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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부엌 괴수>와 재규어, 풍요로운 모성 본문

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부엌 괴수>와 재규어, 풍요로운 모성

OneTiger 2020. 11. 12. 20:05



짧은 동영상 <부엌에 괴수가 있어요>는 그린피스 캠페인입니다. 이 캠페인 동영상(링크)에서 소년은 부엌에 들어가고 무서운 괴수를 만납니다. 이 괴수는 육중하나, 동시에 이 괴수는 날렵하고 은밀합니다. 꼬리는 길다랗고 유연합니다. 발톱들은 날카롭고 무시무시합니다. 장미꽃 같은 얼룩무늬들은 털가죽을 장식합니다. 소년은 묻습니다. "괴수야, 왜 부엌에 들어왔지? 무엇을 원하지?" 괴수는 정체를 드러냅니다. 사실 이 괴수는 재규어입니다. 육중하고 은밀한 체구, 길다랗고 유연한 꼬리,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발톱들, 장미꽃 같은 얼룩무늬들은 재규어, 열대 밀림 야생 동물입니다.

 

왜 야생 동물이 부엌에 들어왔나요? 부엌에 냉장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냉장고 안에는 육류들이 있습니다. 재규어는 불쌍한 표정을 짓고 하소연합니다. 육류들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목장들을 늘리기 원합니다. 목장들을 늘리기 위해 사람들은 열대 밀림들을 밀어냅니다. 열대 밀림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생물 다양성은 함께 사라집니다. 재규어를 비롯해 야생 동물들은 터전들을 잃습니다. 소년은 재규어를 동정합니다. 육류 식품들이 열대 밀림들을 밀어내고 생물 다양성을 없애기 때문에, <부엌에 괴수가 있어요>는 올바르게 소비하고 건강한 (채식) 식단들을 추구하자고 권유합니다.



제목과 달리, <부엌에 괴수가 있어요>는 괴수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재규어는 괴수가 아닙니다. 재규어는 익스톨이 아니고 제노모프가 아닙니다. 하지만 재규어와 제노모프는 교집합을 형성합니다. 재규어와 제노모프는 포식자입니다. 양쪽은 날카로운 이빨들과 발톱들을 자랑합니다. 재규어와 제노모프는 은밀하고 날렵합니다. 양쪽은 매복하고 목표를 기습합니다. 위장하기 위해 재규어에게는 얼룩무늬들이 있고, 제노모프는 우주선 실내 구조와 비슷합니다. 재규어와 제노모프는 야만적입니다. 양쪽에게는 문명이 없습니다. 재규어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제노모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규어는 괴수가 아니나, 재규어와 제노모프는 교집합(포식자, 날카로운 이빨들과 발톱들, 은밀함과 날렵함, 야만성)을 형성합니다. 양쪽이 교집합을 형성하기 때문에, <부엌에 괴수가 있어요>는 재규어를 괴수라고 포장합니다. 어둠 속에서 커다란 재규어가 은밀하게 움직이고, 꼬리를 휘두르고, 날카로운 발톱들을 드러낼 때, 재규어는 무서운 괴수 같습니다. 만약 이 상황에서 재규어가 소년을 덮치고 물어뜯는다면, 이건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재규어와 제노모프가 비슷하다고 해도, 제노모프보다 재규어는 선배입니다. 제노모프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재규어는 존재했습니다.



제노모프는 SF 설정입니다. 프레데터가 SF 설정인 것처럼, 제노모프는 SF 설정입니다. 프레데터와 달리, 제노모프에게는 첨단 장비들이 없으나, 프레데터와 에일리언은 SF 장르에 속합니다. 만약 에일리언이 SF 설정보다 판타지 설정이었다면,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어색했을지 모릅니다. 프레데터와 에일리언이 SF 설정이기 때문에, 양쪽은 투닥투닥 싸웁니다. 하지만 언제 SF 장르가 나타났나요? 19세기 후반 서구 근대화에서 SF 장르는 비롯했습니다. 19세기 후반 서구 문학 작가들이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을 쓰기 전에, (메리 셸리를 비롯해) 사람들은 SF 장르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서구 근대화에서 제노모프와 프레데터는 비롯했습니다. 서구 근대화는 제노모프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서구 근대화가 나타나기 전에, 제노모프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재규어는 존재했습니다. 제노모프와 프레데터와 상관없이, 메리 셸리와 허버트 웰즈와 상관없이, 아주 오래 전부터, 이미 재규어는 존재했습니다. 아무리 재규어와 제노모프가 교집합을 형성한다고 해도, 제노모프보다 재규어는 어마어마한 선배입니다. 제노모프는 재규어에게 예의를 갖추고 선배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게 <프랑켄슈타인>이 선배님인 것처럼, 제노모프에게 재규어는 선배님입니다.



