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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외계 바이오스피어 돔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 본문

감상, 분류, 규정/그 여자와 그 남자의 논의들

외계 바이오스피어 돔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

OneTiger 2019. 3. 9. 19:00

[11월 중반. 여기는 지하 쇼핑몰의 어떤 대형 서점 앞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지하 쇼핑몰을 들락거리고 대형 서점 역시 사람들로 붐빈다. 쇼핑몰 통로는 넓고 번잡하고 요란하다. 대형 서점 입구 역시 번잡하고 요란하다. 반면, 상대적으로 서점 안은 조용하다. 사람들은 조용히 돌아다니거나 책들을 고르거나 책들을 읽는다. 배경 음악은 낮고 잔잔한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 바이올린 연주이다. 어떤 여학생과 어떤 남학생은 천문 과학 서가를 둘러본다. 서점은 방대하나, 천문 과학 서가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여학생과 남학생은 아무 책이나 집어들고 대충 훑어보고 다시 내려놓는다.]

 

남학생: 여기를 봐. (손을 휘두르고 천문 과학 서가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화성 개척 서적들이 꽤나 많아. 그래, 인류는 화성으로 진출할 거야. 외계 개척 행성은 더 이상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야. 아직 인류가 화성에 진출하지 못했다고 해도, 외계 개척 행성은 이미 현실에 깊이 들어왔어. 21세기 초반 인류는 더 이상 화성 개척을 외면하지 못해. 우리는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해. 우리는 어떻게 인류가 외계 행성에 진출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야 해. 물론 인류가 정말 화성을 개척할 수 있을지 그건 미지수야. 하지만 인류가 화성을 개척하지 못한다고 해도, 인류는 시도할 거야. 우리는 이런 시도가 잘못될지 모른다고 걱정해야 해. 비극을 최대한 막기 위해, 우리는 논의할 수 있어야 해.

 

여학생: 형이 옳아. 나는 형이 옳다고 생각해. 이미 외계 개척 행성은 현실에 깊이 들어왔어. (고개를 끄덕이고 머리카락을 빗는다) 어떤 사람들은 화성이 외계 행성이 아니라 '이웃 행성'이라고 말할지 모르지. 그런 사람들 역시 틀리지 않아. 화성은 이웃 행성이야. 사실 지구 옆에는 화성이 있고, 지구와 화성은 비교적 가까워. 다른 항성계에 화성은 있지 않아. 태양계 외곽에 화성은 있지 않아. 다른 행성들 너머에 화성은 있지 않아. 지구 옆에는 화성이 있고, 그래서 화성은 '외계'라는 느낌을 비교적 풍기지 않아. 왜 소설 <붉은 별>과 소설 <화성의 공주>와 소설 <화성 연대기>와 소설 <화성의 왕궁에서>와 소설 <붉은 화성>과 영화 <레드 플래닛>과 영화 <미션 투 마스>와 소설 <마션>과 테이블 게임 <테라포밍 마스>와 비디오 게임 <서바이빙 마스>와 비디오 게임 <웨이킹 마스>가 모두 화성을 이야기할까? 화성이 이웃이기 때문이야. 화성은 머나먼 외계가 아니야.

 

 

["인류가 화성을 개척하지 못한다고 해도, 인류는 시도할 거야. 비극을 막기 위해, 우리는 논의할 수 있어야 해."]

 

 

남학생: SF 세상에는 정말 화성 이야기들이 많아. 네가 말한 것들은 빙산의 일부이고, SF 세상에는 훨씬 많은 화성 이야기들이 있지. 어쩌면 SF 독자들은 화성 이야기에 아주 신물이 날지 모르지. SF 독자들은 화성 이야기가 너무 지겹다고 느낄지 모르지. "아, 씨발, 또 다시 화성이야?" 어떤 SF 독자들은 투덜거릴지 모르지. 가끔 나는 달보다 화성이 훨씬 지구와 가깝다고 생각해. (살짝 웃는다) 화성보다 달이 훨씬 가까움에도, 외계 개척 이야기는 달보다 화성을 주목해. 사람들은 달을 고려하지 않아. 달은 그저 위성에 불과해. 달에는 설레는 희망이 없어. 화성에는 두근거리고 장대한 미래가 있어. 사람들은 테라포밍이나 외계 바이오스피어 돔을 생생하게 실감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화성에게 두근거리고 장대한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지.

 

여학생: 솔직히 나는 화성 이야기를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아. 이제 화성은 친근한 이웃 행성이야. 아직 인류가 화성에 진출하지 않았다고 해도, SF 소설들과 천문 과학 서적들은 너무 많이 화성을 이야기했어. 이건 내가 화성 개척 사업에 빠삭하다는 뜻이 아니야. 오히려 나에게는 지식들이 별로 없어. 나는 그저… 화성이 너무 가깝다고 느낄 뿐이야. 킴 스탠리 로빈슨이 <붉은 화성>을 썼을 때, 그건 생생한 외계 개척 이야기가 될 수 있었어. 하지만 오늘날에는 화성 개척 이야기들이 아주 많지. 사람들이 SF 소설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화성 개척 이야기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 어떤 사람들은 이미 화성이 제2의 지구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 비디오 게임 <플래닛 베이스>에는 여러 행성 유형들이 있어. 가장 기본적인 행성 유형은 붉고 삭막한 행성이야. 왜 붉고 삭막한 행성이 가장 기본적일까? 나는 그게 화성 때문이라고 생각해. (고개를 몇 번 흔들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다듬는다) 으아, 화성은 정말….

 

남학생: …정말 물리지, 그렇지? (남학생은 여학생을 쳐다본다. 여학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남학생은 살짝 즐거운 한숨을 분다) 가끔 나는 이미 인류가 화성에 진출했다고 느껴. 다들 화성 이야기를 떠들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는 화성이 외계 행성보다 이웃 행성에 가깝다고 생각해. 허버트 웰즈는 <우주 전쟁>을 썼으나, 허버트 웰즈와 달리, 이제 우리는 기이하고 적대적인 화성을 꿈꾸지 않지. 나는 화성 개척 이야기보다 소행성 인공 생태계 이야기나 해왕성 우주 정거장이나 장거리 세대 우주선이나 다른 것들을 보고 싶어. 화성은 너무 가깝고, 화성 이야기들은 너무 많고, 다들 화성 개척을 떠들어. 이런 상황에서 SF 작가들이 화성보다 소행성이나 해왕성이나 장거리 세대 우주선을 이야기한다면, 그건 신선할지 모르지. 뭐, 소행성과 해왕성과 장거리 세대 우주선 역시 진부한 소재이나,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야. 화성 개척 이야기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누군가가 다시 화성을 떠든다면, 그건 너무 진부할지 모르지.

