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사우리아>, <스페이스포트>, 현실보다 다른 세계 본문
[현실보다 다른 세계에서 스테고사우루스와 조우하기는 가능합니다.]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얄미운 사람. 슬픈 음악처럼, 이 마음 울려 놓고 저 멀리 떠나간 사람. 미련만 남겨 놓고 돌아가느냐. 얄미운 사람. 미련 때문인가. 멍들은 이 내 가슴. 아픔만 주고 간 사람. 정 주고 마음 주고 사랑도 줬지만, 지금은 남이 되어 떠나가느냐. 이별의 아픔일랑 가져가다오. 아~, 얄미운 사람~♬" 이 노래는 사랑을 언급합니다. 비단 이 감성만 아니라 이별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아…, 이 노래는 이별을 언급합니다. 양쪽은 대립적인 관계입니다. 만약 사랑과 이별이 비슷하다면, 이 노래는 얄미운 사람을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 이별보다 사랑과 만남은 가까운 관계입니다.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이별의 아픔일랑 가져가 다오." 이 노래처럼, 사랑과 이별은 대립적인 관계입니다. 비단 사랑만 아니라 만남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만남과 이별은 대립적인 관계입니다. 이 관계로서, 이별보다 사랑과 만남은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만약 썸녀와 썸남이 만나지 못한다면, 이건 이별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만약 두 연인이 이별한다면, 이건 슬플 겁니다. 썸녀와 썸남은 서로를 만나기 원할 겁니다. 만약 두 연인이 만나지 못한다면, 아…, 서로를 사랑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썸녀와 썸남은 서로를 만나기 원할 겁니다. 사랑은 만남입니다.
김지애 가수는 사랑이 (이별보다) 만남이라고 동의할 겁니다. 비단 이 가수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 역시 동의할 겁니다. 그들은 (이별보다) 사랑과 만남이 비슷한 위상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아무리 양쪽이 가까운 관계가 된다고 해도, 어떤 고생물학 덕후들은 스테고사우루스를 사랑합니다. 적어도, 그들은 이 골판 공룡을 좋아합니다. 사랑이 (이별보다) 만남이기 때문에, (이별보다) 사랑과 만남이 비슷한 위상이기 때문에, 어떤 고생물학 덕후들이 스테고사우루스를 사랑하기(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 골판 공룡과 만나기 원할 겁니다. 애석하게도, 아…, 현실에서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스테고사우루스는 중생대(쥐라기)에 속합니다. 이 시대는 사라졌습니다. 중생대(쥐라기)가 사라진 것처럼, 스테고사우루스는 사라졌습니다. 이 골판 공룡이 사라진 이후, 인류는 나타났습니다. 21세기 초반, 더 이상, 스테고사우루스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과 이 골판 공룡은 똑같은 시대에 속하지 않습니다. 고생물학 덕후들은 인간들입니다. 인간과 스테고사우루스가 똑같은 시대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어떤 고생물학 덕후들이 스테고사우루스를 사랑한다고(좋아한다고) 해도, 이 골판 공룡과 만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아…, 21세기 초반, 고생물학 덕후들에게 사랑은 만남이 아닙니다.
이 덕후들에게 사랑은 만남보다 이별입니다. 쥐라기에서 스테고사우루스가 번성했기 때문에, 만약 어떤 고생물학 덕후들이 이 골판 공룡을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사랑은 만남보다 이별일 겁니다. 지질학적인 격차, 이 장대한 격차는 사랑을 이별로 바꿉니다. 만약 인간과 스테고사우루스가 똑같은 시대에 속한다면, 이건 현실이 아닐 겁니다. 만약 인간과 스테고사우루스가 만난다면, 이건 '다른 세계'일 겁니다. 스테고사우루스와 만나기 위해 인간에게는 다른 세계가 필요합니다. 이 세계 없이, 이 골판 공룡을 만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스테고사우루스와 달리, 인간과 재규어는 똑같은 시대에 속합니다.
이 관점에서 재규어와 스테고사우루스는 비슷하지 않습니다. 지질학적인 격차, 이 장대한 격차는 양쪽이 비슷하지 않다고 떨어뜨립니다. 현실에서 인간은 재규어와 조우합니다. 이 판테라 동물과 조우하기 위해 인간에게는 다른 세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세계 없이, 아즈텍 문명에서 재규어 전사들은 이 판테라 동물을 모방합니다. 재규어와 달리, 다른 세계 없이, 인간은 스테고사우루스와 만나지 못합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스테고사우루스는 다른 세계로 연결됩니다. 적어도, 재규어보다 이 골판 공룡에게는 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판테라보다 스테고사우루스와 다른 세계는 연결됩니다.
