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노아>의 환상적인 방주 생태계 본문
[만화 <노아>는 환상적이고 다양한 야생 동물들을 보여주고 가상의 생태계를 자극합니다.]
니코 앙리숑이 그린 만화 <노아>는 독특한 풍경들을 자랑합니다. 제목처럼 <노아>는 노아의 방주를 이야기하는 그래픽 노블입니다. 하지만 몇몇 부분은 기독교 <성경>이 아니라 스페이스 오페라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사이언스 판타지 같습니다. 거대하고 지저분한 도시, 각종 고대 야수들, 외계인 같은 천사들, 기이한 기계 장치들 덕분에 <노아>는 사이언스 판타지에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그래픽 노블을 사이언스 판타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겠죠.
<노아>를 계획한 대런 아로노프스키에게는 SF 만화를 그릴 마음이 없었을 겁니다. 거대 도시와 고대 야수들과 외계인들과 기계 장치들을 보여준다고 해도, <노아>는 기독교 신화에 기반한 그래픽 노블입니다. 설사 <노아>에 보행 전차나 공중 철갑함이 등장한다고 해도, <노아>는 절대 SF 장르가 되지 못하겠죠. <노아>는 <화성의 존 카터>와 달라요. 아무리 겉모습이 비슷해 보인다고 해도, 아무리 사이언스 판타지가 황당무계하게 보인다고 해도, 진짜 사이언스 판타지들과 <노아>는 다를 겁니다. 하지만 사이언스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니코 앙리숑이 묘사한 세계는 흥미로울 겁니다.
니코 앙리숑이 그린 풍경들은 고대 스팀펑크 판타지 같습니다. 니코 앙리숑이 무엇을 염두에 두었는지 저는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작가는 분명히 기이한 기계들과 어마어마한 건축 기술과 다양한 동식물들과 외계인들이 어울리는 이상야릇한 공간을 창조했습니다. 외계인 같은 천사들이나 기이한 기계들 역시 흥미로우나, 야생 동물들 역시 재미있는 설정입니다. 야생 동물들이 방주로 몰려오는 장면에서 독자들은 정말 신화 같은 판타지를 본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방주는 엄청나게 많은 동물들을 태웁니다. 이는 노아의 방주가 아니라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판타지 동물원 같습니다.
만약 독자가 상상 속의 동물이나 가상의 생태학을 좋아한다면, <노아>를 즐겁게 읽을 수 있겠죠. 이는 <노아>가 판타지 생태학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노아>는 위대한 선지자 노아가 세상을 구원하고 심판을 피하는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하지만 만약 작가가 상상력을 좀 더 발휘했다면, 방주를 이용해 판타지 동물원을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사실 방주는 정말 판타지 동물원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방주 안에서 동물들은 또 다른 생태계를 구성했을지 모르죠. 방주 안에서 거의 1년 동안 동물들은 지내야 했습니다. 동물들은 작은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었을지 몰라요.
사실 이 부분은 꽤나 모호합니다. 노아 이야기가 기독교 신화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기에 별로 딴지를 걸지 않습니다. 하지만 <노아>가 사이언스 판타지라고 간주한다면, 독자는 여러 생태적인 의문점들을 늘어놓을 수 있겠죠. 아무리 거대해도, 방주가 수많은 동물들을 태울 수 있을까요? 왜 방주에는 해양 생물들이 보이지 않을까요? 해양 생물들은 신의 천벌(홍수)에서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돌고래 같은 해양 포유류가 무슨 운명을 맞이할까요? 신이 천벌을 내린다면, 그건 일반적인 홍수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노아의 방주는 해양 동물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군요.
게다가 홍수가 닥치는 동안, 어떻게 방주 안에서 동물들이 살아남았을까요? 먹이나 대변은? 방주 안에서 정말 동물들이 작은 생태계를 이뤘을까요? 방주가 또 다른 생태계였을까요? 아니면 방주가 그저 동물원에 불과했을까요? 현대적인 생태학자들이 종자 은행을 만드는 것처럼 노아의 방주가 종자 은행이 될 수 있을까요? 노아에게 그렇게 생태적인 지식이 풍부했을까요? 노아가 생태학자였을까요? 기독교 신화에서 노아보다 더 생태학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노아>는 정말 그런 측면을 보여주고요. 어떻게 노아가 생태학을 배울 수 있었을까요? 신의 가호 덕분에?
이런 물음들은 <노아>에게 시비를 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노아>에게 시비를 걸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노아>가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사이언스 판타지 같은 설정들을 덧붙여보고 싶습니다. 만약 니코 앙리숑이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노아>를 사이언스 판타지로서 그릴 수 있었을 겁니다. 그건 꽤나 멋진 창작물이 될 겁니다. 하지만 <노아>가 사이언스 판타지가 된다면, 창조주는 걸림돌이 될 겁니다. 사이언스 판타지 역시 얼마든지 신을 인정할 수 있으나,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신과 사이언스 판타지가 설정하는 신은 서로 다르죠.
만약 <노아>가 사이언스 판타지가 되고, 여호와가 환상적인 외계 창조주가 된다면, 기독교인들은 엄청나게 항의할지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해도, 기독교인들은 크게 화를 내겠죠. 그렇다고 해도 사이언스 판타지 작가에게 노아의 방주는 재미있는 소재가 될 수 있어요. 작가는 노아의 방주를 이용해 가상의 폐쇄 생태계를 그릴 수 있겠죠. 스페이스 오페라 작가들은 우주 정거장이나 궤도 거주지나 소행성에 폐쇄 생태계를 만듭니다. 노아의 방주 역시 그렇게 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노아의 방주는 현대적인 환경 오염을 경고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노아>는 환경 아포칼립스 같습니다. 사람들은 탐욕스럽게 자연 환경을 파괴했고, 생물 다양성은 심각하게 줄어들었고, 사막화는 모든 것을 죽입니다. 노아는 다친 동물들을 치료하고, 식물들을 돌보고,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아의 방주는 새로운 생태계를 위한 희망이 될 수 있겠죠. 흠, 이건 정말 괜찮은 구상 같군요. 누가 이런 사이언스 판타지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노아>는 기독교적 구원에 너무 의지하나, 인류가 몽땅 죽어야 한다고 떠드는 숱한 SF 소설들보다 <노아>가 좀 더 나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해요. 왜 자꾸 SF 소설이 사회 구조가 아니라 인류를 싸잡아 비난합니까? 사실 인류를 비난하는 SF 소설들과 <노아> 모두 아주 심각한 문제를 드러냅니다. 인간들은 똑같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절대 똑같지 않아요. 미국 대통령과 부르키나파소의 이름 없는 시골 할머니가 똑같을까요? 정말 그 두 사람이 똑같은 인간일까요? 이는 말도 안 되는 왜곡입니다. 이는 인류 전체를 저주하는 아주 끔찍한 왜곡이죠.
우리가 정말 없애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 대의 제도, 가부장 제도 같은 억압입니다. 이름 없는 시골 할머니가 미국 대통령에게 얼마든지 저항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생물 다양성을 보존할 수 있을 겁니다. SF 작가들은 인류가 아니라 진정한 착취에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