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생체 함선의 단점들과 로망 본문
[질척거리고 꿈틀거리는 생체 우주선 렉스. 솔직히 이건 별로 유쾌한 우주선이 아니죠.]
(내용 누설 덕분에) 이름을 밝히지 못할 어느 시간 여행 소설에는 화성인들이 등장합니다. 이 이름을 밝히지 못할 소설에 등장하는 화성인들은 좀 특이합니다. SF 소설 속에서 수많은 외계인들은 최첨단 기술 문명을 자랑합니다. 외계인들이 각종 최첨단 무기들로 인류를 공격하는 장면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상투적입니다. 고전적인 <우주 전쟁>부터 <엑스컴 2> 같은 비디오 게임까지 대부분 그렇죠. 하지만 이 특이한 화성인들은 최첨단 기계 문명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 화성인들은 분명히 최첨단 문명을 자랑하나, 기계 공학은 그 문명을 떠받치지 않아요. 대신 그들은 생물 공학을 이용하죠. 아예 기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대신 수많은 동물들을 이용합니다. 심지어 이 화성인들은 생체 우주선을 타고 다닙니다. 당연히 이 생체 우주선은 외계 생명체이고 꽤나 징그럽게 생겼습니다. 이 화성인들과 조우한 인간들은 생체 우주선에 탑승합니다. 물론 모두가 선뜻 우주선에 탑승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생체 우주선에 쉽게 탑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우주선에 탑승하고 싶다면, 그 생물의 몸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다른 생물의 몸 속으로 들어간다…. 솔직히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그 생물이 우리에게 무슨 영향을 끼칠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생물을 몸 속에 집어넣는 것도 싫어하고, 다른 생물의 몸 속에 들어가는 것도 싫어할 겁니다. 양쪽 모두 전혀 유쾌한 경험이 아니겠죠. 게다가 그 외계 생명체가 매우 징그럽게 생겼다면, 그 안에 들어가기가 더욱 꺼려질 겁니다. 화성인들은 태생적으로 생물 공학을 거부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그런 동물 속으로 들어가곤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현대 문명인은 다른 생명체의 몸 속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지 못할 겁니다. 보트나 비행기를 타는 것처럼 다른 동물의 몸 속을 쉽게 들락거리지 못하겠죠. 만약 그 생체 우주선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그 외계 생명체를 기낭처럼 이용할 수 있겠죠. 기구처럼 외계 생명체에 바구니를 매달고, 인간들은 그 바구니에 타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우주에 나가고 싶다면, 바구니 대신 우주선을 매달 수 있겠죠. 이런 생체 우주선을 사이보그로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기계와 생체를 결합한다면, 그나마 거부감이 좀 줄어들 겁니다.
말이 마차를 끌듯 외계 생명체는 우주선을 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외계 생명체를 이용해 우주를 누빌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는 징그러운 외계 생명체가 우주선을 끌고 다닌다는 사실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지 모르겠군요. 이런 소설을 볼 때마다, 저는 왜 사람들이 생체 우주선을 좋아하지 않는지 새삼 깨닫습니다. 예전에 말했던 것처럼 생체 우주선은 징그럽습니다. 생체 우주선을 멋지게 만들기는 좀 어려울 겁니다. 설사 창작가가 아무리 멋지게 생체 우주선을 만든다고 해도 '승무원들이 그 생명체의 뱃속으로 들어간다'는 이미지는 별로 멋지지 않을 겁니다.
물론 거부감을 줄이는 방법이 아예 없지 않습니다. 가령, 하늘을 날아다니는 부유 나무는 어떨까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무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과학적 상상력은 그런 식물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탑승객들은 그런 나무에 타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나무 안에 들어가는 것은 동물의 뱃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을 겁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나무에 구멍을 파거나 나무 집을 짓죠. 아니면 과학자들은 거대하고 멋진 부유 생명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고래나 그런 동물과 비슷하게 거대 부유 생명체를 만들 수 있겠죠. 그리고 그 부유 생명체에게 선체를 매단다면, 그럴 듯한 생체 함선이 탄생할 겁니다.
인간이 말에 안장을 매달았듯 과학자들은 저 거대한 부유 생명체에게 선체를 매달 수 있습니다. 승무원들은 그 선체 안으로 들어가고,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우주로 나갈 수 있어요. 기낭 역할을 맡은 부유 생명체가 징그럽게 생기지 않았다면, 승무원들도 심리적인 반발을 잠재울 수 있겠죠. 하지만 여전히 몇몇 문제는 남습니다. 만약 이 생체 함선이 단순한 민간 수송기나 여객기가 아니라 전투함이라면, 다른 함선들과 싸워야 할 겁니다. 그리고 싸우는 도중 부상을 입을지 모릅니다. 부유 생명체가 다친다면, 피를 흘리거나 엄청난 살점들을 흘리지 모릅니다. 어쩌면 내장들이 줄줄 샐지 모릅니다.
솔직히 이런 광경은 그리 유쾌하지 않을 겁니다. 부서지고 불타는 선박을 보고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죠. 하지만 이런 거대 생명체가 피에 물든 내장을 줄줄 흘리는 광경은…. 별로 보기 좋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고래가 멋지게 생겼다고 해도 그 고래가 내장을 줄줄 흘린다면, 사람들은 시선을 돌리고 싶어하겠죠. 따라서 부유 동물보다 부유 식물을 기낭으로 이용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부유 식물이 다친다면, 적어도 그 광경은 부유 동물이 다쳤을 때보다 나을 겁니다. 만약 창작가가 징그럽지 않은 생체 함선을 만들고 싶다면, 부유 식물이 해답일지 모르죠.
하지만 나무에 매달린 함선은 그리 멋지게 보이지 않을 겁니다. 흔히 사람들이 떠올리는 거대 생체 병기는 괴수에 가까운 생명체이지 커다란 나무가 아니죠. 샤이 훌루드나 고지라가 식물이라면, 사람들이 그런 괴수들에게 열광했을까요? 거대 생체 병기 역시 똑같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이용한 생체 함선은 로망을 충족시키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이런 여러 애로사항들을 고려한다면, 그냥 기계 우주선을 창작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인간들은 그냥 기계 함선을 타고 날아다녀야 합니다. 징그럽고 거추장스러운 생체 우주선 따위는 외계인들한테 넘겨야 합니다. 멋진 기계 우주선이 있음에도 왜 구태여 생체 우주선을 타야 할까요. 물론 좀 더 독특한 설정을 추구하는 작가는 생체 우주선에 매달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SF 독자들이 그런 독특함(을 빙자한 징그러움과 거추장스러움)을 환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