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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설정과 세계관이 맺은 긴밀한 관계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설정과 세계관이 맺은 긴밀한 관계

OneTiger 2019. 1. 24. 18:34

가끔 JoySF 같은 SF 동호회는 '세계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일반적으로 세계관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이런 SF 동호회들이나 SF 팬들에게 세계관은 가상 세계와 거기에 따른 설정을 가리키죠. 러브크래프트 소설에서 아자토스와 위대한 고대 존재들이 만든 우주와 행성들은 크툴루 신화라는 세계관이 됩니다. 다양한 러브크래프트 소설들은 그런 세계관을 이야기합니다. <다곤>이나 <크툴루의 부름>이나 <인스머스의 그림자>나 <광기의 산맥>은 똑같은 세계관을 공유해요. <다곤>부터 <광기의 산맥>까지, 이런 소설들은 똑같이 위대한 고대 존재들이 형성한 우주를 이야기하죠.


언제부터 국내 SF 팬들이 이런 '세계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일본 SF 팬들이 먼저 이 용어를 사용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 SF 팬들이 국내에 영향을 끼치는 동안 세계관이라는 용어 역시 국내로 들어왔을지 모르겠어요. 일본 SF 팬덤을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저는 일본 SF 팬들이 세계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출처가 어디이든, 국내 SF 팬덤에서 세계관은 빠지지 못하는 용어가 된 것 같아요. "나는 <은하 영웅 전설>의 세계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렇게 말했을 때, 그 사람은 <은하 영웅 전설>의 설정을 가리켰을 수 있죠.



하지만 세계관이라는 용어보다 설정이라는 용어는 훨씬 정확할 겁니다. 세계관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뜻하고, 그래서 가상의 세계 설정과 세계관은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용어인 것 같아요. <다곤>과 <인스머스의 그림자>는 똑같은 세계관이 아니라 똑같은 설정을 공유하죠. SF 팬들은 세계관보다 설정이라는 용어를 이용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런 용어들이 으레 그런 것처럼, 세계관 역시 쉽게 사라지지 않는 용어가 될 겁니다. 세계관보다 설정은 훨씬 정확하겠으나, 앞으로 계속 국내 SF 팬들은 세계관이라는 용어를 이용하겠죠. 게다가 어떤 사례들에서 가상의 세계 설정은 정말 세계관을 담을 수 있습니다. 세계관은 설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크툴루 신화라는 세계관은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라는 소설 작가가 소설 속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설명하죠. 어떻게 다양한 소설들 속에서 하워드 러브크래프트가 세상을 바라봤을까요. 다양한 소설들 속에서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세상이 어떤 무지막지한 비밀을 숨겼다고 생각했고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고작 미물에 불과하다고 바라봤습니다. 우주에는 위대하고 무서운 반신들이 존재하고, 그들에 비해 인류는 고작 미물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함부로 그런 비밀에 다가간다면, 인간은 정신을 잃고 비참하게 죽을 겁니다. 다양한 소설들 속에서 그렇게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우주를 바라봤고, <다곤>이나 <광기의 산맥>이나 <인스머스의 그림자>는 그런 관점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가상의 세계를 설정할 때,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장르 소설들 역시 주제들과 분위기들을 바꿉니다. 소설 <반지 전쟁>과 소설 <안드로메다 성운>은 다른 설정들을 보여주고 동시에 다른 세계관들을 보여줍니다. <반지 전쟁>과 <안드로메다 성운>은 서로 너무 다른 소설입니다. 하나는 중세 유럽 판타지이고,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 우주 탐사물입니다. 가상의 중세 유럽을 보여주는 소설로서 <반지 전쟁>은 신분과 혈통을 굉장히 중시합니다. <반지 전쟁>은 노골적으로 계급과 혈통과 귀족과 왕권을 찬양합니다.


비록 호빗처럼 작은 종족 역시 중요한 역할을 맡으나, 정말 거대한 서사를 이루는 주인공은 왕족이나 귀족이나 엘프나 인간입니다. 중세 유럽이 민중들을 억누른 것처럼, <반지 전쟁>은 민중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반면, <안드로메다 성운>은 미래의 첨단 공산주의를 보여주고 평등한 사상을 중시합니다. 인종, 국경, 성별, 피부색, 재산 같은 것들은 평등을 가로막지 못하고, 누구나 자아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대규모 계획 경제 속에서 어떻게 민중들이 자아를 실현하는지 자세히 설명해요.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혈통이나 신분 따위에는 별로 가치가 없습니다. 설사 가치가 있다고 해도, 그건 그저 다양성을 강조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왜 <반지 전쟁>과 <안드로메다 성운>이 서로 다를까요. 존 로널드 톨킨과 이반 예프레모프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존 로널드 톨킨은 지배적인 관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작가입니다. 중세 유럽 사회가 민중들을 억압했다고 해도, 그건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톨킨은 혈통과 신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관습적으로 지배 계급은 신분이 중요하다고 주장했고, 21세기 자본주의 사회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21세기 재벌들은 귀족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재벌들이 새로운 귀족이라고 생각하죠. 톨킨이 보수적인 작가였기 때문에 톨킨은 그런 관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그런 설정을 만들었을 겁니다.


