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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빛의 세계>와 우주선 속의 인공 생태계 본문

SF & 판타지/머나먼 생태계

<빛의 세계>와 우주선 속의 인공 생태계

OneTiger 2019. 4. 15. 19:12

※ 이 게시글에는 제프 밴더미어가 쓴 소설 <빛의 세계>의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SF 세상에서 이런 식물 재배 구역이나 바이오 돔이나 인공 생태계는 드물지 않아요. X 구역은 어떨까요?]



전작 <소멸의 땅>과 <경계 기관>처럼, 소설 <빛의 세계>는 X 구역을 보여줍니다. 소설 <빛의 세계>는 어떻게 해안 지역이 기이한 자연 생태계로 바뀌는지 이야기합니다. 등대가 있는 해안 지역은 '정상적인' 생태계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은 기이한 징조들을 목격하고, 해안 지역은 기이한 자연 생태계로 바뀌고, 여기는 X 구역이 됩니다. 원인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소멸의 땅>과 <경계 기관>과 <빛의 세계>는 확실한 것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원인들은 다양하나, 사람들은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추측할 뿐입니다. 사실 제프 밴더미어 역시 정답을 알지 못할 겁니다.


이런 뉴 위어드 픽션에서 정답은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분위기일 겁니다. <빛의 세계>는 끊임없이 속삭이고 노래하고 떠들고 외치고 울고 웁니다. <빛의 세계>는 끊임없이 기이한 자연 생태계를 묘사합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는 X 구역으로 들어가고, 기이한 자연 생태계는 독자를 둘러쌉니다. 사방에서 나뭇잎들은 사각거리고, 벌레들은 연주하고, 토끼들은 팔딱거리고, 강물은 출렁이고, 올빼미는 소리 없이 날갯짓합니다. 물 속에서 보이지 않는 수중 파충류들은 독자를 노려봅니다. 어쩌면 거대한 상어들 역시 있을지 모릅니다.



소설 <빛의 세계>는 기이한 생물 다양성을 이용해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독자를 자극합니다. 이 소설은 거대 괴수나 다른 괴수들을 묘사하나, 그것들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빛의 세계>에는 괴수들이 있으나, 괴수들은 주연들이 아닙니다. 주연은 자연 생태계입니다. 거대하고 살아있는 상호 작용은 괴수들을 둘러쌌습니다. 괴수들은 거대하고 살아있는 상호 작용의 일부입니다. 괴수들은 절대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씨줄이 거대한 그물망의 일부인 것처럼, 괴수들은 살아있는 상호 작용의 일부입니다. <빛의 세계>는 괴수 하나를 독립적으로 강조하지 않습니다.


물 속에서 거대한 수중 파충류가 독자를 노려본다고 해도, 수중 파충류는 훨씬 거대한 그물망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빛의 세계>는 수중 파충류를 직접 제시하지 않습니다. <빛의 세계>는 그저 물 속에서 거대한 수중 파충류가 노려본다고 암시하거나 슬쩍 언급할 뿐입니다. 독자는 수중 파충류보다 수중 파충류를 둘러싼 살아있는 상호 작용, 자연 환경을 느낍니다. 만약 <빛의 세계>가 본격적인 괴수물이었다면, <빛의 세계>는 자연 생태계고 나발이고 거대한 바다 악어를 냅다 보여줬을 겁니다. 본격적인 괴수물에서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그물망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나운 괴수입니다.



반면, <빛의 세계>는 바다 괴수를 냅다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빛의 세계>는 바다 괴수를 감질나게 아낍니다. 아니, 이 소설은 바다 괴수를 아끼지 않습니다. 바다 괴수가 원대한 그물망의 일부이기 때문에, <빛의 세계>는 씨줄보다 그물망을 제시합니다. 만약 독자가 본격적인 괴수물을 원한다면, <빛의 세계>는 실망스러울 겁니다. 심지어 거대 바다 괴수가 본격적으로 몸을 드러냈을 때조차, 거대 바다 괴수는 진부한 공식들을 피합니다. 거대 바다 괴수는 사람들을 잡아먹거나 도시를 파괴하거나 불을 뿜지 않습니다. 레비아탄은 그저 사람들과 무언으로 소통하고 다시 바다로 돌아갑니다.


만약 비싼 블록버스터 영화가 이런 줄거리를 늘어놓는다면, 관객들은 크게 실망할지 모릅니다. 폭력 없는 거대 괴수는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거대 괴수는 무조건 사람들을 잡아먹고, 도시를 파괴하고, 불을 뿜어야 합니다. <빛의 세계>가 거대 바다 괴수를 보여줌에도, 이 소설은 진부한 공식들을 피합니다. 중요한 것은 거대 괴수보다 전반적인 자연 생태계, X 구역입니다. 하지만 탐사대들이 X 구역을 조사한다고 해도, 그들은 X 구역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온갖 추측들을 늘어놓으나, 추측들은 그저 추측에 불과합니다. 아무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이런 소설이 사이언스 픽션이 될 수 있나요? 일반적으로 사이언스 픽션은 근대적인 진보에서 짜릿한 감성을 이끌어냅니다. 19세기 유럽 사람들이 영화를 봤을 때, 그들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심지어 어떤 관객은 기절했습니다. 이제까지 인류 역사에서 아무도 영화를 관람한 적이 없었습니다. 19세기 유럽 사람들 역시 영화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깜짝 놀랐고 심지어 기절했습니다. 근대적인 진보는 경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19세기 유럽 사람들은 이걸 느꼈습니다. 사이언티픽 로망스 작가들은 이런 경이를 소설에 집어넣었습니다.