재규어는 비단 선배일 뿐만 아니라 생산 조건일 수 있습니다. 재규어는 포식자입니다. 재규어를 비롯해 여러 포식자들은 커다란 체구, 날카로운 이빨들과 발톱들, 은밀함과 날렵함, 야만성을 드러냅니다. 서구 근대화가 SF 장르를 만들기 전에, 이 장르에서 에일리언이 비롯하기 전에, 여러 포식자들은 무서운 특성들을 드러냈습니다. 인류 문화는 이 특성들을 조합했고 괴수들을 이야기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여러 신화들과 전설들은 괴수들을 이야기했는지 모릅니다. 신화들과 전설들이 이어지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은 신화들과 전설들에게 근대 과학을 덧붙이고 우주 괴물을 만듭니다.

 

여러 포식자들은 신화들과 전설들로 이어지고, 신화들과 전설들은 SF 괴물로 이어집니다. 이건 재규어를 비롯해 여러 포식자들이 SF 괴물을 위한 생산 조건이라는 뜻입니다. 서구 근대화에서 사이언스 픽션과 제노모프가 비롯하기 전에, 이미 유구한 신화들은 괴수들을 이야기했고, 사이언스 픽션은 유구한 괴수들에게 서구 근대화를 덧붙였고 우주 괴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재규어는 그저 선배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제노모프에게 재규어는 비단 선배님일 뿐만 아니라 생산 조건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지구에서 포식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제노모프 역시 나타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재규어와 제노모프는 교집합을 형성하나, 이건 그저 단순한 유사성에 불과하지 않은지 모릅니다. 제노모프에게 재규어는 어마어마한 선배입니다. 재규어는 제노모프를 위한 생산 조건입니다. 만약 이 지구에서 재규어를 비롯해 포식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제노모프를 비롯해 SF 괴물들은 나타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재규어가 제노모프 생산 조건이기 때문에, 재규어와 제노모프는 교집합을 형성하고, <부엌에 괴수가 있어요>는 재규어가 커다랗고 은밀하고 무서운 괴수라고 포장할 수 있습니다. 영화 <에일리언>이 "우주선에 괴물이 있어요!"인 것처럼, 재규어는 무서운 괴수가 됩니다.

 

하지만 제노모프와 달리, 재규어는 진짜 괴수가 아닙니다. 영화 <에일리언>은 어떻게 제노모프가 나타났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제노모프는 생체 병기인지 모릅니다. 어떤 지적 문명은 제노모프를 인위적으로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제노모프와 달리, 재규어는 인위적인 생체 병기가 아닙니다. 인류 문명은 재규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누가 재규어를 만들었나요? 이건 문학적인 표현이나, 어머니 자연은 재규어를 키웠습니다. 지구 생물 다양성에서 재규어는 비롯했습니다. 인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류는 스스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구 생물 다양성에서 인류는 비롯했습니다.





만약 지구 생물 다양성이 진화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만약 인류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저는 이 블로그를 개설하지 못했을 테고 재규어가 생산 조건이라고 분석하지 못했을 겁니다. 지구 생물 다양성에서 인류가 비롯했기 때문에, 생물 다양성은 원초적입니다. 인류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유구한 생물 다양성이 진화했기 때문에, 생물 다양성은 원초적입니다. 그래서 생물 다양성에게는 까마득한 영성이 있습니다. 이건 지구 생물 다양성이 종교라는 뜻이 아닙니다. 종교에서 창조주에게 영성이 있는 것처럼, 이건 생물 다양성에게 신성한 영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마가렛 앳우드는 <홍수의 해>를 썼습니다. 이 환경 아포칼립스 소설은 신의 정원사들을 보여줍니다. 신의 정원사들은 종교 집단이나, 그들은 진짜 종교 집단보다 생태주의 생존자들에 가깝습니다. 지구 생물 다양성에게 까마득한 영성이 있기 때문에, 신의 정원사들은 종교 집단과 비슷합니다. 신의 정원사들이 지구 생물 다양성을 숭배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생물 다양성을 숭배할 수 있습니다. 영성을 느끼기 위해 우리가 종교를 창시해야 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종교 없이, 우리는 과학을 연구하고 영성에 젖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엌에 괴수가 있어요>는 화려한 지구 풍경을 보여줍니다.



