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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지구 생태계 붕괴 본문

감상, 분류, 규정/자연과 문명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지구 생태계 붕괴

OneTiger 2018. 7. 13. 19:06

[도입부를 압도하는 초거대 농장들. 거대 인공 생태계로서 이 영화는 시작합니다.]



전작이 그랬던 것처럼, 배경 설정을 알려주는 설명문으로서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시작합니다. 이 설명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뭘까요. 당연히 레플리컨트나 블레이드 러너나 월레스라는 단어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생태계라는 단어를 고르고 싶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자연 생태계는 붕괴했고, 진짜 꽃이나 나무나 동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영화는 거대한 태양열 발전기들과 유독한 애벌레 농장들을 보여줍니다. 인조인간이나 거대 마천루나 다른 무엇을 보여주기 전에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어떻게 생태계가 무너졌고 어떻게 사람들이 먹고 사는지 보여줍니다.


게다가 암울한 지구 환경을 강조하는 수단으로서 꾸준히 나무나 꽃, 여러 동물들은 등장합니다. 따라서 자연 생태계에 흥미를 기울이는 독자는 이 영화에서 몇몇 특징을 뽑아낼 수 있겠죠. 영화 속에서 자연 생태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인류 문명은 잘 먹고 잘 삽니다. 비록 자본주의 디스토피아가 극단에 다다랐으나, 인류 문명 자체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자연 생태계가 붕괴할 때 인류 문명이 함께 붕괴할 거라는 흔한 설명을 부정하는 것 같습니다.



나무들이 없다고 해도, 야생 동물들이 없다고 해도, 인류 문명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비록 상황은 암울하게 보이나, 인류 문명은 계속 번창하는 중입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자연 생태계를 없앴으나, 대신 첨단 과학 기술을 이용해 체계를 유지하는 중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광경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연 생태계가 총체적으로 붕괴한다고 해도 인류 문명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주장할 겁니다. 근대 이전까지 인류 문명은 자연 생태계와 떨어지지 못했으나, 첨단 과학 기술 덕분에 이제 인류 문명은 자연 생태계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이미 인류는 외계 행성들을 개척했습니다. 개척 행성들은 오프 월드라고 불리죠. 거대 기업 사장 월레스는 이런 오프 월드들을 계속 늘리고 싶어합니다. 월레스는 인간에게 별들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인류가 외계 행성들을 계속 개척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죽은 행성에서 인류는 먹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은 행성에서 먹고 살 수 있다면, 죽은 지구에서 인류는 똑같이 먹고 살 수 있겠죠. <블레이드 러너 2049>에는 오프 월드들이 직접 나오지 않습니다. 설사 감독이나 작가들이 그걸 구상했다고 해도, 영화에는 오프 월드들이 나오지 않아요. 관객들은 오프 월드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하죠.



하지만 분명히 인류는 오프 월드들을 개척하는 중입니다. 따라서 행성 개조(테라포밍) 및 행성 개척 기술은 상당히 발달했을 겁니다. 오프 월드를 개척할 수 있는 인류가 죽은 지구에서 살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게다가 월레스는 엄청나게 많은 인조인간들을 양산했습니다. 그런 인조인간들은 오프 월드들을 개척합니다. 영화 속에서 인조인간들은 평범한 (천연적인 진짜) 인간보다 훨씬 똑똑하고 강합니다. 어쩌면 치명적인 극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흔히 우리는 위험한 작업 현장에 로봇을 투입합니다. 영화 속의 인조인간들은 그런 로봇과 비슷할지 모릅니다. 그들은 위험한 개척 현장에 뛰어들 테고, 안전한 거주지를 지을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비록 지구에서 인류는 인조인간들을 자유롭게 활용하지 못하나, 그런 막대한 노동력은 죽은 지구를 상관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첨단 과학 기술은 죽은 지구를 상관하지 않고, 인류를 계속 먹여살릴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미래가 현실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자연 생태계? 그게 정말 중요할까요? 그것 따위가 없다고 해도, 첨단 과학 기술이 존재한다면, 인류 문명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연 생태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첨단 과학 기술은 인류 문명을 구원할 테고 인류 문명을 유지시킬 겁니다. 더 나가서 첨단 과학 기술은 별들의 시대를 열 겁니다.



