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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소설 <상흔> 속의 둔클레오스테우스와 장르 경계선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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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상흔> 속의 둔클레오스테우스와 장르 경계선들

OneTiger 2019. 8. 15. 20:01

[둔클레오스테우스와 고대 유적, 신비로운 부활 장치. 이런 장면이 사이언스 픽션인가요, 판타지인가요?]



둔클레오스테우스는 판피어(板皮魚)에 속합니다. 이건 머리뼈가 두꺼운 투구 같다는 뜻입니다. 어떤 화가들은 둔클레오스테우스가 정말 투구를 쓴 물고기라고 묘사합니다. 이런 묘사는 오류인지 모르나, 둔클레오스테우스 머리뼈 화석은 정말 물고기 투구 같습니다. 길이가 9m를 넘기 때문에, 둔클레오스테우스는 상위 포식자였을 겁니다. 두꺼운 투구 같은 머리뼈에는 단단한 턱이 있습니다. 당연히 단단한 턱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없습니다. 상어 이빨이 상어를 대표하는 것처럼, 9m짜리 상위 포식자 투구 물고기에게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어울릴 겁니다.


하지만 이 판피어에게는 이빨들이 없습니다. 둔클레오스테우스의 턱은 날카롭게 솟았고, 둔클레오스테우스는 이것으로 먹이를 자릅니다. 둔클레오스테우스가 진화했을 때, 아직 어류 턱은 발달하는 중이었습니다. 둔클레오스테우스는 고대 어류입니다. 고대 실루아기에서 데본기 동안 이 판피어는 살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살아있는 둔클레오스테우스를 보고 싶다면, 우리는 고대를 향해 시간 여행을 떠나거나 유전 공학으로 둔클레오스테우스를 다시 복원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아무 문제가 없나요? 유전 공학이 정말 고대 물고기를 복원할 수 있나요? 유전 공학이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지 않나요?



우리가 둔클레오스테우스를 복원한다고 해도, 고대 생태계와 현재 생태계가 다르기 때문에, 고생물학자들은 둔클레오스테우스를 제대로 연구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이런 주제들은 사이언스 픽션에게 어울립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이런 문제들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둔클레오스테우스가 SF 소설과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둔클레오스테우스만 아니라 여러 고대 생명체들은 SF 소설과 어울립니다. 하지만 왜 오직 사이언스 픽션만 둔클레오스테우스를 이야기해야 하나요? 분명히 사이언스 픽션은 고대 판피어를 이용해 여러 문제들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가 둔클레오스테우스를 보여준다고 해도, 판타지는 유전 공학과 생태계 교란과 진화 역사를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판타지가 이런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해도,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은 훨씬 잘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소설 작가가 고대 판피어를 이용해 유전 공학과 생태계 교란과 진화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은 훨씬 좋은 선택일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고대 판피어가 반드시 사이언스 픽션의 전유물이 되어야 하나요? 판타지는 둔클레오스테우스를 이용해 다른 것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 속에서 해적들과 바다 괴수들과 둔클레오스테우스가 어울린다면, 이건 아주 독특할 겁니다.



판타지에는 레비아탄, 크라켄, 시 서펜트를 비롯해 온갖 바다 괴수들이 있습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모험가 일행이 바다로 나간다면, 모험가 일행은 바다 괴수들을 만날 겁니다. 신화들과 전설들이 온갖 바다 괴물들을 상상했기 때문에, 중세 판타지 역시 이런 것들을 신나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중세 판타지 바다에 둔클레오스테우스가 있다면, 이건 아주 독특한 느낌을 풍길 겁니다. 크라켄은 신화입니다. 둔클레오스테우스는 고대 판피어입니다. 크라켄은 존재한 적이 없으나, 한때 지구에는 둔클레오스테우스가 있었습니다. 크라켄과 둔클레오스테우스는 다릅니다.


