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조화 성향의 트리톤과 살아있는 순양함 본문
[이런 항공모함이 생체 함선이라고 해도, 이건 생태주의 사상과 별로 관계가 없을 겁니다.]
예전에 파이락시스가 게임 <문명: 비욘드 어스>를 공개했을 때, 여러 사람들은 조화 성향의 디자인이 뭔가 생체적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가령, 레딧 같은 사이트에서 유저들은 조화 성향의 순양함(트리톤)이 유기적이라거나 생체 함선 같다고 이야기했어요. 조화 순양함은 정말 그렇게 보입니다. 아마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겠으나, 저는 조화 순양함이 정말 생체 함선처럼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성향의 함선들, 가령, 순수 순양함이나 우월 순양함은 확실히 기계적인 느낌을 풍깁니다.
순수 순양함(디스트로이어)은 투박하고 무식하게 보이고, 우월 수양함(아비터)은 날렵하고 세련되게 보입니다. 디스트로이어는 화력과 내구력을 중시하고, 아비터는 전산 통신망과 각종 기능들을 추구하기 때문이겠죠. 디스트로이어나 아비터에 비해 트리톤은 곡선들을 많이 사용하고, 생체 조직들이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을 풍깁니다. 아니, 트리톤의 함선 디자인에서 아예 직선을 찾아볼 수 없어요. 조화 성향은 행성 생태계와 어울리자는 취지이고, 그래서 저런 곡선 디자인들을 최대한 활용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동물의 비늘 같은 육각형 무늬들이나 곡선 무늬들은 함선의 외형과 잘 어울리고요.
안토니 가우디가 구엘 공원 등을 설계할 때, 자연적인 것이 곡선이라고 말했을 겁니다.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라고 말하거나 '자연적인 것은 곡선미를 추구한다'고 말했을 겁니다. 그래서 가우디가 만든 건축물들은 꽤나 많은 곡선들을 자랑합니다. 비단 구엘 공원만 아니라 까사 바뜨요나 사그라다 빠밀리아 역시 마찬가지죠. 뭐, 저는 안토니 가우디나 건축학에 관해 별로 아는 바가 없고, 그래서 곡선적인 디자인에 관해 뭐라고 자세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게임 제작진은 조화 성향의 함선이 (외계 생태계의) 자연적인 느낌을 풍기기 원했고, 그래서 트리톤에 저렇게 많은 곡선들과 비늘 무늬들을 집어넣었겠죠.
사실 조화 성향은 다른 순수나 우월 성향에 비해 외계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특히, 아예 외계 동물들을 전투 병기로 삼았죠. 사육사가 온갖 야수들을 모으거나 기병들이 거대한 절지류를 타고 다니거나 행성 궤도에 부유 생명체가 떠다닙니다. 조화 성향의 첩자는 적국 도시에서 거대한 공성벌레들을 유인하고, 공성벌레들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조화 성향의 탐험가는 야생 동물들을 길들일 수 있고, 거대 말벌을 공격 헬기로 이용할 수 있죠.
행성 생태계와 조화를 이룬다고 해도 과연 저런 야생 전투 병기들을 사용할 명분이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행성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개념이 그만큼 평등한 사회 구조를 만든다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태계와 공존한다는 개념은 우리가 고통을 피하는 것처럼 다른 생명체들도 고통을 피할 거라는 사고 방식에 기반합니다. 생태적인 사고 방식은 고통을 받는 빈민들, 원주민들, 야생 동물들을 모두 주목해야 합니다. <문명: 비욘드 어스>에서 조화 성향이 정말 그렇게 생태적인 사고 방식을 유지하나요? 그들이 지배 계급과 투쟁하고 밑바닥 계급을 주목하나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외계 절지류를 전장으로 우르르 몰고 간다고 해도 그건 생태적인 사고 방식과 별로 상관이 없을 겁니다. 녹색당이 사드 반대를 외치는 것처럼 치열하게 전쟁을 반대하는 행위가 생태적인 철학이겠죠. 조화 성향은 녹색당처럼 보이지 않아요. 조화 성향의 전투 병기가 순수나 우월보다 약하다고 해도 조화 성향이 전쟁을 싫어하기 때문에 약한 것 같지 않습니다. 다른 비디오 게임에서 비슷한 역할을 맡은 가이아의 양녀들(시드 마이어의 알파 센타우리)이나 테라 살붐(판도라: 퍼스트 콘택트)은 정말 전쟁을 싫어하나, 조화 성향은, 음….
그런 생태 철학과 상관없이, 조화 성향은 생체 병기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그래서 게임 제작진은 트리톤을 비롯한 조화 전투 병기를 유기적으로 디자인했을 겁니다. 게다가 이런 전투 병기는 일반적인 질량 탄환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트리톤을 비롯한 각종 병기들은 산성 포탄을 사용합니다. 함선들은 포대에서 녹색 산이 가득한 통을 발사하죠. 통이 목표에 부딪히면, 통이 깨지고 산이 목표를 녹이는 것 같습니다. 아마 조화 성향이 유기체를 이용한다는 정체성 덕분에 게임 제작진은 산성 포탄을 설정했을지 모르겠군요.
확실히 절지류 군집이나 궤도 생명체나 유기적인 곡선의 함선이나 산성 포탄은 서로 잘 맞아떨어지는 설정이에요. 하지만 정말 트리톤 같은 조화 함선이 생체 함선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트리톤의 겉모습은 분명히 생체 함선과 비슷하나, 저는 게임 속에서 트리톤이 살아있다는 언급을 전혀 찾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트리톤이 정말 살아있기 때문에 그렇게 유기적으로 생겼을지 모르나, 게임 제작진 역시 자세하게 설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비욘드 어스>가 하드 SF 소설이었다면, 자세한 설정을 이야기했을지 모르죠. 저는 이런 비디오 게임을 접할 때마다 그런 부분이 아쉽더군요. (뭐, 게임에서는 상상 과학보다 전략이 우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