언뜻 이런 주장은 옳을지 모릅니다. 첨단 과학 기술은 혁신을 거듭하고, 자연 생태계는 더 이상 필수 조건이 아닐지 모릅니다. 인류 문명은 스스로 순환 체계를 만들고, 자연 생태계 없이 살아남을지 모릅니다. 사실 이런 주장들은 드물지 않습니다. 기후 변화를 논의하는 여러 서적들은 환경 오염이 인류 문명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서적들은 기후 변화가 크나큰 재앙이 될 거라고 경고하나, 어떤 서적들은 첨단 과학 기술이 해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서적들은 과학 기술 덕분에 인류 문명이 위기를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과학 기술은 인류 문명을 유지할 수 있겠죠. 그런 주장들은 흔합니다. 환경 사회학 논의들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이런 주장들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주장에 크게 두 가지 함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첨단 기술을 맹신하는 의견은 위험합니다. 분명히 르네상스 이후, 서구적인 근대화 이후, 과학 혁명은 인류 문명을 엄청나게 바꾸었습니다. 과학 혁명은 인류 문명에게 빛을 가져주었습니다. 그걸 간과한다면, 그건 멍청한 생각일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과학 기술은 계속 인류 문명에게 빛을 줄 겁니다.



[나무 없는 지구, 자연 생태계 없는 지구에서 사람들이 제대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미래에 무슨 과학 기술이 인류 문명에게 빛을 줄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기술적 특이점 덕분에 아주 현명하고 도덕적인 인공 지능이 나타날 수 있을까요? 그런 인공 지능이 세계 정부를 이끈다면, 인류 문명이 훨씬 진보적인 단계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우리는 똑똑한 개조 동물들과 함께 어울릴지 모릅니다. 똑똑한 개조 동물들은 우리에게 연대와 돌봄을 가르치고, 우리는 서로 돌보는 자애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지 모르죠. 아니면 우리는 아예 우리의 신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점차 우리가 인간에게서 멀어진다면, 우리는 인간보다 더 나은 생물종이 될 테고,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죠. 이런 발상들은 너무 황당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르네상스 시대 과학자들이 총명하다고 해도, 그들은 인터넷이나 태블릿 컴퓨터나 유전자 조작 작물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몇 백 년이 지난다면, 우리가 절대 알지 못하는 어떤 과학 기술이 우리를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끌지 모릅니다. 아무도 그걸 예측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하드 SF 작가들이 머리를 굴린다고 해도, 그들 역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SF 장르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블레이드 러너>가 미래를 보여주는 대단한 영화라고 칭송합니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에는 태블릿 컴퓨터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블레이드 러너 2049> 역시 태블릿 컴퓨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상하죠. 태블릿 컴퓨터가 없는 미래 세계. 현실 속에서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태블릿 컴퓨터를 이용함에도, <블레이드 러너 2049>의 미래 세계에는 태블릿 컴퓨터가 없습니다. SF 장르는 절대 미래를 예측하는 장르가 아닙니다. SF 작가들은 그저 현실적인 시각을 미래에 투영할 뿐입니다. 그런 방법이 현실을 색다르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죠. 그건 아주 재미있고 유의미한 행위이나, 그건 미래를 예측하는 시각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현실이죠. 아무도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첨단 과학 기술은 꾸준히 인류 문명에게 빛을 전달했고, 아마 앞으로 계속 그럴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모르는 미래 과학 기술은 우리를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끌지 모릅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첨단 과학 기술이 우리를 이끈다고 해도, 그런 과학 기술이 아주 시의적절하게 인류 문명의 위기를 구할 수 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아무도 그걸 장담하지 못합니다.