재규어보다 스테고사우루스에게는 다른 세계로 연결되기 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이 판테라 동물보다) 이 골판 공룡에게는 스페이스 오페라로 연결되기 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랄라~, 이유가 무엇인가요? 어떻게 (재규어보다) 스테고사우루스가 스페이스 오페라로 연결되나요? <유어 스페이스포트!>는 비디오 게임입니다. 이 비디오 게임은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게임 플레이어는 우주 항구를 관리합니다. 이건 우주 문명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이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주 항구에게는 아무 가치가 없을 겁니다. 현실에서 우주 문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21세기 초반, 인류 문명은 국제 우주 정거장을 건설했습니다. <유어 스페이스포트!>와 달리, 이건 우주 문명이 존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인류 문명이 국제 우주 정거장을 건설했다고 해도, 아직, 지구에서 아무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21세기 초반, 인류 문명은 우주 문명이 아닙니다. 현실과 달리, <유어 스페이스포트!>에서 우주 문명은 존재합니다. 적어도, 게임 플레이어는 우주 항구를 관리합니다. 국제 우주 정거장보다 이건 훨씬 대규모 구조물, 훨씬 놀라운 구조물입니다. 양쪽이 비슷하지 않은 것처럼, 현실과 <스페이스포트>는 비슷하지 않습니다. 양쪽이 다르기 때문에, <스페이스포트>는 '다른 세계'가 됩니다.
[현실과 <유어 스페이스포트!>가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이건 '다른 세계'가 됩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스페이스포트>는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일반적으로, 이건 사이언스 픽션(SF)에 속합니다. 적어도, 이건 사이언스 판타지에 속합니다. <스페이스포트>가 스페이스 오페라이기 때문에, 이 비디오 게임은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적어도, 이 게임은 사이언스 판타지입니다. 아무리 <스페이스포트>가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해도, 어떤 SF 독자들은 이 비디오 게임에게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 겁니다. 문자 그대로, SF 독자들은 '독자'들입니다. 독자들로서, 그들은 비디오 게임보다 (진지한) 소설에게 커다란 가치를 부여합니다. <스페이스포트>와 달리, 어떤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훨씬 진지한 소설들입니다. <스페이스포트>보다 이 소설들은 문학에 속할 수 있습니다.
만약 비디오 게임보다 진지한 소설(문학)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면, <스페이스포트>는 커다란 가치를 얻지 않을 겁니다. 비록 이 비디오 게임이 진지한 소설이 아니라고 해도, 현실에서 대규모 우주 항구를 건설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비록 <스페이스포트>가 커다란 가치를 얻지 않는다고 해도, 21세기 초반, 인류 문명은 우주 문명이 아닙니다. <스페이스포트>에서 게임 플레이어가 우주 항구를 관리하는 것처럼, 이 비디오 게임은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진지한) 소설들이 스페이스 오페라들이라면, <스페이스포트>처럼, 이 소설들은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을 겁니다. (진지한) 소설과 상관없이, 비디오 게임과 상관없이, 필연적으로,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른 세계입니다.
비록 어떤 SF 독자들이 비디오 게임보다 진지한 소설에게 커다란 가치를 부여한다고 해도, 그들은 <스페이스포트>가 다른 세계가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을 겁니다. 이 비디오 게임이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는 것처럼, 스페이스 오페라에게 다른 세계는 본질적인 특성이 됩니다. 이 특성 때문에, (재규어보다) 스테고사우루스는 <스페이스포트>로 연결됩니다.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이별의 아픔일랑 가져가다오." 이 노래처럼, 사랑과 이별은 대립적인 관계입니다. 이별보다 사랑과 만남은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아무리 양쪽이 비슷하다고 해도, 아무리 어떤 고생물학 덕후들이 스테고사우루스를 사랑한다고(좋아한다고) 해도, 아아…, 그들은 이 골판 공룡과 만나지 못합니다.