하지만 양쪽 모두 비일상적인 바다 괴수입니다. 21세기 인류에게 크라켄과 둔클레오스테우스는 똑같이 비일상적인 바다 괴수입니다. 크라켄과 고대 판피어에게는 이런 공통점이 있고, 그래서 판타지는 양쪽을 함께 말할 수 있습니다. 둔클레오스테우스가 비일상적이기 때문에, 둔클레오스테우스는 판타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게 고대 판피어이기 때문에, 만약 중세 판타지 바다에서 둔클레오스테우스가 헤엄친다면, 이런 중세 판타지는 자신이 비일상적인 상상력들을 훨씬 풍성하게 갖췄다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이언스 픽션과 중세 판타지는 고대 판피어를 다르게 이용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둔클레오스테우스를 이용해 생명 진화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는 숱한 바다 괴수들 속에 둔클레오스테우스를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똑같이 둔클레오스테우스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사이언스 픽션은 생명 진화 역사에 치중하고, 판타지는 신화적인 바다 괴물들에게 치중합니다. 만약 이 두 가지가 합친다면, 이게 무슨 결과가 될까요? 소설 <상흔>은 대답이 될 수 있습니다. 차이나 미에빌이 쓴 <상흔>은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를 합칩니다. 


소설 <상흔>에는 둔클레오스테우스와 플레시오사우루스가 있습니다. 동시에 여기에는 근대 자연 과학들이 있고, 크라켄과 다른 바다 괴수들이 있습니다. <상흔>은 근대 자연 과학들과 산업 문명을 보여주고, 동시에 <상흔>은 기이한 판타지 바다와 크라켄과 다른 바다 괴수들과 둔클레오스테우스와 플레시오사우루스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상흔>에서 구식 잠수함과 둔클레오스테우스는 함께 헤엄칩니다. 구식 잠수함과 둔클레오스테우스가 함께 헤엄친다면, 이런 설정은 장르 경계선을 뛰어넘을 겁니다.


사실 <상흔>은 일반적인 판타지 소설이 아닙니다. <상흔>은 스팀펑크 판타지입니다. 스팀펑크 판타지로서 <상흔>은 온갖 장르 설정들을 버무립니다. 이 소설은 종합 선물 세트 같습니다. 구식 잠수함은 사이언티픽 로망스 같습니다. 마법사와 주문은 판타지 같습니다. 19세기 산업 도시 하수구의 무시무시한 해저인들은 고딕 호러 같습니다. 어떤 독자들은 <상흔>이 무슨 장르에 속하는지 헛갈릴지 모릅니다.



[장르들은 뒤섞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게임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비경 탐험, 우주적인 공포, 거대 괴수물입니다.]



제목처럼, 비디오 게임 <마지막 인간의 수중 모험 The Aquatic Adventure of the Last Human>은 잠수함 이야기입니다. 잠수함은 바다를 탐험합니다. 바닷속에는 침수된 도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인간의 수중 모험>은 비단 해양 모험 이야기만 아니라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잠수함이 침수된 도시를 돌아다니는 동안, 잠수함은 여러 거대 바다 괴수들과 싸웁니다. 그래서 이건 거대 괴수물 같습니다. <마지막 인간의 수중 모험>이 본격적인 거대 괴수물이 아니라고 해도, 분명히 여기에는 거대 괴수들이 있습니다.


소설 <상흔>에서 초초초초초초거대 바다 괴수 아방이 나오는 것처럼, 차이나 미에빌 같은 괴수 덕후는 이런 거대 바다 괴수들을 열정적으로 환영할 겁니다. 하지만 <마지막 인간의 수중 모험>에는 오직 거대 바다 괴수들만 있지 않습니다. 이 게임은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심해 분위기를 강조하고, 소설 <인스머스의 그림자>처럼, <마지막 인간의 수중 모험>은 우주적인 공포입니다. 비경 탐험과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거대 괴수는 사이언스 픽션이나, 우주적인 공포에서 이 게임은 판타지로 비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이 사이언스 픽션인가요, 판타지인가요?