과학 기술은 인류 문명을 다른 세상으로 이끌 겁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일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무슨 과학 기술이 언제 인류를 이끌지 아무도 그걸 알지 못합니다. 과학 기술과 진보 자체는 분명한 사실이나, 아무도 그것의 구체적인 흐름을 장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 기술을 맹신해서는 안 됩니다. 과학 기술은 오직 편리한 도구일 뿐이고, 우리를 이끄는 구원자가 아닙니다. 흔히 SF 팬덤은 이걸 과학적인 만능주의라고 부르죠. 저는 이게 과학 광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가 인류를 구원한다고 믿는 예수쟁이들처럼, 과학 광신도들은 과학이 인류 문명을 구원할 거라고 믿습니다. 이런 믿음은 예수쟁이보다 훨씬 위험할지 모릅니다. 예수(역사적인 예수가 아니라 신화적인 예수)는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적어도 근거는 없죠.


하지만 과학 기술은 존재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과학 기술은 인류 문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입니다. 그래서 과학 광신은 예수쟁이보다 훨씬 위험할지 모릅니다. 게다가 '과학'이라는 단어 때문에 과학 광신은 일반적인 종교와 대비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학 광신도는 예수쟁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과학 기술은 인류를 이끄는 구원자가 아닙니다. 그건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어떻게 이 도구가 발전할지 함부로 예측하지 못해요.



설사 과학 기술이 인류 문명을 위기에서 구한다고 해도, 여전히 커다란 문제는 존재합니다. 사회 구조 자체가 억압적이고 착취적이기 때문입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보여주는 것처럼, 자연 생태계가 붕괴한다고 해도, 인류 문명은 살아남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인간적인 삶이 아닙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암울하고 힘겨운 일상들을 보여줍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빈곤에 처하고, 제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그저 일부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지배 계급은 그걸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주지 않습니다. 지배 계급은 그걸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더 정확히 말한다면)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확장하기 위해 과학 기술을 이용합니다.


현실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지구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굶주립니다. 최저 빈곤선에서 인류의 절반쯤은 살아갑니다. 왜 그들이 굶어죽을까요? 왜 최저 빈곤선에서 그들이 벗어나지 못할까요? 과학 기술이 모자라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요. 소수 지배 계급이 과학 기술을 독차지하고,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위해 과학 기술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과학 기술이 인류 문명을 유지한다고 해도, 착취와 억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고단하고 힘겨운 도시 생활. 이것 역시 삶입니다. 하지만 이게 인간적인 삶일까요.]



문제는 생존 그 자체가 아닙니다. 생존할 수 있다고 해도, 사람들이 억압을 받고 착취를 당한다면, 그런 생존은 가치를 잃을 겁니다. 노예가 되기 위해 사람은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스스로 노예가 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뭐, 누군가는 사랑의 노예가 되기 원할지 모르죠. (아니, 많은 사람들은 사랑의 노예가 되기 원하겠죠.)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위해 비참하게 살아가기 원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자꾸 사람들을 착취하고 빈곤층을 늘립니다.


뛰어난 과학 기술이 나타난다고 해도, 그건 모두에게 혜택을 주지 못합니다. 과학 기술이 생태적인 재앙을 막는다고 해도, 그건 모두를 돕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빈곤층은 생태적인 재앙에 직면해야 할 겁니다.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빈곤층을 만들고, 빈곤층을 착취하고, 생태적인 재앙을 부르고, 빈곤층은 그런 생태적인 재앙에 직면해야 합니다. 과학 기술은 인류 문명을 구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은 대규모 착취나 억압을 끝장내지 못합니다. 설사 그런 기술이 있다고 해도, 지배 계급은 그걸 이용하지 않을 겁니다. 그걸 이용한다면,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지배 계급이 권력을 잃기 때문입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처럼 인류 문명이 살아남는다고 해도, 여전히 커다란 문제는 존재합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들먹이고 과학 기술을 예찬한다면, 저는 그 사람에게 다시 생각하라고 반박하겠습니다. 과학 기술은 도구입니다. 과학 기술을 평등하게 이용하고 싶다면, 먼저 우리는 평등한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절대 평등한 사회 구조가 되지 못합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윤입니다. 이윤 없이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윤을 추구할 수 있다면, 빈곤층이 고통을 받거나 생태적인 재앙이 닥쳐온다고 해도, 자본주의는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아니, 이윤을 추구할 수 있다면, 자본주의는 생태적인 재앙을 열광적으로 환영할 겁니다. 그래서 기후 변화는 문제가 됩니다.


