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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생명체의 역사와 기계 프로그램의 역사 본문

생태/자연과 문명

생명체의 역사와 기계 프로그램의 역사

OneTiger 2018. 3. 25. 08:02

랜들 먼로가 쓴 <위험한 과학책>은 도발적이고 괴상한 시뮬레이션입니다. 사람들이 랜들 먼로에게 뭔가 이상한 것들을 물어보면, 랜들 먼로는 그걸 가상 실험하고 답변을 답니다. 이런 책을 볼 때마다 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기발한 사고들을 쏟아내는지 깨닫습니다. 만약 인류가 동시에 제자리에서 뛴다면, 그게 지구에 무슨 영향을 끼칠까요? 핵 폭탄을 폭풍의 눈에서 터뜨린다면, 폭풍을 멈출 수 있을까요? 만약 지구가 자전을 멈춘다면, 어떻게 세상이 바뀔까요? 만약 모든 집이 소형 터빈 발전기를 설치한다면, 얼마나 많은 전력을 생산할까요?


아마 SF 작가들 역시 이런 물음들을 흥미롭게 여길지 모릅니다. 몇몇 물음들은 정말 하드 SF 소설로 이어질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해도 이런 물음들이 곧바로 하드 SF 소설로 이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좋은 SF 소설은 기발한 발상만 아니라 관념이나 사회 구조가 바뀌는 모습을 관찰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특징을 잊어버리고, SF 소설이 그저 독특한 자연 과학을 사고 실험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SF 소설은 그런 것을 넘고, 인식의 지평선이나 전복적인 세상과 맞닿아야 합니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위험한 과학책>에서 인상적인 구절들 중 하나는 DNA가 상당히 복잡한 소스 코드라는 문구였습니다. 랜들 먼로는 DNA가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복잡한 기계의 소스 코드라고 말합니다. 각 염색체들은 어마어마한 정보들을 담았습니다. DNA와 주변 세포 조직들은 복잡하게 얽힌 되먹임 고리를 통해 수없이 많은 것들을 주고 받고, 우리가 믿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게 상호 작용합니다. 그래서 랜들 먼로는 DNA를 소스 코드라고 부르는 행위가 DNA에게 실례라고 말합니다. DNA에 비해 인간이 만든 가장 복잡한 프로그램조차 휴대용 계산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DNA와 인간이 만든 프로그램을 무조건 비교한다면, 그건 잘못일 겁니다. 생명이 걸어온 역사와 기계가 걸어온 역사가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에서 생명체가 대략 38억 년이나 35억 년 전에 탄생했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어떤 과학자는 생명체가 42억 년 전에 태어났을지 모른다고 주장합니다. 지구는 45억 년 전에 태어났죠. 만약 생명체가 정말 42억 년 전에 태어났다면, 생명체는 꽤나 이른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그렇게 생명체들은 장대한 역사를 흘렀어요.



비록 몇 십 억 년 동안 여러 흥망들을 겪었으나, 생명의 역사는 끊이지 않았고, 계속 이어졌습니다. 아마 10억 년 이후, 지구가 아주 뜨거워진다면, 생명의 역사는 끊길지 모릅니다. 언젠가 지구는 더 이상 생명의 요람이 되지 못할 테고, 태양조차 한계에 다다를 겁니다. 복잡한 자연 생태계는 사라지고, 지구는 죽은 행성이 될지 몰라요. 하지만 이 우주에서 생명의 역사가 완전히 사라질까요. 지구 같은 생명의 요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까요. 여러 우주 생물학자들은 생명체가 (아주 원시적인 모습이라고 해도)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고 추측합니다.


지구가 망한다고 해도, 생명의 역사는 끊이지 않을 테고, 우주 어딘가에서 어떤 행성에서 다시 생명체들은 발생할 겁니다. 게다가 어쩌면 지구가 망하기 전에 인류가 생명체들을 우주에 퍼뜨릴지 몰라요. 우리 자신이 우주로 퍼지거나 끈질긴 생명체들을 다른 행성들에 퍼뜨릴지 모르죠. 그런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도, 생명체가 장대한 역사를 걸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기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컴퓨터는 20세기에 등장한 물건이고, 기계 프로그램은 그렇게 짧은 역사를 거쳤어요.



저는 컴퓨터나 기계 공학을 무시할 마음이 없습니다. 분명히 인터넷 같은 첨단 기술은 인류 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꿨습니다. 어쩌면 기술적 특이점이나 양자 컴퓨터는 놀라운 기술적 유토피아를 이룩할지 모릅니다. 인공 지능이나 기계 공학은 대단한 기술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기계 문명에게 시선을 쏟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 지능이나 기계 공학이 정말 급진적인 과학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생명체는 장대한 역사를 걸었고, 생존하기 위해 여전히 우리는 생명체를 주믈럭거려야 합니다.


농민들이나 어민들이 꿀벌을 치거나 삼치를 잡지 않는다면, 생태학자들이 삼림이나 산호초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우리가 뛰어난 컴퓨터를 만든다고 해도, 우리는 멸망을 피하지 못할 겁니다. 개조 생명체나 유전자 편집만 생명 기술이 아닐 겁니다. 우리가 농사를 짓고 삼림을 관리하는 행위 역시 생명 기술일 겁니다. 그런 생명 기술이 문명을 뒷받침하기 때문에 기술적 특이점이나 양자 컴퓨터 역시 등장할 수 있겠죠. 게다가 생명체가 기계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인공 지능은 생명체를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지 모릅니다.



저는 인공 지능이나 생체 개조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미래가 어디로 흘러갈지 정확히 장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장대한 자연 생태계를 돌아볼 때, 숱한 농장들이나 산호초 지대를 둘러볼 때, 인공 지능이나 양자 컴퓨터가 좀 더 작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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