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빛의 세계>와 <서브머지드>가 만나는 순간 본문
[물에 잠긴 무너진 도시. 울창한 자연 생태계. 기이한 해양 동물들. 적막한 분위기. 쪽배를 타는 소녀.]
[어떤 대학교 교정. 10월 초반. 아침. 맑은 날씨. 교정 벤치에서 어떤 남학생은 소설책을 읽는 중이다. 어떤 여학생 등장. 여학생은 남학생에게 다가간다. 여학생은 벤치에 앉고 인사한다.]
"안녕, 형. 여기에서 뭐하는 중이야? 어머, 그게 무슨 소설이이야?"
"이거? 이건 제프 밴더미어가 쓴 <빛의 세계>야. 저번에 너는 이게 인상적인 소설이라고 말했지. 그래서 나 역시 이걸 읽고 싶다고 생각했어. 교양 과목 수업들 중에서 문학 비평 수업이 있기 때문이야. 게다가 요즘에 다들 페미니즘 소설에 관심을 기울이지. 나는 제프 밴더미어를 잘 모르나, 나는 제프 밴더미어가 페미니즘 작가들에게 친숙하다고 들었어."
"아, 그래? 나는 형이 그런 소설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언제나 형은 소설보다 비디오 게임을 좋아했지. 어때? <빛의 세계>가 재미있어?"
"음, 글쎄. 너도 아는 것처럼, 나는 이런 소설을 읽은 적이 없어. 그래서 나는 뭐라고 자세히 평가하지 못하겠어. 내용과 설정은 다소 기이한 것 같아. 정말 이건 기이한 이야기, 위어드 테일이야. 일반적인 다른 소설들과 달리, 여기에는 인류 사회가 나오지 않아. <빛의 세계>는 오직 무너진 마을을 보여줄 뿐이야. 마을은 무너졌고, 소설은 오직 그것만을 보여주지. 그래서 나는 전세계가 무너졌다고 느꼈어. 전세계가 정말 무너지지 않았다고 해도, 이 소설은 인류 문명이 멸망한다는 느낌을 풍겨. 사실 인류 문명은 무너질지 몰라. 소설 속에서 X 구역은 계속 확장하는 중이야. X 구역은 기이한 자연 생태계야. 기이한 자연 생태계는 인류 문명을 집어삼킬지 몰라. 그때 인류 문명은 몰락하고, 기이한 자연 생태계는 도시를 뒤덮고, 세상은 완전히 바뀔지 모르지. 기이한 자연이 뒤덮은 인류 도시. 이건 개인적인 느낌이나, <빛의 세계>는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아. 어때? 내 감상이 옳을까?"
"감상에 옳고 틀린 것은 없어. 형이 뭔가를 느낀다면, 그건 형이 느끼는 고유한 해석이 되겠지. 만약 다른 독자들이 거기에 동의한다면, 그런 해석은 훨씬 보편적인 해석이 될 거야. 아주 많은 독자들이 거기에 동의한다면, 그건 주류적인 해석이 되겠지. 나는 형에게 동의해. 맞아, <빛의 세계>는 기이한 자연 생태계가 인류 문명을 뒤덮는다고 말해. 적어도 독자들은 그런 장면들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어. <빛의 세계>는 꾸준히 기이한 자연 생태계를 속삭이지. 평범한 자연 환경에서 이 소설은 출발하나, 점차 이 소설은 기이한 자연 환경들과 기이한 야생 동물들을 이야기해. <빛의 세계>를 읽은 이후, 독자들은 온갖 식생들이 거대 도시를 뒤덮은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 거야. 설사 이 소설이 그런 장면을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고 해도, 독자들은 얼마든지 유추할 수 있지. 기이한 자연 생태계가 도시를 뒤덮을 때, 그런 도시 생태계에서 기이한 야생 동물들은 뛰어놀 수 있어. 이런 설정은 드물지 않아. 예전부터 여러 SF 소설들은 이런 장면들을 묘사했어."
"아, 그래? <빛의 세계>처럼, 자연 생태계가 도시를 집어삼키는 SF 소설들이 많아?"