<부엌에 괴수가 있어요>는 무서운 괴수를 보여주나, 마지막 장면은 장대하고 화려한 지구 생물 다양성입니다. 무서운 괴수는 장대한 생태계로 이어집니다. 아무리 재규어와 제노모프가 교집합을 형성한다고 해도, 제노모프가 장대하고 화려한 생태계로 이어지나요? 그건 아닙니다. 제노모프는 원초적인 영성을 상징하지 못합니다. 시위 집회에서 환경 운동가가 다국적 식량 기업에게 반대하고 재규어 사진을 높이 들어올릴 때, 재규어 사진은 원초적인 영성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신의 정원사들이 여러 야생 동물들을 존중하는 것처럼, 환경 운동 시위에서 재규어 사진은 영성을 상징합니다.

 

재규어 사진처럼, 제노모프 피규어가 영성을 상징할 수 있나요? 만약 시위 집회에서 환경 운동가가 제노모프 피규어를 높이 들어올린다면, 이게 영성을 상징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영화 <에일리언>은 지구 생물 다양성에서 제노모프가 비롯했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비단 지구만 아니라 다른 외계 행성들 역시 생명의 요람인지 모르나, 외계 가이아 행성에서 제노모프는 비롯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제노모프는 인위적인 생체 병기인지 모릅니다. 노스트로모 과학 장교 애쉬는 제노모프가 완벽한 유기체라고 칭찬하나, 이 완벽한 유기체는 풍요로운 어머니 자연을 상징하지 못합니다.



만약 시위 집회에서 환경 운동가가 모스라 피규어를 높이 들어올린다면, 재규어 사진처럼, 모스라 피규어가 풍요로운 어머니 자연을 상징할 수 있나요? 네, 이건 가능합니다. 모스라 그 자체가 어머니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모스라는 열대 밀림과 원주민들을 보호합니다. 모스라는 산업 자본주의 도시를 습격하고 오염들을 정화합니다. 2019년 영화 <고지라: 괴수왕>에서 티타누스 모수라가 열대 밀림을 보호하지 않기 때문에, 이건 다소 아쉽습니다. <고지라: 괴수왕>과 달리, 다행히 애니메이션 <고지라: 괴수 행성> 3부작은 열대 밀림 부족민들을 보여주고, 부족민들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고지라: 괴수왕>과 달리, <고지라: 괴수 행성> 3부작에서 열대 밀림 부족민 마이나와 미아나는 주연 등장인물입니다. 마이나와 미아나와 달리, <고지라: 괴수왕>에서 열대 밀림 부족민은 주연 등장인물이 아닙니다. 하지만 심지어 이 영화에서조차 티타누스 모수라는 어머니 자연입니다. 모나크 사이언스는 티타누스 모수라가 어머니 자연이라고 규정합니다. (어쩌면 <고지라: 싱귤러 포인트>에서도 모스라는 어머니 자연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만약 시위 집회에서 환경 운동가가 모스라 피규어를 높이 들어올린다면, 어떤 사람들은 모스라 피규어를 비웃을지 모르나, 모스라는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환경 운동 시위에서 모스라 피규어가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처럼, 이 관점에서 재규어와 모스라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부엌에 괴수가 있어요>가 신화적인 재규어를 연출할 때, 이 장면과 신화적인 모스라는 비슷합니다. 재규어와 모스라는 신화적인 생물 다양성을 연출할 수 있으나, 제노모프는 이것을 연출하지 못합니다. 재규어와 제노모프가 교집합을 형성하기 때문에, 이 관점(커다랗고 은밀한 포식자 괴수)에서 재규어와 제노모프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제노모프가 풍요로운 모성을 상징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노모프보다 재규어와 모스라는 비슷합니다. 상징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재규어는 제노모프와 비슷하거나 모스라와 비슷합니다. 만약 커다랗고 은밀한 포식자 괴수가 기준이라면, 재규어와 제노모프는 비슷할 겁니다. 만약 풍요로운 모성이 기준이라면, 재규어와 모스라는 비슷할 겁니다. 이건 문화 영역입니다. 영화 <모스라>와 영화 <에일리언>은 대중 문화, 문화 예술입니다. 문화적으로 재규어는 제노모프와 비슷하거나 모스라와 비슷합니다. 문화 영역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그저께 11월 10일 게시글이 설명한 것처럼, 다양한 차이들은 문화 예술들을 해석합니다. (억지 대입, 짜집기, 과잉 해석 이외에) 문화 예술을 해석하기 위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고>가 시시하고 밋밋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고>가 요란하고 산만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자친구가 올해 최고 노래를 부른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무엇이 정답인가요? 무엇이 타당한 해석인가요? 모두 타당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여자친구는 <마고>를 부르고, <마고>는 시시하고 밋밋하거나 요란하고 산만하거나 올해 최고 노래가 됩니다. 여자친구 노래 <앞면의 뒷면의 뒷면>은 비록 인생이 혼란스럽다고 해도 장대한 세계가 유구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레이첼 카슨이 계절 순환과 치유를 읊조리는 것처럼, 이 노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레이첼 카슨이 계절 순환과 치유를 읊조리는 것처럼, <앞면의 뒷면의 뒷면>은 세계가 유구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노래가 정말 감동적이라고 느낄지 모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눈물을 비웃을지 모릅니다. "푸하하! 왜 사람들이 이 노래를 듣고 감동하지? 이건 그저 아이돌 노래에 불과해! 이건 예술이 아니야! 이건 그저 상업 음악에 불과해! 우리는 이 노래를 듣고 감동해서는 안 돼! 어떻게 고작 아이돌 노래 따위가 감히 <센스 오브 원더>에게 까불 수 있어?" 이게 타당한 해석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문화는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문화가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센스 오브 원더>와 <앞면의 뒷면의 뒷면>은 비슷할 수 있습니다. 종종 여자친구 노래들은 자연 친화적인 느낌을 풍깁니다. <앞면의 뒷면의 뒷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센스 오브 원더>와 <앞면의 뒷면의 뒷면>이 비슷한 것처럼, 재규어와 모스라 역시 비슷할 수 있습니다. 문화 해석들이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센스 오브 원더>와 <앞면의 뒷면의 뒷면>이 비슷하지 않다고 느끼고 재규어와 제노모프가 비슷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마고>는 시시하고 밋밋한 노래이거나 올해 최고 노래입니다. 문화 예술 해석들은 아주 다양합니다.

