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아이언 하베스트>가 공중 전함을 보여줄 수 있을까 본문
[칙칙폭폭 철컹철컹 증기 기관 상상력은 멋집니다. 이런 상상력이 공중 전함을 보여줄까요?]
소설 <파반>은 표지 그림에 위풍당당한 증기 자동차를 그렸습니다. 판본마다 표지 그림들은 서로 다르나, 여러 판본들은 증기 자동차를 내세웁니다. 한국어 판본 역시 증기 자동차를 보여줍니다. 표지 그림처럼 <파반>은 어떤 남자가 증기 트럭을 몰고 가는 장면을 이야기합니다. 작가 키스 로버츠는 굳건하고 튼튼한 증기 트럭을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마치 작가가 증기 트럭에게 무한한 애정을 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스팀펑크를 읽는 독자는 이런 묘사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SF 독자들이 스팀펑크를 읽는 첫째 이유는 복고적인 첨단 기술을 원하기 때문일 겁니다.
스팀펑크 소설들은 증기 기관을 이용해 상상력을 밀어붙이고, 이런 상상력은 거대 비행선이나 공중 철갑함이나 전기 잠수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 중 스팀펑크를 장식하는 꽃은 비행선이나 공중 함선일 겁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우주선을 내세우는 것처럼 스팀펑크는 비행선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저는 우주선이나 비행선 같은 배가 다른 교통 수단보다 훨씬 다양한 이야기들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배는 큽니다. 커다란 배는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장비들을 담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비행은 로망이죠. 오래 전부터 인류는 창공을 꿈꿨습니다.
아쉽게도 <파반>에는 거대 비행선이나 공중 선박이 나오지 않습니다. 스팀펑크 독자가 그런 거대 비행체들을 원한다면, <파반>은 그런 로망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소설입니다. 이는 <파반>이 시시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파반>은 멋진 소설이에요. 제가 <파반>을 언급한 이유는 거대 비행선이나 공중 선박이 로망임에도 여러 스팀펑크 소설들이 이것들을 묘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스팀펑크 독자들은 거대 비행선이 아주 매력적인 소재라고 생각할 겁니다. 누구나 그런 생각에 동의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파반>이 증명하는 것처럼) 숱한 스팀펑크 수작들은 거대 비행선이나 공중 선박을 적극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원형적인 스팀펑크 소설들과 현대적인 스팀펑크 소설들 모두 그렇습니다. 어쩌면 '창공을 누비는 거대한 공중 선박'이라는 요소가 너무 황당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종종 로망과 황당은 종이 한 장 차이이고, 그래서 스팀펑크 작가들은 거대 공중 선박을 부담스러워했을지 모르죠. 물론 <모털 엔진> 같은 소설은 주저하지 않고 열심히 숱한 비행선들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어떤 스팀펑크 소설들은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거대 비행선이 스팀펑크의 꽃이 된다고 해도, 모든 스팀펑크 소설에서 거대 비행선은 주역 자리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소설 <우주 전쟁>에는 삼발이 보행 병기들이 등장합니다. 만약 허버트 웰즈가 삼발이 대신 공중 철갑함을 내보냈다면, 어떻게 소설 분위기가 바뀌었을까요? 어쩌면 공중 철갑함은 삼발이보다 훨씬 위압적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창공에서 외계 철갑함들이 런던에 포탄들을 퍼붓는다면, 그건 삼발이 보행 병기들보다 훨씬 비극적인 장관일지 모르죠. 하지만 삼발이와 달리, 공중 철갑함은 별로 기괴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멋지게 보이죠. <우주 전쟁>은 기괴한 공포를 풍겨야 하나, 공중 철갑함은 그런 분위기를 망쳤을 겁니다.
외계 공중 철갑함 역시 비극적인 암울함을 풍길 수 있으나, 삼발이와 달리 그런 암울함이 기괴함에서 비롯하지 않겠죠. 흐느적거리는 보행 병기는 지구인들을 혼란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처럼 21세기 블록버스터 영화 역시 그런 분위기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삼발이 보행 병기는 공중 철갑함보다 훨씬 낫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주 전쟁>이 공중 철갑함을 보여줬다면 훨씬 장관을 연출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건 <유년기의 끝>이 보여주는 경외를 공포로 바꾼 장면이 되겠죠. 오버로드는 착한 외계인입니다. 하지만 악한 화성 비행선들이 도시를 뒤덮었다면?
이렇게 저는 보행 병기보다 공중 함선이 훨씬 거창한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공중 철갑함은 삼발이 보행 병기보다 덜 기괴하겠으나, 더욱 암울하고 비극적일 겁니다. 그래서 스팀펑크 창작물을 볼 때마다 저는 거대 비행선이나 공중 함선이 등장하는지 살핍니다. 비디오 게임 <아이언 하베스트>는 이질적이고 웅장한 스팀펑크 풍경을 자랑하는 게임입니다. 적어도 게임 제작진은 <아이언 하베스트>가 그럴 거라고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언 하베스트>는 보드 게임 <사이쓰>와 똑같은 설정을 공유합니다. 이른바 <1920+>는 야쿱 로잘스키가 만든 스팀펑크 1차 세계 대전입니다. <사이쓰>와 <아이언 하베스트>는 모두 <1920+>를 밑바탕으로 삼았죠. <사이쓰: 윈드 갬빗>은 거대한 공중 전함을 보여주고요.
저는 어떻게 공중 전함이 날아다니는지 모르겠습니다. 회전 날개나 기낭은 보이지 않습니다. 공중 전함이 반중력 장치를 달았을까요? 어떻게 날아다니든, 육중한 공중 전함은 대단한 장관입니다. <아이언 하베스트>가 이런 공중 전함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이 게임은 아직 제작 단계이고, 그래서 게임 제작진 역시 확실하게 장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공중 전함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어요. 하지만 <1920+>가 여러 공중 전함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아이언 하베스트> 역시 그럴지 모르죠.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스팀펑크에 등장하는 숱한 비행선들이 유럽 디자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 스팀펑크 비행선들은 카락이나 갤리온 같은 유럽 범선의 선체를 달았습니다. 유럽이 서구적인 근대화를 추진한 장본인이기 때문이겠죠. 서구적인 근대화는 식민지 수탈에서 비롯했고, 동남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북아메리카 및 남아메리카는 수탈을 당했죠. 그래서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디자인의 비행선은 쉽게 보이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