 

여학생: 그래, 누군가가 다시 화성 이야기를 떠든다면, 사람들은 한숨을 쉴지 모르지. "아이고, 또 다시 화성이야? 화성이 이웃집 친구인가?" 하지만…. (어떤 화성 개척 서적을 꺼내고 뒤적인다. 여학생은 서적에 있는 바이오돔 그림을 가리킨다) 하지만 화성 이야기는 모두 똑같지 않을 거야. 화성 개척 이야기는 여러 가지를 묘사할 수 있어. 우주 항해, 초기 개척 기지 건설, 도시 확장, 생명체 탐사, 지형 탐사, 농사, 바이오 돔…. 이런 소재들 중에서 바이오 돔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나는 생명체 탐사와 바이오 돔이 가장 흥미로운 소재라고 생각해. 정말 화성에 외계 생명체가 있을까? 생명체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오직 지구 생명체만 이야기할 수 있어. 하지만 화성에 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화성 생명체는 지구 생명체와 크게 다르겠지. 그래서 생명체를 논의할 때, 우리는 화성 생명체를 이용해 시야를 확장할 수 있겠지. 게다가 화성에서 지구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건…. 그건 정말….

 

남학생: 아니, 그건 시야의 확장이 아니야. 그건 인식의 전환이야. 화성에서 인간이 생명체와 만난다면, 화성에서 지구 생명체가 살아간다면, 인류는 인식을 전환할 수 있어. 언젠가 네가 말한 적이 있지? 우리는 생명체야. 가끔 인간은 자신이 생명체라는 사실을 잊지.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기계들에게 둘러싸였다고 해도, 우리는 생명체야. 우리는 유기체 동물이야. 꿀벌이 동물이고, 줄무늬 다람쥐가 동물이고, 물수리가 동물이고, 장수 거북이 동물이고, 향유 고래가 동물이고, 아무르 표범이 동물인 것처럼, 우리 인간 역시 동물이야. 우리는 동물이고, 우리는 동물들을 바라보기 원해. 왜 구태여 우리가 인간형 로봇을 만들기 원할까? 인간형 로봇이 편리하기 때문에? 맞아, 이런 기능적인 이유는 없지 않아.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미학적인 이유를 추구해. 우리가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 형태 로봇이나 인간 형태 로봇을 만들기 원하지.

 

여학생: 나는 동의해. 만약 애니메이션 <신조 인간 캐산>에서 캐산이 동물 로봇이 아니라 그저 형체 없는 기계와 동행했다면, 여기에는 별로 감흥이 없었을 거야. 캐산은 동물 로봇과 동행했고, 그래서 캐산은 훨씬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 거야. <조이드> 완구들이 동물들이 아니었다면? 그것들이 그저 전차들이나 항공기들이나 함선들에 불과했다면? 거대한 실러캔스 로봇과 잠수함은 달라. 잠수함은 그저 둥글고 길다란 기계에 불과해. 반면, 거대한 실러캔스 로봇은 지느러미들을 움직이고, 우리는 실러캔스 로봇이 살아있다고 착각하지. 우리는 살아있고 역동적인 감성을 느끼지. 게다가 조이드 워샤크(warshark)는 로봇이 아니라 금속 동물이야. 우리는 동물을 보기 원해. 우주에서도 우리는 동물을 보기 원할 거야. 그래서 우리는 화성이 붉고 삭막한 행성이 아니라 생명체를 품은 행성이기 바라지. 화성에는 동물이 있어야 해. 그게 비록 아주 작은 곤충이라고 해도.

 

남학생: 하지만 화성에서 곤충을 찾기는 쉽지 않겠지. 사실 우주에서 생명체들을 찾기는 쉽지 않아. 그래서 화성 바이오스피어 돔은 로망이 될 수 있어. 우리는 여러 태양계 행성들을 관측할 수 있어. 우리는 여러 우주 현상들을 관찰할 수 있어. 심지어 우리는 우리 은하에 엄청나게 많은 항성들과 행성들이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행성들을 파악할 수 있음에도, 우리는 어딘가에 생명체가 있다고 확신하지 못해. 아직 물리적인 증거는 없어. 실증주의 과학자들은 주장할 거야. "이제까지 인류는 한 번도 외계 생명체를 찾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우주 생물학자들은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말아야 한다." 이런 주장처럼, 분명히 우리는 아직 외계 생명체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어. 우리가 오직 인식할 수 있는 사실만을 따라야 한다면, 우리는 외계 생명체를 확신하지 못해. 우리는 외계 생명체 탐사를 동태적인 것이 아니라 정태적인 것이라고 간주해야 해. 우리는 현실이 감추고 말하지 않은 것들보다 오직 현실이 보여주는 것들만 이야기해야 해. (여학생을 가리킨다) 하지만 너 같은 빨갱이 생태학 덕후는 이런 실증주의를 싫어하지.

 

여학생: 어라, 뭐? 빨갱이 생태학 덕후? 어디에서 그런 말을 배웠어? (코웃음을 친다) 아, 뭐, 좋아. 형은 틀리지 않았어. 나는 빨갱이 생태학 덕후이고, 나는 외계 생명체 탐사가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동태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현실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현실은 아직 외계 생명체를 보여주지 않았어. 하지만 그건 우주 생물학이 정태적이라는 뜻이 아니야. 우리는 현실이 아직 보여주지 않은 부분들을 논의할 수 있어. 이건 형이상학적인 논의가 아니야. 기후 변화를 증명할 때, 과학자들은 정태적인 연구보다 동태적인 연구를 추구해야 했어. 이제까지 인류 문명은 지구 기후를 바꾼 적이 없어. 그래서 회의적인 과학자들은 이제까지 기후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기후 변화 이론이 틀렸다고 말했지. 실증주의는 우리가 오직 관찰할 수 있는 것만 말해야 한다고 주장해. 특히, 보수적인 실증주의 과학은 그렇지. 하지만 이제까지 기후 변화가 없었다고 해도, 미래에 기후 변화는 나타날 수 있어. 그렇게 과학자들은 동태적으로 기후 변화를 증명할 수 있어. 하지만 과학자들이 기후 변화를 증명했을 때, 이미 때는 늦었지.