이 게임이 무슨 장르에 속하나요? 포스트 아포칼립스? 비경 탐험? 우주적인 공포? 거대 괴수물? 이것들은 <마지막 인간의 수중 모험>을 구성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네 장르가 모두 <마지막 인간의 수중 모험>을 구성한다고 인식할 겁니다. 이런 사례처럼, 창작물은 오직 특정한 장르에만 매달리지 않습니다. 붉은 빛과 녹색 빛이 합치고 새로운 노란 빛이 되는 것처럼, 창작물이 여러 장르들을 혼합할 때, 이런 혼합은 새로운 장르가 될지 모릅니다.



소설 <상흔>에는 구식 잠수함과 마법사와 19세기 산업 도시와 무시무시한 해저인들이 함께 있습니다. 이런 설정들은 서로 영향들을 미칩니다. 마법사가 주문을 외울 때, 마법사는 해석 기계를 이용하고 주문을 외웁니다. 아니, 이런 마법사가 정말 마법사인가요? 마법사가 증기 기관 기계를 이용하고 주문을 외운다면, 이런 마법사는 마법사보다 연금술사나 상상 과학자에 가깝지 않나요? 흔히 판타지에서 마법사가 주문을 외울 때, 마법사는 기계 장치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마법사는 기계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짜지 않습니다. 이런 마법사는 판타지보다 스페이스 오페라에 어울릴 겁니다.


소설 <상흔>은 마법사가 주문 기계를 프로그램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상흔>에서 뱀파이어는 구식 잠수함을 타고, 크라켄을 구경하고, 시추선이 석유를 뽑는다고 확인하고, 인어와 어울리고, 해상 도시에 정박할 수 있습니다. 뱀파이어, 크라켄, 시추선, 구식 잠수함, 인어, 해상 도시…. <상흔>은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와 고딕 호러를 종합합니다. <상흔>에는 바다 악마들과 둔클레오스테우스와 해상 도시와 기이한 마법들과 생체 개조 수술과 증기 기관 컴퓨터와 프로그램 카드가 있습니다. <상흔>에서 이것들은 똑같은 세계 설정에 기반합니다. <상흔>은 장르 경계선들을 넘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옳은가요?



비디오 게임 <압주>는 <상흔>과 비슷한 사례인지 모릅니다. <상흔>은 기괴하고 역겹고, <압주>는 우아하고 성스러우나, 양쪽은 비슷한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압주>는 사이언스 픽션에 가깝습니다. 분명히 거대한 기계 공장들과 여러 로봇들은 사이언스 픽션에 속합니다. 하지만 '압주'는 수메르 신화에 기반합니다. 게임 속에서 해양 다양성 복원 과정은 굉장히 환상적이고, 이런 장면들은 판타지 같습니다. 고대 유적들, 벽화들, 물품들 역시 사이언스 픽션보다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압주>는 소설 <로캐넌의 세계>와 <광기의 산맥>과 <신들의 사회>와 비슷합니다.


이런 소설들이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를 가로지르는 것처럼, <압주>는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를 가로지릅니다. SF 독자들과 판타지 독자들이 똑같이 어슐라 르 귄을 좋아하는 것처럼, <압주>에는 사이언스 픽션과 고대 판타지가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압주>는 둔클레오스테우스를 비롯해 여러 고대 해양 동물들을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둔클레오스테우스가 사이언스 픽션 속의 고생물학보다 신화 속의 바다 괴수에 가깝나요? 소설 <상흔>이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를 가로지르고 둔클레오스테우스를 보여주는 것처럼, <압주> 역시 그렇습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이런 둔클레오스테우스를 판타지 속의 바다 괴수라고 생각할 수 있나요?



소설 <상흔>은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의 속편입니다. 사실 <상흔>이 나오기 전에, 이미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은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와 고딕 호러를 짬뽕했습니다. 이 소설에는 인공 지능 기계와 지옥과 악마와 외계인과 19세기 산업 도시와 기괴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기계가 신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마법사들은 과학자들에게 반박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온갖 기계들을 설계하는 동안, 마법사들은 이상한 주문들을 외웁니다. <상흔>은 둔클레오스테우스를 보여주나,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은 고대 야수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밀림에는 스테고사우루스가 있을지 모릅니다.


