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불평등한 사회와 불평등한 재해 본문
<공포의 제국>은 마이클 크라이튼이 쓴 소설입니다.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소설로서 악명이 높죠. 이 소설에서 어떤 인물은 온실 가스가 인류와 자연 생태계에 매우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기온이 올라가면 식물들이 더 잘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단 이 소설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하게 주장합니다. 기온이 더 올라가면, 영양분을 생성하기 위해 식물들은 더 많은 열을 이용할 수 있고, 덕분에 식물들이 더 잘 자랄 테고, 마침내 작물 생산량 역시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기후 변화가 농업계에 유리할 거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기후 변화가 다른 대재앙을 초래할지 모르나, 적어도 식량 생산량이 늘어날 거라고 주장해요. 특히 북쪽 지역(한대 지역)은 온실 가스의 혜택을 톡톡히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북쪽 지역의 기후가 온화해진다면, 농작물의 생산 한계선은 더 북쪽으로 올라가겠죠. 그걸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있고요. 그래서 북쪽 지역 사람들은 기후 변화를 반긴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과거 사진들과 현재의 사진을 비교한다면, 식물들의 생장 한계선이 점점 더 북쪽으로 올라감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식물들이 북쪽에서도 많이 자랄 수 있다면, 이 식물들이 온실 가스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후 변화가 그만큼 늦어질지 모릅니다. 북쪽 지역에서 식물들이 자랄 수 있다면, 어쨌든 그건 다행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과학자가 여기에 찬성하지 않는 듯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기후 변화가 곡물 생산량을 더욱 줄일지 모른다고 주장합니다. 기후 변화는 한대 지역의 식물들을 키울 수 있으나, 반대로 가뭄과 사막화 같은 현상을 늘리기 때문이죠. 가뭄이 잦아지고 사막 지역이 늘어난다면, 당연히 식물들은 그 지역에서 자라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가뭄이 더 잦아지고 사막이 더 넓어진다면, (북쪽 지역의 곡물 생산량이 늘어난다고 해도) 전반적인 곡물 생산량은 떨어질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식량 재난이 당장 닥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렇게 주장하는 과학자들 역시 곡물 생산량이 당장 대폭 떨어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장기적으로 곡물 생산량이 떨어질지 모르고, 식량 시장이 상당히 불안정해질지 모르죠. 게다가 현재 상황이 증명하는 것처럼 이런 불안정은 강대국보다 약소국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겁니다.
예전에 몇 번 말한 것처럼 재해는 모두에게 동등하게 작용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피해를 덜 입고, 오히려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누군가는 극심한 피해를 입습니다. 계급 구조는 이런 피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사막화가 진행되는 가난한 지역은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합니다. 이런 지역은 자급자족을 하지 못하고 식량 경쟁력이 없어요. 다른 산업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식량을 수입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죠. 만약 기후 변화가 피해를 미친다면, 이런 지역은 더욱 큰 고난에 처할 겁니다.
강대국들은 기후 변화에 쉽게 대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런 지역들은 아예 대처조차 하지 못할 겁니다. 문제는 저렇게 가난한 지역들이 온실 가스를 별로 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생산 설비가 별로 없기 때문에 온실 가스를 뿜지 않음에도 가난한 지역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후 변화는 그저 불운이 아니라 착취이자 수탈입니다. 강도가 사람을 해치고 물건을 빼앗는 것처럼 기후 변화는 범죄입니다. 그래서 기후 정의라는 용어가 있죠.
저는 저런 과학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관련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논문을 읽고 직접 평가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런 논문이 실리는 배경(사이언스, 네이처, 피스)의 권위를 고려한다면, 저런 논문이 완전히 틀리다고 하지 못하겠죠. 하지만 과학자들이 경고해도 사람들은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거나 그저 혀를 찰 뿐입니다. 폭염 경보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날씨가 너무 무덥다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이건 불평으로 그칠 문제가 아닙니다. 여유로운 중산층은 불평으로 그칠 수 있을 겁니다. 중산층은 대처 방법이 있겠죠.
하지만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가 그들을 돌봐주지 않습니다. 밑바닥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저 밑바닥 사람들일 뿐입니다. 야생 동물들은 그보다 훨씬 더하고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당장 기후 변화를 늦출 수 있도록, 적어도 약자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우리는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할 겁니다. 대량의 온실 가스는 그냥 저절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처럼 산업 활동 때문에 생겼죠. 그리고 현재의 산업 활동은 자본주의 체계에서 비롯합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계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후 변화 역시 늦추지 못할 겁니다.
<공포의 제국> 같은 소설은 저런 사실을 지적하지 않죠. 마이클 크라이튼은 그저 기후 변화가 환경 운동가들이 만든 음모론에 불과하고 나불거릴 뿐입니다. 자본주의 체계가 무슨 범죄를 저지르고 무슨 폭력을 휘두르는지 절대 지적하지 않아요. 가끔 이 양반이 정말 <쥬라기 공원>에서 과학의 상업화를 걱정했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듭니다. (비록 <쥬라기 공원>이 얄팍한 테크노스릴러라고 해도, 과학의 상업화를 꾸짖는 주장은 나쁘지 않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