 

남학생: 그렇다고 해도 실증주의 과학은 옳아. 실증주의 과학이 보수적이라고 해도, 이건 틀리지 않아. 우리는 경험에 의존하고 선험적인 것들을 배제해야 해. 우리는 오직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들만을 말해야 해. 과학은 그거야. 과학적 방법론은 그거야. 우리가 모든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결국 종교는 과학이 될 거야. 지구 밖에는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 있을지 모르지. (피식 웃는다) 아니, 뭐, 누가 알아? 정말 지구 밖에는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 있을지 모르지. (어떤 사람은 남학생을 이상하게 쳐다보고 지나간다) 어라, 내가 너무 크게 떠들었나? 하지만 나는 우리가 실증주의 과학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가 현실이 드러내지 않는 부분에 주목할 때, 우리는 종교를 세울 거야. 우리는 종교가 과학이라고 우길 거야. 누군가가 증명을 요구할 때, 종교는 그저 현실이 아직 신을 보여주지 않았을 뿐이라고 대답할 거야. 너는 이런 종교를 싫어하지. 네가 이런 종교를 싫어함에도, 왜 너는 실증주의 과학을 비판하니?

 

여학생: 나는 보수적인 실증주의 과학을 비판해. 그게 논의를 제한하기 때문이야. 보수적인 실증주의 과학은 장벽을 세우고 논의를 제한하지. 이건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오직 부분들만 파악해. 1차 세계 대전이 터지기 전에 어떤 사람들은 주장했어. "이제까지 인류 문명은 세계 대전을 터뜨린 적이 없다. 따라서 세계 대전은 터지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 후, 유럽은 1차 세계 대전을 터뜨렸지. 우리가 오직 경험만을 인정할 때, 우리는 이런 실수를 저질러. 기후 변화를 증명할 때, 자연 과학 역시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어. 외계 생명체를 판단할 때, 우리가 보수적인 실증주의 과학을 따른다면, 우리는 비슷한 실수를 저지를지 모르지. 이건 우리가 모든 선험적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야. 이건 우리가 형이상학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야. 이건 우리가 총체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뜻이야. 그래서 보수적인 실증주의보다 변증법과 역사 유물 이론은 훨씬 낫지. 변증법과 역사 유물 이론은 우리가 총체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말해.

 

남학생: 총체적인 사고? 그게 무슨 뜻이야? 왜 보수적인 실증주의가 총체적으로 사고하지 못하지? 실증주의와 변증법 모두 총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 내가 틀리나?

 

여학생: 음, 글쎄, 어떻게 내가 설명해야 할까? (턱을 몇 번 두드리고 손가락을 튕긴다) 좋아, 이건 다소 조악한 비유야. 하지만 이게 다소 조약한 비유라고 해도, 이렇게 나는 설명하고 싶어. 현대 인류 사회를 바라볼 때,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평화롭고 사회주의가 악랄하다고 생각해. 사람들은 유럽과 미국과 일본과 호주를 가리키고 자본주의가 평화롭고 부유하다고 말해. 사람들은 북한과 쿠바와 무너진 소비에트 연방과 사라진 중국 인민 공사와 혼란스러운 베네수엘라를 가리키고 사회주의가 가난하고 무분별하다고 말해. 사람들은 미국이 평화롭고 부유하다고 말하고 베네수엘라가 가난하고 무분별하다고 말해. 왜냐하면 현실이 그걸 드러내기 때문이야. 우리가 현실을 관찰할 때, 분명히 미국은 평화롭고 부유하고, 베네수엘라는 어지러운 파탄에 가까워. 현실은 그거야. 하지만 이건 '부분적인 현실'이야. 왜냐하면 그 자체로서 미국과 베네수엘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야.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미국과 베네수엘라가 뚝 떨어졌나?

 

남학생: 그건 아니야…. 아, 그래, 그건 아니야. 미국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학살했어.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학살하지 않고 토지를 빼앗지 않았다면, 미국은 나타나지 못했을 거야. 심지어 미국 백인들은 땅을 뺏기 위한 경주를 벌였지. 해가 질 때까지, 백인들이 열심히 달린다면, 백인들은 그들이 달렸던 영역을 소유할 수 있었어. 하지만 그건 그들의 땅이 아니었어. 그건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들의 땅이었지. 그렇게 미국은 나타났어. 그렇게 베네수엘라는 나타났어. 물론 베네수엘라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서로 다르지. 이로쿼이 부족 연합과 베네수엘라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서로 다르지. 하지만 유럽 백인들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과 남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모두 학살했어. 17세기 대항해 시대…. 아니, 아니야.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대항해 시대는 대항해 시대가 아니야. 이건 제국주의 용어야. 사실 대항해 시대는 식민지 수탈 시대야. 유럽 백인들에게 17세기는 대항해 시대이나,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17세기는 식민지 수탈 시대야. 게다가 유럽 여자들에게도 17세기는 대항해 시대가 아니지. 유럽이 자랑하는 탐험, 개척, 계몽, 과학은 오직 가부장적인 탐험, 개척, 계몽, 과학일 뿐이야.

 

여학생: 이야, 그건 꽤나 멋진 문구야. 그래서 형은 내 남자 친구지. (남학생의 볼에 입을 맞춘다) 어라, 왜? 아, 좀 어때. 내가 뭐 진하게 키스했나? 와, 다시 얼굴이 빨개지네? 있지, 가끔 나는 형이 연애 만화 속의 남자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어떻게 그렇게 홍조가 생길 수 있어? 아니, 감추지 마. 뭐가 부끄러워? (남학생의 손을 잡는다) 하하, 탈핵 시위 행진에서 누가 내 가슴을 만졌지? 그것보다 이건 별로 부끄럽지 않을 거야, 안 그래?

 

남학생: 또 그거야? 그때 나는 네 가슴을 그저 살짝 건드렸을 뿐이야. 변증법을 따르는 빨갱이 생태학 덕후 아가씨, 자꾸 현실을 왜곡하지 마세요.

 

여학생: 알았어. 알았어. 그렇다고 해도 나는 그저 형의 뺨에 살짝 입을 맞췄을 뿐이야. 이게 실례일까? 이게 민폐일까? 여기는 서점이고 조용한 장소야. 하지만 가벼운 키스는 나쁘지 않을 거야.

 

남학생: 그래, 그건 나쁘지 않을 거야. 나는 그저… 가끔 이렇게 네가 돌발적으로 행동할 때, 나는 그저 적응이 좀…. (머리를 긁는다) 솔직히 너를 사귀기 전에 나는 네가 적극적으로 행동할 거라고 생각했어. 너를 볼 때, 나는 '아, 이 사람은 꽤나 적극적일 거야.'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당황스러워. 나는 이런 것을 기대하지 않았어. 예전에 내가 사귀었던…. 아, 그래, 까놓고 말하지. 예전에 내가 사귀었던 여자들은 너와 많이 달랐어. 그들은 다소 조신했어. 아니, 아니. 그들은 나를 조심스럽게 대했어. 그들은 나를 경계했어. 너 역시 모르지 않겠지. 데이트 폭력들은 드물지 않아. 언제든 남자 친구는 성 폭행 범죄자가 될 수 있어. 하지만 나와 함께 뒷골목을 걷거나, 한적한 장소에 들리거나, 여관 주변을 지나간다고 해도, 너는 별로 경계하지 않아. 나는 네 남자 친구야. 하지만 언제든 나는 성 폭행 범죄자가 될지 모르지. 너는 그게 두렵지 않아?

