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임신과 로봇 공학. 무엇이 근본적인 창조인가? 본문
[게임 <제노블룸>처럼, 번성하는 생물 다양성은 진정한 창조, 훨씬 선천적인 창조일지 모릅니다.]
드라마 <CSI 과학수사대>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인기 수사 드라마입니다. 인기가 워낙 높았기 때문에 <CSI 과학수사대>는 과학 수사 열풍을 일으켰고, 다양한 스핀 오프들을 뽑아냈죠. 이 드라마에서 저는 어떤 에피소드가 꽤나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게 무슨 에피소드인지 저는 잘 기억하지 못하겠으나, 거기에서는 로봇을 만드는 공학 기술자가 등장했습니다. 로봇 기술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로봇을 만들고, 그건 진정한 창조 작업이다. 여자가 아이를 배는 행위는 창조적이지 않다. 동물들조차 임신할 수 있다."
저는 정확한 대사를 기억하지 못하겠으나, 대략적인 내용은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임신이 신비롭고 성스러운 행위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배는 여자가 생명을 창조하는 신비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로봇 기술자는 그런 관념을 산산조각 깨뜨립니다. 야생 동물들 역시 알이나 새끼를 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시하는 미물들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미생물들 역시 서로 교미하고 후대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적극적으로 로봇을 만들지 못합니다. 로봇 공학 기술은 오직 인간만의 창조 기술입니다.
재미있게도 영화 <터미네이터 2>에는 완전히 반대되는 대사가 나옵니다. 사라 코너는 로봇을 만드는 공학 기술자에게 로봇 공학이 창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라 코너는 임신이 진정한 창조라고 말합니다. 몸 속에서 생명을 키우는 기쁨은 로봇 공학이 감히 따라오지 못하는 감성입니다. 만약 <CSI 과학수사대>의 로봇 공학 기술자와 <터미네이터 2>의 사라 코너가 서로 만난다면, 두 사람은 열심히 말싸움을 벌일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사라 코너는 로봇 공학 기술자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아예 제거할지 모르겠습니다. 터미네이터 T-800에게 쫓겼기 때문에 사라 코너에게는 일종의 강박증이 있습니다. 사라 코너는 기계 제작자들, 특히, 로봇 기술자들을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사라 코너는 임신이 진정한 창조이라고 떠벌였고 로봇 공학이 파괴적인 본능이라고 혐오했겠죠. 흠, 누구 말이 옳을까요? 정말 로봇 공학이 진정한 창조 작업일까요? 미물들조차 새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임신이 저급한 창조 행위일까요? 아니면 사라 코너가 강조한 것처럼, 로봇 공학이 파괴로 이어지는 본능일까요? 몸 속에 새로운 생명을 품는 기쁨이 진정한 창조 행위일까요? 심지어 미물들조차 새끼들을 낳을 수 있음에도? 로봇 공학과 임신 중 뭐가 더 근본적인 창조일까요?
결론을 먼저 말한다면, 저는 로봇 공학보다 임신에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자연 생태계가 그렇게 번성했기 때문에 인류 역시 진화할 수 있었고 로봇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CSI 과학수사대>에서 로봇 공학 기술자는 다른 동물들이 로봇을 만들지 못한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하지만 자연 생태계가 끊임없이 풍성한 생명력을 유지했기 때문에 인류는 진화하고 로봇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로봇 공학이 진정한 창조 작업이라고요? 아, 그렇습니까? 그래서? 로봇 공학이 대수인가요? 로봇 따위가 뭐가 어쨌다고요? 로봇을 만들 수 있는 인간이 자연 생태계 없이 살아남을 수 있나요? 로봇이 모든 것을 이룩할 수 있습니까? 로봇이 모든 것을 보완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21세기 과학 기술은 엄청난 성과를 이룩했으나, 여전히 인류 문명은 자연 생태계 없이 살아가지 못합니다. 자연 생태계가 풍성한 생명력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당장 멸망할 겁니다. 언젠가 첨단 로봇들은 자연 생태계 없이 모든 것을 보완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언제 그런 로봇 시대가 올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그런 시대는 아예 오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로봇 시대와 달리, 우리는 풍성한 생명력을 지금 당장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레이첼 카슨이 쓴 <센스 오브 원더>를 읽거나, BBC의 <살아있는 지구>를 보거나, <타이토 에콜로지> 같은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해보세요. 아니면 뒷산에서 바쁘게 붕붕거리는 쌍살벌들을 관찰해보세요.
임신은, 자연계의 풍성한 생명력은 근본적이고 선천적인 창조 행위입니다. 자연 생태계가 복잡하게 진화하지 않았다면, 고대 생태계가 폭발적인 생물 다양성을 선사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진화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 우주에서 지적 존재는 오직 인간뿐일지 모릅니다. 저는 그런 상황을 상상하기 싫으나, 어쩌면 정말 우리는 유일한 지적 존재인지 모릅니다. 만약 지구가 망한다면, 이 우주에서 유일한 지적 존재는 허무하게 사라지겠죠. 하지만 지구가 망한다고 해도, 머나먼 외계 행성들에는 미약한 생태계가 있을 겁니다. 그런 생태계는 훨씬 복잡한 생태계로 발달할 수 있고, 이 우주에서 생명 현상은 끊이지 않을 겁니다.
인류 문명은 아직 외계 생명체를 발견하지 못했으나, 외계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미약한 외계 생태계는 존재할 겁니다. 그런 가능성은 아주 높을 겁니다. 심지어 우리는 유로파 위성에서 외계 생태계를 찾기 기대합니다. 그런 기대는 NASA가 그저 연구 비용을 타먹기 위한 홍보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로봇 시대는 여전히 멀었고, 어쩌면 로봇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로봇 공학이 풍성한 자연 생태계에 감히 도전할 수 있나요.
누군가는 제가 로봇 공학을 무시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로봇 공학을 무시하지 않아요. 자동화 기계들은 놀랍고 편리한 진보입니다. 기계 공학 덕분에 이렇게 저는 온라인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다른 글들을 검색할 수 있어요. 자동화 기계들 덕분에 인류 문명은 기술적인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이룩할 수 있을지 모르죠. 저는 기계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로봇 공학이 풍성한 자연계보다 근본적인 창조 행위라는 대사는 그저 웃기지 않은 농담에 불과하겠죠.
게다가 우리는 비단 로봇 공학과 자연 생태계만 아니라 로봇 공학과 생체 공학을 서로 비교할 수 있을 겁니다. 이 경우에서도 저는 생체 공학에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생체 공학이 자연 생태계에서 이어지는 연장선이기 때문이죠. 자연 생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 조작하고 응용할 수 있습니다. 소설 <베헤모스>에서 영국 해군 전력인 개조 괴수 크라켄은 오징어와 똑같이 생겼습니다. 이는 삽화가의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겠으나, 한편으로 생체 공학이 자연 생태계에서 이어지는 연장선이라는 사례가 될 수 있겠죠.
그것 때문에 소설 <베헤모스>에서 괴수 베헤모스와 괴벤 순양 전함이 격돌할 때, 영화 <퍼시픽 림>에서 나이프헤드와 집시 데인저가 맞붙을 때, 게임 <문명: 비욘드 어스>에서 제노 타이탄과 공중 부양 구축함이 마주칠 때, 저는 괴수 베헤모스와 나이프헤드와 제노 타이탄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나이프헤드는 집시 데인저에게 깨졌죠. 아, 망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