솔직히 누가 <블레이드 러너 2049> 같은 세상에서 살기 원할까요? 어쩌면 누군가는 그런 세상이 멋지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착취하기 때문에 그런 세상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자본주의 디스토피아와 생태적인 재앙을 보여줍니다. 비록 이 영화는 자본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나, 저는 관객들이 훨씬 거시적인 사변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생태적인 SF 영화일까요? 그런 부분이 존재하겠으나, 생태적인 재앙은 핵심 주제가 아닐 겁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붕괴한 자연 생태계를 강조하는 이유는 진짜와 가짜를 가리기 위해서겠죠.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진짜와 가짜를 뒤섞는 영화입니다. 자연 생태계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 세상에 진짜 나무와 진짜 꽃과 진짜 꿀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꿀벌을 찾았다고 해도, 그 사람은 그게 진짜 꿀벌인지 의심할 겁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는 그런 의심들이 가득합니다. 꽃이나 꿀벌은 그런 의심을 부추기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각종 인조인간이나 인공 지능이 도시를 반영한다면, 꽃이나 꿀벌은 야생이나 환경을 반영할 겁니다.


관객들은 도시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고, 야생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겁니다. 인조인간이나 인공 지능이 개체로서 진짜와 가짜를 가린다면, 꽃이나 꿀벌은 환경으로서 진짜와 가짜를 가립니다. 관객들은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 혼란스러운 개체들을 만납니다. 그렇게 관객들은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구분합니다. 이는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보여주는 핵심 주제이나, 저는 이걸 길게 떠들지 않겠습니다. 이미 위에서 길게 떠든 것처럼, 저는 그런 것보다 붕괴된 자연 생태계와 행성 공학을 이야기하고 싶군요.



그렇다고 해도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영화 주인공 케이입니다. 전작 <블레이드 러너>에서 영화 주인공 데커드는 인조인간들을 추적하고 제거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과 인조인간이 싸우는 구도를 보여줍니다. 반면,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인조인간과 인조인간이 서로 싸우는 구도를 보여줍니다. 특히, 전투 인조인간은 인간보다 훨씬 강하고 빠르고 똑똑합니다. 그래서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블레이드 러너>보다 훨씬 화끈하고 박진감이 넘칩니다. 개인적으로 <블레이드 러너>보다 <블레이드 러너 2049>가 훨씬 시원시원하더군요. <블레이드 러너>는 너무 느리고 갑갑합니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이런 설정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은 인조인간이 로봇이라고 오해할지 모르겠습니다. 인조인간들은 벽을 뚫고, 빠르고 정확하게 사격하고, 온갖 부상들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정말 로봇 같아요. 하지만 그들은 금속 기계가 아니라 생명체죠. 아주 강인한 인공 생명체. 붕괴한 자연 생태계와 강인한 인공 생명체. 저는 두 가지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흠, 인류가 인공 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면, 인공 생태계 역시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이건 인공 꿀벌들일지 모릅니다. 이게 인공 생태계를 뜻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오프 월드 설정이 좀 궁금합니다. 어떻게 인류가 외계 행성들을 개척할까요? 레플리컨트 같은 인공 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면, 인류는 인공 생태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붕괴한 자연 생태계와 새로운 인공 생태계를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런 것들이 흥미로운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그런 발상을 구현할 수 있는 설정을 갖추었고요.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부분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지 않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생태적인 재앙보다 정체성 혼란에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나무와 꽃과 꿀벌이 중요하게 나옴에도, 생태적인 설정은 그저 배경 설정에 그치고 맙니다. 저는 이런 점이 다소 아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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