 

여학생: 나는…. (잠시 머뭇거린 이후 입을 연다) 그래, 나는 두려워. 나 역시 그게 두려워. 그래서 언제나 나는 가방 속에 호신 장치들을 준비하지. (가방을 툭툭 두드리고 미소를 짓는다) 아, 그래, 이건 농담이야. 형에게 내 거짓말은 통하지 않아. 왜 내가 형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어쩌면 나에게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일지 모르지. 내가 이야기한 적이 있지? 이제까지 나는 남자 친구를 사귄 적이 없어. 형은 내 인생 최초의 남자 친구야. 만약 내가 형과 헤어진다면, 형은 내 인생 최후의 남자 친구일지 모르지. 그래서 내가 데이트 폭력들이 드물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나는 형을 경계하지 않는지 모르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솔직히 형과 만날 때, 나는…. 나는 내가 외계 행성에 왔다고 생각해. 형과 만날 때, 나는 내가 또 다른 세상에 왔다고 생각해. 내가 이런 것을 겪은 적이 없고, 내가 이런 것을 예상한 적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나는 그저 막연하게 남자 친구를 동경했을 뿐이야. 나는 연애를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어. 그래서 나는 성급한지 모르지.

 

남학생: 아이고, 아가씨, 이건 영광입니다. (고개를 꾸벅인다) 만약 내가 네 인생 최초이고 동시에 최후의 남자 친구라면, 그건 내가 절대 너를 떠나지 못한다는 뜻이 되겠지. 음, 이건 거의 협박에 가깝지 않을까?

 

여학생: 아니, 어떻게 그렇게 협박이라는 무서운 단어를…. (잠시 남학생을 째려본다) 형이 다른 사람에게 끌린다면, 나는 형을 자유롭게 보낼 거야. 나는 형을 좋아해. 하지만 나는 형에게 집착하고 싶지 않아. 게다가 사람 마음은 바뀔 수 있어. 어떤 관점에서 파스칼은 옳았어. 사람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야. 누가 알아? 형은 나보다 다른 어떤 사람과 훨씬 잘 어울릴지 모르지.

 

남학생: 그렇게 말하지 마.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 (입술을 삐죽거린다) 그래, 아무도 미래를 알지 못하지. 언젠가 우리는 헤어질지 모르지. 어쩌면 내일, 아니, 서점을 나가자마자 우리는 헤어질지 모르지. 하지만 이 순간에서 나는 너를 떠나고 싶지 않아. 나는 이런 대화가 좋고, 이런 분위기가 좋고, 네 사상과 성향이 좋아. 너는 급진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래서 나는 네가 좋아. 너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 너는 새로운 창문이야. 네가 있기 때문에, 나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 그래서 나는 네가 좋고, 나는 너를 떠나고 싶지 않아. 나는 계속 너와 함께 있고 싶어. (주변을 둘러보고 다소 목소리를 낮춘다) 아, 그리고 나는 네 가슴이 좋아. 나는 네 가슴이 정말 좋아. 가끔 네 가슴을 만지지 않고 참기는 너무 힘들어. (다시 주변을 둘러보고 목소리를 높인다) 야, 왜 너는 얼굴을 붉히지 않아? 왜 오직 나만 연애 만화의 남자 주인공이 되어야 해?

 

여학생: 응? 아니, 뭐. (목소리를 낮추고 소근거린다)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의 가슴이 좋다고 말할 때, 왜 여자 친구가 무조건 얼굴을 붉혀야 해? 오히려 나는 기분이 좋아. 형과 사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생각했어. '언젠가 이 남자는 내 가슴을 만지고 빨고 싶어할 거야.' 나는 그게 무슨 느낌일지 궁금했어. 이제까지 나는 누군가에게, 다른 남자에게 젖가슴을 내주거나 젖꼭지를 물린 적이 없어. 이제까지 내 젖가슴은 그저 가능성과 잠재력을 품었을 뿐이지. 하지만 형이 나타났기 때문에, 이제 내 젖가슴에게는 해야 할 일이 생겼어. 내 눈동자나 내 손이나 내 다리처럼. 내 젖가슴은 더 이상 그저 잠재력만을 품지 않아. 나는 이게 기분이 좋은 사실이라고 생각해. 부끄러운 기분은 없지 않으나, 나는 그것보다 다른 것이 크다고 생각해.

 

남학생: 다른 것? 다른 기분? 그게 뭐야? (여학생처럼, 다소 목소리를 낮추고 소근거린다) 그래, 솔직히 나는… 

나는, 아, 젠장, 

나는 네 젖가슴을 애무하고 네 젖꼭지를 빨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내가 할 때, 나는 네가 무슨 기분을 느낄지 알지 못해. 어쩌면 이건 다소 일방적이거나 불평등할지 모르지. 나에게는 젖가슴이 없어. 너에게는 젖가슴이 있지. 나는 너를 만질 수 있으나, 너는 나를 만지지 못해. 나에게 젖꼭지가 있다고 해도, 이건 그저 장식에 불과하지. 어떤 사람은 남자 젖꼭지에 몇몇 가치를 부여할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남자 젖꼭지는 거의 장식에 가까워. 진화 생물학은 남자 젖꼭지에 어떤 기능이 있다고 말할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나는 내가 장식품을 달았다고 생각해. 하지만 너는 아니야. 많은 예술가들과 과학자들이 찬탄하는 것처럼,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유모들이 그런 것처럼, 네 젖가슴은 생명력과 치유와 번성을 상징할 수 있어. 영화 속에서 맥스 로켓탄스키는 피를 젖으로 씻지. 모유는 피를 지워. 피 역시 생명력이나, 젖과 피는 달라. 소설 <드라큐라>를 봐. 드라큐라는 피가 생명이라고 말하나, 젖을 언급하지 않아. 피는 폭력과 상처를 나타낼 수 있으나, 모유는 폭력을 나타내지 않아. 모유는 번성과 생명력과 치유로 이어지지. 그래서 나는 다른 여자들이 아니라 네 젖가슴이 좋아. 네가 나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나는 너의 사상이 좋고 동시에 너의 몸이 좋아. 너의 젖가슴을 애무할 때, 나는 어떤 영성을 느껴. (머리를 긁는다) 어, 내가… 다소 웃기지? 이런 생각이 다소 황당하지? 젠장, 에코 페미니스트들은 내가 황당하다고 말할 거야.

 

 

["대그는 모유를 말해. 대그는 임신했고 씨앗들을 뿌리기 원하지. 대그는 모성적인 생명력을 가리키지 않을까?"]