이렇게 SF 소설들은 태어났습니다. 수많은 SF 소설들은 근대적인 진보를 이용해 짜릿한 경이를 연출합니다. 소설 <빛의 세계>에 이런 특징이 있나요? 분명히 <빛의 세계>는 경이를 연출합니다. 기이한 자연 생태계, X 구역은 경이롭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이가 근대적인 진보에서 비롯하나요? 영화 <선샤인>이 우주선 속의 녹색 산소 정원을 보여줄 때, 이건 근대적인 진보입니다. 첨단 과학 기술은 생명(식물들)을 우주로 가져갑니다. 관객들이 우주선 속의 산소 정원에 감탄할 때, 이런 감탄은 근대적인 진보에서 비롯합니다. 하지만 X 구역은? 이건 첨단 바이오 돔이나 우주선 속의 폐쇄 생태계가 아니에요.



아니, 잠깐. 정말 이게 우주선 속의 폐쇄 생태계가 아닌가요? <빛의 세계>에서 어떤 등장인물은 X 구역이 우주선인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X 구역은 우주선인지 모릅니다. 태양이 뜨고 달이 뜨고 별들이 빛난다고 해도, X 구역은 우주선인지 모릅니다. 애니메이션 <월-E>를 보세요. 우주선 속에는 얼마든지 낮밤 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처럼, X 구역 우주선은 인공적으로 태양과 달과 별들을 움직이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X 구역은 생체 우주선인지 모릅니다. 영화 <선샤인>에 우주선 속의 녹색 식물 정원이 있는 것처럼, 생체 우주선 X 구역에는 기이한 내부 자연 생태계가 있는지 모릅니다.


사실 SF 세상에서 우주선 속의 생태계는 드문 소재가 아닙니다. 영화 <선샤인>이 우주선 속의 녹색 정원을 보여주는 것처럼, 비디오 게임 <데드 스페이스>에서 우주선 이시무라 안에는 수경 재배 구역이 있습니다. 수경 재배 구역은 이끼류와 식물들을 키우고 산소와 식량을 공급합니다. 수경 재배 구역은 일종의 바이오 돔입니다. 비디오 게임 <내츄럴 셀력션 2> 역시 이런 식물 재배 구역을 보여줍니다. 비디오 게임 <스테이시스> 역시 우주선 안에 식물 재배 구역이 있다고 묘사합니다. 소설 <빛의 세계>에서 X 구역 역시 이런 바이오 돔인지 모릅니다. 여기는 외계인들이 만든 거대한 인공 생태계인지 모릅니다.



어쩌면 제프 밴더미어는 우주선 속의 인공 생태계를 묘사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X 구역이 인공 생태계인가요? 우주선 안에 X 구역이 있나요? 아무도 그걸 알지 못합니다. 아무도 그걸 확신하지 못합니다. 등장인물은 그저 X 구역이 생체 우주선인지 모른다고 추측할 뿐입니다. X 구역은 생체 우주선이 아닌지 모릅니다. 만약 X 구역이 생체 우주선이 아니라면, <빛의 세계>가 사이언스 픽션이 될 수 있나요? 이 소설에서 근대적인 진보가 비일상적인 상상력을 만드나요? 만약 X 구역이 생체 우주선이라면, 이건 근대적인 진보에서 비롯하는 비일상적인 상상력일 겁니다.


하지만 <빛의 세계>는 X 구역이 생체 우주선이라고 확신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이 그저 생체 우주선을 추측할 뿐이라면, <빛의 세계>가 사이언스 픽션이 될 수 있나요? 여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어떤 독자는 <빛의 세계>가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대답할 테고, 어떤 독자는 아니라고 대답할 겁니다. <빛의 세계>에는 뚜렷한 근거가 없습니다. 어떤 독자는 이 소설을 SF 울타리에 넣고 싶어할 테고, 어떤 독자는 이걸 빼고 싶어할 겁니다. 양쪽 모두 틀리지 않습니다. X 구역은 생체 우주선일 수 있고 아닐 수 있습니다. 양쪽 모두 틀리지 않습니다. X 구역은 무엇이든 될 수 있어요.



하지만 분명히 <소멸의 땅>과 <경계 기관>과 <빛의 세계>는 여러 암시들을 던집니다. '서던 리치 3부작'은 끊임없이 환경 오염들과 외계인들을 암시합니다. 환경 오염들과 외계인들이 확실하지 않다고 해도, '서던 리치 3부작'은 그것들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환경 오염들과 외계인들은 근대적인 진보에서 비롯합니다. 근대적인 진보가 있기 때문에, 대대적인 환경 오염들은 나타났고, 인간은 외계인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대대적인 환경 오염은 기이하고 치명적인 자연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줄거리는 드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줄거리는 너무 진부합니다.


심지어 극장판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조차 이런 줄거리를 풍자합니다. 그리고 <빛의 세계>는 이런 진부한 공식을 끌어들입니다. <빛의 세계>는 진부한 공식을 노골적으로 이용하지 않으나, 진부한 공식을 은근히 암시합니다. 사실 이 소설은 진부한 공식(환경 오염과 외계인)에 크게 의존합니다. 등장인물들이 계속 진부한 공식을 의심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상투적인 함정에 빠지지 않으나, 그렇다고 해도 <빛의 세계>는 SF (같은) 느낌을 풍깁니다. 뭐라고 독자가 분류하든, 이 소설에는 SF (같은) 느낌이 있어요. <빛의 세계>가 사이언스 픽션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문학 사조에서 <빛의 세계>는 비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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