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맨 인 블랙>과 진실을 독점하는 특권 의식 본문
영화 <맨 인 블랙>을 상식을 깨라고 요구합니다. 도입부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맨 인 블랙>은 관객들이 상식을 깨야 한다고 말하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도시 문명은 겉보기와 다릅니다. 사실 지구 전체는 겉보기와 다릅니다. 대부분 인간들은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하나, 외계인들은 이미 우리들 속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외계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중입니다. 우리는 외계인들을 알지 못하나, 외계인들은 우리를 압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나, 그들 중에서 몇몇은 외계인들입니다. 심지어 마이클 잭슨 같은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조차 외계인일지 모릅니다.
게다가 외계인들은 인간과 다릅니다. 당연하죠. 그들은 다른 행성들에서 왔습니다. 그들은 다른 세계들에 속했습니다. 그들은 그저 지구에 방문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고 방문자들입니다. 지구 토박이들과 그들은 다릅니다. 인간에게 당연한 것은 외계인들에게 당연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외계인들에게 당연한 것은 인간에게 당연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외계인들은 그런 차이들을 감수하고 인간으로서 살아갑니다. 관객들이 그런 외계인들을 구경하고 싶다면, 관객들은 상식을 깨야 합니다. 영화 <맨 인 블랙>은 J 요원을 이용해 상식을 깨뜨리기 원합니다.
K 요원을 비롯해 다른 검은 양복 요원들과 달리, J 요원은 관객들과 비슷합니다. 관객들은 외계인들이 지구에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관객들은 왜 외계인들이 지구를 방문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관객들은 누가 외계인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J 요원 역시 비슷합니다. 하지만 J 요원은 상식을 깨뜨릴 수 있고, 관객들은 어떻게 J 요원이 상식을 깨뜨릴 수 있는지 지켜봅니다. J 요원이 상식을 깨뜨린 것처럼, 관객들은 상식을 깨뜨립니다. 지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지구가 아닙니다. 상식은 깨져야 합니다. 지구에는 수많은 외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으로 위장했으나, 우리는 위장과 가면 넘어 외계인의 정체성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찾기 힘든 곳에서 진실을 숨어있습니다.
관객들이 상식을 깨뜨리지 않는다면, J 요원과 다른 검은 양복 요원들이 상식을 깨뜨리지 않는다면, 다들 진실을 찾지 못할 겁니다. 사실 검은 양복 요원이 된 이후에도 아직 J 요원은 세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합니다. 자꾸 J 요원은 겉모습 넘어 알맹이가 아니라 겉모습에 집착하죠. 휴대용 개인 무기는 그런 사례입니다. K 요원은 J 요원에게 아주 작은 권총을 건넵니다. J 요원은 권총이 너무 작다고 실망합니다. 하지만 작은 크기와 달리, 권총은 엄청난 위력을 자랑합니다. J 요원은 상식을 제대로 깨지 못했고 댓가를 치르러야 했죠.
어떤 관점에서 <맨 인 블랙>은 꽤나 독특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상식은 상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은 거짓이고 가면이고 위장입니다. 가면과 위장 넘어 진실을 들여다보기 위해 우리는 과감히 상식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건 아주 위험합니다. 누군가가 상식을 뛰어넘을 때,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억압하거나 따돌릴지 모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것은 상식이 됩니다. 누군가가 상식을 뛰어넘는다면, 그 사람은 대부분 사람들과 다른 의견을 내세워야 합니다. 이건 단순한 의견 충돌이 아닙니다. 상식은 공동체를 유지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동의하기 때문에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사고 방식들을 뒷받침합니다. 그것은 법이 되고, 질서가 되고, 도덕이 되고, 윤리가 되고, 관습이 되고, 규범이 됩니다. 누군가가 법과 도덕과 규범을 뛰어넘을 때, 혼란은 공동체를 침범할 겁니다. 공동체는 깨질지 모릅니다. 적어도 공동체는 꽤나 혼란스러워지겠죠. 수많은 사람들은 공동체를 지키기 원할 테고, 따라서 규범을 뛰어넘은 그 사람은 처벌을 받겠죠. 일반적인 시민이 외계인을 깨달았을 때, 검은 양복 요원들은 그 사람의 기억을 지웁니다. 이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처벌이죠.