 

 

여학생: 아니, 아니야. (남학생의 어깨를 차분하게 몇 번 토닥거린다) 어머니 자연을 이야기할 때, 반다나 시바는 수유를 언급했어.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꼭지를 물릴 때, 어머니는 기쁨을 느끼지. 형이 내 젖꼭지를 빤다면, 나 역시 기쁨을 느낄 거야. 나는 형을 좋아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젖꼭지를 빤다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가 내 젖꼭지를 물릴 수 있다면, 그건 따스하고 감미로울 거야. 나는 그게 정말 예쁜 장면이라고 생각해. (수줍게 웃는다) 비록 내가 형에게 모유를 먹이지 못한다고 해도, 내가 형에게 젖꼭지를 물린다면, 나는 어떤 영성을 찾을 수 있겠지. 형이 영성을 느낀다고 해도, 나는 그게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 왜 우리가 영성을 느끼지 말아야 할까? 반다나 시바는 영성을 중시해. 레이첼 카슨 역시 영성을 중시했어. 레이첼 카슨이 영성과 신비로움을 말했을 때, 영리 기업들은 레이첼 카슨이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말했어. 가부장적인 자본주의 경제는 신비로운 어머니 자연을 히스테리로 과소평가하고 모욕하지. 하지만 생태학에서 영성은 중요해. 반다나 시바가 어머니 자연에게서 영성을 찾는 것처럼, 우리는 모유와 젖가슴에서 영성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남학생: 어, 그래…. 고마워. (머리를 다시 긁는다) 솔직히 나는 여전히 어색하다고 느껴. 솔직히 이런 것을 말하기는 너무….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미치광이라고 욕하거나 황당무계하다고 느낄지 모르지. 나 역시 내가 황당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는 이런 영성을 말하고 싶었어. (어색하게 웃고 미소를 지운다) 하지만 이런 영성이 착각이 아닐까? 어쩌면 가부장 문화 속에서 우리는 모성과 모유와 젖가슴을 신화적으로 가공하는지 모르지. 가부장 문화는 이걸 이용해 여자가 현모양처라고 강조할지 모르지. 그건 억압적인 성 차별이 될 거야. 반다나 시바가 언급한 것처럼, 나는 모성과 젖가슴에서 영성을 찾고 싶어. 하지만 가부장 문화 속에서 내가 모성을 영성으로 연결한다면, 가부장 문화는 그걸 왜곡하고 현모양처를 강조할지 모르지. 가부장 문화는 여자가 젖을 먹이기 때문에 여자가 돌봄 노동에 특화되었다고 주장할 거야. 이건 성 차별이야. 가부장 문화는 여자들을 억압적으로 돌봄 노동들에 떠넘길 거야. 억압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여자들은 현모양처가 되어야 하고 억지로 파편화된 돌봄 노동들을 떠맡아야 해. 엄마들이 육아 우울증을 겪는다고 해도, 가부장 문화는 그걸 개무시하겠지. 이렇게 가부장 문화가 현모양처를 강조할 때, 여자들은 보조적인 존재가 되고, 남자들은 여자들을 소유하기 원할 거야. 그건 성 폭행 문화가 될 거야. 여자들은 데이트 폭력들을 두려워할 거야. 내가 다른 여자 친구들을 사귀었을 때, 그들이 나를 경계했던 것처럼.

 

여학생: 나 역시 동감해. 언제나 우리는 억압적인 가부장 문화를 의식해야 해. 그래서 우리가 젖가슴에서 영성을 찾을 때, 우리는 훨씬 멀리 바라봐야 해. 우리는 총체적으로 바라봐야 해. 우리는 오직 젖가슴과 영성만을 생각해서는 안 돼. 그건 보수적인 실증주의 과학과 다르지 않아.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회에서, 어떤 문명에서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꼭지를 물릴 수 있지?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착유 장면이 예뻐? 아니, 그건 억압이야. 어머니가 젖을 뿜는다고 해도, 그건 언제나 예쁘지 않아.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의 젖가슴을 애무할 때, 어떤 사회 속에서 여자 친구가 젖가슴을 내줄 수 있지? 사회 속에서 육아가 오직 여자의 개인적인 영역에 불과하나? 아니면 육아와 다른 돌봄 노동들이 사회적인가? 우리가 젖가슴과 영성을 연결할 때, 우리는 이런 것들을 파악해야 해. 우리 사회는 가부장적이지. 이런 사회 속에서 수유와 젖가슴 애무가 예쁜 장면이 되나? 수유가 예쁜 장면이 되기 위해 우리가 무슨 사회를 구성해야 하지? 그래서 총체적이고 동태적인 사고 방식은 중요해. 내가 다른 사람에게 내 젖꼭지를 물릴 때, 그 사람이 사회 구조를 사고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이 육아를 사회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원해. (남학생의 시선을 살핀다. 남학생은 고개를 끄덕인다. 여학생은 살풋 웃는다) 그래, 나는 그렇기 원해.

 

남학생: 음, 아, 정말…. (아래를 살짝 내려다본다) 갑자기 나는 정말 네 젖꼭지를 빨고…. 아니, 그만 하지. 내 아랫도리는 신호를 보내는 중이야. 우리가 이런 주제를 계속 이야기한다면, 내 아랫도리는 더 이상 참지 못할 거야. (두 손으로 두 뺨을 두드린다) 나는 열기를 좀 식혀야 해.

 

여학생: 와, 정말 좀 커졌어? 하하, 이건 꽤나…. (손을 뻗는다. 남학생은 질겁하고 여학생의 손을 밀어낸다. 여학생은 살짝 투덜거린다) 알았어. 알았어. 젠장, 나는 만지지 않을 거야. 여기가 대형 서점이라고 해도, 다행히 여기는 한적한 구석의 천문 과학 서가야.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렇게 우리는 이야기하지 못했겠지. 아, 뭐, 나는 CCTV를 상관하지 않아. (고개를 살짝 돌리고 다시 남학생을 바라본다) 어어, 저기에서 누군가가 오는 중이야. 내가 CCTV를 상관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이런 수유와 젖가슴 이야기보다…. 다시 우리는 '건실하고 과학적인' 화제로 돌아가야 할 거야.