"물론이야. 그런 소설들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 리처드 제프리스가 쓴 <런던 이후>처럼, 이미 19세기 유럽 소설들은 인류 문명이 멸망하고 자연 생태계가 도시를 덮치고 야생 동물들이 돌아다닌다고 이야기했어. 그런 풍경을 묘사한 20세기 소설로서 제임스 발라드가 쓴 <물에 잠긴 세계>는 가장 유명할 거야. 비록 <런던 이후>와 <물에 잠긴 세계>가 위어드 테일이 아니라고 해도, <런던 이후>와 <물에 잠긴 세계>와 <빛의 세계>는 비슷한 장면들을 묘사하지. <물에 잠긴 세계>에서 바다는 수많은 육지들을 뒤덮었어. 지구 기후는 바뀌었고, 영국은 열대 기후가 되었어. 그래서 열대 밀림은 영국을 뒤덮었고, 바다 악어들과 바다 이구아나들은 영국 바다를 헤엄치지. 이건 <물에 잠긴 세계>가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을 경고한다는 뜻이 아니야. <물에 잠긴 세계>는 그런 풍경들을 이용해 아련하고 원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싶어해."
"아, 맞아. 나는 <라스트 오브 어스>라는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한 적이 있어. 그 게임에서 이상한 곰팡이들은 사람들을 오염시키고, 결국 인류 문명은 몰락해. 인류 문명이 몰락한 이후, 자연 생태계는 당장 인류 도시들을 뒤덮어. 폐허가 된 도시는 녹색 삼림 미궁이 되고, 사람들은 그런 녹색 미궁들을 돌아다녀야 해. 때때로 그런 녹색 미궁 속에서 사람들은 야생 동물들을 마주치지. 이제 더 이상 야생과 문명은 경계를 가르지 않아. 야생은 문명을 끌어안았고, 문명은 야생과 함께 살아야 하지. 만약 내가 야생과 문명을 단절적으로 가른다면, 그건 피상적인 이분법일 거야. 나는 내가 그런 이분법에 빠지기 바라지 않아. 하지만 <라스트 오브 어스>는 어떻게 야생과 문명이 융합할 수 있는지 보여주지. 어쩌면 <라스트 오브 어스>는 <런던 이후>와 <물에 잠긴 세계>에게 영향을 받았을지 모르겠어. 설사 이 게임이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해도, <라스트 오브 어스>와 <런던 이후>와 <물에 잠긴 세계>는 비슷한 부류가 될 수 있을 거야. 나는 SF 장르를 잘 몰라. 그래서 나는 <물에 잠긴 세계>와 <라스트 오브 어스>가 똑같은 부류인지 확신하지 못하겠어. 하지만 양쪽이 똑같은 장르가 아니라고 해도, 양쪽에는 많은 공통점들이 있을 거야."
"어쩌면 형이 옳을지 모르지. 나는 <라스트 오브 어스>를 플레이한 적이 없어. 하지만 분명히 이 게임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속해.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무너진 인류 문명을 묘사하지. 그래서 <물에 잠긴 세계>와 <라스트 오브 어스>는 서로 비슷할 수 있어. <라스트 오브 어스>와 <빛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야. 양쪽 모두 자연 생태계가 도시를 뒤덮는다고 묘사하지. 생존자들은 그런 기이한 녹색 미궁들을 떠돌아. 물론 장면들과 설정들이 비슷하다고 해도, 주제들은 다를 수 있어. <런던 이후>와 <물에 잠긴 세계>는 환경 오염들과 페미니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라스트 오브 어스> 역시 마찬가지일 거야, 그렇지? 반면, <빛의 세계>는 환경 오염들과 페미니즘 문제와 무관하지 않아. 이 소설은 그런 것들을 그저 살짝 암시할 뿐이나, 독자들은 그런 맥락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야.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계속 환경 오염들과 환경 재앙들을 언급하지. 게다가 여자 등장인물들은 중요한 역할을 맡았어."