 

하지만 문화 예술과 달리, 과학은 다양하지 않습니다.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감소, 환경 오염은 다른 해석들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건 유일한 현실입니다. 재규어는 제노모프와 비슷하거나 모스라와 비슷할 수 있으나, 생물 다양성 감소는 유일한 현실입니다. 생태학은 유일한 현실, 환경 오염을 경고합니다. 다른 해석들은 환경 오염이 심각하지 않다고 반박하지 못합니다. 생물 다양성 감소는 심각한 비극입니다. 심각한 비극 때문에, 재규어는 부엌에 들어오고 하소연합니다. 왜 심각한 비극이 나타납니까? 세계화 자본주의가 자연 환경을 상품화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돈벌이가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커다란 미덕은 돈벌이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커다란 병폐는 돈지랄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자연 환경을 상품화하기 때문에, 돈지랄에서 자연 환경 역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에서 자연 환경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재규어는 남아메리카 생태계에 속하나,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심각한 제국주의 피해자들입니다.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제국주의 피해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열대 밀림 생태계들을 지키지 못합니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로 확장하고, 여전히 돈지랄은 남아메리카 국가들을 압박합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과거를 청산하고 자본주의를 타파한 이후, 돈지랄에서 제3세계 국가들은 벗어날 겁니다. 돈지랄이 사라진 이후, 재규어와 열대 밀림은 풍요로워질 겁니다. <부엌에 괴수가 있어요>는 이것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비단 <부엌 괴수>만 아니라 많은 환경 운동들은 미친 돈지랄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장 커다란 병폐, 돈지랄이 사라진 이후, 신화적인 재규어는 미소를 지을 겁니다.

 

 

※ 그저께 11월 10일 게시글은 호랑이가 독보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호랑이와 재규어가 똑같은 계열(Panthera)에 속하기 때문에, 호랑이처럼, 재규어는 독보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재규어는 아주 매력적인 동물입니다.

 

※ One way. 우리는 크게 원을 그리자. 달려, 지금 이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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