 

남학생: 그래, 우리는 건실하고 과학적인 화제로 돌아가야 해. (목소리를 높인다) 어디까지 우리가 이야기했지? 아, 그래, 유럽 백인 '남자들'에게 17세기는 대항해 시대야. 반면,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17세기는 식민지 수탈 시대야. 게다가 유럽 여자들에게도 17세기는 대항해 시대가 아니지. 아까 내가 말한 것처럼, 유럽이 자랑하는 탐험, 개척, 계몽, 과학은 오직 가부장적인 탐험, 개척, 계몽, 과학일 뿐이야. 이런 가부장적인 탐험, 개척, 계몽, 과학 속에서 백인 중심주의와 자본주의와 미국 제국주의는 나타났어. 하늘에서 미국과 베네수엘라는 뚝 떨어지지 않았어. 폭력적인 식민지 수탈과 가부장적인 과학과 자본주의 시장 경제 속에서 미국과 베네수엘라는 나타났어. 베네수엘라가 혼란에 빠졌다고 해도, 그건 오직 베네수엘라만의 문제가 아니야. 과거는 현재를 형성했어. 따라서 현재를 파악할 때, 우리는 과거를 현재와 연결해야 해.

 

여학생: (남학생처럼, 목소리를 높인다) 딩동댕, 저는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이리 오세요, 집사 아저씨. (남학생의 어깨를 끌어당기고 남학생의 뺨에 입을 맞춘다) 왜? 자꾸 빼지 마. 나는 보상을 주고 싶어. 형이 정답을 말했기 때문에. 형은 총체적으로 사고했어. 보수적인 실증주의에게 과거는 현재가 아니야. 보수적인 실증주의는 오직 현재가 보여주는 것만을 찾기 원해. 과거는 현재가 아니고, 보수적인 실증주의는 과거를 배제하지. 하지만 과거는 현재야. 과거는 현재를 구성해. 과거 없이 현재는 없어. 과거에 사회주의자들이 실패했다고 해도, 실패자들로서 그들은 현재를 만들었어. 과거에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학살을 당했다고 해도, 피해자들로서 그들은 현재를 만들었어. 하지만 지배 계급은 이걸 인정하지 않아. 지배적인 관념은, 자본주의 체계는 과거를 배제하고 무조건 현재를 미래로 추진시키기 원해. 현재가 무조건 앞으로 나갈 때, 우리는 현재를 멈춰야 해. 사진 작가가 순간들을 포착하는 것처럼, 우리는 “현재여, 멈춰라!”라고 외쳐야 해. 우리가 현재를 멈추지 않는다면, 현재는 무조건 과거를 배제하고 앞으로 나갈 거야. 수많은 사람들은 과거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베네수엘라만을 탓하지. 그건 보수적인 실증주의야. 그건 망상이야. 그건 정말 형이상학이야. 우리가 오직 시각적인 것만 찾아야 한다면, 우리에게 철학과 과학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남학생: 그래서 너는 변증법에 기반하는 역사 유물 이론이 총체적이라고 생각해? (뺨을 문지르고 살짝 미소를 짓는다. 이내 미소를 지우고 말한다) 나는 역사 유물 이론이 정말 총체적인지 알지 못해. 하지만 분명히 실패자들로서 사회주의자들은 현재를 형성했어. 피해자들로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현재를 형성했어. 흔히 사람들은 유럽 백인들이 산업 자본주의를 형성했다고 말하지. 그건 오직 부분적으로만 옳아. 유럽 백인들은 혼자 산업 자본주의를 형성하지 않았어. 실패자들과 피해자들로서 사회주의자들과 아메리카 인디언들 역시 산업 자본주의를 형성했어. 아니, 사회주의자들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학살을 당하지 않았다면, 산업 자본주의는 나타나지 못했을 거야. 산업 자본주의가 나타날 수 있었다고 해도, 그건 신자유주의와 크게 달랐을 거야. 그래서 사회주의자들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목소리를 높일 수 있어야 해. 무엇보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가부장 문화는 여자들을 깔아뭉갰어. 산업 자본주의는 여전히 가부장 문화를 고수하지. 그래서 무엇보다, 다른 누구보다, 제3세계 여자들은 목소리를 높일 수 있어야 해.

 

여학생: 형은 역사 유물 이론이 어렵다고 말했으나, 나는 형이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해. 그렇게 형이 계속 생각한다면, 형은 총체적으로 주장할 수 있을 거야. 형은 부분적인 함정에 빠지지 않을 거야. (남학생의 팔을 두드린다) 아, 왜 이렇게 내 남자 친구가 멋질까?

 

남학생: 너무 칭찬하지 마. 나는 많이 헛갈려. 정말 내가 변증법에 기반하는 역사 유물 이론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글쎄, 나는 확신하지 못해. 노엄 촘스키가 비판한 것처럼, 나에게는 변증법을 이해하기 위한 유전 형질이 없는 것 같아. 너는 보수적인 실증주의 과학을 비판했으나, 솔직히 나는 실증주의 과학이 훨씬 좋다고 생각해. 변증법이나 아도르노 철학이나 이런 것들은 너무…. 이런 것들은 너무 말장난 같아. 노엄 촘스키는 변증법이 말장난이고 지식 사기라고 깐 적이 있어. 그래서 너는 노엄 촘스키를 싫어하지. 나는 노엄 촘스키에게 공감해. 물론 에코 페미니스트들은 노엄 촘스키가 여전히 백인 과학에 몰두한다고 말할지 모르지. 에코 페미니스트들은 백인 남자 과학을 경계해. 나 역시 백인 남자 과학이 나쁘다고 생각해. 하지만 실증주의가 무조건 가부장적인 백인 과학일까? 아니, 실증주의를 비롯해 변증법, 역사 유물 이론, 형이상학, 과학적 방법론, 에코 페미니즘,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은 공허한 말장난일지 모르지. 이해하니? 이해할 수 있어?

 

여학생: 나는 이해할 수 있어. 가끔 나 역시 이런 것들이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소설 <아머: 개미 전쟁>에서 소설 주인공은 말해. "나는 강화복에 동력(power)을 넣었다. 그래서 나는 권력(power)을 얻었다." 이건 언어 유희야. 언어는 장난칠 수 있어. 사무엘 베케트는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어. "비는 내린다. 아니, 비는 내리지 않는다." 이게 가능할까? 비가 내리고 동시에 비가 내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이건 불가능할지 모르지. 하지만 언어에서는 이게 가능해. 어슐라 르 귄이 "왕은 임신할 수 있다."고 썼을 때, 독자들은 충격을 느꼈어. 이것 역시 언어 유희에 가까워. 앤 레키가 쓴 소설 <사소한 정의>는 아주 장대한 말장난일지 모르지. 제국 황제 '그녀'가 정말 여자일까, 남자일까? 독자가 함선 장교를 계속 읽을 수 있음에도, 독자는 함선 장교 '그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지 못해. 이건 말장난이야. 맞아, 언어에는 말장난이 있어. 그래서 20세기 초반에 독일 사회 민주당은 '해방적인 식민지 수탈'을 지지했지. 어떻게 식민지 수탈이 해방적일 수 있지? 어이구, 한심한 사민주의 놈팽이들. (혀를 찬다) 유럽 사민주의 놈팽이들은 한때 로자 룩셈부르크가 독일 사회 민주당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해.

