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생태학이 훨씬 멀리 나간다면 본문
[이런 것은 SF 생태학에 들어갈 수 있겠죠. 하지만 SF 생태학은 훨씬 멀리 전망할 수 있어요.]
가끔 저는 이렇게 묻습니다. "누군가가 이 블로그의 주소(sf ecology)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떠올릴까?" 주소가 가리키는 것처럼 이 블로그에는 SF 생태학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커다란 공룡들, 외계 행성의 생명체들, 지구화(테라포밍), 거대 괴수와 행성 생태계, 개조 동물들, 생태계 탐사, 기타 등등. 어쩌면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들 때문에 SF 생태학이라는 주소가 붙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그건 틀린 생각이 아닐 겁니다. 공룡이나 거대 괴수나 외계 생명체나 개조 동물은 분명히 SF 생태학 이야기에 들어갈 수 있겠죠.
하지만 생태학(ecology)이 오직 그런 이야기들만을 가리킬까요? 녹색 정치가 발달한 오늘날, 생태학이 훨씬 넓은 범주를 뜻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분명히 생태학은 자연 생태계를 연구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환경 오염이 아주 심각하기 때문에 때때로 생태학 그 자체는 환경 보호 운동을 가리킵니다. 구글링 이미지에서 ecology를 검색한다면, 다양한 환경 보호 운동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제 생태학은 그저 생태계 연구라는 의미를 넘고, 환경 보호 운동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21세기 환경 오염이 낳은 결과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절전용 전구를 갈아끼운다고 해도, 그게 정말 환경 보호 운동이 될까요? 이는 절전용 전구를 갈아끼우는 행위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그런 개인적인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개인이 아닙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따라서 언제나 우리는 사회 구조를 생각해야 합니다. 개인이 절전용 전구를 갈아끼우는 것처럼 사회 구조 역시 절전용 전구를 갈아끼워야 합니다. 개인이 자연 친화적으로 사는 것처럼 사회 구조 역시 자연 친화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회 구조가 자연 친화적으로 살 수 있을까요? 자본주의나 대의 제도, 가부장 제도 속에서 사회 구조가 자연 친화적으로 살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자본주의와 대의 제도, 가부장 제도는 모두 소수 지배 계급이 다수 피지배 계급을 억압하는 구조입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사회가 자연 친화적으로 바뀔 이유는 없을 겁니다. 소수 지배 계급이 다수 피지배 계급을 억압한다면, 당연히 지배 계급은 자연 환경을 착취할 겁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억압하는 상황 속에서 자연 생태계는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이미 대항해 시대가 상업 자본주의를 키우는 순간부터 자본주의는 엄청난 열대 우림을 파괴했어요. 그러는 동안 식민지 원주민들 역시 학살을 당했고요.
열대 우림을 파괴하는 행위와 식민지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행위는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두 가지는 필연적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따라서 환경 보호 운동과 소수 민족 권리는 언제나 붙어있는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부터 자본주의는 열대 우림을 파괴하는 동시에 식민지 원주민들을 학살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태학은 그저 자연 생태계를 떠드는 학문이 되어서는 안 될 겁니다. 아니, 사전적인 의미는 그럴 수 있으나, 생태학은 훨씬 넓은 범위를 가리킬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대의 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차 세계 대전은 식민지 문제와 긴밀하게 이어집니다. 유럽 강대국들은 더 많은 식민지들을 차지하기 원했고, 그래서 서로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런 싸움은 점차 격렬해졌고, 결국 세계 대전으로 커졌습니다.
당연히 식민지들에서 유럽 강대국들은 자연 환경을 파괴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제국주의 수탈이 환경 오염으로 이어지는지 구태여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유럽 강대국들은 천연 자원들을 수탈하기 원했고, 자연 생태계 따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욕심들이 서로 부딪혔기 때문에 유럽은 거대한 전쟁 속으로 끌려갔습니다. 숱한 시민들은 전쟁을 거부했으나, 국회 의원들은 전쟁에 찬성하는 표결을 던졌습니다. 전장에서 병사들이 죽거나 말거나, 정치인들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대의 제도가 생겨났을 때부터, 대의 제도는 무시무시한 전쟁에 찬성하고 자연 환경을 파괴했습니다. 그때 공산주의 혁명가들은 세계 대전에 반대했으나, 정치인들은 그런 공산주의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어요. 심지어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사회 민주주의 정당조차 공산주의자들을 학살했죠. 사회 민주주의는 열심히 1차 세계 대전을 빨아줬습니다. (그래서 사회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보다 평화롭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웃기지도 않은 헛소리입니다.) 대의 제도는 절대 환경 보호 운동과 양립하지 못합니다. 가부장 제도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가부장 제도가 가장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가부장 제도가 군대를 찬양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군대는 남자들을 징집했습니다. 따라서 군대는 남자들을 우대합니다. 상대적으로 군대는 여자들을 비하합니다. 군대는 남자가 용맹하게 싸우는 전사라고 찬양하나, 여자는 남자에게 딸린 부속품이 됩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숱한 전쟁 역사 기록들을 보세요. 얼마나 많은 군대가 여자들을 제대로 이야기했을까요? 여자들은 병사들이 수탈하는 전리품이 되거나 고향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아내가 되었습니다. 여자들의 역할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군대가 존재한다면, 적어도 전통적인 군대가 존재한다면, 그 사회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가 될 겁니다.
문제는 군대가 양민들을 학살하는 집단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대부분 군대들은 양민들을 학살했습니다. 군대는 지배 계급이 폭력을 휘두르는 도구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가 자연 환경을 보존하겠어요. 군대가 식민지를 침략하고 세계 대전을 벌인 것처럼, 군대가 존재한다면, 사회는 자연 환경을 보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지배 계급의 이득을 위해 군대는 자연 환경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할 겁니다. 지배 계급이 자연 환경을 착취할 때, 군대는 그걸 옹호할 겁니다. 이렇게 자본주의, 대의 제도, 가부장 제도는 환경 보호 운동과 양립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생태학이 더 넓은 의미를 가리킬 수 있다면, 생태학은 자본주의, 대의 제도, 가부장 제도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여자 권리를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생태학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블로그가 가리키는 생태학(ecology)은 그런 것들입니다. <혁명하는 여자들> 같은 페미니즘 소설은 생태학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자 권리가 높아질 때, 사회 구조는 자연 환경을 보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혁명하는 여자들>은 생태학으로 이어지는 소설이 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