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디스아너드>의 고래 기름과 웨일펑크 본문
[이런 거대 고래들은 이야기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고래 기름은 그저 설정에 불과하죠.]
멜란지 스파이스는 소설 <듄>을 상징하는 물질입니다.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스파이스를 먹고 머나먼 우주를 항해할 수 있어요. 레토 2세 같은 등장인물은 스파이스와 모래송어들을 이용해 아예 인간성을 버리고 다른 생명체가 되었죠. 사람들은 스파이스 없이 우주를 항해하지 못하고, 덕분에 스파이스는 은하 제국의 경제와 권력을 좌우하는 자원이 됩니다. 은하 제국에서 스파이스를 생산하는 행성은 아라키스이고, 당연히 수많은 귀족들과 권력 집단들은 아라키스 행성에 눈독을 들입니다.
비단 스파이스만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황제와 몇몇 귀족은 아라키스를 중요하게 여겼으나,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스파이스 생산지를 가볍게 여겼다는 뜻은 아닙니다. 멜란지 스파이스는 은하 제국을 유지하는 물질이고, 황제와 귀족들과 온갖 권력 집단들은 아라키스 행성과 스파이스 교역에서 절대 시선을 돌리지 못했어요. 현실 속에서 스파이스는 석유 같은 자원과 비슷할지 모릅니다. 비록 사람들은 석유를 먹지 않으나, 석유는 현대 문명을 유지하는 자원이에요. 그래서 어떤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들은 석유가 사라지거나 바닥이 난 세상을 그립니다.
<듄>을 읽은 독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멜란지 스파이스에 매달리는지 잊지 못하겠죠. 하지만 <듄> 이외에 다른 수많은 SF 소설들 역시 거대 문명을 유지하는 자원이나 기술을 설명합니다. 사실 대부분 SF 소설들은 가상의 자원을 선보이고, 그런 것들은 거대 문명에 다양한 영향들을 미칩니다. 어떤 기술은 핵심적일 수 있고, 어떤 자원은 별로 영향력이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SF 소설은 가상의 자원이나 기술을 이용해 어떻게 사회 구조와 사람들의 행동이 바뀌는지 탐구해요. 아마 비슷한 사례를 계속 언급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세상에는 수두룩한 SF 창작물들이 있고, 그런 창작물들은 가상의 자원과 가상의 기술과 거기에서 비롯한 가상의 사회를 묘사합니다.
<듄>이 멜란지 스파이스를 선보인 것처럼 다른 창작물들 역시 중요한 자원이나 동력원을 설정하죠.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언옵타늄이나 비디오 게임 <엔들리스 스페이스>에 등장하는 더스트는 이런 부류에 속할 겁니다. 이런 자원들은 새로운 기술이나 동력원으로 이어지고, 새로운 경제와 문명을 일으킵니다. 마치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 연료가 서구적인 근대화를 이끈 것처럼. 그래서 <에코토피아 비긴스> 같은 소설은 화석 연료를 버리고 새로운 동력원(태양열이나 풍력 발전)이 중요하다고 설파하죠.
종종 스팀펑크 장르 역시 이런 자원이나 동력원을 밑바닥에 깝니다. 가령, 비디오 게임 <디스아너드>가 나왔을 때, 어떤 게임 기자가 웨일펑크 운운하더군요. <디스아너드>는 전형적인 19세기 스팀펑크입니다. 그저 증기 기관 대신 고래 기름 기관이 등장할 뿐이죠. 고래 기름 이외에 <디스아너드>는 전형적인 스팀펑크를 보여주고, 사실 고래 기름은 별로 중요한 설정이 아니에요. 저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았으나, 몇 시간 동안 공략 동영상들을 구경했습니다.
하지만 거대 고래는 줄거리나 사건에 절대 영향을 끼치지 않더군요. 고래 기름 대신 그저 석탄이나 다른 자원을 집어넣어도, 게임에 아무 상관이 없을 겁니다. 구태여 웨일펑크 운운할 이유가 없었죠. 물론 디젤펑크나 아토믹펑크 같은 하위 장르가 아예 없지 않습니다. 사이버펑크는 여러 갈래들을 낳았고, 그래서 게임 기자 역시 웨일펑크를 언급했을 거에요. 하지만 <디스아너드>는 장르를 선구적으로 이끄는 게임이 아니고, <디스아너드> 같은 게임을 구태여 웨일펑크라고 부를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고래 기름 기관이 등장하는 스팀펑크라도 불러도 하등 무리가 없을 겁니다.
만약 <디스아너드>에서 향유 고래와 고래 기름이 중요하게 나왔다면, 웨일펑크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을 겁니다. <듄>에서 모래벌레와 멜란지 스파이스는 아주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디스아너드>는 그렇게 향유 고래와 고래 기름을 중요하게 묘사할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게임 속에서 사람들은 고래들을 잔인하게 도살하나, <디스아너드>는 그걸 강조하거나 자세히 파헤치지 않습니다. 이 게임은 괴로워하는 향유 고래를 잠시 보여주나, 그건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합니다. 괴로워하는 향유 고래는 중심적인 줄거리에서 멀리 벗어났어요. 게임 플레이어가 향유 고래를 동정하거나 말거나, <디스아너드>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디스아너드>에는 환경 보호 운동이나 동물 권리 운동이나 고래 기름 비판이 없습니다. 고래 기름이 상당히 중요한 자원임에도 <디스아너드>는 그저 자원을 둘러싼 상황들을 피상적으로 바라볼 뿐이죠. 이런 게임을 구태여 웨일펑크라고 부를 이유는 없을 겁니다. 그런 이름이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웨일펑크라고 부르고 싶다면, <디스아너드>는 그 이름에 걸맞는 주제를 펼쳐야 할 겁니다. 그런 주제는 보이지 않고, 그래서 저는 구태여 웨일펑크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가상의 자원을 묘사하는 SF 창작물을 언급해야 한다면, 저는 <디스아너드>보다 <듄>을 이야기할 겁니다. <듄>이 훨씬 가상의 자원과 가상의 생태계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반면, <디스아너드>에서 고래 기름은 그저 좀 특이한 병풍에 불과합니다. 고래 기름이라는 자원은 그것 자체로 아무 가치가 없어요. 고래 기름을 둘러싼 논의를 보고 싶다면, <백경> 같은 소설이 <디스아너드>보다 나을지 모르겠군요. <디스아너드>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디스아너드>는 재미있는 잠입 액션 게임이고, 자신의 본분에 충실합니다. 저는 그저 웨일펑크라는 관점에서 <디스아너드>를 지적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