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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하베스트>가 스팀펑크를 깊이 고찰할 수 있는가 본문

SF & 판타지/스팀펑크, 사이언스 판타지

<아이언 하베스트>가 스팀펑크를 깊이 고찰할 수 있는가

OneTiger 2018. 5. 3. 19:58

[게임 <아이언 하베스트>는 근사한 스팀펑크입니다. 이게 깊은 스팀펑크가 될 수 있을까요.]



게임 <아이언 하베스트>는 일종의 스팀펑크 장르입니다. 시대 배경은 1920년대이고, 유럽은 전쟁에 휘말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 속의 1차 세계 대전과 달리, <아이언 하베스트>에는 보행 병기들이 쿵쿵거리며 걸어다닙니다. 1차 대전 병사들과 거대한 보행 병기. 양쪽은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으나, <아이언 하베스트>는 양쪽을 멋지게 결합했고 독특한 풍경들을 자랑합니다. 게임 제작진은 화가 야쿱 로잘스키가 그린 그림들에게서 영향을 받았고, 그런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주장합니다. <아이언 하베스트>를 홍보하는 동영상 예고편에서 게임 제작진은 야쿱 로잘스키와 스팀펑크 그림들을 가장 먼저 보여줍니다.


아마 게임 제작진은 독특한 스팀펑크 그림이 <아이언 하베스트>를 대표하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홍보 예고편에서 그런 그림들 이외에 스팀펑크를 고찰하는 부분은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홍보 예고편에서 게임 제작진은 독특한 스팀펑크 분위기를 한껏 칭찬했으나, 그런 찬사는 금방 끝나고, 곧바로 게임 플레이에게 자리를 넘겨줍니다. 그리고 게임 제작진은 실시간 전략과 싱글 캠페인과 유닛들을 줄줄이 설명합니다.



<아이언 하베스트>의 홍보 예고편은 거창하게 스팀펑크를 고찰하는 것 같으나, 그런 부분은 얄팍합니다. 야쿱 로잘스키가 그린 멋진 그림들은 그저 포장지에 불과합니다. 진짜 알맹이는 실시간 전략이죠. 게임 플레이어가 자원을 채집하고, 건물을 짓고, 기술 사다리를 타고, 유닛들을 생산하고, 적과 싸우는 실시간 전략입니다. 그런 실시간 전략을 설명하기 위해 <아이언 하베스트>의 홍보 예고편은 대부분 비중을 할애합니다. 물론 홍보 예고편은 짧습니다. 이런 짧은 예고편으로 게임 전체를 판단한다면, 그건 커다란 오판일 겁니다. 게다가 <아이언 하베스트>는 그저 알파 데모 플레이를 내놨을 뿐이고, 정식 게임이 나오기까지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어쩌면 <아이언 하베스트> 본편을 직접 플레이한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좀 더 많은 정보들을 접할지 모릅니다. <아이언 하베스트>는 스팀펑크를 깊게 고민하는 게임이 될지 모르죠. 하지만 저는 그런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합니다. <듄 2000>이나 <KKND>나 <던 오브 워>나 <토탈 어나힐레이션>이나 <배틀존>처럼 <아이언 하베스트> 역시 자원, 유닛, 건물, 기술, 전술에 치중할 테죠. 이런 것들을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아무리 보행 병기가 멋지게 등장해도, 게임 플레이어가 오직 자원이나 유닛이나 기술 사다리만 들여다본다면, 스팀펑크 분위기가 무슨 소용이겠어요.



이는 <아이언 하베스트> 같은 게임에 아예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록 부차적이라고 해도, <아이언 하베스트>는 분명히 독특한 스팀펑크 분위기를 자랑합니다. 그건 게임 플레이어를 끌어당기는 매력 요소가 될 수 있겠죠. 그래서 게임 제작진 역시 홍보 동영상이 시작하자마자 멋진 삽화를 강조했을 겁니다. 하지만 스팀펑크 삽화가 게임 플레이어의 이목을 끈다고 해도, 그건 지속적이지 않을 겁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스팀펑크 분위기를 잊을 테고, 대신 어떻게 자원을 채집하고 유닛을 뽑고 적을 쓸어버릴 수 있는지 고민하겠죠.


왜 그렇게 기계 공학이 발전했는지, 그런 기계 공학이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는지, 그런 기계 공학이 사람들의 관념에 무슨 영향을 끼치는지 게임 플레이어가 고민할 수 있을까요? <아이언 하베스트>는 그런 물음들을 게임 플레이어에게 던질까요? 스팀펑크 장르이자 대체 역사 장르로서 <아이언 하베스트>는 인류 역사가 또 다른 길로 나갈 수 있는지 모색할까요? 저는 진정한 사이언스 픽션이 그런 것을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이언티픽 로망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이나 <최후의 인간>을 썼을 때부터, SF 소설은 그런 것을 물었습니다. 아니, 메리 셸리 이전에 원형적(proto) SF 소설들 역시 그런 것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언 하베스트>는 그런 것을 묻지 않겠죠.



<아이언 하베스트>에서 스팀펑크는 반짝이는 포장지입니다. 포장지는 진짜 미덕이 아니죠. 그저 알맹이를 근사하게 꾸미는 허울이죠. <아이언 하베스트>에서 진짜 미덕은 실시간 전략이고, 자원 채집이나 건물 건설이나 유닛 생산이겠죠. 아무리 <아이언 하베스트>가 싱글 캠페인을 강화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또 다른 인류 역사, 또 다른 사회 구조, 또 다른 인간상을 고민하는 시각이 없겠죠. 고풍스러운 보행 병기들은 그저 파괴와 학살을 색다르게 강조할 뿐이겠죠. 저는 <아이언 하베스트>가 얼마든지 SF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이언스 픽션이 자랑하는 핵심은 마우스 클릭이나 키보드 단축키나 유닛 생산이 아닐 겁니다. 저는 <아이언 하베스트>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 스팀펑크를 제대로 이야기하고 싶다면, 스팀펑크 소설들을 읽어야 할 겁니다. <아이언 하베스트> 같은 게임을 플레이했다고 해도, 스팀펑크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겁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오직 이런 게임 매체만으로 스팀펑크를 쉽게 재단하는 상황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스팀펑크는 그저 고전적인 보행 병기들이 쿵쿵거리는 장르를 넘어서지 못할 겁니다.



※ <아이언 하베스트>에서 사람들은 기계 공학을 독특하게 발전시켰으나, 생체 공학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스팀펑크가 생체 공학을 비틀 수 있는 장르임에도, <아이언 하베스트>는 거기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스팀펑크를 볼 때마다, 저는 스콧 웨스터펠드가 쓴 <레비아탄>이 꽤나 특별한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거대한 생체 비행선을 보여주는 1920년대 스팀펑크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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