만약 고생물학 덕후가 스테고사우루스와 만난다면, 이건 현실보다 다른 세계일 겁니다. 현실보다 다른 세계에서 고생물학 덕후는 스테고사우루스와 만납니다. (이 골판 공룡과 달리, 다른 세계 없이, 재규어와 조우하기는 가능합니다.) 스테고사우루스와 만나기 위해 고생물학 덕후에게는 다른 세계가 필요합니다. (이 골판 공룡과 달리, 현실에서 재규어 전사들에게는 다른 세계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관점에서 (재규어보다) 스테고사우루스에게는 다른 세계로 연결되기 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가능성은 이 골판 공룡과 <스페이스포트>를 연결합니다. 이 비디오 게임이 다른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는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적어도, 이 세계는 사이언스 판타지입니다.
스테고사우루스와 <스페이스포트>가 연결되기 때문에, 이 비디오 게임이 사이언스 픽션이기 때문에, 이 골판 공룡에게는 이 픽션으로 연결되기 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른 세계로서, 사이언스 픽션에서, 인간은 스테고사우루스와 조우합니다. <사우리아>는 보드 게임입니다. 이 게임에서 주된 배경은 공룡 사파리입니다. 아마도 <사우리아>는 이 사파리가 사이언스 픽션, 테크노 스릴러라고 의도하는지 모릅니다. 비록 게임 제작자들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 사파리가 사이언스 픽션, 테크노 스릴러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사우리아>는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습니다. <스페이스포트>가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는 것처럼.
만약 <사우리아>가 오직 현실만 모방한다면, 공룡 사파리를 상상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이 보드 게임이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공원 레인저는 스테고사우루스와 조우합니다. <사우리아>는 이 골판 공룡이 사이언스 픽션으로 연결된다고 증명합니다. 적어도, 이 보드 게임은 스테고사우루스가 다른 세계로 연결된다고 증명합니다. (이 골판 공룡과 달리, 재규어는 다른 세계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이 판테라 동물을 모방하기 위해 아즈텍 전사들에게는 다른 세계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사우리아>처럼, 다른 사례들은 비슷합니다. 머나먼 탐험부터 시간 여행까지, 이 사례들은 스테고사우루스에게 사이언스 픽션으로 연결되기 위한 가능성이 있다고 증명합니다.
적어도, 머나먼 탐험부터 시간 여행까지, 이 사례들은 스테고사우루스에게 다른 세계로 연결되기 위한 가능성이 있다고 증명합니다. <사우리아>처럼, 시간 여행처럼, 스테고사우루스와 재규어는 비슷하지 않습니다. 이 판테라 동물보다 이 골판 공룡과 사이언스 픽션은 가까운 관계가 됩니다. 적어도, 재규어보다 스테고사우루스와 다른 세계는 가까운 관계가 됩니다. 이건 양쪽이 100% 필연적인 관계라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어떤 고생물학 덕후들이 스테고사우루스를 좋아한다면, 필연적으로, 그들이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하나요? 스테고사우루스를 좋아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고생물학 덕후들이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아무리 어떤 고생물학 덕후들이 스테고사우루스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들은 사이언스 픽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스페이스포트>가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해도, 이 덕후들에게 이 비디오 게임은 흥미롭지 않은지 모릅니다. 아무리 <사우리아>가 테크노 스릴러라고 해도, 적어도, 아무리 <사우리아>가 다른 세계라고 해도, 이 덕후들에게 이 보드 게임은 테크노 스릴러보다 공룡 게임이 되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어떤 고생물학 덕후들이 <사우리아>가 흥미로운 게임이라고 느낀다고 해도, 사이언스 픽션보다 공룡 게임으로서, 이 덕후들은 이 게임에게 관심을 기울이는지 모릅니다. 다른 세계와 공룡은 100% 관계가 아닙니다.
[스테고사우루스와 <유어 스페이스포트!>는 100% 필연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비록 스테고사우루스와 사이언스 픽션이 100% 필연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해도, 분명히, 현실에서 고생물학 덕후는 이 골판 공룡과 만나지 못합니다. 현실과 달리, 사이언스 픽션으로서, <사우리아>에서 공원 레인저는 스테고사우루스와 조우합니다. 적어도, 다른 세계로서, <사우리아>에서 공원 레인저는 스테고사우루스와 조우합니다. 비록 고생물학 덕후가 사이언스 픽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해도, 비록 이 덕후에게 <사우리아>가 사이언스 픽션(다른 세계)보다 공룡 게임이 된다고 해도, 분명히, 인간과 스테고사우루스는 똑같은 시대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건 지질학적인 격차, 장대한 격차입니다.