생태학자들이 산업 도시를 벗어나고 밀림으로 향한다면, 생태학자들은 스테고사우루스를 만날지 모릅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열대 밀림을 파괴하고 생물 다양성을 학살하는 것처럼, 소설 속에서 산업 도시가 자연 환경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드루이드들은 스테고사우루스를 지키기 원할지 모릅니다.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이 이런 것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19세기 산업 도시와 자본주의 수탈과 드루이드와 스테고사우루스는 이상하지 않습니다.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은 장르 경계선들을 무너뜨립니다. 평론가들은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이 SF, 판타지, 고딕 호러에 모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SF 소설들은 판타지로 나가거나 판타지 요소를 포함합니다. 장르 경계선들은 흐릿합니다.]



소설 <상흔>이 기본적으로 스팀펑크이고, 스팀펑크가 사이언스 픽션에 속하기 때문에, <상흔>은 SF 소설 같습니다. 하지만 <상흔>이 SF 소설이 된다고 해도, 구식 잠수함, 해저인, 둔클레오스테우스, 마법과 주문 해석 기계, 시추선은 장르 경계선들이 고정적이지 않다는 뜻입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와 고딕 호러 사이에는 경계선들이 있으나, 장르 경계선들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소설 <상흔>은 고생물학을 고딕 호러에 덧붙이고, 스팀펑크를 흑마술과 뒤섞고, 기술적 특이점과 연금술을 함께 실험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SF' 소설 <상흔>이 장르 경계선들을 왕래할 수 있나요?


왜 장르 경계선들이 뚜렷하지 않나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사이언스 픽션이 뚝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서구 문명은 엄청난 변화(서구적인 근대화)를 겪습니다. 서구적인 근대화가 정말 엄청난 변화이기 때문에, 사이언티픽 로망스는 이것을 이용해 비일상적인 상상력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서구적인 근대화는 당장 모든 것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서구적인 근대화는 수많은 것들을 거쳤습니다. 서구적인 근대화는 환상 소설들, 요정 이야기, 강령술, 고딕 호러 소설들, 범죄 소설들, 노동 운동과 성 해방 투쟁 같은 저항 운동들, 각종 환경 오염들, 진화 이론, 과학 혁명, 산업 혁명, 대규모 공장들을 거칩니다.



코니 윌리스가 쓴 소설 <개는 말할 것도 없고>와 가이 리치가 감독한 영화 <셜록 홈즈>는 강령술, 흑마술, 고딕 호러, 도시 범죄, 사이언스 픽션을 뒤섞습니다. 왜 <개는 말할 것도 없고>가 강령술과 사이언스 픽션을 함께 보여주나요? 왜 영화 <셜록 홈즈>가 흑마술을 늘어놓거나 시대 고증을 무시하고 스팀펑크 판타지로 흘러가나요? 이런 것들과 사이언티픽 로망스는 동창생(?)입니다. 그래서 사이언티픽 로망스는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동시에 서구적인 근대화를 이용해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르는 후천적입니다.