반면, 이반 예프레모프는 미래를 바라보는 작가이고 평등을 중시합니다. 민주적인 시민에게 혈통이나 신분 따위는 그저 억압에 불과합니다. 민주적인 시민은 평등을 억압하는 사슬들을 끊을 수 있어야 하고 인종과 혈통과 신분과 성별을 타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반 예프레모프는 그런 공산주의 미래를 그렸고, 그래서 <안드로메다 성운>은 꽤나 진보적인 소설입니다. 이렇게 <반지 전쟁>의 중간계와 <안드로메다 성운>의 위대한 원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냅니다. 세계관이라는 용어는 비교적 정확하지 않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가상의 세계 설정은 정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낼 수 있어요.



여러 사이언스 픽션들은 인류가 우주로 진출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안드로메다 성운>처럼, 이런 사이언스 픽션들이 평등한 인류 문명 위에서 우주 탐사를 그릴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보여준 것처럼, 우주 진출은 아주 폭력적이고 억압적일 수 있습니다. <안드로메다 성운>과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똑같이 인류가 우주로 진출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별들의 시대'라는 멋지고 로망스러운 용어를 읊조립니다. 하지만 두 소설과 영화에서 인류 문명은 서로 너무 다릅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인류는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고, 자연 생태계를 조절하고, 풍성한 자연 환경을 만끽합니다. 이 소설에서 공산주의 문명은 동물 권리를 노골적으로 개무시하나, 적어도 그들은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지배 계급은 피지배 계급을 착취하고, 자연 생태계는 완전히 사라졌고, 치명적인 환경 오염은 일상입니다. 왜 똑같이 우주 진출을 이야기함에도, 두 소설과 영화에서 설정이 다를까요? 이반 예프레모프와 드니 빌뇌브가 서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 때문일 겁니다. 이반 예프레모프는 문제를 진단했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반면, 드니 빌뇌브는 문제를 파악했으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각(세계관)은 설정에 영향을 미쳤죠.



SF 설정은 그저 가상의 과학 지식들이나 물리 법칙들이나 생물 다양성이 아닙니다. SF 설정에는 우주와 자연과 문명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소설 작가가 세상을 바라볼 때, 그건 SF 설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숱한 사이언스 픽션들 속에서 인류 문명은 우주로 진출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구의 자연 생태계가 망한다고 해도 인류가 우주로 도망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연 생태계가 무너진다'는 문구는 그저 희귀 동물들이 죽거나 삼림이 줄어든다는 뜻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자연 생태계가 무너질 때, 그 생태계 속의 약자들 역시 고통을 겪거나 죽을 겁니다. 지구 생태계가 죽을 때, 인류가 정말 우주로 도망칠 수 있을까요? 아무도 그걸 장담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인류가 우주로 도망칠 수 있다고 해도, 억압적이고 수직적인 계급 구조 속에서 모두 똑같이 도망칠 수 있을까요? 그건 망상이겠죠. 인류가 우주로 떠나고 싶다면, 그 전에 인류는 먼저 평등한 사회 구조를 확립해야 할 겁니다. 평등한 사회 구조가 없다면, 우주 진출은 또 다른 착취가 되겠죠. 따라서 자연 생태계가 무너지거나 인류가 우주로 도망친다고 말할 때, SF 작가들은 이런 약자들과 계급 구조를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SF 작가들이 이걸 고려할까요? <블레이드 러너 2049> 같은 영화는 우주 진출이 폭력적이라고 회의하나, 많은 SF 작가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그저 우주 진출을 떠들 뿐입니다. 이반 예프레모프와 달리, 애석하게도 많은 SF 작가들은 억압적인 계급 구조를 별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계관들은 다르고, 설정들 역시 달라질 겁니다. 심지어 SF 설정들은 현실 속의 폭력과 수탈과 오염을 은폐하거나 옹호할 수 있습니다. 세계관과 설정은 다릅니다. 하지만 설정 속에서 세계관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세계관은 설정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세계관과 설정 사이에는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물론 이건 설정이 특정한 관점을 무조건 지지하거나 반영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설정이 세계관을 담는다고 해도, 작가가 설정으로 이야기를 쓸 때, 세계관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은 꽤나 추레하고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설정을 보여줍니다. 이게 차이나 미에빌이 폭력을 지지한다는 뜻일까요? 그렇게 독자가 해석한다면, 그건 커다란 오해일 겁니다. <빛의 세계>에서 X 구역은 인류 문명을 집어삼킵니다. 제프 밴더미어는 자연 생태계를 위해 인류 문명이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에이, 그건 아니겠죠. 이렇게 설정 그 자체와 설정에 기반한 이야기는 서로 다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설정과 세계관은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SF 설정을 살필 때, SF 팬들은 어떻게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지 언급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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