"그래, 소설 <소멸의 땅>과 <경계 구역>과 <빛의 세계>는 이른바 <서던 리치> 3부작이지. 소설 <소멸의 땅>에는 여자 탐사대가 나와. 이 소설에는 남자가 없어. 남자들은 주연 등장인물들이 아니야. 어쩌면 이런 설정은 페미니즘 문제와 이어질지 모르지. 여자가 녹색 폐허를 떠돈다는 이야기는…. 그게 뭐지? 여자와 자연이 서로 비슷하다는 철학이 뭐지?"
"에코 페미니즘? 형이 말하고 싶은 철학이 에코 페미니즘이야?"
"맞아, 에코 페미니즘. 여자, 자연, 에코 페미니즘. <서던 리치> 3부작은 그런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게다가 제프 밴더미어는 앤 밴더미어와 함께 <혁명하는 여자들>이라는 SF 페미니즘 소설 모음집을 편집했어. 분명히 제프 밴더미어는 에코 페미니즘을 모르지 않을 거야. 물론 제프 밴더미어가 에코 페미니즘을 모른다고 해도, 독자들은 <빛의 세계>를 이용해 그걸 논의할 수 있을 거야. 비록 그건 그저 비유에 불과하겠으나, 요즘에 환경 보호 활동과 페미니즘이 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에, 그런 비유는 훨씬 탄력을 받을 수 있겠지. 이 소설을 읽을 때, 독자들은 환경 보호 활동들과 페미니즘 활동들을 염두에 둘 수 있어. 독자 없이 소설은 존재하지 못해. 작가는 소설을 혼자 완성하지 못해. 독자가 소설을 읽을 때, 소설은 존재할 수 있지. 아무리 채영신이 똑똑하고 당차다고 해도, 아무도 <상록수>를 읽지 않는다면, 채영신은 존재하지 못할 거야. 따라서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새로운 해석을 덧붙일 수 있어. 그래서 소설은 세상을 해석하는 좋은 도구가 될 거야. 그것 역시 소설을 읽는 방법들 중에서 하나야. …라고 문학 비평 강사님은 이야기했지."
"그건 괜찮은 해석인 것 같아. 교양 과목 시간에 형이 그걸 발표할 거야?"
"음, 나는 아직 발표 자료를 준비하지 못했어. 하지만 나는 이런 해석을 발표 자료에 넣을 수 있을 거야. 어떤 남학생들은 이런 해석을 싫어할지 모르지. 페미니즘 활동에 적대적인 남학생들은 많아. 어떤 페미니즘 단체는 너무 과격하지. 하지만 사회에 가부장적인 폭력들이 너무 만연하기 때문에 어떤 페미니즘 단체는 과격해져야 할 거야.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겠지. 설사 그들의 폭력이 나쁘다고 해도, 우리는 먼저 가부장적인 폭력들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할 거야. 아, 맞아. 내가 <빛의 세계>와 <혁명하는 여자들>을 서로 연결한다면, 나는 그런 해석을 발표할 수 있을 거야. 제프 밴더미어가 <빛의 세계>와 <혁명하는 여자들>에 동시에 참여했기 때문에 이런 페미니즘 해석은 틀리지 않겠지. 강사님에 따르면, 소설은 많은 해석들을 낳을 수 있어. 네가 말한 것처럼, 감상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겠지. 게다가 내 해석에는 논리적인 근거들이 있어. 제프 밴더미어는 폭력과 액션을 강조하지 않아. <빛의 세계>에는 자연 생태계와 폐허가 있으나, 폭력과 액션은 없지. 폭력과 액션 없이, 자연 생태계가 도시를 뒤덮고, 여자가 그런 녹색 폐허를 떠돌 때, <빛의 세계>는 많은 것들을 암시할 수 있어. 어쩌면 <서브머지드> 역시 그런 것들을 암시할 수 있을지 모르지."
"어머, 그게 뭐야? <서브머지드>?"