 

남학생: 독일 사회 민주당이 식민지 인민들을 배신했다고 해도, 독일 사회 민주당이 있었기 때문에 지식인으로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활동할 수 있었어. 너는 독일 사회 민주당을 무시하나, 독일 사회 민주당에도 어느 정도 장점들은 있어. 하지만 너는 그걸 인정하지 않지. 어휴, 아무리 네가 내 여자 친구라고 해도, 너는 정말 꿘녀야, 꿘녀.

 

여학생: 그래, 나는 꿘녀야. 그래서 형은 나를 좋아하지. 내가 틀렸어?

 

남학생: 네, 아가씨. 아가씨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살짝 미소를 띄운다) 그래서 저는 아가씨를 사모하고 동경합니다. 그래서 아가씨는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빨갱이 아가씨, 변증법과 역사 유물 이론 역시 그저 말장난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가끔 저는 철학이나 문학 비평이나 신학이나 다른 사회 과학들을 때려치우고 자연 과학에 편승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표정을 바꾸고 한숨을 쉰다) 하지만 자연 과학 역시 지배적인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해. 반다나 시바는 서구 자연 과학이 가부장적이라고 비판했어. 아무리 내가 자연 과학에 편승하기 원한다고 해도, 결국 그건 가부장적인 백인 과학일 거야.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을 자연 과학에 집어넣기 원해. 그들은 경제학이 수학이 되기 원해. 만약 경제학이 자연 과학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건 진짜 자연 과학이 아닐 거야. 이렇게 자연 과학은 객관적이지 못하고 중립적이지 못해. 결국 자연 과학 역시 말장난이 되지. (어떤 화성 개척 서적의 마지막 부분을 펼친다) 여기를 봐. 칼 세이건은 말했어. "화성에 화성인이 있다면, 화성의 주인은 화성인이 되어야 한다. 비록 화성인이 그저 미생물에 불과하다고 해도." 하지만 화성에서 인류가 미생물을 찾는다면, 정말 인류가 화성 개척 도시를 포기해야 할까? 아니, 개척 도시를 지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온갖 말장난들을 쏟아낼 거야.

 

여학생: 철학, 윤리, 도덕, 문학 비평, 신학, 경제학, 사회학, 생태학, 천문학, 여러 인문학들과 사회 과학들과 자연 과학들…. 모두 말장난일지 모르지. 그래서 나는 그 자체로서 경제학이나 문학 비평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나는 논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결국 논리가 뒷받침할 때, 현실 속에서 논리가 뒷받침할 때, 경제학이나 문학 비평 역시 힘을 얻을 수 있어.

 

남학생: 논리? 무슨 논리? 모든 학문과 지식이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논리가 존재할 수 있지? 심지어 자연 과학조차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과학을 포기해야 해? 그것 역시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지 않을까?

 

여학생: 그래서 계급 투쟁은 중요해. 나는 논리가 계급 투쟁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해. 계. 급. 투. 쟁.

 

남학생: 계급 투쟁에서 논리가 비롯할 수 있나? 어떻게?

 

여학생: 저번에 내가 설명한 것처럼, 로자 룩셈부르크와 유럽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 계급이 1차 세계 대전에 반대했을 때, 거기에는 말장난이 없었어. 그들은 목숨들을 잃었고 피를 흘렸어. 그들의 붉은 피는 생생해. 그건 말장난이 아니야. 그건 현실이야. 나는 이게 논리라고 생각해. 피지배 계급이 저항하고 피를 흘릴 때, 여기에서 논리는 나타나. 문학 비평? 경제학? 환경 사회학? 그것들이 중요해? 그것들이 정말 중요해? 왜 그것들이 중요하지? 현실이, 논리가 그것들을 뒷받침하기 때문이야. 계급 투쟁이 문학 비평을 뒷받침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문학을 비평할 때, 나는 계급 투쟁을 확인하고 밑바닥 계급을 확인하고 피의 저항을 확인해야 해. 그때 나는 '논리적으로' 문학을 비평할 수 있어. 계급 투쟁 없이, 문학 비평은 아무것도 아니야. 밑바닥 계급이 저항할 때, 문학 비평가가 그걸 외면한다면, 문학 비평은 그저 말장난에 불과할 거야. 나는 내가 말장난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밑바닥 계급이 투쟁할 때, 내가 거기에 주목하고 참가하기 원하기 때문이야.

 

남학생: 하지만 누가 밑바닥 계급이지? 어떻게 밑바닥 계급이 투쟁해야 하지? 흔히 사람들은 이론보다 실천이 우선한다고 말하지. 흔히 사람들은 이론이 실천을 뒤따른다고 생각해. 만약 어떤 계급 투쟁이 나타났을 때, 우리가 그게 계급 투쟁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게 올바른 계급 투쟁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가난한 여자들이 저항할 때, 그게 무조건 밑바닥 계급 투쟁이 될까? 결국 우리는 밑바닥 계급 투쟁을 '선택'해야 해. 우리가 선택할 때, 우리는 말장난에 빠질지 모르지. 나는 이게 불만이야. 우리는 계속 뭔가를 '선택'해야 해. 사실은 없어. 우리는 사실을 말하지 못해. 우리는 특정한 현상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게 사실이라고 간주하지. 그렇게 우리는 사실을 말하나, 솔직히 그건 사실이 아니야. 그건 우리가 특정하게 가치를 부여하는 현상이야. 그래서 팩트 폭격은 팩트가 아니야. 나는 이게 싫어. 결국 심지어 우리는 계급 투쟁조차 말장난이라고 간주해야 해.

 

여학생: 그래, 사후적으로 우리는 계급 투쟁을 선택하지. 하지만 러시아 주부들이 빵과 평화와 토지를 외쳤을 때, 그들은 그저 먹고 살기 원했을 뿐이야. 그들에게는 이론이나 철학이나 학문이 없었어. 먹고 살기 위해 러시아 주부들은 뭔가를 해야 했어. 이런 현상들은 계속 나타나. 이런 현상들은 세상을 바꿀 거야. 어떻게 이런 현상들이 세상을 바꿀지 나는 알지 못해. 나는 무슨 세상이 나타나는지 알지 못해.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고, 내가 의식하지 못한다고 해도, 먹고 살기 위해 사람들은 애쓰고, 그런 행위들은 세상을 바꿀 거야. 나는 그게 현실이고 그게 논리라고 생각해. 어쩌면 우리는 진짜 밑바닥 계급 투쟁을 정확히 규정하지 못할지 모르지. 그건 영원히 불가능할지 모르지.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가 고통을 겪고 누가 수탈하는지 계속 밝혀야 해. 문학 비평. 환경 사회학. 경제학. 생태학. 이런 것들은 이런 탐구에 기반해. 이런 탐구 없이, 이런 투쟁 없이, 문학 비평과 환경 사회학과 경제학과 생태학은 아무것도 아니야. 이해할 수 있어?

