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소설 <공룡과 춤을>의 표지 그림 본문
[이런 영어권 표지는 멋집니다. 하지만 이런 표지를 만들기는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행복한 책읽기의 <공룡과 춤을>은 로버트 소여의 시간 여행 소설이자 공룡 소설입니다. 과학자 두 명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이들은 공룡 시대를 탐험합니다. 하지만 평범하게 보이는 탐험은 이내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하고, 소설은 과거부터 머나먼 미래까지 아득하게 꿰뚫어 봅니다. 소설 제목은 <공룡과 춤을>이지만, 솔직히 공룡은 이 소설에서 그리 주요한 소재가 아닌 듯합니다. <잃어버린 세계>에서 공룡이 주요한 소재가 아닌 것처럼. <공룡과 춤을>의 영어 제목은 '한 시대의 끝'이고, 사실 예전에 오멜라스의 <멸종>이라는 번역본이 이미 나온 적이 있습니다.
저는 <멸종>이라는 제목이 <공룡과 춤을>보다 훨씬 잘 어울린다고 봅니다. 왜 출판사가 저런 제목을 골랐는지 모르겠군요. 공룡 애호가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만약 전형적인 공룡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이 책을 펼쳤을 때 실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은 공룡을 향해 끊임없는 애정을 늘어놓습니다. 그 어떤 것도 공룡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소설의 주제 덕분에 다른 소설보다 공룡을 훨씬 환상적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공룡과 춤을>은 좀 안 어울리는 제목이 아닌가 싶군요.
아울러 우리나라 번역본의 표지 그림은…. 음, 역시 소설 내용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듯합니다. 왜 이런 그림을 골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어 판본이 훨씬 그럴 듯하군요. 영어 판본에서는 티라노사우루스 한 마리가 서있고 두 과학자가 타임 머신 속에서 공룡을 바라봅니다. 이 그림은 소설 내용을 보다 분명히 반영하고, 게다가 훨씬 멋지죠. 왜 우리나라 출판사는 이런 그림을 고르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표지 그림이 너무 화려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 있겠죠. 그렇다면 그림을 작게 줄이든가 아예 표지 그림을 뺄 수 있습니다.
제작비 때문에 불새 출판사는 아예 표지 그림을 제거했죠. 이것 역시 나쁘지 않습니다. 어설픈 표지 그림이 들어갈 바에야 아예 표지 그림을 빼는 것이 나을 수 있어요. 솔직히 저는 우리나라 출판사들의 SF 소설 표지 그림을 볼 때마다 가끔 어리둥절하곤 합니다. <블라인드 사이트>나 <스타타이드 라이징> 같은 소설의 표지 그림은 참…. 물론 이런 소설을 출판하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하지만, 음, 솔직히 표지 그림은 많이 어색하죠.
<러브크래프트 전집>이나 <유령 여단>이나 <익스팬스>나 <안드로메다 성운>의 표지 그림은 멋집니다. 우리나라 출판사들의 SF 소설 그림이 전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소설의 유명세에 비해 어색한 그림들도 있는지라…. 소설은 텍스트 매체지만, 소설 표지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죠. 인간은 겉모습만으로 많은 것들을 한순간에 판단합니다. 그래서 표지만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문구가 있죠.
소설 표지 그림이 책의 판매나 인지도에 영향을 미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소설 표지 그림과 판매량과 인지도는 아무 연관이 없을 수 있죠. 어, 아마 아무 연관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좋은 SF 소설이 나온다면, 그에 걸맞는 표지 그림이 있었으면 싶습니다. 로버트 소여의 저 소설은 분명히 신나고 재미있고 원대한 소설이고, 아마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룡 소설들 중 순위권에 들 겁니다. 그에 걸맞는 표지 그림이 붙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멜라스 출판사의 <멸종> 번역본의 그림이 행복한 책읽기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멸종> 역시 뭔가 좀 어색한 그림들이 있었으나, 그래도 표지 그림은 멋진 티라노사우루스였습니다. 아, 영어 판본과 <멸종>과 <공룡과 춤을>이 모두 티라노사우루스를 표지 그림으로 이용하는군요. 역시 티라노사우루스는 인기 스타인가 봅니다. 시대가 흐르고 공룡에 관한 고증들이 많이 바뀌어도 티라노사우루스는 인기 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군요. 심지어 <메그> 같은 소설 역시 (비록 상어에게 당하지만) 티라노사우루스를 표지 그림으로 내세웠죠. 티라노사우루스와 메그는 다른 시대를 살았음에도 저 소설은 티라노사우루스를 이용했습니다. 그만큼 티라노사우루스가 잘 나간다는 뜻일 겁니다. 공룡 SF 소설들은 앞으로 계속 나올 테고, 그때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표지 그림에 얼굴을 내밀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