메리 셸리는 자신이 SF 작가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썼을 때, 메리 셸리는 바이오펑크보다 고딕 호러를 쓰기 원했습니다. 메리 셸리는 바이오펑크라는 용어를 알지 못했습니다. 바이오펑크는 20세기 용어입니다. 메리 셸리가 <최후의 인간>을 썼을 때, 19세기 유럽에는 전형적인 SF 장르가 없었습니다. 쥘 베른과 허버트 웰즈는 무엇이 사이언티픽 로망스인지 논의했으나, 두 작가는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메리 셸리가 <최후의 인간>을 썼을 때부터, 쥘 베른과 허버트 웰즈가 자신이 진짜 SF 작가라고 싸웠을 때부터, SF 장르는 고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20세기 평론가들이 SF 장르를 규정하지 않았다면, 메리 셸리는 SF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쥘 베른과 허버트 웰즈 역시 SF 작가가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메리 셸리와 쥘 베른과 허버트 웰즈 이후에도 SF 장르는 계속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후천적으로 장르들을 만들기 때문에, 장르들은 얼마든지 바뀌거나 섞이거나 커질 수 있습니다. 메리 셸리는 자신이 바이오펑크 작가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메리 셸리처럼, 100년이나 200년 이후, 차이나 미에빌은 새로운 장르 작가가 될지 모릅니다. 소설 <상흔>은 스팀펑크 판타지입니다. 하지만 100년이나 200년 이후, <상흔>은 새로운 장르 소설이 될지 모릅니다.


메리 셸리가 저도 모르게 바이오펑크 소설을 쓴 것처럼, 차이나 미에빌은 저도 모르게 새로운 장르 소설을 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SF 장르 경계선은 고정적이지 않고, SF 장르는 다른 수많은 것들과 어울릴 수 있습니다. 이건 모든 것이 사이언스 픽션이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사이언티픽 로망스와 고딕 호러가 동창생이라고 해도, 이건 고딕 호러가 사이언티픽 로망스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다른 것들과 합칠 수 있다고 해도, 분명히 사이언스 픽션에게는 고유한 특징들이 있습니다. 어슐라 르 귄처럼, 소설 작가가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를 가로지른다고 해도, 판타지는 고유한 SF 특징들을 따르지 못합니다.



소설 <상흔>에 둔클레오스테우스가 있는 것처럼, 비디오 게임 <네버윈터 나이츠 2: 제히르의 폭풍>에는 데이노니쿠스가 있습니다. <네버윈터 나이츠 2>는 중세 유럽 판타지이고, 둔클레오스테우스처럼, 데이노니쿠스는 고대 야수입니다. 데이노니쿠스는 공룡이고, 공룡은 <네버윈터 나이츠 2> 같은 중세 판타지보다 <천둥 소리> 같은 사이언스 픽션에 어울립니다. 하지만 <상흔>이 둔클레오스테우스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네버윈터 나이츠 2>는 데이노니쿠스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상흔> 속의 둔클레오스테우스와 <네버윈터 나이츠 2> 속의 데이노니쿠스가 비슷한 감성을 풍기나요? 그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SF 평론가는 19세기 서구 근대화를 이용해 <상흔>과 <네버윈터 나이츠 2>를 대조할 수 있습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 <네버윈터 나이츠 2>와 달리, 스팀펑크 판타지 <상흔>은 19세기 (증기 기관) 산업 문명에 기반합니다. 19세기 산업 문명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 과학 이론은 진화 이론입니다. 19세기 서구 근대화, 진화 이론, 생명 진화 역사, 둔클레오스테우스 같은 고대 야수. 독자가 <상흔>을 읽는 동안, 독자는 이런 것들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반면, 중세 유럽 지식인들은 생명 진화 역사를 떠들지 않았습니다. <네버윈터 나이츠 2>는 데이노니쿠스를 다른 것들(생명 진화 이론)과 연결하지 못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에게 19세기 서구 근대화는 생산 조건입니다. 19세기 근대화에는 이런 사람들 역시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흔>과 <네버윈터 나이츠 2>에 똑같이 판타지 요소들이 있고, 양쪽이 똑같이 고대 야수들을 보여준다고 해도, 양쪽은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상흔>을 좋아할 테고, 어떤 사람들은 <네버윈터 나이츠 2>를 좋아할 겁니다. <워해머>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처럼, 중세 유럽 판타지는 대대적으로 스팀펑크를 도입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완전히 19세기 산업 문명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에, <상흔>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다른 감성을 풍깁니다. 19세기 서구 문명에서 사회주의 운동권은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상흔>에서 부두 노동 조합이 중산층 가족 관계를 비판하고 성 해방 투쟁을 외친다고 해도, 이건 이상하지 않습니다. 부두 노동 조합은 중산층 가족 관계가 현모양처를 강요한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장면에서 독자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가족, 사유 재산, 국가의 기원>을 머릿속에 떠올릴 겁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노동 조합들이 파업한다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중산층 가족을 비판하지 못합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총파업과 억압적인 중산층 가족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해도, <상흔>은 훨씬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19세기 서구 사회 속에서 이런 사건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상흔>이 똑같이 노동 조합 총파업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달리, <상흔>이 19세기 서구 사회에 가깝기 때문에, <상흔>은 노동 조합 총파업을 훨씬 생생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소설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은 엄청난 환경 오염들을 묘사합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기후 변화를 비롯해 온갖 환경 오염들을 일으켰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들에게 환경 오염은 주된 소재입니다. 21세기 소설로서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은 19세기 환경 오염을 묘사하나, 이미 19세기 사이언티픽 로망스들 역시 19세기 환경 오염들을 비판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환경 운동과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이미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가 심각한 환경 오염들을 일으킨다고 인식했습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온실 가스를 인식하지 못했으나,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기후 변화를 일으킬지 모른다고 예상했습니다. 만약 21세기에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나타난다면, 두 사람은 신진 대사와 소외를 운운하고 환경 운동을 지지할 겁니다. 오히려 어설프고 얄팍한 21세기 자유주의 환경 운동들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훨씬 나을 겁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가 기후 변화를 일으킨다고 직접 비판할 겁니다.