이 격차 때문에, 스테고사우루스에게는 다른 세계로 연결되기 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우리아>가 사이언스 픽션이기 때문에, 적어도, 이 보드 게임이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현실보다) 이 세계에서 공원 레인저는 스테고사우루스와 조우합니다. 인간과 공룡이 조우하는 것처럼, (현실보다) 다른 세계에서 대규모 우주 항구를 건설하기는 가능합니다. 이 세계에서 인류 문명은 우주 문명이 됩니다. 이 관점에서 <사우리아>와 <스페이스포트>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공원 레인저가 스테고사우루스와 조우하는 것처럼, 인류 문명이 우주 문명이 되는 것처럼, 다른 세계는 양쪽이 비슷한 위상이 된다고 묶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로서, <스페이스포트>에게 다른 세계는 본질적인 특성이 됩니다. 이 비디오 게임처럼, (비록 <사우리아>가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고 해도) 다른 세계 없이, 스테고사우루스와 조우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사우리아>에게 다른 세계는 본질적인 특성이 됩니다. 고생물학 덕후에게 이 특성은 애석한 특성입니다. 현실이 절대적인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김지애 가수는 다른 세계에 속하지 않습니다. 진짜 인간으로서, 이 가수는 오직 현실에만 속합니다. 비단 김지애 가수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인간들 역시 똑같습니다. 이 사람들은 오직 현실에만 속합니다.
만약 게임 제작자들이 출시하지 않는다면, <스페이스포트>는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게임 제작자들이 출시하기 때문에, <스페이스포트>는 존재합니다. 이 비디오 게임은 다른 세계입니다. 아무리 <스페이스포트>가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세계에서 게임 제작자들은 살아가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그들은 <스페이스포트>를 출시합니다. 아무리 <스페이스포트>가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해도, 심지어 게임 제작자들조차 오직 현실에만 속합니다. <사우리아>는 똑같습니다. 아무리 이 게임이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는다고 해도, 심지어 게임 제작자들조차 다른 세계에 속하지 않습니다.
김지애 가수는 오직 현실에만 속합니다. 이 가수처럼, 아무리 <스페이스포트>가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해도, 아무리 <사우리아>가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는다고 해도, 심지어 게임 제작자들조차 다른 세계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현실은 절대적인 세계입니다. 이 세계에서 아무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김지애 가수처럼, 게임 제작자들처럼, 고생물학 덕후는 오직 현실에만 속합니다. 스테고사우루스와 조우하기 위해 인간에게 다른 세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고생물학 덕후가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세계는 애석한 특성이 됩니다. 사랑은 만남보다 이별이 됩니다.
<스페이스포트>가 다른 세계인 것처럼, <사우리아>는 다른 세계입니다. 고생물학 덕후에게 이건 사랑이 만남보다 이별이라는 뜻입니다. 썸녀와 썸남이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다른 세계는 애석한 특성, 슬픈 특성입니다. <사우리아>처럼, 만약 공룡 사파리가 가능하다면, 고생물학 덕후는 이 사파리를 환영할 겁니다. 아니, 아니, 잠깐. 고생물학 덕후가 공룡 사파리를 환영할 수 있나요? 이게 가능한가요? 흐음, 글쎄요.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비록 재규어와 스테고사우루스가 비슷하지 않다고 해도, 전자가 야생 동물인 것처럼, 후자는 똑같습니다. 이 공룡은 야생 동물입니다.
야생 동물로서, 재규어는 커다란 위기에 빠집니다. 환경 운동들은 이 판테라 동물이 고향을 잃는다고 주장합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재규어가 고향을 잃어버리나요? 울창한 열대 밀림에서 이 판테라 동물은 살아갑니다. 재규어에게 이 환경은 중요한 서식지입니다. 아무리 열대 밀림에서 이 판테라 동물이 살아간다고 해도, 21세기 초반, 세계화 자본주의는 지배적인 경제입니다. 이 경제는 돈, 돈, 돈, 돈, 돈, 돈벌이에게 집착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에게 자연 생태계보다 많은 돈들은 훨씬 중요한 목적입니다. 이 목적 때문에, 세계화 자본주의는 야생 서식지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야생 서식지로서, 열대 밀림은 많은 돈들을 벌지 않습니다. 이 환경과 달리, 대규모 산업으로서, 플랜테이션 농장은 많은 돈들을 법니다. 적어도, 야생 서식지로서, 대규모 산업으로서, 열대 밀림보다 플랜테이션 농장은 많은 돈들을 법니다. 이 돈들 때문에, 세계화 자본주의는 열대 밀림들보다 플랜테이션 농장들이 증가하기 원합니다. 인류 문명이 이 경제에게 종속되기 때문에, 플랜테이션 농장들은 열대 밀림들을 몰아냅니다. 이 환경이 감소하기 때문에, 재규어는 고향을 잃습니다. 비단 이 판테라 동물만 아니라 다른 많은 야생 동물들 역시 비슷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는 야생을 위협합니다.