"이건 비디오 게임이야. <서브머지드>는 네가 말한 포스트 아…. 그래, 포스트 아포칼립스. 아이고, 웃지 마. 어이, 아가씨, 웃지 말라니까. 너와 달리, 나는 SF 장르를 잘 몰라. 내가 SF 소설을 읽는 이유는 네가 이걸 좋아하기 때문에 나 역시…. 아니, 아니, 어쨌든 <서브머지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이야. 배경 설정은 <런던 이후>와 <물에 잠긴 세계>와 <빛의 세계>와 비슷해. 나는 <런던 이후>와 <물에 잠긴 세계>를 읽은 적이 없어. 하지만 <빛의 세계>와 <서브머지드>는 아주 비슷해. 바다는 드넓은 육지를 덮쳤어. 육지는 바다 속으로 잠겼지. 고층 건물들은 수면 위로 고개들을 내밀었어. 도시는 바다가 되었고, 군도처럼 고층 건물들은 오직 고개들을 내밀었을 뿐이야. 고층 건물들에서 녹색 식물들은 자라는 중이야. 녹색 식물들은 고층 건물들을 뒤덮었어. 왜 인류 문명이 멸망했을까? 왜 바다가 도시를 덮쳤을까? 이유는 분명하지 않아. <빛의 세계>가 그런 것처럼, <서브머지드>는 확실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아. <서브머지드>는 무분별한 거대 도시들이 늘어났기 때문에 기후 변화가 닥쳤다고 암시하지. 어쩌면 <물에 잠긴 세계>와 달리, <서브머지드>는 무분별한 산업 자본주의 개발을 비판하는지 몰라. 하지만 멸망 원인이 확실하지 않다고 해도, 기이하고 적막하고 평온한 분위기는 정말 인상적이지."
"오호, <서브머지드>는 꽤나 흥미로운 게임 같아. 게임 주인공이 여자야?"
"응, 게임 주인공은 어떤 소녀야. 생존하기 위해 바다 밀림 도시에서 소녀는 여러 물품들을 찾기 원해. 소녀는 쪽배를 구하고 물에 잠긴 도시를 돌아다녀. 게다가 소녀는 아픈 동생을 치료해야 하지. <서브머지드>에는 폭력과 액션이 없어. 게임 플레이어는 물에 잠긴 도시를 돌아다니고, 기이한 자연 생태계를 구경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즐기지. 만약 <소멸의 땅>에 나오는 생물학자가 <서브머지드>를 플레이한다면, 생물학자는 그런 기이한 자연 생태계와 적막한 분위기가 즐겁다고 느낄지 몰라. 이건 <서브머지드>가 에코 페미니즘으로 이어진다는 뜻이 아니야. <빛의 세계>와 달리, 그런 연결 고리는 확실하지 않아. 내가 <서브머지드>에 에코 페미니즘을 집어넣는다면, 그건 무리한 과장일지 모르지. 그렇다고 해도 나는 <서브머지드>와 <빛의 세계>가 비슷하다고 생각해. 특히, 소녀는 적막하고 기이하고 평온한 자연 생태계와 폐허를 돌아다니고, 그런 특징은 <빛의 세계>와 많이 비슷하지. <서브머지드>가 정말 무분별한 산업 개발을 비판하고 치유와 복원을 이야기한다면, <빛의 세계>는 <서브머지드>와 훨씬 가까워질 수 있을…. 어어, 야, 왜 이상하게 쳐다봐?"
"음? 아니, 아니, 나는 형이 에코 페미니즘에 관심을 기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네 덕분이지, 뭐. 이제까지 네가 목이 아프도록 꾸준히 설명했기 때문이야. 학기 초부터 모꼬지를 가든, 술자리를 모이든, 학과 발표회에 참가하든, 너는 이런 것들을 이야기했고, 그래서 나 역시 몇몇 서적을 읽고 강의를 들었어. 솔직히 나는 이런 사상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 많이 부끄럽지. 이 세상의 절반이 여자이고, 자연 없이 인류가 살지 못함에도, 나는 이런 사상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 네가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앞으로 나는 계속 알지 못했겠지. 그래서 나는 네가 고맙다고 생각해. 고마워, 꿘 후배님."
