 싸우는 아주 멋진 스팀펑크 소설입니다. 여전히 수많은 소설들, 만화들, 게임들은 19세기 스팀펑크를 활용합니다. 아마 스팀펑크라는 장르 이름을 들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반을 떠올릴 겁니다. <해저 2만리> 같은 고전적인 소설부터 <프로스트펑크> 같은 최신 비디오 게임까지, 다들 그렇습니다. <마술사가 너무 많다>나 <파반> 같은 소설은 살짝 예외 같으나, 이런 소설들조차 그렇게 이색적인 풍경을 빚지 않아요.
하지만 오직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이 스팀펑크를 책임질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중세 판타지 역시 스팀펑크와 친하게 지냅니다. 전형적인 중세 판타지는 스팀펑크를 이상하게 쳐다보겠으나, 몇몇 중세 판타지는 스팀펑크와 다정한 이웃 사촌이 됩니다. <워해머>는 엘프와 오크와 마법사와 드래곤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중세 판타지입니다. 동시에 <워해머>에서 드워프들은 각종 총기들과 자이로콥터들과 증기 전차들과 철갑함들과 잠수함들을 보여줍니다. 다른 종족들이 중세 판타지를 연출할 때, 드워프들은 혼자 스팀펑크를 연출하죠. 저는 스팀펑크가 훨씬 폭넓은 전략과 전술을 보장하기 때문에 <워해머> 같은 중세 판타지 설정이 스팀펑크를 끌어들인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스팀펑크는 미래로 날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 문명이 첨단 과학을 자랑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약 미래 문명이 몰락하거나 비틀어진다면, 미래 문명은 기이한 스팀펑크가 될지 모릅니다. <모털 엔진>은 전형적인 스팀펑크 같으나, 이 소설의 무대는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반이 아닙니다. 이 소설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이고, 몰락한 미래 문명을 묘사합니다. <모털 엔진>처럼 스팀펑크는 얼마든지 미래 문명으로 날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스팀펑크 장르가 세 시대 배경들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중세 판타지에서 드워프들은 철갑함들을 선보일 수 있고, 몰락한 미래 문명은 기이한 19세기 풍경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은 가장 전형적인 시대 배경이고요. 개인적으로 중세 판타지와 스팀펑크의 결합이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세와 산업 혁명이 너무 괴리를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저는 그런 괴리가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팀펑크 세상에서 대세는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반이겠죠. 대부분 명작 스팀펑크 소설들은 그런 부류입니다. 저는 이게 다소 아쉽습니다. 중세 판타지 스팀펑크 소설들은 순위권에 들어가지 못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