[아마도 <사우리아>, '다른 세계'가 애석한 특성이 아닌… 가요?]
세계화 자본주의가 야생 서식지들을 위협하는 것처럼, 이 경제는 지구 가열화입니다. 훨씬 많은 돈들을 벌기 위해 대규모 산업들은 너무 많은 상품들을 제조하고, 유통하고, 판매합니다. 이 과정처럼, 세계화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한 경제가 아닙니다. 대규모 산업들이 너무 많은 상품들을 제조하고, 유통하고, 판매하는 동안, 이 과정은 너무 많은 온실 가스들을 배출합니다. 지구 대기 중에서 이 가스들이 증가하기 때문에, 이 행성 온도는 상승합니다. 이 온도가 상승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기후들은 발생합니다. 이 기후들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합니다. 이 재앙은 지구 가열화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는 기후 변화입니다. 이 행성급 재앙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야생 동물들은 커다란 위기에 빠집니다. 비단 동물들만 아니라 식물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환경 운동들은 대규모 멸종이 다가온다고 걱정합니다. 아…, 이 위기에서 스테고사우루스는 자유롭지 않을 겁니다. <사우리아>처럼, 아무리 현실에서 스테고사우루스가 존재한다고 해도, 세계화 자본주의가 야생 서식지들을 위협하기 때문에, 기후 변화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이 골판 공룡은 안전하지 않을 겁니다. 재규어처럼, 야생 동물로서, 스테고사우루스는 커다란 위기에 빠질 겁니다.
<사우리아>가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아마도 이건 애석한 특성이 아닌지 모릅니다. 현실에서 스테고사우루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재규어와 달리, 세계화 자본주의는 이 골판 공룡을 위협하지 못합니다. 현실보다 다른 세계에서 공원 레인저가 스테고사우루스와 조우하기 때문에, 지구 가열화는 이 공룡을 파괴하지 못합니다. 비록 고생물학 덕후가 스테고사우루스를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비록 사랑이 만남보다 이별이 된다고 해도, 세계화 자본주의는 이 공룡을 죽이지 못합니다. 고생물학 덕후는 '세계화 자본주의가 스테고사우루스를 죽이지 못한다'고 안심할 수 있습니다.
고생물학 덕후와 달리, 만약 어떤 생태학 덕후들이 재규어를 좋아한다면, '세계화 자본주의가 이 판테라 동물을 죽이지 못한다'고 안심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환경 운동들처럼, 아아…, 이 덕후들은 세계화 자본주의가 재규어를 위협한다고 걱정할 겁니다. 이 파괴적인 경제가 이 판테라 동물을 위협하는 것처럼, 다른 세계로서, <사우리아>는 안전한 세계입니다. <사우리아>가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기 때문에, 이 보드 게임은 안전한 세계가 됩니다. 아니, 아니, 잠깐. 현실과 달리, <사우리아>에서 세계화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가 아닌가요? 게임 제작자들이 의도했나요?
게임 제작자들이 '<사우리아>에서 세계화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가 아니다'라고 의도했나요? 만약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다면, <사우리아>에서 세계화 자본주의는 지배적인 경제일 겁니다. 이 경제가 지구 가열화이기 때문에, 이 행성급 재앙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스테고사우루스는 안전하지 않을 겁니다. 이 골판 공룡이 커다란 위기에 빠지는 것처럼, 만약 세계화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라면, 아무리 <사우리아>가 다른 세계라고 해도, 이 보드 게임은 안전한 세계가 아닐 겁니다.
※ Sauria - Jurassic Park + Nemesis?! Playthrough with Stella & Tarrant (The Dice Tower),
http://www.youtube.com/watch?v=ahow1luTYFQ
※ 게임 <Your Spaceport!> 스크린샷 출처:
https://store.steampowered.com/app/2418780/Your_Space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