"고맙기는 뭘…. 흠, 내 짐작이 맞았어.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은 틀리지 않는다니까."
"네 짐작? 사람을 보는 눈? 그게 무슨 뜻이야?"
"아니, 아니, 나는 하나 물어보고 싶어. 게임 <서브머지드>에 거대 괴수가 나와?"
"거대 괴수? 그 뭐야, 고지라나 가메라 같은 거대 괴수들?"
"아니, 고지라와 가메라는 일본 특수 촬영 괴수들이지. 거대 괴수 이야기는 오직 특수 촬영 영화들만을 가리키지 않아. 어떤 이야기에 거대한 동물들이 나온다면, 그건 거대 괴수 이야기가 될 수 있어. 가령, 어떤 이야기에 대왕 오징어나 고래 상어가 중요하게 나온다면, 그 이야기는 거대 괴수 이야기가 될 수 있어. <빛의 세계>에는 거대 바다 괴수가 있어. <빛의 세계>에 나오는 거대 바다 괴수는 고지라나 가메라와 달라. <빛의 세계>는 일본 특수 촬영 영화들과 아주 다르지. 하지만 <빛의 세계>는 거대 괴수 이야기가 될 수 있어. 비록 거대 괴수는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않으나, <빛의 세계>에서 수많은 상징들과 복선들은 거대 바다 괴수를 가리키지. 게다가 거대 괴수가 직접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서던 리치> 3부작은 끊임없이 수생 파충류들, 메갈로돈, 레비아탄을 언급해. 거대 괴수가 가시적이지 않다고 해도, 거대 괴수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나는 그런 분위기가 좋아. 장대한 자연 생태계에 거대 바다 괴수가 있다고 끊임없는 속삭이는 분위기."
"와, 그건 멋진 해석이야. 내가 그 해석을 발표 자료에서 인용할 수 있을까? 음, 이번 주말에 근사한 까페에서 나는 치즈 케이크를 하나 살 수 있어. 어때?"
"아니, 형, 구태여 치즈 케이크를 살 필요는 없어. 이건 내 고유한 해석이 아니야. 많은 독자들은 <서던 리치> 3부작이 거대 괴수 이야기를 비유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서브머지드>에서 거대 바다 괴수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고 싶어."
"아니, 거대 바다 괴수는 나오지 않아. 하지만 <서브머지드>에는 커다란 혹등고래와 고래 상어가 있어. 물에 잠긴 도시를 돌아다니는 동안, 종종 소녀는 혹등고래 및 고래 상어와 마주치지. 그런 장면은 정말 장관이야. 두 눈 앞에서 10m짜리 고래가 솟구친다면, 누구나 깜짝 놀랄 거야. 다들 그게 정말 바다 괴수라고 여기겠지. 고지라와 달리, 그런 고래는 초자연적인 바다 괴수가 아니야. 하지만 거대한 고래는 현실적인 바다 괴수가 될 수 있을 거야. 소녀가 거대한 고래를 바라볼 때, 분위기는 장엄하고 우아하지. <빛의 세계>가 거대 괴수를 신비롭고 우아하게 묘사하는 것처럼, <서브머지드>에서 고래가 솟구칠 때, 여기에는 폭력과 파괴와 액션이 없어. 고지라는 도시 파괴와 떨어지지 못하나, 이 고래는 그렇지 않아. 게다가 기이한 자연 환경은 이 고래를 녹색으로 오염시켰어. 아니, 그건 오염이 아니라 변화야. 기이한 자연 환경 속에서 혹등고래는 새로운 생물종으로 바뀌는 중이야. <빛의 세계>에서 야생 동물들이 기이하게 바뀌는 것처럼. 이런 관점에서 정말 <서브머지드>와 <빛의 세계>는 비슷해."
