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생물학자가 <서브노티카>를 좋아할 수 있을까 본문
[게임 <서브노티카> 예고편의 한 장면. 생물학자가 이런 풍경을 좋아할까요.]
비디오 게임 <엘더 스크롤 V: 스카이림>은 광활한 대자연을 자랑합니다. 오픈 월드 게임의 명가로서 <스카이림>은 드넓은 초원과 울창한 숲과 높은 산맥과 깊은 바다를 선보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초원을 뛰어다니고, 숲 속을 돌아다니고, 험한 산을 오르고, 바닷속을 헤엄칠 수 있습니다. 깊은 동굴이 대자연에 속한다면, <스카이림>은 던전이라는 대자연 역시 자랑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여러 동굴들을 탐사하고, 환상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요.
숱한 게임 플레이어들은 <스카이림>이 자랑하는 자연 풍경에 감탄하고, 적막하고 광활한 야생을 즐깁니다. 눈이 내리는 극지에서, 바람이 휘몰아치는 산꼭대기에서, 침엽수들이 빽빽하게 서있는 숲 속에서, 외롭게 깃발을 벌럭이는 초원에서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질적인 적막에 잠기고 야생적인 명상에 잠길 수 있죠. <스카이림>이 처음 나왔을 때,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런 이질적이고 적막한 감성을 호평했고, 그런 호평은 아직 빛이 바래지 않았습니다. 제레미 소울이 지은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눈이 내리는 산꼭대기에서 화려한 오로라를 바라보는 그 기분은…. 게임 플레이어를 인간계에서 멀리 내보내는 듯합니다.
비단 <스카이림>만 아니라 오픈 월드 게임들은 이런 이질적이고 적막하고 광활한 감성을 선사하곤 합니다. <스카이림>은 전형적인 중세 유럽 판타지입니다. 이 게임은 엘프와 오크가 등장하고, 전사와 마법사가 싸우고, 드래곤이 불을 뿜고, 해골 병사들이 돌아다니는 중세 유럽 판타지죠. 하지만 스페이스 오페라 게임 역시 광활한 대자연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비록 악평을 받았으나, <노 맨즈 스카이>는 스페이스 오페라 게임이 어마어마한 대자연을 보여줄 수 있다고 호언한 사례입니다. <노 맨즈 스카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SF 오픈 월드 게임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브노티카>는 어떨까요. <플래닛 노매드>는? <플래닛 익스플로러스>는? <아스트로니어>는? <스카이림>처럼 이런 게임들은 드넓은 자연 풍경을 선보이고, 게임 플레이어는 탁 트인 대자연을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습니다. <스카이림>은 전형적인 북구 유럽을 보여줬으나, <서브노티카>나 <플래닛 익스플로러스>는 훨씬 다양한 외계 환경들을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은 북구 유럽 풍경을 좋아할 테고, 어떤 사람은 외계 산호초를 좋아할지 모르죠. 양쪽 모두 똑같이 대자연이고, 똑같이 야생적인 적막을 선사할 수 있어요.
소설 <풀의 죽음>에서 주인공은 야생을 홀로 떠도는 행위가 무섭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소설 주인공은 왜 사람들이 야생에서 명상하는 행위를 찬탄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어요. <풀의 죽음>이 끔찍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이기 때문에 소설 주인공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죠.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적막한 야생을 사랑합니다. <스카이림>이나 <서브노티카>에서 게임 플레이어들은 적막한 야생을 감상하고, 문명과 인간 세계를 빠져나온 느낌에 취합니다. 대자연을 자랑하는 오픈 월드 게임들은 이런 감성을 선사할 수 있겠죠.
<스카이림>이나 <서브노티카>를 기술적 자연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카이림>은 던전 탐험 게임이고, <서브노티카>는 생존 및 건설 게임입니다. 그래서 두 게임은 본질적인 기술적 자연이 되지 못할 겁니다. 본질적인 기술적 자연은 <쉘터 2> 같은 게임이겠죠. 하지만 <스카이림>이나 <서브노티카> 역시 어느 정도 야생적인 적막을 전달할 수 있고, 게임 플레이어를 인간 문명에서 훌쩍 끄집어낼 수 있겠죠. 울창한 침엽수림이나 화려한 외계 산호초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문명 세계를 잠시 잊을 수 있겠죠.
이런 게임들을 볼 때마다, 저는 머릿속에서 제프 밴더미어가 쓴 <소멸의 땅>을 떠올립니다. <소멸의 땅>에서 주인공 생물학자는 야생적인 적막을 사랑했습니다. 주인공 생물학자는 인간 문명을 떠나기 원했고, 요란하고 산만하지 않은 장소를 찾기 원했습니다. 종종 생물학자는 어두운 뒷골목을 찾았고 적막을 즐겼어요. 하지만 도시는 북적거렸고 시끄러웠고, 생물학자는 좀 더 광대한 적막을 찾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생물학자는 야생 동물들을 연구한다고 핑계를 댔고, 인적이 드문 야생을 돌아다녔죠.
게다가 X 구역에 들어갔을 때, 생물학자는 마음이 편안하다고 느꼈습니다. 문명 세계는 이 기이한 구역을 침범하지 못했습니다. X 구역은 문명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X 구역에는 오직 울창한 숲과 넓은 초원과 깊은 바다와 이상한 야생 동물들만 존재했습니다. 생물학자는 그것들을 사랑했고, X 구역과 하나가 되고 싶어합니다. <소멸의 땅>은 야생의 고요하고 광활한 적막이 무엇인지 깊게 파고드는 소설입니다. 만약 생물학자가 <서브노티카> 같은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한다면, 재미있다고 느낄까요. 생물학자는 <서브노티카> 같은 기술적 자연이 풍기는 광대한 적막을 즐길 수 있을까요. 어쩌면 생물학자는 기술적 자연이 아니라 진짜 자연을 좋아할지 모르죠. 저는 그런 점이 궁금하더군요.
생물학자는 <서브노티카> 같은 게임을 좋아할지 모릅니다. 혹은 생물학자는 이런 오픈 월드 게임이 그저 화려한 그래픽에 불과하다고 비판할지 모릅니다. 아무리 오픈 월드 게임이 장대한 생태계를 자랑한다고 해도, 그것은 진짜가 아니죠. 그래서 생물학자는 주저하지 않고 X 구역으로 들어갔겠죠. 생물학자는 운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에는 X 구역이 없기 때문이죠. X 구역이 없기 때문에 자연 생태계를 감상하고 싶다면, 우리는 직접 자연 환경을 보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