19세기에서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오염들을 비판하는 것처럼, 스팀펑크 판타지는 환경 오염들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이 19세기 환경 오염을 묘사하는 것처럼, 중세 유럽 판타지보다 (스팀펑크를 비롯해) 사이언스 픽션에게 근대적인 환경 오염들은 훨씬 잘 어울립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드루이드들과 삼림 레인저들이 자연 환경을 연구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중세 유럽 판타지 역시 환경 운동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환경 운동은 근대 환경 운동과 다를 겁니다. 이런 환경 운동이 근대 환경 운동과 비슷하다고 해도, 중세 판타지보다 스팀펑크는 근대 환경 운동을 훨씬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노동 조합들은 공장들이 시커먼 매연들을 뿜고, 강물에 산업 폐기물들을 버리고, 정화 비용들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깨끗한 대기와 강물과 토지를 위해 노동 조합들은 파업을 불사할지 모릅니다. <네버윈터 나이츠 2>는 대규모 공장, 시커먼 매연들, 강물 속의 산업 폐기물들, 노동 조합들과 총파업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이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으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대규모 공장보다 스톰윈드 왕궁은 훨씬 핵심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접속한다면, 그들이 대규모 공장을 보기 원할까요, 아니면 중세 성채를 보기 원할까요?



둔클레오스테우스, 진화 이론, 사회주의 운동권, 성 해방 투쟁, 시커먼 매연과 산업 폐기물들은 <네버윈터 나이츠 2>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보다 <상흔>에 훨씬 잘 어울립니다. 이건 진화 이론과 성 해방 투쟁과 환경 운동이 <상흔> 같은 스팀펑크 설정의 전유물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둘째 문단이 "고생물학은 사이언스 픽션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진화 이론과 성 해방 투쟁은 스팀펑크의 전유물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SF 독자들은 <네버윈터 나이츠 2> 속의 데이노니쿠스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속의 영리 기업보다 <상흔> 속의 둔클레오스테우스와 노동 조합과 성 해방 투쟁을 좋아할지 모릅니다.