"음…. 언젠가 나는 정말 <서브머지드>를 플레이해야 할 것 같아. 나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해. 폭력과 액션이 없는 거대 괴수 이야기. 사실 많은 사람들은 고지라가 거대 괴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많은 사람들은 거대 괴수가 무조건 도시를 파괴해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빛의 세계>가 이야기한 것처럼, <서브머지드>가 보여준 것처럼, 거대한 야생 동물은 무조건 파괴로 이어지지 않아. 이건 고지라와 도시 파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야. 나는 고지라를 좋아하고 도시 파괴라는 쾌감을 인정해. 하지만 그건 전부가 아니야. 도시 파괴는 거대 괴수의 전부가 아니야. 나는 그런 고정 관념이 사라지기 원해. <서브머지드>처럼, 거대 괴수 이야기는 아주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어. 왜 거대 괴수 이야기가 언제나 도시 파괴로 이어져야 하지? 그건 편견일지 몰라."
"편견…. 글쎄, 거대 괴수를 바라보는 시각이 편파적일 수 있을까?"
"형, 생각해 봐. '거대 괴수'는 '거대하고 이상한 동물'을 가리키지. 왜 고지라가 거대 괴수를 독차지해야 하지? <서브머지드>의 녹색 혹등고래와 고래 상어 역시 거대 괴수가 될 수 있어. 녹색 혹등고래와 고래 상어 역시 거대하고 이상한 야생 동물이야. 하지만 <서브머지드>에는 도시 파괴가 없지. 여기에는 파괴적인 포효, 피를 튀기는 싸움박질, 뭔가를 파괴하고 죽이기 위한 음모, 폭력과 위계 질서가 없지. 이미 말한 것처럼, 나는 도시 파괴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건 개인적인 취향이지. 모든 사람에게는 개인적인 취향이 있지. 우리는 서로 개인적인 취향들을 존중해야 해. 하지만 고지라와 도시 파괴가 거대 괴수의 전부가 된다면, 그건 오해일 거야. 그건 너무 슬픈 오해겠지. <서브머지드>처럼, 거대 괴수는 장대하고 우아하고 서정적일 수 있어. 우리는 그런 거대 괴수를 감상할 수 있어. 거대 괴수는 오직 뭔가를 죽이고 파괴하는 존재가 아니야. 그건 너무 좁은 해석이야. 넓은 관점에서 우리는 거대 괴수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어. 설사 고지라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우리는 도시 파괴 없이 생태계 변화를 이야기할 수 있어. 도시를 파괴하는 <고지라> 시리즈는 숱해. 왜 <고지라> 시리즈가 훨씬 넓은 주제로 나가면 안 될까? <고지라> 시리즈 역시 <서브머지드> 같은 분위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빛의 세계>와 <서브머지드> 같은 사이언스 픽션들이 늘어난다면, 사람들은 거대 괴수 이야기를 폭력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겠지."
"하하, 아직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았는데도, 너는 이미 <서브머지드>를 호평하는 것 같아."
"나는 게임을 플레이한 적이 없으나, 형의 감각을 믿어. <서브머지드>의 녹색 고래 상어와 고지라는 모두 거대 괴수야. 고지라와 도시 파괴는 거대 괴수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야. 하지만 그런 고정 관념은 너무 흔해. 내가 거대 괴수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내가 이상하다고 여기지.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거대 괴수 이야기를 좋아했어. 하지만 사람들은 '여고생'과 '거대 괴수'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간주해. '여대생'과 '거대 괴수' 역시 마찬가지야. 나는 '여고생'과 '여대생'이라는 호칭이 싫어. 그건 성 차별적인 호칭이야. 형, 형은 '남대생'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나는 여대생이 되어야 해. 하지만 형은 남대생이 아니라 그저 대학생일 뿐이지. 남한 사람들은 남자 대학생을 남대생이라고 말하지 않아. 남자 대학생은 그저 대학생일 뿐이야. 하지만 여자 대학생은 여대생이 되어야 하지. 이런 편견은 사라져야 해. 여고생과 거대 괴수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 역시 사라져야 해. 언제나 사람들은 거대 괴수가 남자의 로망이라고 말하지. 그건 편견이야. 나는 그런 편견에 지쳤어. 여자도 괴수를 좋아해. 여고생도 거대 괴수를 좋아할 수 있어. 여고생도, 거대 괴수를, 얼마든지, 좋아할 수 있어! <서브머지드>처럼, 소녀는 바다 괴수를 신비롭게 감상할 수 있어."