 

남학생: 하하하하하하하. (대답하지 않고 웃는다) 하하,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너는 내가 이해하기 원해? 솔직히 나는 뭐라고 네가 설명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 여전히 나는 이 모든 것이, 심지어 네 설명조차 말장난 같아.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네가 내 여자 친구임에도, 심지어 나는 네 설명조차 쓸데없는 말장난이라고 느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국 나는 뭔가를 '선택'해야 할 거야. 그리고 내가 뭔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제3세계 가난한 여자들을 '선택'하고 싶어.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너는 제3세계 여자들을 가장 많이 떠들어. 그래서 나는 너를 '선택'하겠어. 나는 너를 믿겠어. 적어도 나는 너에게 귀를 기울이고 싶어. 이건 최선이야. 나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이것 역시 그저 말장난에 불과할지 모르나, 나는 너에게 귀를 기울일 거야. 나는 이것을 '선택'할 거야.

 

여학생: 음, 나는 이해할 수 있어. 나는 뭐라고 형이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있어. 나 역시 그것을 고민했기 때문이야. 여전히 나 역시 그것을 고민해. 여전히 나는 혼란스러워. 형은 아주 많이 혼란스러울 거야. 형은 무엇이 옳은지 확신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느끼는 중이야. 이런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을지 모르지. 여전히 나는 이런 공허함을 느껴. 가끔 나는 모든 것이 공허하다고 느껴. 반다나 시바고 카를 마르크스고 나발이고, 그저 모든 것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해. 반다나 시바는 공허한 말장난이야. 카를 마르크스는 공허한 말장난이야. 형은 그렇다고 느끼지. 계속 형은 그렇다고 느낄지 모르지. 이런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아무리 반다나 시바가 아름답게 설명한다고 해도, 형은 그게 얼어죽을 헛소리라고 느낄지 모르지. 아무리 카를 마르크스가 거창하게 떠든다고 해도, 마르크스는 그저 구닥다리 턱수염쟁이 빨갱이에 불과할지 모르지. 빨간 산타 할아버지처럼, 빨갱이 마르크스 할아버지는 환상일지 모르지. 내가 열심히 주장한다고 해도, 형은 내가 그저 빨갱이 생태학 덕후이고 미친 꿘녀에 불과하다고 느낄지 모르지. 그렇다고 해도 형은 나에게 귀를 기울이지. 나는 그게 고맙다고 생각해. 고마워, 형. (팔짱을 끼고 다시 남학생의 뺨에 입을 맞춘다) 아아, 정말 내 남자 친구는 멋져.

 

남학생: 아, 망할, 자꾸 뽀뽀하지 마. 네가 계속 이런다면, 나는 밑도 끝도 없이 너를 믿을 거야. 나에게는 거리가 필요해.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을 때, 나는 너를 바라봐야 해. 아무리 우리가 연인이라고 해도,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해. (여학생의 어깨를 가볍게 친다) 사랑스러운 빨갱이 아가씨, 그만 달라붙으세요. 제 평정심은 무너질지 모릅니다. (여학생은 웃고 팔짱을 푼다. 남학생은 손을 뻗고 화성 개척 서적들을 살짝 두드린다) 우리는 너무 멀리 떠난 것 같아. 우리는 외계 생명체를 이야기하는 중이었어. 화성 생명체, 개척 도시, 바이오스피어 건물. 왜 갑자기 우리가 변증법과 계급 투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지?

 

여학생: 화성 생명체, 개척 도시, 바이오스피어 건물을 논의하기 위해 우리에게 과학적 방법론이 필요하기 때문이야. 과학적 방법론 없이 우리가 바이오스피어 건물을 논의할 수 있을까? 우리가 소행성에 야생 보호 구역을 조성할 수 있을까? 여기에 윤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을까? 이런 것들을 논의하고 싶다면, 우리에게는 과학이 필요해. 하지만 반다나 시바가 서구 자연 과학을 비판하는 것처럼,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을 자연 과학에 넣고 싶어하는 것처럼, 여전히 우생학이 여자를 현모양처로 왜곡하는 것처럼, 소비에트 연방이 식물학자 바빌로프를 간과한 것처럼, 언제든 과학은 삐뚤어질지 모르지. 외계 생명체를 논의하기 전에, 바이오스피어 건물을 논의하기 전에, 우리는 과학을 정립해야 해. 그리고 과학은….

 

 

["사람들이 평등하게 논의할 수 있을 때, 외계 바이오스피어 돔은 함정과 오류를 피할 수 있을 거야."]

 

 

남학생: …계급 투쟁에서 비롯할 거야, 그렇지?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는 바빌로프를 지원했으나, 소비에트 연방은 트로핌 리센코를 믿었지. 세계 대전은 후유증을 지우지 않고, 또 다시 세계 대전은 다가오고, 아무도 소비에트 연방을 도와주지 않고, 혼란은 극심해지고…. 이런 상황 속에서 소비에트 연방은 사이비 과학에 빠졌어. 자본주의가 극심한 혼란들을 일으킬 때,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과학을 버리지. 아니, 그 자체로서 자본주의가 모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안에는 근본적으로 사이비 과학이 있어.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 그래서 자본주의가 극심한 혼란들을 일으킬 때,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사이비 과학에 빠지지. 그래서 나는 기후 회의론과 성 차별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 우리는 과학을 찾아야 해. 과학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평등하게 합의할 수 있어야 해. 사회 구조가 평등해질 때, 우리는 과학을 연구할 수 있어.

 

여학생: 그래, 그거야. 화성에서 개척 도시를 짓기 전에, 외계 생명체를 논의하기 전에, 소행성에 야생 보호 구역을 조성하기 전에, 우리는 평등한 사회 구조를 이룩해야 해. 이렇게 억압적인 자본주의 경제와 가부장 문화 속에서 결국 과학은 사이비가 될 거야. 외계 바이오스피어 돔보다 평등한 사회 구조는 훨씬 중요해.

 

[여학생과 남학생은 계속 논의한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천문 과학 서가에서 벗어나고 사회 과학 서가로 향한다. 여학생과 남학생은 여러 서적들을 쳐다본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프 트로츠키부터 반다나 시바와 제3세계 생태 마을들과 21세기 인디언 사회주의까지, 여학생과 남학생은 여러 서적들을 펼치고 읽고 이야기한다. 낮고 잔잔한 배경 음악은 계속 서점의 빈 공간들을 맴돌고, 사람들 사이를 누비고, 책들 속으로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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