어떤 관점에서 <맨 인 블랙>은 꽤나 위험합니다. <맨 인 블랙>은 상식을 깨뜨리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정말 상식을 깨뜨렸을 때, 검은 양복 요원들은 그 사람의 기억을 지웁니다. 그 사람이 진실을 알았음에도, 검은 양복 요원들은 그걸 막습니다. 검은 양복 요원들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일반적인 시민들은 세상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일반적인 시민들에게는 진실을 알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검은 양복 요원들은 그것을 막죠. 시민들이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검은 양복 요원들은 시민들이 어리석다고 간주합니다. 어리석기 때문에 시민들에게는 권리와 자유가 없습니다.
검은 양복 요원들은 평등을 믿지 않습니다. 검은 양복 요원들은 특권을 누립니다. 검은 양복 요원들은 진실을 독점해야 합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관객들은 검은 양복 요원들과 함께 특권층이 됩니다. 관객들이 진실을 안다고 해도, 검은 양복 요원들은 관객들의 기억을 지우지 않습니다. 관객들은 특권층이 되고 일반적인 시민들을 거만하게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우둔한 것들, 나는 네놈들이 알지 못하는 진실을 알아." 영화 <맨 인 블랙>은 이런 감성에 기댑니다. 이런 관점에서 <맨 인 블랙>은 엘리트가 되고 싶어하는 욕구와 허영심을 자극합니다.
영화 <맨 인 블랙>은 상식을 깨뜨리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아무나 함부로 상식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오직 몇몇 사람만 진실에 접근하고 특권층이 될 수 있습니다. 관객들은 그런 특권층이죠. 그래서 <맨 인 블랙>은 재미있습니다. 관객들이 특권층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일반적인 시민들보다 우월합니다. 관객들에게는 권력이 있죠. 일반적인 시민들은 우둔하고 계속 멍청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현실이 무엇인지 그들은 알아서는 안 됩니다. 일반적인 시민들이 우둔하기 때문에, 그들이 진실을 깨닫는다면, 그들은 세상을 어지럽힐 겁니다.
하지만 <맨 인 블랙>은 왜 일반적인 시민들이 어리석은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검은 양복 요원들은 그저 일반적인 시민들이 어리석다고 주장할 뿐입니다. "네놈들은 어리석어. 이유는 없어. 네놈들은 무조건 어리석어. 따라서 나는 네놈들보다 특권층이 되겠어." <맨 인 블랙>은 이런 사고 방식을 선호하죠. 그래서 사건들을 해결할 때마다 검은 양복 요원들은 붉은 불빛들을 쏴댑니다. 물론 검은 양복 요원들은 자신들이 지구의 질서를 지킨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비단 지구의 질서만이 아니라 우주 질서까지 지킵니다.
하지만 왜 일반적인 시민들이 어리석을까요? 왜 일반적인 시민들이 무조건 어리석을까요? 누가 그걸 규정했을까요? 흔히 우리는 민중의 자발성이 위대하다고 말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진보 지식인들은 민중의 자발성이 위대하다고 운운합니다. 하지만 <맨 인 블랙> 같은 영화는 그걸 부정합니다. 민중은 어리석습니다. 민중은 진실에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특권층은 민중을 다스려야 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맨 인 블랙>에는 민중의 자발성 따위가 없습니다. <맨 인 블랙>은 엘리트가 되고 싶어하는 허영심을 자극해야 합니다.
민중의 자발성보다 특권 의식은 훨씬 나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현실이 계급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소수 지배 계급은 다수 피지배 계급을 통제하죠. <맨 인 블랙>이 내세우는 특권 의식은 이런 계급 구조와 상통합니다. 그래서 민중들은 어리석습니다. 민중들은 가축들이고 개돼지들입니다. 검은 양복 요원들은 가축들을 통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말 민중들이 가축들, 개돼지들일까요? 그건 아니겠죠. 우리는 왜 지배 계급이 민중들을 개돼지라고 취급하는지 물을 수 있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걸 묻고 싶다면, 우리는 왜 계급 구조가 존재하는지 물을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우리는 그것에서 훨씬 멀리 나가고 아예 계급 구조를 뒤집어야 하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