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와 괴수들 본문
[원대한 생물 다양성은 거대 괴수라는 상상력으로 아주 쉽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신화들과 전설들, 민담들은 다양한 괴수들을 선보입니다. 동쪽부터 서쪽까지, 북쪽부터 남쪽까지, 여러 문명들은 다양한 괴수들을 상상했습니다. 어떤 것은 거대하고, 어떤 것은 작습니다. 어떤 것은 온순하고, 어떤 것은 포악합니다. 어떤 것은 땅을 걷고, 어떤 것은 하늘을 날고, 어떤 것은 바다를 헤엄칩니다. (괴수가 선보이는 진정한 로망은 바다 괴수일 겁니다.) 왜 옛날 사람들이 이렇게 다양한 괴수들을 상상했을까요? 밥 먹고 할 짓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 그런 이유가 아예 없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자연 생태계를 바라보는 관점이었을지 모르고,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게 호기심을 품었기 때문이었을지 모릅니다. 생태학 서적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에서 캐스파 헨더슨은 인류가 동물들을 비롯한 다른 존재에게 계속 흥미를 느낀다고 이야기합니다.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은 어떻게 여러 동물들이 살아가고 어떻게 인류 문명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캐스파 헨더슨은 인류가 상상한 희한한 동물들과 자연 생태계를 향한 호기심과 흥미, 동경을 환상적으로 풀어놓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다른 동물들에게 호기심을 품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동물 서열 싸움을 즐길 테고, 어떤 사람은 생물 다양성을 좋아할 테고, 어떤 사람은 장대한 경관을 즐길 겁니다. 어떤 사람은 열대 밀림을 연구할 테고, 어떤 사람은 산호초 숲을 관찰하겠죠. 자연 생태계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 역시 많을 겁니다. 아니, 현대 문명에는 워낙 신기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자연 생태계보다 첨단 장비들을 좋아할 겁니다. 커다란 극장 화면이 신기하고 요란한 시각 효과를 보여준다면, 많은 사람들은 자연 생태계보다 그런 것을 주목하겠죠.
그렇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들을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이 있을 겁니다. 그런 호기심은 여러 괴수들을 지어냈을지 모릅니다. 이런 상상력은 각종 환상 소설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SF 소설들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사실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은 몇몇 SF 창작물을 언급합니다.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제목 역시 뭔가 사이언스 픽션 같군요.) 곰치를 설명할 때, 캐스파 헨더슨은 <에일리언>에 등장하는 제노모프와 곰치를 서로 비교합니다. H.R.기거는 곰치를 참고하지 않았으나, 곰치의 2중턱을 본 사람은 제노모프를 떠올릴지 모릅니다. SF 작가들이 기괴한 동물을 상상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이미 기괴한 동물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동물들은 SF 작가들에게 영감을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SF 작가들은 그런 영감을 응용하고 SF 소설을 쓰겠죠. 캐스파 헨더슨은 리처드 제프리스를 인용합니다. 헨더슨은 19세기에 챌린저 탐사선이 심해 생물들을 끌어올렸을 때 리처드 제프리스가 커다란 충격을 받았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리처드 제프리스는 바다 깊은 곳에서 사는 생물들이 너무 색다르고 기이하고 불가해하다고 느꼈습니다. 일그러진 물고기들, 유령 같은 오징어 종류, 뱀장어처럼 생긴 섬뜩한 형태들, 껍데기로 뒤덮인 기어다니는 동물들, 지네처럼 생긴 존재들, 괴물 같은 형태들. 리처드 제프리스는 그것들을 보는 순간 뇌에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적었어요.
자연 생태계는 인간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기괴한 것들을 심해에 숨겼습니다. 그래서 캐스파 헨더슨은 리처드 제프리스가 <런던 이후>를 썼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런던 이후>는 19세기 유럽의 가장 대표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들 중 하나입니다. 대격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사라지고, 도시는 물에 잠깁니다. 습지와 숲은 도시를 뒤덮고, 도시는 야생으로 돌아갑니다. <런던 이후>는 '도시가 물에 잠기고 야생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대표할 수 있는 SF 소설일 겁니다. <런던 이후>는 <물에 잠긴 세계>나 <드라운드 어스> 같은 소설과 게임의 큰 형님뻘이죠.
캐스파 헨더슨은 언급하지 않았으나, 정말 SF 창작가들은 야생 동물을 참고합니다. 고지라 같은 괴수를 설정할 때, 창작가들은 여러 야생 동물들을 살피고, 그들의 모습과 생태를 고지라에 대입합니다. <프래그먼트> 같은 소설은 자연 생태계를 비틀고 응용한 결과물입니다. 갯가재가 너무 유명하고 희한한 동물이기 때문에 <프래그먼트>는 갯가재를 신나게 뻥튀기했죠. <고지라>나 <프래그먼트>가 너무 가볍고 얄팍한 사례라면, <블라인드 사이트> 같은 소설은 훨씬 묵직한 사례일 겁니다. 피터 와츠는 놀라운 하드 SF 소설을 썼습니다. 하지만 피터 와츠 같은 하드 SF 작가조차 쉽게 외계 생명체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피터 와츠는 <블라인드 사이트>에 나오는 외계 생명체가 너무 지구 해양 동물을 닮았다고 후회했죠. 아무리 하드 SF 작가들이 머리를 굴린다고 해도, 지구 태생이라는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례들이 자연 생태계와 호기심과 상상력이 무슨 관계를 맺었는지 증명한다는 사실입니다. 피터 와츠가 해양 동물 같은 외계 생명체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인간이 다른 존재를 이용해 자신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일 겁니다. 그래서 생물 다양성은 신비로울 겁니다. 이런 이야기들 이외에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은 각종 동물들을 늘어놓고, SF 같은 감성을 펼칩니다. 이 생태학 서적은 SF 소설이 아니나, 분명히 뭔가 비슷한 감성을 공유합니다. <창백한 푸른 점> 같은 천문학 서적이 SF 소설이 아님에도, SF 소설과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는 것처럼. 생물 다양성은 감동적인 SF 창작물로 이어질 수 있는 보고이자 원천일 겁니다.
하지만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은 그런 생물 다양성이 급격하게 줄어든다고 한탄합니다. 생물 다양성은 환상 소설들에게 영감을 제공하고, 그 자체로서 이미 신비롭습니다. 하지만 비단 작은 생명체들만 아니라 거대한 동물들조차 멸종 위기에 처했죠.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은 그런 비극들을 꾸준히 언급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왜 생물 다양성이 줄어드는지 언급하지 않아요. 그건 이 책이 드러내는 가장 큰 단점인 것 같습니다. 생물 다양성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비판해야 할 겁니다. 자본가 계급이 축적을 위해 축적하기 때문에 생물 다양성은 줄어듭니다. 그걸 막고 싶다면, 우리는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함께 자연 생태계를 조성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