"어어…. 어이, 꿘 후배님, 진정해. 만약 <서브머지드> 같은 게임들이 늘어난다면, 그런 편견은 사라질지 모르지. 사람들이 이런 사이언스 픽션들을 읽고 보고 플레이하고 계속 이야기한다면, 그런 편견은 사라질지 모르지. 여고생과 여대생라는 호칭 역시 마찬가지야. 우리가 계속 이런 것들이 편견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꾸준히 이야기한다면, 편견은 사라질지 모르지. 아, 그리고…. 호칭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왜 너는 나를 형이라고 부르니? 나는 남대생이야. 너는 여대생이지. 나는 형이 아니야."
"어머, 왜? 형이라는 호칭이 이상해? 형은 오빠라는 말이 듣고 싶어?"
"아니, 뭐, 이건 내가 오빠라는 호칭을 원한다는 뜻이 아니라…. 학기 초부터 너는 계속 나를 형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저 이유가 궁금할 뿐이야."
"형은 이유를 몰라? 왜 내가 형을 형이라고 부르는지?"
"야, 어떻게 내가 알 수 있겠어? 나에게 뭐, 독심술이 있다고 생각해?"
"아니, 그걸 정말 말로 해야 해?"
"당연하지. 네가 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내가 네 마음을 알 수 있겠어? 마음은 그저 마음일 뿐이야. 우리가 마음을 현실로 드러낼 때, 마음은 뭔가를 움직이고 바꿀 수 있어. 호모 사피엔스는 생각하는 동물이지. 하지만 생각이 전부일까? 마음이 전부일까? 우리가 뭔가를 느끼고 생각했다면, 우리는 그걸 표현해야 해. 우리가 표현할 때, 마음은 현실이 될 수 있어. 우리가 말하고, 글을 쓰고, 논의하고, 부딪힐 때, 세상은 달라질 수 있겠지.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목소리들을 높일 수 있을 때, 세상은 달라질 수 있을 거야. 이 세상은 1:99의 승자 독식 세상이야. 이런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크게 떠들지 못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나아지지 못할 거야. 가난한 사람들은 크게 떠들 수 있어야 해. 여자들이 크게 떠들지 않는다면, 가부장적인 목소리는 여자들을 가릴 거야. 야생 동물들은 떠들지 못하지. 그래서 녹색당은 크게 떠들어야 할 거야. 동물 법정 같은 연극은 우스꽝스러워. 하지만 그런 우스꽝스러운 연극은 필요할지 모르지. 우리 사이…, 아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너와 나 역시 마찬가지야. 네가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너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거야. 주변의 눈초리가 이상함에도, 네가 열심히 설명했기 때문에, 나는 알 수 있었어. 우리는 떠들어야 해. 우리는 크게 떠들어야 해. 나는 네가 나에게 확실히 말했으면 좋겠어. 나는 남대생이고, 너는 여대생이야. 나는 강자이고, 너는 약자야. 그래서 나는 너에게 부담을 줬을지 몰라. 그래서 너는 나를 형이라고 부르는지 모르지. 내가 그랬니?"
"흠,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
"뭐? 그게 무슨 뜻이야?"
"형은 '우리 사이'라고 말했지. 나는 '우리 사이'라는 문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형, 아직 모르겠어? 나는 그냥 연상 남자들을 오빠라고 불러. 하지만… 나는 '내가 특별히 찍은 연상 남자'를 형이라고 부르고 싶어. 그래서 앞으로 나는 형을 계속 형이라고 부르고 싶어."
"어, 그건…. 어, 잠깐, 야, 그건 네가 나를…."
"형, 화장실에서 세수 좀 해.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개? 또 아침부터 음주 수강이야? 아, 이제 둘째 강의 시간이야. 형, 이따 봐."
"어어, 야, 잠깐, 기다려. 아이고, 기다리라니까."
[여학생 퇴장. 여학생을 쫓아가며 남학생 역시 퇴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