SF 독자들이 <네버윈터 나이츠 2>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보다 <상흔>을 좋아한다면, SF 독자들에게는 위와 같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19세기 서구에서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종의 기원>을 강력하게 지지했기 때문에, <상흔>에서 둔클레오스테우스와 사회주의 운동권은 좋은 조합일지 모릅니다. 이렇게 사이언스 픽션에게는 고유한 특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이언스 픽션에게 고유한 특징들이 있다고 해도, 사이언스 픽션은 이런 특징들에 다른 것들을 덧붙일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다른 것들과 어울릴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장르 경계선을 벗어나고 다른 주제들, 다른 소재들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고대 유적 속의 둔클레오스테우스를 이야기하기 위해 SF/판타지 팬들은 생산 조건들을 말해야 합니다.]



판타지 전설과 근대 지질학이 대립하기 때문에, 지질학을 강조하기 위해 소설 작가는 드워프 광부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서구 대학교에서 과학자가 지질학을 강의한다면, 이건 별로 특별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중세 판타지 드워프 광부가 근대 지질학을 설명한다면, 이건 다소 독특할 겁니다. 드워프 광부는 근대 지질학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이건 강조 효과입니다. 어떤 독자들은 이런 강조 효과를 좋아할 겁니다. 또 다른 독자들은 이런 효과가 어설프고 어색하다고 느낄 겁니다.


판타지와 사이언스 픽션 사이에서 어슐라 르 귄이 왕래하고, <상흔>이 플레시오사우루스와 구식 잠수함을 이야기하고, <압주>가 고대 신전과 아르켈론을 보여주고, <네버윈터 나이츠 2>가 드루이드와 데이노니쿠스를 내놓는다면, SF/판타지 팬들은 이런 것들을 좋아하거나 싫어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SF/판타지 팬들이 이런 것들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고 해도, 이런 것들은 주관적인 해석들과 감상들입니다. SF/판타지 팬들은 서구적인 근대화와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무슨 관계들을 맺는지 논의할 수 있습니다.


SF/판타지 팬들은 무슨 생산 조건들이 스팀펑크 판타지를 만드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주관적인 감상들보다 생산 조건들은 훨씬 중요할지 모릅니다. SF/판타지 팬들이 스팀펑크 판타지가 좋거나 나쁘다고 말하기 전에, SF/판타지 팬들은 스팀펑크 판타지가 무엇인지 규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술을 평가하고 싶다면, 그 전에 우리는 예술이 무엇인지 규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술을 규정하고 싶다면, 우리는 무슨 생산 조건들이 예술을 만드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이건 훨씬 근본적인 비평일 겁니다.



장르가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19세기 메리 셸리는 고딕 호러 소설을 썼으나, 20세기에서 메리 셸리는 바이오펑크 작가가 됩니다. 메리 셸리처럼, 장르들은 확장하거나 뒤섞이거나 바뀝니다. 장르들이 확장하거나 뒤섞이거나 바뀌기 때문에, 소설 <상흔>은 둔클레오스테우스와 구식 잠수함과 흑마술과 뱀파이어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조합은 색다른 재미를 일으킵니다. 어떤 평론가들에게 이런 상황은 골치가 아플 겁니다. 차이나 미에빌 같은 작가가 계속 장르 경계선들을 넘는다면, 평론가들은 장르를 규정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생각할 겁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모든 SF 소설이 <아이 로봇> 같은 소설이라면, SF 장르를 규정하기는 훨씬 쉬울 겁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SF 장르에서 문학 사조들은 계속 바뀌었습니다. 미래에 SF 장르가 있다면, 미래에서도 SF 장르는 계속 바뀔 겁니다. 미래에서 또 다른 차이나 미에빌은 장르 경계선들을 넘고, 장르들을 종합하고,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겁니다. 그래서 SF 독자들은 "이것이 사이언스 픽션이다!"라고 단정하지 못합니다. 어슐라 르 귄과 <압주>는 사이언스 픽션에 속할 수 있으나, 어슐라 르 귄과 <압주>는 사이언스 픽션이 다른 것들과 만난다고 증명합니다. <상흔>은 이걸 훨씬 멀리 밀어붙입니다.



※ 게임 <압주> 스크린샷 출처: Reuben Caldwell, https://youtu.be/ieFPTTgzhx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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